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67화 (678/1,027)

< 667화 3. 영웅의 협곡 (8) >

* * *

특정 기간 동안 매주 한 번씩 정해진 날에 오픈되는, 영웅의 협곡 순위 결정전.

그러나 순위 결정전에 도전 가능한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입장할 수 있는 시간까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날까지 팀 단위로 신청서만 넣어 놓으면, 해당 일 아무 때나 순위 결정전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로터스 팀이나 타이탄 팀과 같이 방송 일정이 잡혀 있는 경우, 서로 일정이 겹치지 않게 시간을 맞춰서 전장에 입장했던 것.

때문에 한국 게임 방송에 방영되지 않는 해외 서버의 랭커 팀들 중에는 로터스와 같은 타임에 전장에 입장한 팀들도 제법 있었다.

하여 해외 스트리머들 중에는 같은 타임에 전장을 시작한 여러 팀들의 영상을 동시에 스트리밍하여 방영하는 스트리머도 있었다.

“자, 왼쪽은 영국 서버의 상위 길드인 ‘체이서’ 길드의 영상이고요, 오른쪽은 우리 이안갓의 길드이자 한국 서버의 랭킹 1위 길드 로터스, 아래쪽에 띄워 놓은 영상은 독일 쪽 랭커 길드라는데, ‘파블로프’길드라고 하는군요.”

-우리 이안갓은 무슨……. 솔직히 말해봐, 너 얼굴만 하얀 김치맨이지?

-이 BJ 그동안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늘 제 무덤을 팠네요.

-맞음. 맨날 이안이 세계 랭킹 1위라고 떠들어 대는 거 보기 싫었는데, 오늘 본인 방송에서 부정당하게 생겼음.

-크, 체이서 길드랑 파블로프 길드 중 하나라도 로터스보다 상위에 랭크되면, 저 친구 표정이 어떻게 될지 궁금함.

-쯧쯧,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이안갓 전투 영상 라이브로 보고 지릴 준비나 하시죠, 다들.

카일란 영국 서버의 상위 랭커이자 주로 유럽 서버의 랭커들의 플레이를 스트리밍하여 방송하기로 유명했던 BJ인 페이온.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의 스트리밍 목록에 단골로 등장하는 서버가 하나 추가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 서버였다.

‘크, 첫 타임부터 로터스로 시작하다니. 오늘 시청자 좀 끌어모을 수 있겠는데?’

화면의 한쪽 구석에 떠올라 있는 로터스 길드의 인장을 보며, 기분 좋게 웃음 짓는 페이온.

그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쯤 로터스 길드와 이안의 팬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흐흐, 이안과 로터스 덕에 구독자가 이만큼이나 늘었는데, 팬이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지.’

사실 그가 처음 ‘이안’이라는 유저를 접한 것은, 웹상에 떠돌던 매드무비 영상 때문이었다.

‘Korean Ranker’s Mad MOVIE’라는 타이틀로, 짧게 편집되어 떠돌던 10여 분짜리의 짧은 영상.

그리고 그 영상에서 처음 이안을 접한 페이온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10분짜리 영상의 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안의 전투 장면들은 지금껏 본 적 없었던 수준의, 말 그대로 ‘미친’플레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유럽 유저들은 ‘잘할 때만 편집하면 저 정도는 다들 한다’는 식의 논리로 이안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달랐다.

페이온은 처음 본 순간 이안이 보여 주는 플레이들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속된 말로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때부터 페이온은 이안이라는 유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고, 그의 영상들을 구하기 위한 루트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한국에서 이안의 영상을 주로 편집하여 업로드 하는 ‘소진’까지 접촉하게 되었고 말이다.

‘처음에는 수익 분배 비율이 너무 짜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계약하기를 잘했지.’

페이온이 이안의 영상을 방송함으로 인해 얻는 수익은 거의 대부분 한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페이온이 얻는 이득은 상당했다.

일단 이안의 영상을 따온 뒤부터 구독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광고 수익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이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페이온.

그는 이번에 기획한 방송 콘셉트도 엄청난 호응을 불러올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이렇게 로터스를 포함해서 여러 팀의 영상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방송하면, 분명히 흥미를 느끼는 구독자들이 많을 거야.’

유럽의 유저들 중에는, 아직도 이안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물론 이제는 예전과 달리 유럽에도 이안의 팬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래 봐야 본토의 랭커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더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여 페이온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유럽 팀의 영상들과 로터스 팀의 영상을 동시에 스트리밍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이안과 유럽 랭커들 간의 비교’라는 자극적인 콘셉트를 이용하여, 아직도 본토의 랭커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팬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방송하면 자연히 어그로가 끌리겠지. 흐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방송의 타이틀 또한,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이안갓 VS 유럽 랭커들’. 영웅의 협곡 순위 결정전 라이브 중계!

그리고 이러한 페이온의 시도는 그야말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단숨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페이온의 방송이 실시간 1위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들어온 유럽의 유저들은 왁자지껄 채팅하며 떠들기 시작하였다.

-크, 흥미진진하네. 오늘에야말로 논란 종결 각인가.

-글쎄. 체이서 길드나 파블로프 길드가 최상위권이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탑급은 아니라서…….

-체이서는 몰라도 파블로프는 탑급 맞음. 로터스인지 머시긴지, 제대로 발라 줄 수 있을 듯.

-마늘 냄새나는 코리안들, 협곡 클리어나 할 수 있으려나.

-파블로프 파이팅! 저력을 보여 달라고!

-이안, 저거 고평가가 확실함. 그냥 콘텐츠 좀 선점해서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실력으론 유럽서버에도 뒤지지 않는 랭커들이 많음.

└맞아요. 지금까지 이안이 활약했던 건, 사실 레벨발 장비발이었음. 하지만 영웅의 협곡에선 모두가 평등하지.

└동감합니다.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들 대부분은, 기세등등하여 본인들의 자국 팀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장비발과 레벨발이 없는 영웅의 협곡이라면, 유럽 서버의 랭커들이 이안과 비교해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부정당하기 시작하는 데에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작 1시간 만에, 너무도 확연하고 큰 차이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덕분에 스트리머인 페이온을 비롯한 소수 이안의 팬들만이,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아, 이게 정말 실화인가요? 로터스가 벌써 중간 보스를 잡아 버렸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속도입니다! 체이서는 이제야 첫 번째 재단을 클리어했고, 파블로프는 이제 겨우 두 번째 재단에 도착했는데 말이죠!”

* * *

서리칼날의 고유 능력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능력이었다.

만약 사정거리가 짧은 단검이 아닌 활 따위의 원거리 무기에 붙었더라면 ‘사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고유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안은, 이 고유 능력의 효과를 더욱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보스 레이드를 운영하였다.

둔화 효과를 극대화시켜, 녀석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차원 마수 ‘오르크’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오르크’의 생명력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오르크’의 상태이상 저항력이 약해집니다.

-‘오르크’의 생명력 회복 속도가 둔화됩니다.

-파티원 ‘레미르’의 마법, ‘콰그마이어’가 발동됩니다.

-‘오르크’의 이동속도가 3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파티원 ‘훈이’의 어둠 마법 ‘사후경직’이 발동됩니다.

-‘오르크’의 움직임이 1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의 단검에 붙어 있는 ‘서리 칼날의 표식’ 고유 능력.

그리고 레미르와 훈이의 디버프 마법 중첩.

이 모든 효과들이 극한까지 중첩되자 오르크의 표정에는 적잖은 당황이 어렸다.

‘둔화’계열의 디버프가 거의 극한까지 온몸을 휘감아 버리니 천근추를 달아 놓은 듯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입을 열어 포효하는 것 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크- 워- 어- 어- 어-!

덕분에 로터스의 딜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극한의 딜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프리 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이야! 둔화 풀리기 전에 털어 버리자고!”

“헤르스, 너도 그냥 가서 딜 해! 탱커 필요 없어!”

덕분에 오르크의 생명력 게이지는 순식간에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고 말았고, 이쯤 되자 오르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가드를 올려 들어오는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뿐이었다.

퍼펑- 퍼퍼펑-!

물론 가드를 올린다고 해서 피해량이 엄청나게 감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드로 감소시킬 수 있는 피해량의 최대치는 50퍼센트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이안은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유신, 저 녀석 가드 좀 풀어 줘!”

“오케!”

이안의 오더에, 유신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올라 녀석의 팔꿈치를 후려쳤다.

퍼퍽-!

그리고 오르크의 무게중심이 흔들리자, 유신의 고유 능력이 틈을 놓치지 않고 발동되었다.

-파티원 ‘유신’의 고유 능력 ‘무장 해제’가 발동합니다.

-‘오르크’의 ‘가드’ 모션이 해제됩니다.

유신이 격투 스킬을 활용해 녀석의 가드를 풀자 까망이의 등에 탄 이안이 그대로 오르크의 전면을 향해 쇄도한다.

푸릉- 푸르릉-!

‘어둠의 날개’로 순식간에 녀석의 목전까지 접근한 까망이는 그대로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그 위에서 뛰어내린 이안의 단검이 그대로 오르크의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콰득-!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보스 레이드에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차원 마수 ‘오르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오르크’의 생명력이 1,029만큼 감소합니다.

-차원마수 ‘오르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4,750만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초월 10레벨이 되었습니다!

-1,050차원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후략……

힘겹게 ‘차원술사들의 제단’을 클리어했던 이안을 제외한 다섯 명의 입장에서는 중간 보스라기에 허탈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나 버린 전투.

-협곡을 지키는 차원 마수 ‘오르크’를 처치하셨습니다.

-이제 승리의 협곡을 지날 수 있습니다.

-협곡을 넘어, 천군 진영을 지원하십시오.

무너져 내리는 오르크의 거구를 보며, 훈이가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이안에게 물었다.

“형, 무슨 치트키 같은 거 쓴 건 아니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정비나 빨리 해.”

“아니, 그렇잖아. 레벨도 레벨인데, 대체 고유 능력 붙은 초월 무기는 어디서 주워 온 거야?”

“몰라, 인마. 그냥 사냥하다 보니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었거든.”

“후우,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지만 대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훈이의 표정은 무척이나 활기 넘쳤다.

이안 덕분에 승리의 협곡까지, 그야말로 고속도로가 뚫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빠르게 정비를 마친 파티원들은 모두 의욕적인 표정이 되었다.

이 승리의 협곡을 넘어 선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가 감으로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헤르스의 경우 ‘희귀(초월)’ 등급의 방어구인 ‘오르크의 흉갑’까지 획득했으니, 신이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볼 때 영웅의 협곡은 소규모로 만들어 놓은 RPG게임의 축소판이야. 결국 얼마나 효율적으로 파밍해서 빠르게 성장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

이안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 미니 맵 보면 최전방으로 가기 전에 여기저기 소규모 필드가 존재하거든. 이걸 왜 만들어 놨을까?”

좁고 길게 이어진 승리의 협곡을 지나면, 다시 맵이 깔때기 모양으로 넓어지며 광활한 평원이 나타난다.

아직까지도 최전방 이전에, 제법 넓은 맵과 사냥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크고 작은 소규모 필드들의 중앙에는 던전이나 미니보스를 의미하는 표식도 하나씩 박혀 있었다.

일행들은 미니 맵을 열어 이안이 말한 필드들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하였고, 그런 그들을 향해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내 생각엔, 굳이 모두가 최전방으로 빠르게 이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에 헤르스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빠르게 승리의 협곡을 통과한 의미가 줄어드는 것 아냐?”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였다.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아.”

“어째서?”

“우리는 벌어 놓은 시간을 이용해서 최대한 성장할 거야. 전선으로 이동하는 건, 마족 장군들이 나타나면 그때 가도 늦지 않아.”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 최대한 레벨, 장비 차이 벌려 놓고 힘으로 찍어 눌러 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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