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1화 용사의 의식 (7) >
* * *
용사의 마을이 열린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 가는 이 시점.
카일란 한국서버 공식 1위 길드인 로터스의 유저들은, 벌써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용사의 마을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최고 랭커 길드답게 가입 제한 자체가 420레벨이었으며, 국왕 이안의 지침으로 450레벨까지는 레벨 업만 하도록 내규(?)가 지정되어 있었으니, 다른 어떤 길드들보다도 빠르게 중간계로 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터스 길드의 오랜 가족 중 하나인 카노엘 또한, 당연히 내규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카노엘의 레벨은 460이 훌쩍 넘은 상황이었으며, 초월레벨 또한 10을 채운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데 의아한 것은, 모든 조건을 충족한 카노엘이 아직도 용사의 마을에 입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노엘은 지금, 자신의 직업인 ‘드래곤 테이머’와 관련된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용천에 와 있는 상태였다.
‘후우, 뒤질 만한 곳은 전부 다 뒤진 것 같은데……. 용린패라는 물건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카노엘이 진행 중인 히든 퀘스트는, 다름 아닌 ‘드래곤 테이머’ 클래스의 티어를 올릴 수 있는 중요한 퀘스트였다.
그리고 지금 카노엘은 그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물건인 ‘용린패’를 찾는 중이었다.
벌써 사흘이 넘게 용천을 뒤졌음에도,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카노엘은 자신을 태우고 비행 중인 드래곤 카시라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카시라스.”
-말하라 주인.
“이제 이 소천小天에서 가볼만한 구역은, 저 백룡강 너머에 있다는 ‘태초의 평원’뿐이겠지?”
카노엘은 드래곤 테이머답게, 현재 드래곤만 총 일곱 마리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카시라스는, 카노엘의 드래곤들 중 유일하게 ‘신화’등급인 자운룡紫雲龍이었다.
카시아라는 카노엘이 클래스 관련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던 중, 이 용천에서 얻은 드래곤이었다.
-그렇다, 주인.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 주인의 능력으로 백룡강을 건너는 것은 아직 위험하다.
“이제는 네가 있잖아. 네가 도와줘도 힘들까?”
-주인이 중간자의 위격을 얻기 전에는, 나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상태로는, 태초의 땅을 지키는 ‘드라코우’들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쩝…….”
-용린패를 찾는 것이 급한 일은 아니니, 먼저 중간자의 위격을 얻는 것이 어떠한가.
“흐음……. 역시 그게 맞겠지?”
-그렇다, 주인. 나와 함께한다면, 용사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용천에서 중간자의 위격이 없는 상태로 발들일 수 있는 지역은 ‘소천’이 유일했다.
명계로 따지자면, 아케론 강 이전의 지역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카노엘은 이 소천 안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전부 탐사한 상황이었다.
소천 안에서 유일하게 카노엘이 가 보지 못한 구역은, 카시라스가 말한 ‘태초의 땅’뿐.
때문에 카노엘은, 아쉬운 마음을 접어 두고 용천을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곧 한 티어 높은 클래스가 되어 강해질 생각에 들떠 있던 마음이 아쉽기는 했지만, 결국 용사의 길에 오르기 전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래 뭐, 이번에 클리어하지 못한다고 해서, 퀘스트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게, 카노엘이 미련을 버리려던 찰나.
카노엘의 눈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발신자 : 이안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한 카노엘의 두 눈이 살짝 확대되었다.
* * *
용사의 첫 번째 의식, ‘소환술사의 시련’ 퀘스트 창이 떠오른 직후.
이안은 알 수 없는 힘에 빨려듦과 동시에 용천으로 차원이동 되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띠링-!
-중간계, ‘용천’에 입장하였습니다.
-현재 위치 : 고요의 바위산 (1,897, 2,819)
-지상계에서 얻은 모든 능력치에 비례하여, 초월 능력치가 설정됩니다.
-이제부터 ‘초월 레벨’이 적용됩니다.
-현재 ‘이안’님의 초월 레벨은 20Lv입니다.
……후략……
용천에 입장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중간계에 속하는 맵에 처음 들어갈 때 등장하는, 예의 그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른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본 이안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흐흐, 이제 항상 떠오르던 메시지 하나가 사라졌네.’
용사 계급이 되기 전까지, 중간계의 맵에 입장할 때마다 항상 봐야만 했던 한 줄의 메시지.
-‘용사의 자격’을 얻을 때까지 초월 레벨의 레벨 업이 제한됩니다(10Lv을 초과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뭔가 하나의 족쇄가 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이안은 한층 가벼운 표정이 되었다.
‘아직 중간자는 아니라 루가릭스를 찾으러 가긴 애매하겠지만, 그래도 레벨이 오른다는 게 어디야.’
사냥을 했으면 응당 경험치가 올라야 하는데, 초월 10레벨에 한동안 막혀 있어 적잖이 답답했던 것.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초월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이안은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용천은 어떤 구조일까? 분명히 중간자 되기 전엔 이동 가능한 지역이 제한될 텐데……. 그래도 명계나 정령계를 생각해 보면, 한 초월 30레벨 대 몬스터까지는 만날 수 있겠지?’
이안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의식의 제단에서 워프되어 이안이 떨어진 곳은 주변히 훤히 보이는 커다란 바위산의 정상.
이안은 주변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저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맵은 진짜 오지게도 넓은 것 같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서 주변을 둘러봄에도 불구하고, 맵에 끝이 보이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드라코우’라는 용족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SS등급이라는 퀘스트 난이도를 봤을 땐 그럴 리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로 가야 하오…….”
뒷머리를 긁적인 이안은, 바위에 잠시 걸터앉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는 장소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드라코우’라는 녀석들에 대한 단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안은 아주 오래 전에, 이미 드라코우를 만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용의 제단. 그 지하를 지키던 용족들이 분명히 드라코우였어.’
날개 달린 도마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달리, 동양 신화의 청룡처럼 뱀장어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던 드라코우.
과거 여의주를 찾기 위해 숨어 들어갔던 ‘용의 제단’에서, 이안은 분명 그들을 만난 기억이 있었다.
‘쩝, 거기에 다시 갈 수만 있으면 퀘스트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이안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용의 제단은 인간계에 있는 맵이었고, 그곳을 지키던 드라코우들의 레벨은 420레벨 정도에 불과했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이 퀘스트는 너무 쉽게 클리어가 가능할 터.
하지만 카일란이 그렇게 허술한 게임은 아니었다.
용의 제단이야 지금도 갈 수 있는 맵이었으나, ‘드라코우’들이 있던 곳은 시간 제한 던전이 발동해야 진입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 이안이 돌파했던 시간 제한 던전은, 이안이 여의주 퀘스트를 깬 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뭐 생김새라도 알고 있으니, 조금은 찾기 쉬우려나?’
거대한 드라코우의 외형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안.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돌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노엘이가 용천에서 퀘스트 진행한다고 했었는데?’
일전에 이안은, 조건을 전부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사의 마을로 넘어오지 않는 노엘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때문에 지금 카노엘이 용천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 메시지나 한번 날려 볼까? 용천에 들어간다고 한 지 거의 보름은 됐으니 제법 빠삭하게 알 것 같은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안은 실실 웃으며 곧바로 길드원 목록을 오픈하여 카노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노엘아, 지금 어디냐?
그리고 메시지에 대한 대답은, 이안조차도 놀랄 정도로 빨리 돌아왔다.
-카노엘 : 형님, 어쩐 일이세요? 저야 아직 용천에 있죠.
-이안 : 그래? 거기 어딘데? 얘기는 만나서 하고. 일단 위치부터 좀 알려 줘 봐.
* * *
이안과 카노엘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카노엘이 있던 곳은 태초의 평원 바로 건너편인 ‘침묵의 과수원’이라는 곳이었고, 이안이 소환된 곳은 그 바로 옆에 솟아 있는 ‘고요의 바위산’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련 퀘스트가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드라코우의 서식지인 태초의 평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환시켜 준 것이다.
“여, 브로, 오랜만이야.”
“형님, 아니, 용사의 마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긴 대체 어쩐 일인 건데요?”
카노엘과 만난 이안은, 곧바로 퀘스트의 내용부터 공유해 주었다.
물론 퀘스트가 퀘스트인 만큼 공유됐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쓰여 있는 내용 정도는 카노엘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 카노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형님.”
“응.”
“형님은 이미 영웅 계급이 된 거고, 중간자 위격 얻기 위한 마지막 퀘스트인 거죠 이게?”
“음, 완전히 마지막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끝나 가기는 할 거야.”
이안은 카노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용사의 협곡에서 있었던 퀘스트의 전개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안의 오랜 추종자답게, 카노엘은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캬, 역시 이안갓!”
그에 이안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 도움이 좀 필요해서 연락했어. 아무래도 용천에 가장 오래 있었던 네가 여길 제일 잘 알 테니까 말이야.”
“물론이죠, 형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뿌듯합니다요.”
이제 갓 고등학생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연신 형님을 외치는 카노엘을 보며,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가 아주 능글맞아졌어.’
하지만 한 편으로는, 겜알못의 상징(?)이었던 카노엘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무적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엘아. 너 드라코우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이안의 물음에, 카노엘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물론이죠, 형. 드라코우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오, 그럼 생각보다 퀘 진행하기가 수월하겠는데?”
카노엘의 대답에, 이안의 표정은 한층 더 밝아졌다.
드라코우가 얼마나 강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어쨌든 카노엘 덕에 쉽게 위치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이 다시 입을 떼려던 그 순간,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인간, 그대의 능력으로 드라코우를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순간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처음 보는 적발의 예쁘장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