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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661화 (672/1,027)

< 661화 3. 영웅의 협곡 (2) >

* * *

짹- 째잭- 짹-!

맑은 새소리와 함께, 동녘하늘이 천천히 밝아왔다.

그리고 그 햇살이 마을을 비추자, 자연스레 마을에는 활력이 피어올랐다.

“차원의 숲 파밍 가실 법사 한분 구합니다! 광역딜로 코르무 한 방 나오는 법사님 우대합니다!”

“광산 퀘 하러 가실 탱커 한 분 힐러 한 분 모집합니다! 두 분만 오시면 바로 출발이오!”

“티버의 대장간에서 직접 제작한 따끈따끈한 판금 갑옷 팝니다! 상점에서 파는 것보다 내구도며, 성능이며 훨씬 좋습니다! 구경하고 가세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용사의 마을의 아침.

하지만 이 활력 넘치고 평화로운 마을의 공터 한편에는, 우울한 표정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후우…….”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상자를 양손으로 집어든 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는 남자.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안이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상자를 열 수 없습니다.

“아니, 왜! 좀 열리라고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상자를 열 수 없습니다.

“후우…….”

마치 이안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 황금빛 상자.

사실 여기에 얼마나 대단한 보상이 들어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안은 어떻게든 이 상자를 열어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으, 거기서 퀘스트가 끝나 버릴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다음 시련 시작할 때 열어 보려 했었는데…….’

심지어 이 얄미운 상자는 이안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 창의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다른 부분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알 수 없음’이라고 떠 있던 상자의 등급이 ‘영웅(초월)’ 등급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지상계에서야 영웅 등급 정도는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여기는 중간계.

중간계에 들어선 랭커들 중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그조차도 유일 등급 이상의 초월 장비는 얻기 쉽지 않았으니, 이안의 입장에서는 더욱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마 퀘스트 시작되자마자 오픈 가능 상태로 바뀌면서 등급이 정해진 거겠지.’

마치 받았던 선물을 다시 빼앗긴 아이처럼,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이안.

지금 당장이라도 이 상자를 들고 카미레스를 찾아가 열어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카미레스는 어디 갔는지 지금 막사에 없었고, 오늘 해야 할 일정이 있는 이안은 카미레스를 찾아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안이 잠시 분을 삭이며 앉아 있던 그때.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이안의 주변에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바로 헤르스와 피올란, 레미르 등.

로터스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자, 다들 준비는 끝난 거지?”

헤르스의 말이 떨어지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로터스의 길드원들.

그리고 그들 중 이안과 헤르스를 비롯한 여섯 명이 앞으로 나와 모였다.

“너무 부담 갖지 말자고요, 우리. 어차피 128위 안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레비아의 말에, 옆에 있던 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128위. 그 안에만 들면 어차피 순위가 높다고 해서 이득 볼 수 있는 부분은 딱히 없어요.”

“흐흐, 설마 우리가 28위도 아니고 128위 안에 못 들겠습니까? 맘 편히 합시다.”

한마디씩 나누며, 장비와 스킬들을 정비하는 여섯 명의 길드원들.

오늘은 바로 ‘영웅의 협곡’참전을 위한 첫 번째 순위 결정전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 * *

이안이 용사의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용천에 다녀오고, 또 레벨 업에 힘쓰느라 시간을 보낸 사이, 용사의 마을에도 이제 ‘용사’계급을 가진 랭커들이 제법 많이 생겨났다.

지금 로터스 길드원들 중에도 벌써 ‘용사’ 계급을 달성한 사람이 스무 명 가까이 되었으니, 천군 진영 전체로 따지면 얼추 이백 명도 넘는 랭커들이 용사 계급을 달성하였고, 마군진영까지 합하면 거의 오백 명의 용사 계급 랭커들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래 봐야 아직 초월 레벨은 10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용사 계급이 오백 명에 달한다는 것은, 순위 결정전에 참여할 수 있는 팀도 50팀이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모두 128팀을 뽑는 순위 결정전에서 고작 50팀 정도가 참여한다면 너무 넉넉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번은 단지 첫 번째 순위 결정전에 불과했고, 다음 주에 열릴 두 번째 순위 결정전에는 훨씬 많은 팀이 참전하게 될 테니 말이었다.

“첫 주부터 이렇게 많은 팀이 참전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피올란의 말에, 레미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맞아요. 저는 끽 해야 다섯 팀에서 열 팀 정도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제가 세계 랭커들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었나 봐요.”

“지금 랭킹 목록 보니까 공헌도 9만 넘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네요. 다음 주엔 정말 볼 만하겠어요.”

“그쵸. 다음 주쯤이면 후발주자들까지도 대거 용사 계급 달 테니, 500팀 정도는 가볍게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으……. 128팀도 못 채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좀 안일했었나 봐요.”

제 1회 영웅의 협곡 전투가 치러지기 전까지, 순위 결정전은 이번 주를 포함하여 두 번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 두 번의 기회 중 높은 점수를 달성한 회차의 스코어가 랭킹에 등재되게 된다.

이 랭킹 목록을 기준으로 128위 안에 들어 있는 팀까지, 카일란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 ‘영웅의 협곡’에 참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뭐,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서 기록 한번 만들어 보자고요.”

헤르스의 말에, 로터스 대표로 참전하기로 결정된 여섯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다음 순간, 뭔가 이상함을 발견한 훈이가 이안을 향해 물어보았다.

“형, 무슨 일 있어?”

“음? 뭐가?”

“표정이 안 좋은데,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리고 훈이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이안이 아닌 헤르스였다.

“쟤 기분 안 좋을 수가 없을 텐데.”

“……?”

“노엘이한테 아까 들었는데, 어제 용천 가서 NPC 엄청 털어 먹었다던데?”

“헐, 또 뭘 얼마나 털어 먹은 거야, 이 형.”

“노엘이 말에 의하면 이안이 쟤 초월 레벨 30도 넘었을 거라고…….”

“커헉……!”

헤르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다시 배가 아파 오기 시작하는 훈이.

‘크윽, 난 이제 초월 13레벨인데……. 용사의 의식 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안은,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조차 없었다.

다만,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 무시무시한 내용의 말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

“부숴 버려서라도 갖고 말겠어…….”

그 말을 잘못들은 레미르가 기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안이가 전장 다 부숴 버리겠대!”

* * *

매주 벌어지는 용사의 마을 요일 전장으로 인해, 최근 들어 방송 콘텐츠가 넘쳐나는 게임 방송 방송사들.

특히 한국 게임 방송 시장의 절반이 넘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YTBC는, 최근 매출과 주가가 수직상승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한 자릿수를 절대로 넘지 못하던 시청률이, 최근에는 어지간한 공중파 인기 프로그램을 위협할 정도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으니, 매출이 오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자, 오늘 방송 엄청 중요한 건 다들 아시죠?”

하인스의 말에, 방송국 스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오늘은 바로, 영웅의 협곡 첫 번째 순위 결정전이 벌어지는 날.

영웅의 협곡은 현재까지 카일란에서 나왔던 모든 콘텐츠들 중, 가장 많은 유저들의 관심이 모여 있는 콘텐츠였다.

게임 내에서 콘텐츠 자체가 가지는 중요성 보다는,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콘텐츠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카일란 표 E-스포츠나 다른 없는 콘텐츠였으니 말이다.

“오늘 순위 결정전 참전하는 한국 팀이 총 다섯 팀인가요?”

루시아의 말에, 하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맞아요, 다섯 팀.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4.5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군 진영 팀 중 한 곳은, 한국 길드랑 일본 길드가 섞여 있는 팀이니까요.”

“오, 그런 팀이 있나요?”

“네. 한국 유저 둘에 일본 유저 넷으로 구성된 팀이 하나 있어요.”

“아하…….”

오늘 YTBC의 방송 일정은, 전부 다 순위 결정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일단 정오에 시작될 첫 타임에 로터스 길드의 팀 순위 결정전이 방영될 예정이었으며, 그 다음 순서가 타이탄, 그 다음으로 마족 진영의 팀인 호왕 길드와 다크루나 길드의 순서가 이어지게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YTBC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루시아와 하인스는 아침부터 바쁠 수밖에 없는 것.

게다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보이는 콘텐츠인 만큼, 캐스터인 하인스와 루시아의 입장에서는 공부해야 할 것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도 역시 최고 시청률은, 이 첫 번째 타임에 피크를 찍겠죠?”

루시아의 말에, 하인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한국 카일란 유저 전부가 TV를 틀지 않을까요.”

“호호,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인스와 루시아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차근차근 방송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늘 방송으로 또 다시 최고 시청률을 갱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콘텐츠가 처음 공개되는 순간인 데다, 한국 최고의 랭커이자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이안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니, 시청률이 폭발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시계바늘이 정확히 12시 정각을 가리키자…….

“안녕하세요, 여러분. YTBC의 캐스터 하인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캐스터 루시아입니다.”

두 사람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YTBC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 * *

우우웅-!

-‘영웅의 협곡’ 전장에 입장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전투가 전부 끝날 때까지, 전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팀원 중 한 명이 로그아웃될 시, 자동으로 실격 처리됩니다).

-모든 장비가 착용 해제되었습니다.

-영웅의 협곡 전장 안에서는 인벤토리 오픈이 제한됩니다.

-영웅의 협곡 전장에서는 ‘영웅 상점’에서 판매하는 아이템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장에 입장한 모든 유저의 초월 레벨이 1로 재설정됩니다.

……중략……

-마군 진영의 ‘차원의 홀’이 부서지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천군 진영의 ‘차원의 홀’이 부서지면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전투에서 패배할 시, 획득한 점수는 절반으로 적용됩니다.

-유저 네임 : 이안

-클래스 : 소환술사

-지금부터 3분 뒤, 차원병사들이 소환되기 시작합니다.

영웅의 협곡에 입장한 이안의 눈앞에,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이어서 그 모든 메시지들을, 이안은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이안으로서도 완전히 처음 접하는 콘텐츠이다보니, 모든 것이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벨도 1로 재설정되고, 아이템도 전부 사용할 수 없다고?’

그리고 그 내용들을 확인한 이안은 카일란 기획 팀의 의도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누적시킨 모든 보상들과 경험치, 장비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할 수 있도록 판을 깐 거네.’

처음에는 AOS장르의 게임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일단 미니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전장의 구조가, 정형화되어있는 AOS게임과는 확연히 달랐으니 말이다.

AOS게임과 비슷한 점이라면, 양쪽 진영에서 차원병사들이 끊임없이 소환된다는 사실 정도.

‘아직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을 빠르게 스캔한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 전장 안에서 재밌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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