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5화 2. 용족 드라코우 (4) >
* * *
널찍한 태초의 평원 곳곳에, 드라코우는 그야말로 널려 있었다.
그 거대한 몸집을 가진 대형 뱀장어 같은 몬스터들이 마치 일반 몬스터처럼 떼 지어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계에 가면 하나하나가 준보스급 몬스터처럼 느껴질 녀석들이 모여 있으니,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용의 제단에서 봤던 드라코우는 저것보다 담백(?)하게 생겼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드라코우를 발견하자마자 이안에게 돌발 퀘스트가 하나 떠올랐다.
띠링-!
-‘강함을 증명하라(돌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퀘스트의 내용은 간단했다.
아직도 이안의 전투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아시라스로부터 충분히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라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아시라스의 도움 없이 다섯 마리 이상의 드라코우를 처치하라……. 확실히 쉽지만은 않은 미션이군.’
따로따로 있는 드라코우를 한 마리씩 각개격파하는 것은 이안도 자신 있었지만, 저렇게 군락을 형성한 놈들 사이에서 다섯을 처치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문제였다.
‘거참 까탈스러운 친구란 말이지. 같이 싸우면서 지켜봐도 충분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안이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성큼 성큼 드라코우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최초 발견 버프가 지속되는 1분 1초가 아까운 이안에게 노닥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안을 따라오며 아시라스는 계속해서 쫑알(?)대었다.
-그대가 강함을 증명할 때까지 나는 그대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가.”
-지금이라도 포기한다면 곡주께는 고하지 않겠다, 인간.
“거 참, 같은 말 계속 반복하기 지겹지도 않냐?”
그러나 드라코우의 군락群落에 도착하여 이안이 소환수들을 소환하기 시작하자,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계속해서 쫑알거리는 것은 그대로였으나, 그 내용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아니, 전신戰神의 힘이 느껴지는 드래곤이라니……!
-이, 이건! 이렇게 성스러운 힘을 가진 드래곤은 처음 보는군!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힘……! 대체 그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대 역시 카시라스의 계약자처럼 드래곤 테이머였던 것인가?
하지만 이안은 그녀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해 줄 시간이 없었다.
방금 생성된 귀찮은 돌발 퀘스트를 최대한 빨리 클리어해야 했으니 말이다.
‘캐스팅 시간 없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확실히 큰 변수가 되겠지. 평소보다 더 긴장해서 움직임에 반응해야 해.’
소환된 할리의 등에 오른 이안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드라코우들을 향해 다가갔다.
초월레벨을 골고루 많이 올렸다고는 하나 아직 소환수 개체들의 전투력이 이안을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안 본인이 직접 전투를 개시할 생각이었다.
군락의 뒤편에 있는 암벽 위로 올라간 이안은 수없이 많이 모여 있는 드라코우들을 보며 식은땀을 훔쳤다.
‘후우, 저기 그대로 뛰어드는 건 확실히 자살행위겠어.’
지금 이안이 접근하고 있는 드라코우의 군락은 백룡강과 이어진, 태초의 평원 동남쪽의 커다란 호수변.
이안은 이 지형을 이용하여, 최대한 적은 숫자의 드라코우를 따로 분리시켜 상대할 생각이었다.
눈을 빛낸 이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마그비, 소환!”
화르륵-!
무리지어 있는 몬스터를 하나씩 빼내기 위해서 활질만큼 좋은 수단은 없는 것.
오랜만에 죽창(?)을 집어넣고 보주를 꺼내 든 이안은, 화염시를 소환하여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였다.
핑- 피핑- 핑-!
그리고 언제나 그래 왔듯, 이안의 화살은 정확히 목표물에 틀어박혔다.
* * *
드라코우들은 그 생김새에 걸맞게 뭍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그 ‘뭍’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강변이나 호수변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코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지형의 조건은 무척이나 까다로웠고, 그 때문에 태초의 평원에만 서식하는 몬스터들이었으니 말이었다.
-드라코우들이 살아가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지. 첫째로는 ‘물’이 필요하고, 둘째로는 천강석天剛石이 필요해.
드라코우에게 물은 마치 공기와 같은 것이다.
충분한 물을 섭취해야만, 일정 기간 동안 지상에서 활동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인 천강석은 물과는 약간 다른 이유에서 필요한 것이었다.
-드라코우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비늘은 거칠고 단단하지. 그런데 그들은, 성장할 때마다 이 외피를 벗겨 내야 해. 외피를 벗지 않으면 성체로 진화할 수 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이 외피를 벗겨낼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천강석이지. 뭐, 성체로 진화할 때가 아니더라도, 이 녀석들은 종종 천강석에 몸을 비비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천강석은 그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바위였다.
때문에 드라코우의 단단한 외피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이 천강석이 반드시 필요했다.
일반적인 바위에 외피를 부대껴 봐야 흠집조차 나질 않으니 말이었다.
오히려 드라코우의 외피에 부대낀 바위들이 부스러져 버릴 정도.
그리고 이 천강석이 존재하는 곳은 소천小天 안에 태초의 평원뿐이었으니, 드라코우들이 이곳에만 서식하는 것이었다.
-드라코우의 외피 중 가장 강도가 약한 곳은 꼬리 부분이야. 녀석들이 외피를 벗길 때 꼬리부터 벗겨 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틱틱거리면서도 제법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알려 준 아시라스 덕에, 이안은 드라코우를 잡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녀석들의 습성과 지형을 이용하여, 최대한 1:1의 구도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드라코우들을 먼저 노려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암벽에 붙어 탈피를 준비하는 놈들이 어린 드라코우들이겠지. 녀석들을 한 놈씩 좁은 암벽들 사이로 유인해서 처치해야겠어.’
드라코우 군락의 뒤편에 솟아 있는, 커다란 천강석으로 이루어진 암벽들.
화염시를 날려 드라코우 한 놈을 유인한 이안은 그 사이로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타탓- 탓-!
그리고 다음 순간.
크워어엉-!
화살에 맞은 드라코우가 포효하며 이안을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쿠릉- 쿠르릉-!
마치 암벽들을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거대한 몸을 요동치며 이안을 향해 입을 쩍 벌리는 드라코우.
그리고 한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근방에 있던 몇몇 녀석들도 그를 따라 이안을 쫓았다.
-드라코우 : Lv. 41(초월)
-드라코우 : Lv. 40(초월)
……후략……
‘한 놈, 두 놈 그리고 세 놈. 보자, 총 일곱 마리 정도 어그로가 끌린 건가?’
따라오는 뱀장어들을 확인한 이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드라코우가 따라붙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어떻게든 해내야지, 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안이 의도했던 위치로 드라코우들이 따라 들어오고 있다는 점.
목적지에 도착한 이안은 제대로 자세를 잡은 뒤 연속해서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하였다.
제법 오랜만에 화염시를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안의 손놀림에는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핑- 피핑- 핑!
총 스무 발의 화살을 순식간에 쏘아 보낸 이안은, 이어질 시스템 메시지를 기다렸다.
‘딜이 박히기는 할까 모르겠네.’
아시라스가 말했듯 드라코우는 강력한 외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 예상처럼, 이안의 눈앞에 떠오른 피해량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고유 능력 ‘지옥의 화염시’를 발동합니다.
-‘드라코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지옥불’ 표식이 생성됩니다.
-‘드라코우’의 생명력이 692만큼 감소합니다!
-‘드라코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지옥불’ 표식이 생성됩니다.
-정령 ‘마그비’의 고유 능력 ‘불의 악마’가 발동합니다.
-정령 ‘마그비’의 화염시가 ‘드라코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지옥불’ 표식이 생성됩니다.
……중략……
-‘지옥불’ 표식이 최대치로 중첩되어,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드라코우’의 생명력이 1,205만큼 감소합니다!
-‘지옥의 화염시’ 고유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표정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생각보단 딜이 박히는데?’
레벨이 레벨인 만큼 최대 생명력 자체는 10만도 넘는 것 같았지만, 방어력은 며칠 전에 상대했던 ‘트라키오스’보다 약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 녀석들이 아직 성체가 아닌 유체이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크워어- 크워어어-!
멀리서 화살을 쏘아 대는 이안이 얄미운지, 연신 커다랗게 포효하는 드라코우.
가장 선두에서 이안을 쫓던 드라코우는 이안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커다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리고 이 광경은, 마치 이안이 단숨에 먹힐 것처럼 위험천만해 보였다.
물론 이안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공간 왜곡!”
이안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시동어와 함께, 드라코우의 입에 그대로 물릴 것만 같았던 이안의 신형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빡빡이가 어느새 나타나 있었다.
물론 고유 능력인 ‘절대 방어’를 발동시킨 상태로 말이다.
*절대 방어 (재사용 대기 시간 2분)
10초 동안 ‘무적’ 상태가 된다.
‘무적’ 상태일 때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으며, 모든 상태 이상에 ‘면역’이 된다.
하지만 절대 방어가 지속되는 동안은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
콰득-!
이어서 어지간한 바윗덩이보다 단단한 빡빡이를 입에 문 드라코우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빡빡이의 크기는 이안의 열 배가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입에 꽉 끼어 버렸고, 그 무게 때문에 중심을 잃고 고꾸라진 것이다.
쿵-!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공간 왜곡으로 빡빡이와 자리를 바꾼 이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떡대, 어비스 홀!”
어느새 높은 암벽에 올라선 이안은 떡대의 고유 능력인 ‘어비스 홀’을 발동시켰고.
고오오오-!
따라오던 드라코우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홀 안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캬아아악-!
그런데 재밌는 것은, 어비스 홀에 빨려 들어간 것이 드라코우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주변에 산재해 있던 거대한 바윗덩이들이 어비스홀의 장력으로 인해 떨어져 내리면서, 좁은 암벽의 입구를 그대로 막아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안이 전장으로 물색해 두었던 암벽 사이의 공터에는 두 마리의 드라코우밖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결국 이안이 원했었던 수준의 그림이 만들어진 것이다.
“좋아, 아주 좋아!”
그리고 아무리 초월 40레벨이라고 한들, 이안이 성체도 아닌 한두 마리의 드라코우를 상대해 내지 못할 리 없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 할리, 크르르 등과 함께 일제히 달려들어, 순식간에 도륙을 내 버린 것이다.
아시라스가 조심하라던 용언 마법은 제대로 겪어 볼 기회조차 없었다.
이안은 몰랐던 사실이지만, 드라코우는 성체가 되어야 용언 마법을 쓸 수 있는 종족이었으니까.
-‘드라코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강함을 증명하라(돌발)’퀘스트의 조건이 일부 충족되었습니다.
-처치해야 할 몬스터의 숫자 : 1/5
성체가 아닌 드라코우라서 그런지 기대했던 아이템이 드롭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우선 아시라스로부터 받은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까.
‘좋아, 이제 다음……!’
그리고 이안이 따로 떨어진 한 마리를 처치하는 동안, 돌더미에 깔린 드라코우들도 그대로 둔 것은 아니었다.
어비스 홀과 바윗덩이의 무게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뱀장어들에게는 카르세우스와 엘카릭스 등이 직빵으로 브레스를 선물해 주었으니 말이다.
콰아아아-!
화르륵-!
물론 카르세우스 등의 초월 레벨이 드라코우보다 15레벨 가까이 낮았지만, 그래도 최강의 광역기라는 브레스들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어비스 홀이 끝나고 돌더미에서 빠져나온 드라코우들의 생명력은, 거의 반 토막이 되어 있었다.
크워어어-!
약이 오른 것인지 억울한 것인지, 무척이나 흥분한 다섯 마리의 드라코우들.
공터 안쪽으로 들어온 녀석들을, 이안은 침착하게 상대하기 시작하였고, 한 마리씩 침착하게 숫자를 줄여 나갔다.
-‘드라코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강함을 증명하라(돌발)’퀘스트의 조건이 일부 충족되었습니다.
-처치해야 할 몬스터의 숫자 : 2/5
-처치해야 할 몬스터의 숫자 : 3/5
……후략……
-‘강함을 증명하라(돌발)’퀘스트의 조건이 전부 충족되었습니다.
-‘아시라스’에게 돌아가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퀘스트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던 무렵.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드라코우를 상대하던 이안의 귓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쿠릉- 쿠르릉-!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바위암벽들이 가늘게 진동한 것이다.
‘이건 또 뭐지……?’
그리고 다음 순간.
콰르릉-!
공터를 둘러싸고 있던 암벽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