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62화 (673/1,027)

< 662화 3. 영웅의 협곡 (3) >

* * *

영웅의 협곡에는 두 가지 종류의 전장이 있으며, 그 두 가지는, PVE와 PVP로 분류할 수 있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간의 전투, 그리고 플레이어와 인공지능간의 전투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로터스 길드가 입장한 순위 결정전의 경우 PVP가 아닌 PVE였다.

마족 진영과의 전투이기는 하지만, 상대 진영에 마족 유저들이 입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로터스 길드가 싸우게 될 적은 마군 진영의 병력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전장은 아니었다.

천군 진영에 로터스 길드 유저 여섯이 포함되었다면, 마군진영에는 유저 대신 장군NPC들 여섯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인공지능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마족 유저들보다도 더 강력한 상대일 수 있는 것.

물론 장군 NPC들도 전부 초월 레벨 1부터 시작하는 것이기는 하나, 일반 마군 병사들과 AI의 급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AI의 플레이가 뛰어나 봤자 얼마나 뛰어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 잘못된 생각이다.

과거 유명 게임들에서 사용되었던 핵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본다면, 최상급 AI들의 능력을 짐작해 볼 수 있으리라.

‘카일란 개발자들은 오히려 순위 결정전에서 승리하는 게 더 힘들 거라고 그랬다지.’

카일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개발자 인터뷰 내용을 떠올린 이안은 더욱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개발자들의 자신만만한 인터뷰는, 그에게 있어 오히려 자극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500차원코인이 주어집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차원 상인으로부터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 일행은 빠르게 이동하여 천군진영의 ‘차원 상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차원 상인 NPC가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였다.

“어서 오시게, 전장에서 승리하려면 좋은 장비를 착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지.”

이어서 차원상인의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일행의 앞에 구매 가능한 아이템 목록이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하지만 도합 스무 가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템 목록들이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아이템을 고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00차원코인으로 구매 가능한 아이템은, 극히 한정적이었으니 말이다.

‘흠, 무기를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나에겐 화염시가 있으니까.’

한차례 장비들을 쭉 훑어 본 이안은 망설임 없이 아이템 하나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푸른 사파이어가 박혀 있는 수수한 형태의 목걸이였다.

띠링-!

-‘마력 순환의 목걸이’ 아이템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마력 순환의 목걸이’ 아이템을 구입하면 375차원코인이 차감됩니다.

이안이 선택한 목걸이를 본 차원 상인이 재밌다는 듯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호라, 보는 안목이 있는 친구로구먼.”

“후후, 그렇습니까.”

“마력 순환의 목걸이는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아이템이지.”

차원 상인은 목걸이를 꺼내어 이안에게 건네주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첫 아이템으로 무기나 방어구를 구매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네. 정말 이 목걸이를 구매하시겠는가?”

일반적인 영웅의 협곡 시작 아이템은 사실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어진 500차원코인을 전부 사용해서 구매할 수 있는 장비들이, 클래스별로 하나씩 있었으니 말이다.

소환술사 클래스의 경우, 소환수들의 능력치를 소폭 버프시켜 주는 ‘보주’아이템이 기본 장비였던 것.

하지만 이안은 망설임 없이 이 목걸이를 선택했다.

-‘마력 순환의 목걸이’아이템을 성공적으로 구매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목걸이를 선택한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 장비 없이 화염시를 난사하면 분명 소환 마력이 턱 없이 부족할 거야.’

무기를 착용하지 못해 공격력 면에서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마력의 부족함 없이 화염시를 난사하는 게 훨씬 높은 DPS를 뽑아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력 순환의 목걸이

분류 : 목걸이

등급 : 일반 (초월)

모든 종류의 스킬 소모값(마나, 기력, 정령 마력, 어둠 마력 등)의 회복 능력을 100퍼센트만큼 증폭시켜 주는 아이템입니다.

*영웅의 협곡 전용 아이템입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으며, 영웅의 협곡 내에 존재하는 ‘상인’들에게만 되팔 수 있습니다(판매 가격 : 원가의 50퍼센트).

정보 창을 한 번 더 읽어 본 뒤 흡족한 표정으로 아이템을 장착한 이안.

이어서 그는 남은 돈으로 한 가지 아이템을 추가로 구매하였다.

-‘경험 증폭의 경단’ 아이템을 구매하시겠습니까?

-‘경험 증폭의 경단’ 아이템을 구입하면, 100차원코인이 차감됩니다.

125코인 중 100코인을 활용하여, 판매 목록에 존재하는 소모성 아이템 중 가장 고가의 아이템을 구매해 버린 것이다.

이안이 부츠나 벨트, 장갑 따위의 장비라도 구매할 줄 알았던 차원 상인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다시 이안을 향해 물었다.

“자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얼른 주기나 하시죠. 이제 1분 있으면 전투 시작이라고요.”

“허허, 재밌는 친구로구먼. 알겠네. 행운을 빌도록 하지.”

-‘경험 증폭의 경단’아이템을 성공적으로 구매하셨습니다!

이어서 이안을 비롯한 여섯 명의 장비 구매가 전부 끝나자, 차원 상인의 주변에 하얀 운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럼 그대들의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겠네. 첫 번째 전진기지인 ‘승리의 야영지’까지 무사히 도착한다면,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네.”

말을 마친 차원 상인의 신형이 점점 흐려지더니, 곧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이안 일행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차원술사들의 제단’을 격파하여 승리의 협곡을 막고 있는 차원 결계를 제거하십시오.

-미니 맵에 표시된 두 개의 제단을 전부 파괴한다면, 차원결계의 힘이 약해질 것입니다.

이 영웅의 협곡 전장은, 오늘 처음 열린 곳이었다.

게다가 LB사에서 사전에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워낙 철저히 숨겨 왔기 때문에, 진행되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전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전장을 진행하는 유저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상대 진영의 ‘차원의 홀’을 파괴하면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 정도.

때문에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 일행은 곧바로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미니 맵 보니까, 차원제단이라는 곳이 서쪽 끝에 하나, 동쪽 끝에 하나 있네요.”

“그러게요. 이거 난이도를 알 수가 없으니, 인원을 나눠서 움직여야 할지 몰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네요.”

레비아와 헤르스의 이야기에, 옆에 있던 훈이가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하였다.

“헤르스 형, 그래도 이거 첫 트라이니까, 안전하게 한쪽 먼저 클리어하고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옆에 있던 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훈이의 말에 동의했다.

“훈이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우리 이 전장에서 사망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조차 모르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정보가 없는 콘텐츠를 플레이할 때,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훈이의 의견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일행은 마지막으로 이안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길드 마스터야 헤르스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마지막에는 이안의 오더대로 움직이는 것이 로터스 길드의 전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행의 시선을 느낀 이안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나 빼고 나머지 다섯 명은 동쪽에 있는 제단을 공략하러 이동해.”

생각지 못했던 이안의 이야기에, 헤르스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물었다.

“뭐? 그럼 너 혼자 서쪽 제단을 공략하겠다는 거야?”

옆에 있던 레미르 또한 거들었다.

“그건 말도 안 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레벨이랑 장비 다 초기화된 상황에서 너무 무모한 선택이라고.”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다시 입을 떼었다.

“당연히 나 혼자 서쪽을 공략하겠단 건 아니야.”

“그럼?”

“다섯 명이 동쪽 제단을 공략하는 동안 내가 서쪽 제단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정찰해 두고, 동쪽이 마무리되면 레미르 누나가 좌표 찍고 메스 텔레포트 쓰자.”

“아……!”

이안의 이야기에, 다섯 사람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사실 그렇게 기발하다고까지 할 만한 발상은 아니었으나, 순간적으로 떠올려 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훈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형,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그럴 거면 굳이 형이 그쪽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음……?”

“어차피 좌표만 확보하면 되는 거니까, 내 소환수나 형 소환수를 하나 보내 놓으면 되는 거잖아. 굳이 여기서 최고 전력인 형이 그쪽으로 갈 필요가 있냐는 말이지.”

충분히 일리 있어 보이는 훈이의 이야기.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소환수 혼자서 서쪽 끝까지 길을 뚫으면서 움직이긴 쉽지 않을 거라고 봐. 제단까지 가는 길이 무주공산이면 상관없겠지만, 분명히 몬스터나 함정 같은 게 있을 것 같거든.”

“아하!”

그리고 이안 일행이 대화하며 전략을 구상하는 동안, 남은 대기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차원병사들이 소환되기 시작한다는 메시지가 일행의 눈앞에 떠오른 것이다.

띠링-!

-지금부터 ‘차원의 홀’에서 양 진영의 ‘차원병사’들이 소환되기 시작합니다.

-어서 승리의 협곡 너머에 있는 ‘영광의 평원’으로 이동하여 적 차원병사들을 무찌르고 차원의 홀을 파괴하십시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차원 상인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공터가 새하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마치 땅 밑에서 솟아나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생겨나는 수많은 건물들.

한눈에 보아도 강력해 보이는 방어 타워들이 솟아남과 동시에, 그 가운데 거대한 ‘차원의 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어서 그 차원의 홀에서는 한 번에 수십이 넘는 차원병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맵의 정 중앙을 관통하는 대로를 따라 승리의 협곡을 향해 움직이는 차원병사들.

그들을 본 이안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뭐지? 제단을 파괴해야 협곡을 지날 수 있다며?’

차원병사들이 어째서 막혀있는 협곡을 향해 이동하는 건지 의아했던 것이다.

이안은 정보를 얻기 위해, 재빨리 병사 하나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지금 승리의 협곡으로 가시는 겁니까?”

“오, 용사님, 그렇습니다. 저희는 승리의 협곡을 넘어 영광의 평원으로 가야 합니다.”

“승리의 협곡은 결계로 막혀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용사님들과 달리 저희는 결계를 지날 수 있습니다.”

“아…….”

의문이 풀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략적으로 견적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역시 제단을 최대한 빨리 파괴하고 협곡을 지나는 게 중요한 거였어. 상대 장군들보다 우리가 빨리 도착해야 승기를 잡기 수월하겠지.’

이안과 병사의 대화를 옆에서 들은 길드원들 또한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체 없이, 미리 짜 놓은 작전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안을 제외한 다섯은 동쪽으로, 이안은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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