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47화 (659/1,027)

< 647화 용사의 의식 (3) >

* * *

이안을 발견한 사라와 바네사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계를 해제한 것이 그녀들이었으니, 따로 최초 발견 보상이 뜨지 않았어도 자신들이 가장 먼저 설원에 입장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상 이안이 여기에 있으려면 그녀들이 입장한 직후에 곧바로 들어왔어야 하는데,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그녀들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우씨, 우린 퀘스트 깨느라 생고생을 했는데……. 이안 쟤는 우리가 결계 열자마자 어떻게 알고 바로 들어왔담?”

“역시 콘텐츠 냄새 맡는 데는 귀신같은 녀석…….”

게다가 그녀들의 눈에 띈 이안은 거대한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몬스터들은 그녀들이 찾고 있던 희귀몬스터인 ‘트라키오스’였다.

쿵- 쿵- 쿵-!

마치 코뿔소를 닯은 얼굴에, 빡빡이처럼 거대한 등딱지를 뒤집어 쓴 특이한 외모.

게다가 어지간한 코끼리도 한 수 접어 줘야 할 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트라키오스의 위용은 확실히 강력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워어어-!

멀찍이서 이안과 트라키오스를 발견한 두 자매는 일단 그 자리에서 이안의 전투를 지켜보기로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멀리서 보면서 몬스터 패턴이나 파악하자, 언니.”

“좋아. 저 무식한 뿔에 받혀 보며 싸우는 것보다 역시 패턴을 파악하는 편이 좋겠어.”

“혹시 이안이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그때 도와주러 나가자고.”

“그러자. 별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두 자매는, 아예 나무 덤불 사이에 숨어서 자리를 잡고 이안의 전투를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둘의 얼굴에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껏 이안이 벌이는 일들은 그녀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와, 저 몸집으로 저렇게 빠르게 돌진을 하네?”

“무슨 투우 경기라도 보는 것 같아.”

하지만 그녀들의 전투 관전은 그리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뀌에에엑-!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관전을 시작하자마자, 이안과 싸우던 트라키오스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쿠웅-!

왜소한 인간에게 당해 쓰러졌다는 사실이 억울한 것인지, 처량한 울음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트라키오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사라는,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였다.

“블링크!”

지난번처럼 이안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그의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 블링크를 시전한 것이었다.

위이잉-!

그런데 다음 순간, 사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사용해 이안의 앞으로 이동한 순간, 시커멓고 거대한 몽둥이가 그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근처에서 울려 퍼지는 공명음에 이안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른 것.

당황한 그녀는 재빨리 실드 마법을 발동시키며, 이안을 향해 소리쳤다.

“자, 잠깐! 난 적이 아니라고!”

쩌정- 쩡-!

물론 같은 진영에 속한 사라에게 대미지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위협적인 공격을 마주하자 사라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어서 사라와 바네사를 발견한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뒤늦게 소환수를 타고 다가온 바네사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하였다.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거든?”

* * *

트라키오스는 이안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다른 것들은 다 차치하고 초월 레벨만 보아도 20레벨이 훌쩍 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운 좋게 한 마리만 따로 떨어져 있어서 쉽게 처치했지, 모여 있으면 제법 골치 아플 녀석들이야.’

거대한 등딱지를 가진 트라키오스는 그 외형에 어울리게 무척이나 단단한 몬스터였다.

다른 평범한 몬스터를 상대로는 2만 이상 박히던 이안의 평타 피해량이 이 트라키오스를 상대로는 네 자리 숫자를 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한 마리를 처치하는 동안 이안이 띄운 가장 높은 피해량은, 고작(?) 9,400 정도.

게다가 생명력은 또 어찌나 많은지, 어림잡아도 30만 이상은 될 듯한 느낌이었다.

‘이러니까 경험치를 이렇게 많이 주지. 한 마리 잡았을 뿐인데 3퍼센트가 오르다니.’

때문에 이안은 갈등에 빠졌다.

확실히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주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

사냥 효율이 나올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챠우거만 해도 칼질 한 방이면 골로 보낼 자신이 있었는데, 대여섯 마리 정도 잡으면 얼추 경험치가 비슷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안의 고민은, 사라와 바네사를 만나자마자 바로 해결되어 버렸다.

혼자라면 쉽지 않을 트라키오스 사냥이지만, 이 두 자매를 잘만 활용(?)한다면 효율을 배 이상 늘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너희도 이 트라키오스를 잡으러 왔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필요한 건, 저 트라키오스의 뿔이고?”

“응 맞아.”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녀들의 상황을 들은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좋아, 딜을 한번 해 봐야겠어. 충분히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군.’

눈을 반짝이며 사라와 바네사를 한 번씩 응시한 이안은, 근처에 있던 바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어떻게 하면 최상의 거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머릿속에 이미 계산이 끝난 상태였다.

이안은 그녀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둘이 먼저 사냥 좀 하고 있어 봐.”

“으응? 이안 너는 사냥 안 해?”

“같이 하는 거 아니었어?”

“난 잠깐 쉬면서 정비 좀 하려고.”

“그……래?”

“트라키오스는 저 능선 넘어가면 많이 모여 있으니까, 먼저 가서 사냥하고 있어.”

이안이 생각한 거래는 간단(?)했다.

필요 없는 뿔은 전부 그녀들에게 넘겨주는 대신, 나머지 아이템들과 경험치를 혼자 독식하려는 것.

하지만 이 방향으로 시나리오가 흘러가려면 약간의 설계가 필요했기에, 이안은 두 자매를 먼저 사냥터로 보낸 것이다.

‘일단 트라키오스가 얼마나 센지 겪어 보고 와야, 대화가 통하겠지.’

이안은 두 자매가 트라키오스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라도 사라지만 특히 바네사의 경우, 이안이 봐 온 랭커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냥에 엄청나게 애를 먹을 것임은 확신하였다.

정예병 등급에서 아무리 좋은 아이템들로 무장해 봐야 괴물 같은 트라키오스의 방어력에는 1천 대미지도 넣기 힘들 테니 말이다.

이안은 두 자매를 보내기 전, 자존심을 살짝 건드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나 혼자서도 처치하는 몬스터를 둘이서 못 잡지는 않겠지?”

그리고 역시나, 발끈하는 두 자매였다.

“당연하지! 우릴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니야?”

“우리 둘이 싹 다 잡아 버리고 나서 후회나 하지 말라고.”

씩씩거리며 트라키오스 무리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는 사라와 바네사.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는 이안의 입꼬리가 씨익 하고 말려 올라갔다.

‘후후, 그렇게 센 척들 해 봐야 30분만 기다리면 이 자리로 돌아오겠지.’

그리고 이안의 그 예상은 역시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다.

자리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네사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으니 말이었다.

-바네사 : 저기 이안…….

-이안 : 응?

-바네사 : 혹시 정비는 아직 안 끝났어?

* * *

“뭐야, 나 도착하기 전에 다 쓸어 버리겠다더니 한 마리도 못 잡고 돌아온 거야?”

만나자마자 정곡을 찔러 버리는 이안의 물음에, 사라와 바네사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못 잡은 건 아니야!”

그에 반해 원하던 판을 까는 데 성공한 이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싱글싱글 웃을 뿐이었다.

“못 잡은 게 아니면 뭔데?”

“녀석들 방어력이 너무 강해서, 잡는 데 조금 오래 걸리더라고.”

“사라언니 말이 맞아. 둘이 해도 잡을 수는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어.”

“이안 너도 어차피 트라키오스를 사냥하는 중이었다니까, 기왕 하는 거 같이 하는 게 더 효율이 좋을 것 같아서 돌아왔지.”

“맞아, 맞아! 우린 이안 널 끼워 주기 위해서 돌아온 거라고!”

두 자매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계속 전투를 벌이다 보면 사냥 자체는 충분히 가능할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한 마리를 잡는 데, 1시간도 넘게 걸릴 것 같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두 사람이 말하는 ‘조금’이라는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었다는 부분만 제외하면, 딱히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닌 것.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이미 예상한 이안은 느긋한 표정으로 두 자매의 제안을 살짝 튕겨 주었다.

“그으래? 단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뿐이란 말이지?”

“그래, 그렇다니까?”

“맞아!”

뜸을 들이는 이안과,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라와 바네사.

두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 들어온 손오공 신세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 그냥 난 따로 사냥할래.”

“뭐?”

“대체 왜!”

“어차피 시간이 ‘조금’더 걸리는 것뿐이라며.”

“그렇기는 한데…….”

“그럼 딱히 내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이안의 반문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음 같아선 이안을 쿨하게 보내 주고 싶었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공헌도 때문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딜 넣으면 10분에 한 마리도 잡을 것 같은데…….’

‘으, 어떡하지? 저 얄미운 자식, 진짜 가 버릴 것 같은데?’

그리고 두 자매의 자존심은 마리당 600이라는 어마어마한(?) 공헌도 앞에서 결국 무릎 꿇고 말았다.

“도와줘, 이안.”

“그래, 도와줘……. 사실 조금이 아니라 우리끼린 좀 오래 걸린단 말이야…….”

그리고 그제야 원하는 대답을 들은 이안은 엉덩이를 툴툴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내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지?”

이어서 불쌍한 표정을 지은 채,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자매.

“으응…….”

“필요……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순순히 그녀들을 도와줄 리는 없었다.

“너희가 필요한 게 트라키오스의 뿔이라고 했지?”

이안의 물음에, 두 사람은 반색하며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그게 필요해!”

그에 이안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뿔은 전부 너희한테 줄게.”

“정말?”

“단!”

“……?”

“전투하는 동안에는, 전부 내 오더를 따라야 해.”

“그거야 뭐…….”

“그야 어렵지 않지.”

뿔을 전부 넘겨주겠다는 말에, 환해진 얼굴로 동시에 대답하는 사라와 바네사.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녀들의 환했던 얼굴은 다시 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으응?”

“뿔 외에 나머지 아이템들은 전부 내 거야.”

“저, 전부다?”

“그래, 전부 다.”

그리고 그렇게 두 자매와 이안의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