< 682화 4. 마지막 퍼즐 (5) >
* * *
전멸(全滅).
모두가 죽었다.
정말 전멸이라는 말 그대로, 마군 진영의 병력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몰살당했다.
기세등등하게 천군 진영의 야영지를 향해 진격했던 마군 진영의 병력들이, 야영지의 건물들에 손 한번 대 보지 못하고 전부 궤멸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반 병사들뿐 아니라 영웅들조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천군 진영 영웅에 의해서 말이다.
-천군 진영의 영웅 ‘이안’이 마군 진영의 영웅 ‘무스카’를 처치하였습니다.
-천군 진영의 영웅 ‘이안’이 마군 진영의 영웅 ‘파르시온’을 처치하였습니다.
-영웅 ‘이안’이 ‘더블 킬(Double Kill)’을 달성했습니다!
-영웅 처치로 인한 보상이 20퍼센트만큼 추가됩니다!
……중략……
-천군 진영의 영웅 ‘이안’이 마군 진영의 영웅 ‘프리오니’를 처치하였습니다.
-영웅 ‘이안’이 ‘헥사 킬(Hexa Kill)’을 달성했습니다!
-영웅 처치로 인한 보상이 100퍼센트만큼 추가됩니다!
까망이의 기동성을 이용하여 쏜살같이 전장을 누비며 모든 마군 진영 영웅들의 뚝배기를 깔끔하게 부숴 버린 이안.
그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강렬했으며,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기에 부족함 없는 장면이었다.
무기만 활이었지 거의 근접 딜러처럼 싸우는 이안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날아갈 만큼 호쾌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해설자 하인스는 목이 터져라 이안을 부르짖었으며, 시청자 채팅 창은 폭발 직전까지 트래픽이 상승하였다.
-이안! 이것이 바로 이안갓입니다, 여러분! 이안갓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와…… ㄹㅇ 할 말이 없다. 무슨 레골라스인 줄.
-크으, 분명히 소환술사가 날뛰는 걸 봤는데 왜 궁수가 하고 싶어지는 거지?
-활 든다고 다 저렇게 할 수 있을 줄 앎? 현실은 근접 몬스터 한 마리만 붙어도 어버버 하다가 딜은 하나도 못 넣고 도망치게 될 걸?
-캬, 헥사킬이라니. 이제 영웅도 다 죽었고 게임 끝났네.
-맞음. 이대로 그냥 마군 진영 차원의 홀까지 밀면 깔끔할 듯.
-역시 로터스는 클리어하는구나. 이안갓도 이안갓이지만, 구멍이 하나도 없네, 진짜.
커뮤니티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경기 영상을 시청하던 로터스의 팬들은, 저마다 신이 나서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하였다.
이미 마군 진영의 야영지는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으며, 어느새 이안 일행은 마군 진영 차원의 홀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차원의 홀을 지키는 거대한 마수가 이안 일행의 앞에 소환되었지만,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다른 마족 영웅들이라도 있어서 마수와 함께 싸운다면 모르는 일이겠지만, 마수 혼자서는 이안의 무력 앞에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크워어어-!
소환되자마자 쏟아지는 천군 진영의 집중 포화에 순식간에 삭제되어 증발해 버린 마군 진영의 마지막 보루.
쿠웅-!
그리고 그렇게, 전투의 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마군 진영의 ‘차원의 홀’이 파괴되었습니다!
-영웅의 협곡 전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경기 시간 – 06:23:17
-처치 점수 – 16 : 1
-레벨 점수 – 25 : 28
……중략……
-최종 점수 – 79.75
-영웅의 협곡 순위 결정전이 종료되었습니다.
-‘로터스 팀’의 최종 점수가 명예의 전당에 등재됩니다.
-‘로터스 팀’이 랭킹 1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차원의 홀이 폭파되는 순간, 영웅의 협곡의 시간은 정지하였다.
그리고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은, 경기를 시청하던 모든 시청자들의 눈앞에 그대로 공유되었다.
세계 랭킹을 정하는 순위 결정전인 만큼 세세한 스코어 점수까지 클린하게 공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확인한 이안은 뿌듯한 표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 처음 치고는 나름 만족스러운 스코어네. 한 번 더 도전하면 90점대까지도 점수를 올릴 수 있겠어.’
6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의 전장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전장의 바깥으로 소환되기를 기다리는 이안.
그런데 그때,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추가로 떠올랐다.
이것은 로터스 팀원들의 눈에만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띠링-!
-영웅의 협곡 ‘Season1’을 최초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총 열 개의 ‘차원 영웅 랜덤 상자’가 지급됩니다.
-랜덤 상자는 로터스 팀의 리더인 ‘이안’ 유저의 인벤토리에 일괄 지급됩니다.
‘차원 영웅 랜덤 상자라…….’
알고는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보상이 들어오자 기분이 더욱 좋아진 이안.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이안의 눈앞에만 보이는 개인 시스템 메시지가 또 한 번 떠올랐으니 말이다.
-영웅의 협곡에서 ‘헥사 킬(Hexa Kill)’에 성공하여, ‘믿을 수 없는 업적 – 6’을 달성하셨습니다.
-‘용암의 장비 상자’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영웅의 협곡’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중간자의 위격을 얻기 위한 마지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초월적인 존재’ 퀘스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마지막 메시지까지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드라코우를 포획하고 용사의 의식을 프리패스로 클리어했던 이안.
당시 그는 ‘중간자의 위격’을 얻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됨과 동시에, 마지막 조건이 개방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었다.
‘그 마지막 조건이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지.’
때문에 이안은, 이 영웅의 협곡 순위 결정전을 마친 후 곧바로 카미레스를 찾아가 볼 예정이었다.
중간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이 무엇인지 물어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시점에 그 마지막 조건이 충족되어 버렸고, 하여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중간자로 승격하기 위한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고, 이제 ‘신의 부름’을 받는 일만 남았으니 말이었다.
‘뭐, 그것과 별개로 황금 상자를 열기 위해서 카미레스 아재를 한 번 정돈 만나야겠지만 말이지.’
아직도 인벤토리 한쪽 구석에 봉인되어 있는 ‘카미레스의 황금상자’를 잊지 않은 이안.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간자로의 승격이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 이안은 새로 얻은 퀘스트 창부터 먼저 확인하였다.
-초월적인 존재
평범한 지상계의 생령이 초월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을 극복해야만 한다.
신이 내린 모든 시험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중간자의 위격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신이 내린 모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였다.
이제 중간자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다.
용사의 마을 중앙에 있는 ‘초월의 제단’으로 가 신으로부터 ‘중간자의 위격’을 부여받자.
모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당신이라면, 신 또한 기꺼이 그대를 반길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없음.
퀘스트 조건 : 용사의 마을에서 ‘용사’계급 달성.
‘용사의 의식’ 퀘스트 클리어.
‘영웅의 협곡’에서 1승 달성.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중간자의 위격’ 획득
시공의 열쇠
퀘스트의 내용은, 최근 이안이 보아 왔던 그 어떤 퀘스트보다도 심플했다.
사실상 퀘스트라기보다는 모든 조건을 충족한 뒤 중간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절차’ 정도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안은 설레기 시작하였다.
이 중간자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던가.
‘흐흐, 중간계에 가보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드디어 입성할 수 있게 되었군.’
명계부터 시작해서 정령계 그리고 용천까지.
아쉽게 남겨 두었던 수많은 콘텐츠들이 떠오른 이안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중앙 공터를 향해 이동하였다.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한 장소인 ‘초월의 제단’은 용사의 마을 공터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차원 영웅 랜덤 상자’를 분배받기 위해 안달이 난 길드원들의 메시지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간지훈이 : 이안 형, 어디야? 랜덤 상자 하나씩 나눠 줘야지!
-유신 : 인당 하나씩 돌리고 나머지 네 개는 길드에 귀속시키기로 했잖아.
-레미르 : 이안이 너, 설마 혼자 꿀꺽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안 : 잠깐만 기다려 봐. 지금 뭐 하고 있는 게 있어서 그래.
마치 달리기 경주라도 하는 듯 마을 공터를 향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이안.
그리고 정신없이 목적지에 도착한 이안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석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방으로 멋들어진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 멋들어진 외형의 낯익은 석탑.
그저 용사의 마을을 꾸미기 위한 장식용 건물인 줄 알았던 이 제단의 정체를 알게 된 이안은, 뿌듯한 표정이 되어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뭐 하는 건물인가 했더니, 용사의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군.’
공터는 여느 때처럼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제 용사의 마을에는 수천 명이 넘는 세계의 랭커들이 상주하고 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이 공터에 머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에게 그런 것이 신경 쓰일 리 없었다.
이안의 시선은 오로지 석탑의 아래쪽에서 빛나는 푸른 크리스털에 고정되어 있었으니 말이었다.
저벅- 저벅-!
온통 시끌벅적한 가운데, 마치 혼자만 다른 공간에 있기라도 한 듯 거침없이 걸어가 수정에 양손을 올린 이안.
우웅-!
퀘스트 창에 어떤 별도의 설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수정에 손을 올리는 순간, 제단에서 신탁이 내려올 것임을 말이다.
“……!”
이어서 이안의 확신에 응답이라도 하듯 바위로 만들어져 있던 석탑에서 사방으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고오오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귓전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분명 ‘의식의 제단’에서 들었던 그 위엄 넘치는 목소리였다.
-한계를 초월한 영혼이여.
우우웅-!
마치 동굴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듯 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신의 목소리.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공터 전체가 급속도로 조용해졌다는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뭐야. 나한테만 들리는 거 아니지?”
“잘못 들었나?”
이안을 향해 내려온 신탁, 그리고 신의 목소리가 이안뿐 아니라 천군 진영 용사의 마을에 있던 모든 이들의 귀에 들린 것이다.
그리고 신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대는 나의 모든 시험을 모두 통과하였으며, 이렇게 나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하여, 그대에게…….
“……!”
-‘중간자’의 위격을 부여하도록 하겠노라.
공터에 있던 모두에게,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신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랭커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중간자라고?”
“누가 중간자를 달성한 거야?”
“미친! 벌써……?”
그 뒤로도 신의 목소리는 몇 차례 더 울려 퍼졌지만, 이안을 제외한 다른 랭커들은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언어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으니 말이었다.
-بارككم بشجاعة!
하지만 잠시 후, 유저들은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신의 목소리가 잦아든 뒤 모두의 눈앞에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 메시지가 말이다.
띠링-!
-한국 서버의 유저 ‘이안’이 최초로 중간자의 위격을 달성하였습니다!
-유저 ‘이안’이 명예의 전당에 등재됩니다.
-유저 ‘이안’이 랭킹 1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유저 네임 : 이안
-초월 레벨 : 35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