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0화 용사의 의식 (6) >
* * *
카미레스의 말에 의하면, 용사의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제단’이라는 곳에 가야 한다고 했다.
“제단에 가면 신으로부터 신탁이 내려올 걸세.”
“어떤 신탁인가요?”
“그건 알 수 없지.”
“……?”
“신은 모두에게 같은 신탁을 내리지 않으니 말일세.”
“사람마다 용사의 의식이 다르다는 이야긴가요?”
“아주 다르지는 않지만, 같지도 않지.”
“그게 무슨…….”
“직접 겪어 보면 알게 될 일이야.”
말을 마친 카미레스는, 지체 없이 막사의 바깥으로 나갔다.
이안 또한 그를 따라 곧바로 걸어 나갔고, 막사에서 나오자마자 그의 눈에는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크르르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새 하얀 비늘로 온몸이 뒤덮인, 본체로 현신한 카르세우스보다도 더 거대해 보이는 드래곤.
카미레스는 아무렇지 않게 드래곤의 등에 오르며, 이안에게 말하였다.
“뭐 하는가, 얼른 타지 않고.”
“……?”
“우린 이 녀석을 타고 의식의 제단에 갈 걸세.”
교통수단이라기에는 다소 과해보이는 녀석의 등에 탑승한 이안은, 드래곤의 면면을 찬찬히 살피었다.
‘덩치는 카르세우스나 엘이보다 확실히 더 큰데……. 어째서 등급은 더 낮아 보이는 거지?’
카일란에서 드래곤들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 화려한 외모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도드라지는 것이 등 위로 돋아난 골판들과 머리에 솟은 뿔이었는데, 이 거대한 백룡의 뿔과 골판은 이안이 보기에 확실히 전설 등급 이하였다.
‘덩치가 더 크면서 등급이 낮을 수도 있는 건가?’
일반적으로는 더 등급이 높을수록 더 화려하고 거대해 지는 것이 드래곤이었기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고민을 그리 오래 이어 갈 수 없었다.
펄럭-!
거대한 날개를 펼친 백룡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랐으니 말이다.
“어엇!”
이안은 그 순간적인 속력에 놀라 살짝 눈이 커졌고.
그런 그를 힐끔 돌아본 카미레스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꽉 잡는 게 좋을 거야. 이 녀석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르니까 말이야.”
이안은 카미레스의 조언대로 드래곤의 등에 돋아있는 골판 하나를 양팔로 감아 꽉 붙잡았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카미레스의 백룡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비행하기 시작하였다.
쐐애액- 쐐애애앵-!
마치 바람을 찢으며 비행하기라도 하듯 이안의 귓전에 쏟아져 들어오는 파공음.
이미 드래곤은 구름 위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이안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지상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음,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그렇게,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밤하늘만 펼쳐져 있던 이안의 시야에, 멀찍이 푸른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뾰족한 첨탑.
그리고 그 주위를 휘감고 있는 푸른빛의 소용돌이들.
이안은 직감적으로, 이곳이 용사의 제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우웅-!
그런데 잠시 후 첨탑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이안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뾰족한 지붕이 보이기에 지상에서부터 솟아 있는 높은 첨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 와 보니 허공을 부유하는 공중 섬에 지어진 건물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밑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차례 실없는 생각을 해 본 이안은, 작게 실소를 흘리며 카미레스를 따라 섬에 내려섰다.
카미레스는 이안을 마주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이제부터는 자네에게 달려있다네.”
“카미레스 님께서는 함께 들어가지 않으십니까?”
이안의 물음에, 카미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렇다네. 용사의 의식은 어디까지나 혼자서 이겨 내야만 하는 시련이기 때문이지.”
“시련이라……. 그렇군요.”
“무운을 비네, 이안. 자네라면 분명 의식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겠지만, 방심은 금물일세.”
“하하, 방심이라뇨. 그럴 리 있겠습니까.”
짧은 작별 인사를 마친 카미레스는 곧바로 백룡을 타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이안은 망설임 없이 건물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걸음을 옮기는 이안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 * *
카미레스의 막사에서 나오기 전, 그로부터 받았던 하나의 작은 상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화려한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그 상자에는 한눈에 보아도 대단한 물건이 들어 있을 것처럼 보였다.
‘흐음, 시작하기 전에 이게 뭔지나 한번 확인해 볼까?’
이안은 제단에 들어서기 전, 상자를 먼저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용사의 의식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움될 만한 물건이 있다면 미리 지니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별생각 없이 열어 보려 했던 상자가 꽉 닫힌 채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자가 열리는 대신, 이해할 수 없는 두 줄의 시스템 메시지만이 떠오를 뿐.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상자를 열 수 없습니다.
“……?”
당황한 이안은 상자의 정보 창을 확인해 보았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충족되지 않았다던 그 ‘조건’이란 것이, 상자의 정보 창에 쓰여 있었으니 말이다.
-카미레스의 황금 상자
등급 : 알 수 없음
분류 : 잡화
천군 진영의 장군이자 백룡수호대장이라는 고귀한 직책을 가진 존재, 카미레스.
그가 애지중지 아끼는 이 상자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들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이 상자를 열어 보자.
*‘용사의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에만 오픈할 수 있습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정보창을 다 읽은 이안의 머릿속에, 막사를 떠나기 전 카미레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용사의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위기가 찾아오거든 그 상자를 한 번 열어 보시게나.
-위기……요?
-말 그대로일세. 쉽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상자를 열어 본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네.
‘그게 이런 의미였어.’
피식 웃은 이안은 상자를 다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제단 안쪽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덜컹-!
깊숙한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푸른 빛깔의 광채.
그리고 그 푸른빛을 감싸고 있는 새하얀 운무.
이안은 안력을 돋구어 그 푸른 광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게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파란 동상……이잖아?’
마치 크리스털처럼 반투명하고 영롱한 빛깔을 띠고 있는, 푸른 빛깔의 동상.
동상은 오른손에 기다란 장검을 들고 있었으며, 왼손에는 견고해 보이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이안은 조심스레 그 방향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띠링-!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의식의 제단’에 입장하였습니다.
-유저 정보를 분석합니다.
-유저 네임 : 이안
-계급 : 용사
-초월 레벨 : 20
-클래스 : 소환술사 (테이밍 마스터)
……후략……
마치 상태 창을 켜기라도 한 것처럼, 이안의 눈앞에 주르륵 하고 떠오르는 메시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뭐지? 갑자기 유저 정보를 왜 분석해?’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입에선 탄성(?)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커헉……!”
그 메시지들의 마지막에 떠오른 한 줄의 문구가 이안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계급과 초월 레벨을 토대로 전투력을 분석합니다.
-전투력에 걸맞은 시련이 생성됩니다.
-유저 ‘이안’님의 시련 등급 : SS
‘미친, 이런 게 어디 있어?’
시스템 메시지에 따르면 용사의 의식 난이도는 초월 레벨에 비례하여 높아질 것이다.
계급이야 누구나 ‘용사’인 상태로 이 의식에 도전할 것이었으니, 시련 등급의 고저가 정해지는 기준은 결국 초월 레벨인 것이다.
의식에 들어가기 전 일부러 초월 레벨을 20까지 올린 이안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힘들게 레벨을 올린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후우, 등급에 따라 클리어 보상에 차등은 있는 거겠지?’
억울한 표정이 되어 입을 삐죽이는 이안.
그러나 이안에게 불만을 표출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투덜거리려던 찰나 이안의 눈앞에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으니 말이다.
-제단 안쪽에 있는 용사의 동상으로 이동하십시오.
-용사의 동상 앞에 있는 ‘차원의 수정’에 손을 올려놓으면 의식이 시작됩니다.
‘파란 동상의 이름이 용사의 동상이었나 보네.’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시선이 자연스레 다시 동상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 앞에 부유하고 있는 축구공만 한 크기의 푸른 수정을 향해 고정되었다.
‘저기에 손을 가져다 대라는 거지?’
마른침을 한차례 꿀꺽 삼킨 이안은,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오른손을 들어 수정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낮은 공명음과 함께, 수정이 빛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이어서 이안의 귓전에, 벼락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반갑구나, 영웅이 되기 위한 의식에 도전하는 용사여.
“……!”
-그대의 능력에 걸맞은 시련을 내리도록 하겠다.
“아니, 그것보다 좀 더 쉬워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래, 용천龍天이 좋겠군.
“네?”
-용사여, 첫 번째 시련을 내리도록 하겠노라.
“아니, 저기요. 제 말은 혹시 들리시나요?”
-그대를 용천으로 보내 줄 터이니, ‘드라코우’를 찾아 포획해 오라.
그리고 이안의 눈앞에 드디어 용사의 의식 퀘스트 창이 생성되었다.
띠링-!
-‘소환술사의 시련(SS)’이 발동합니다.
-‘용사의 의식 Ⅰ/소환술사의 시련 (에픽)’
*‘용사’의 계급이 되어 자격을 갖춘 당신은 용사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의식의 제단’에 입성하였다.
지상계의 영혼이 진정한 ‘중간자’의 위격을 갖추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관문인 용사의 의식.
그리고 용사의 마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당신에게 천신은 그에 걸맞는 최고의 시련을 내려 주기로 하였다.
*용들의 고향 용천에는 수많은 종류의 용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는 성스러움과 용맹함의 상징인 ‘드라코우’라는 용족이 살고 있을 것이다.
드라코우를 포획하고 길들여, 당신의 용맹과 뛰어난 소환술을 입증하라.
목표를 달성한다면, 두 번째 시련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조건 : ‘용사’ 계급 달성
알 수 없음
제한 시간 : 없음
*용족 ‘드라코우’를 테이밍하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보상 : 황금빛 안장
*퀘스트를 포기할 시 60일 동안 용사의 의식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