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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669화 (680/1,027)

< 669화 1. 최전방 야영지 (2) >

* * *

끝까지 쳐 놓은 암막 커튼 때문인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거실.

거실을 밝히는 것은 TV의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뿐이었고, 울려 퍼지는 소리들 또한 TV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 뿐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TV속 목소리들 때문인지, 거실의 분위기는 제법 시끌벅적하였다.

-길드마스터인 헤르스, 그리고 유신과 레비아가 전장에 남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안과 레미르, 훈이는 사냥을 나서는 것 같고요.

그리고 TV 앞 소파에 앉아 있는 한 남자는, 마치 화면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 집중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끊임없이 감자 칩을 집어먹으면서 말이다.

와그작- 와작-!

추리닝을 대충 걸친 채, 초췌한 몰골로 반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

그의 눈에는 다크서클마저 깊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눈빛만은 무척이나 초롱초롱했다.

-뭐, 적절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PVE에 강한 멤버들이 사냥을 나서는 편이 사냥 효율이 잘 나올 테니 말이죠.

-그래도 셋이나 전장을 비우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아닐까요? 이제 곧 마족 진영의 영웅들도 전장에 모습을 드러낼 텐데 말이에요.

-루시아 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적어도 초반에는 크게 염려하실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차피 초반에는 병사들과 포탑의 힘이 엄청 강력하기 때문이죠. 마족 진영의 영웅들과 인원 차이가 좀 난다고 해서, 방어선을 뚫릴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열심히 감자칩을 오물거리며, YTBC캐스터들의 해설을 듣던 남자.

나지찬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YTBC 캐스터들이 해설을 잘한단 말이지.”

영웅의 협곡 전장은 오늘 처음 공개된 전장이다.

물론 방송사에서는 해설에 필요한 약간의 정보를 사전에 넘겨받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정보들일 뿐이었다.

하인스와 루시아의 해설은 대부분 두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 하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

게다가 현장에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핵심을 잘 꼬집어 설명하는 두 사람의 해설이 나지찬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물론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나지찬은 탁자에 놓여 있던 찻잔을 한 모금 홀짝인 뒤, 다시 스크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순조롭게 전투를 진행해 온 로터스 팀이었지만, 이제부터 슬슬 변수가 발생하기 시작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루시아와 하인스는 물론 심지어 이안을 비롯한 로터스의 팀원들까지도 한 가지의 사실을 완벽하게 간과하고 있었으니까.

‘유저들이야 영웅의 협곡이 처음 겪는 콘텐츠겠지만 AI들의 입장에서는 아니라는 말씀.’

서리악령을 증식하여 단숨에 레벨을 끌어올리고, 악령으로부터 얻은 희귀 무기를 활용하여 중간 보스까지 순식간에 처치한 이안.

나지찬이 보기에도 분명 이안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그것은 ‘처음’이 협곡에 진입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대단한 것일 뿐이었다.

생각해 보라.

만약 사전에 서리악령을 증식할 수 있다는 정보를 가졌더라면, 이안이 아니라 누구라도 충분히 그러한 플레이를 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피지컬로 인한 사냥 속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정보만 가지고 있었다면 어지간한 랭커들은 비슷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적진의 영웅들인 마계 진영의 장수들은, 이안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AI들이었다.

전투 AI 또한, 여느 랭커 못지않게 뛰어난 수준.

때문에 이안을 비롯한 로터스 길드원들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은, 모두의 ‘착각’일 뿐이었다.

그것은 직접 기획에 참여한 나지찬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 먼저 도착했다고 무조건 앞서나간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말이지, 후후.”

TV로 송출되는 화면만 봐서는 마족 진영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나지찬은 대략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지금쯤 아마 마족 진영의 영웅들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지 살짝 눈을 감은 나지찬은, 씨익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발할라의 첫 번째 봉인을 풀기 위해 이동했겠지.”

* * *

발할라(Valhalla)는 본래, 북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궁전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하지만 이 영웅의 협곡에서 발할라는, 단순히 신들이 사는 궁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의 신족들’의 영혼을 봉인해 놓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띠링-!

-발할라의 첫 번째 봉인을 성공적으로 해제하였습니다!

-고대의 마신족, ‘오클립스’의 일족이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지금부터 마족 진영의 ‘차원의 홀’에서, ‘오클립스’일족의 용사들이 추가로 소환됩니다.

-이제부터 마족 진영의 ‘차원상점’에서, ‘오클립스’ 일족의 장비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훈이를 비롯한 로터스의 다섯 팀원들은 물론, 이안조차도 발견하지 못했던 콘텐츠인 발할라.

마족 진영의 영웅들이 가장 먼저 공략한 콘텐츠는 바로 이것이었다.

“크하핫, 첫 번째 봉인을 성공적으로 풀었군.”

“좋아. 이제 오클립스 일족의 병사들이 전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면 천군 진영의 녀석들은 박살이 나기 시작하겠지.”

“크크, 오클립스 일족의 거대한 덩치를 보기만 해도, 천군 녀석들은 혼비백산할 테지.”

“천군 녀석들도 신족을 깨우지는 않았으려나?”

“걱정도 팔자군 파르시온. 상대 녀석들은 협곡에 처음 발을 들인 애송이들이야. 발할라의 중요성을 알 리가 없잖아?”

“아마 발할라라는 게 있다는 사실도 모를걸?”

“하긴. 우연히 발할라를 찾았더라도, 공략에 성공하는 데 까지는 제법 애를 먹을 수밖에 없겠지.”

붉은 빛깔의 암석들로 만들어진, 멋들어진 외형을 가진 웅장한 신전.

그곳을 나오는 마족 영웅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난이도 높은 발할라의 시련을 초반부터 빠르게 클리어해 냈으니, 그것으로 한 발짝 크게 앞서가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전에서 걸어 나온, 여섯 명의 마족 영웅들의 평균 레벨은 8~9레벨 정도.

심지어 그들은, 레벨조차도 로터스 길드보다 앞서 있었다.

-발할라의 두 번째 시련에 도전할 자격이 충족되었습니다.

-시련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새로이 생성된 메시지를 확인한 마족 진영의 영웅들은 고개를 저으며 도전을 거부하였다.

“아니, 전멸당할 일 있어? 지금 두 번째 시련에 왜 들어가?”

“얼른 전장으로 가서, 천군 진영의 애송이들 목이나 따 버리자고.”

“크흐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군. 난 모아둔 돈으로 오클립스 종족의 언월도를 사야겠어. 허약한 천군 녀석들의 머리통을 쪼개 주기엔 거대한 오클립스의 언월도만 한 장비가 없지.”

저마다 한마디씩을 중얼거린 마족 영웅들은 신전을 둘러싼 수풀을 헤치고 빠르게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가까운 보급로를 찾아 진입하여, 최대한 빠르게 전장에 합류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마치 대장격으로 보이는 장군인 ‘무스카’가 일행을 리드하고 있었다.

“무스카, 이제 발할라도 오픈했는데, 다음 계획은 혹시 생각해 놓은 것 있어?”

“그러게, 일단 한동안은 전장에서 경험치를 쌓아야겠지만……. 계속 전장에만 있을 건 아니잖아?”

뒤따라오는 영웅들의 물음에, 무스카는 잠시 멈칫 하였다.

생각해 둔 작전들이야 여러 가지 있었지만, 경우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전장에 진입하면, 녀석들은 분명 방심하고 있을 거다.”

“방심? 어째서 그렇지?”

“그들은 우리의 레벨을 확인할 길이 없을 테고, 발할라의 존재도 알 리 없기 때문이지.”

“음……?”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보다 늦게 등장한 우리를 마주한다면, 당연히 레벨이 낮다고 생각할 터.”

무스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걸 역이용해서 녀석들을 유인한 뒤, 킬 포인트를 올리는 게 첫 번째 전략이다.”

“오호.”

“그리고 최대한 많은 킬 포인트를 확보해서 빠르게 경험치와 자원을 확보한 뒤…….”

잠시 뜸을 들인 무스카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녀석들이 부활 대기에 걸려있는 사이 ‘미로의 지하 통로’를 공략한다.”

* * *

차원코인을 탈탈 털어 모든 부위의 장비를 싹 차려입은 이안.

그의 레벨 업은 무척이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사냥을 시작한 지 10여 분 만에 2레벨을 추가로 올렸으니 말이었다.

-몬스터 ‘자이언트 더스트’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546만큼 획득합니다.

-소환수 ‘뿍뿍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뿍뿍이’의 레벨이 초월 11레벨이 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2레벨을 달성하여 새로운 고유 능력을 하나 더 개방할 수 있습니다.

서리 단검처럼 따로 획득한 아이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닥났던 차원코인도 다시 제법 쌓인 상황.

그리고 이러한 빠른 사냥이 가능했던 이유는 훈이와 레미르의 ‘몰아주기’ 전략 덕분이었다.

훈이와 레미르가 유틸 마법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냥터의 경험치를 이안에게 몰아준 것이다.

이것은 로터스 팀의 무척이나 즉흥적인 작전이었는데,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전략을 짜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작은 사냥터로 이동하던 도중 이안이 우연히 발견한, 하나의 숨겨진 던전(?) 때문이었다.

“누나, 유신이랑 헤르스, 레비아 님이 전방에서 버텨 주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1,500차원코인을 모아 보자.”

“그걸로 뭘 할 건데?”

“방금 우리가 지나왔던 ‘군수물자 관리소’ 기억나지?”

“응. 당연하지.”

“처음 지나갈 때는 몰랐는데 방금 보니까 그 바로 뒤쪽에 던전 같은 곳이 하나 있었거든. 이름이, ‘미로의 지하 통로’ 였던가?”

“미로의…… 지하 통로?”

“응. 들어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느낌상 숨겨진 던전 같은 곳이었어.”

“그런데 그곳이랑 차원코인이 무슨 연관이 있어?”

“거기 입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미로의 증표’ 라는 아이템인데, 그게 1,500코인이더라고.”

“아하……?”

“초반에 1,500코인이 적은 자원은 아니지만, 거기 들어가기만 하면 분명히 그 이상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오케이, 좋았어. 형이 얻은 그 단검처럼 희귀 등급 장비만 몇 개 주울 수 있어도 충분히 남는 장사지.”

미로의 열쇠를 구입하기 위한 1,500차원코인.

세 사람은 사냥의 첫 번째 목표로, 미로의 지하 통로를 오픈하기 위한 1,500코인을 모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이 영웅의 협곡 내에서, 자원이나 아이템을 교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세 사람이 획득한 코인을 한 사람에게 모아 줄 수가 없다는 점.

해서 레미르와 훈이가 생각한 것이, 이안에게 일단 사냥 보상을 몰아주는 것이었다.

“이안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네가 먼저 몇 레벨 더 빠르게 올리는 것은 어때?”

“으응?”

“나랑 훈이랑 너한테 전부 몰아주기 식으로 운영해 볼 테니까, 네가 레벨도 빠르게 올리면서, 1500코인 먼저 모아서 지하통로 문을 따는 거지.”

“오호.”

“그리고 던전에 진입한 뒤부터는, 네가 나랑 훈이를 버스 태워 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조금 더 빠른 시점부터 던전 안에서 사냥이 가능할 테니까.”

레미르의 이야기는 계획에 없던 변칙적인 전략이었지만, 이안과 훈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듣기에도 충분히 괜찮은 작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고작 10분 정도 만에, 이안의 인벤토리에 1,500차원코인이 다시 모일 수 있었고…….

“좋아, 이제 돈은 모였고, 둘 다 준비 됐지?”

“오케이! 스킬 쿨도 거의 다 돌아왔어.”

“나도 준비됐어!”

빠르게 ‘미로의 증표’를 구입해 온 이안은 망설임 없이 던전의 입구를 오픈하였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특수 아이템, ‘미로의 증표’를 사용합니다.

-‘미로의 지하 통로’의 입구가 열렸습니다.

-지하 통로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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