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6화 용사의 의식 (2) >
* * *
용사의 의식에 도전하기 위한, 이안의 두 번째 준비.
그것은 다름 아닌, ‘레벨 업’ 이었다.
‘용사의 의식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울 진 모르겠지만, 경쟁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하고 도전하는 게 좋겠지.’
현재 이안의 초월 레벨은 15이다.
‘용사’계급이 되어 레벨 업 제한이 풀린 뒤, 몇 차례 사냥한 것만으로 금방 올린 레벨이 15레벨인 것이다.
이것은 초월 10레벨에 고정되어 있는 다른 유저들보다 무려 5레벨이나 높은 것이었으니, 이 또한 이안의 활약에 큰 기여를 했던 요소 중 하나였던 것.
물론 귀찮은 일이 벌어지길 원치 않는 이안이 레벨을 비공개로 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안이 레벨까지 공개로 한 채 요일 전장에 참여했었다면, 커뮤니티는 더욱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 중간계에 입성한 모든 유저들 중 유일하게 11레벨 이상으로 레벨 업이 가능한 이안.
그리고 아직까지 레벨 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크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이안은 며칠 정도를 활용하여 레벨 업 노가다에 시간을 투자해 볼 생각이었다.
“역시 사냥터는 중립 지역에서 찾아보는 게 좋으려나?”
현재 용사의 마을에서 갈 수 있는 필드들 중 가장 필드 레벨이 높은 곳은 ‘차원의 설원’ 맵이었다.
마계 진영을 만날 수 있는 중립 지역임과 동시에 특정 조건을 충족한 게 아니라면 메인 퀘스트를 전부 클리어해야만 갈 수 있는 후발 콘텐츠이다 보니 필드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균 레벨이 높다는 얘기는, 당연히 경험치도 가장 많이 준다는 이야기.
조금 아쉬운(?) 점은 중립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마군들은 공헌도와 영웅 점수만을 드롭할 뿐,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립 지역에서의 부활 시스템을 레벨 업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설정이었다.
중립 지역에서 마군에게 사망했을 시 공헌도를 소모하면 무한정 부활이 가능하게 해 둔 대신 마군들과의 전투에서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도록 했으며, 중립 지역이라 하더라도 몬스터에게 사망한다면 다른 필드와 똑같이 데스 패널티를 적용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군 NPC나 유저들이 경험치도 주는 구조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마군 진영에서 몇 번 깽판 부리면 레벨이 쑥쑥 오를 것 같은데 말이지.”
이안은 마군 유저들이 들었더라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차원의 숲’ 필드를 향해 이동하였다.
차원의 숲을 지나야 차원의 설원에 갈 수 있으니, 번거롭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우우웅-!
그리고 차원의 숲에 들어선 이안은 곧바로 핀을 소환하여 숲을 가로지르며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미니 맵에 설원으로 가는 좌표가 찍혀 있었으니 시간을 끌 이유는 전혀 없었다.
꾸룩- 꾸구국-!
빠르게 허공을 가르는 것이 기분 좋은지 밝은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펄럭이는 핀.
그리고 그렇게 20여 분 정도를 날았을까?
타탓.
가볍게 핀의 등에서 뛰어내린 이안은 설원과 이어지는 포탈이 자리한 좌표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잠시 후.
“……?”
설원으로 이어지는 결계에 도착한 이안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결계 앞을 막고 있던 푸른 기운들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 말고 또 누군가가…… 여길 들어갔나 본데?”
결계가 완전히 열렸다는 사실은 누군가 관련 퀘스트를 클리어 했다는 방증.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후후, 누가 여길 들어갔으려나?’
씨익 웃은 이안은, 망설임 없이 결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웅-!
설원을 향해 들어간 이안의 신형이, 그대로 그 안쪽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 * *
이안이 없던 이틀 사이.
중립 지역의 구도는 많이 변한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마군 진영과 천군 진영 사이에 대대적인 전면전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조금씩 소규모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각각 서쪽과 동쪽 끝에 포진해 있던 양 군의 본진도, 이제 제법 중앙을 향해 진출해 있었던 것.
때문에 설원에 진입한 이안은 이전과 달리 금세 천군 진영의 본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호, 진영이 여기까지 나와 있어?’
그리고 천군의 진영을 발견한 김에 이안은 그들을 통해 정보를 좀 얻고자 하였다.
지난번 설원을 들쑤시고 다니며 몇몇 괜찮은 사냥터를 발견하긴 하였지만, 혹시나 더 좋은 사냥터나 던전에 대한 정보를, 천군 진영에서 얻을 수 있을지 몰랐으니 말이다.
천군 진영에 다가선 이안은 야영지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보초병들을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 용사님. 혹시 뭐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공손하기 그지없는 이안의 말투에 보초병은 반색하며 대답하였다.
“오오, 이번에 깃발 전장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던 이안 용사님이시군요.”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이번 깃발전장에 참전했던 동료들 사이에서, 소문이 쫙 퍼졌는걸요.”
“아하, 그렇군요.”
생각지 못했던 과한(?) 반응에, 멋쩍은 표정이 된 이안.
그런 그를 향해, 보초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안 님, 제게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요.”
“아, 그것이…….”
이어서 이안은, 생각해 두었던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자코 이안의 이야기를 듣던 보초병은, 이안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 설원 안에 강력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을 찾고 계신다는 거군요?”
“뭐, 따지자면 그런 셈이네요.”
“혹시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건지 여쭤도 될까요?”
“아, 그야 레벨 업……. 아니, 진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죠.”
“역시 이안 용사님!”
“혹시 알고 계신 정보가 있으신가요?”
보초병은 이안을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며, 가지고 있던 정보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정보들의 대부분은, 이안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들.
‘흐음…… 역시, 일반 보초병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에는 한계가 좀 있는 건가?’
하지만 이안이 실망하기 직전.
보초병의 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안 님.”
“넵?”
“이건 제가 직접 확인한 정보는 아닌데요.”
“말씀하세요.”
“오늘 오전인가? 북동쪽에 있는 설산에서 ‘트라키오스’가 발견되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트라키오스……요? 그게 뭐죠?”
“음……. 코뿔소를 닮은 몬스턴데요, 되게 희귀한 녀석들이거든요.”
“……!”
“초식 몬스터인 주제에 엄청나게 사나워서, 주변에 움직이는 것만 보이면 닥치는대로 들이받는다는 녀석이죠.”
“그, 그래요?”
“아까 오전에 정찰조로 나갔던 제 동료 하나도, 녀석의 뿔에 받혀서 거의 빈사 상태가 되어 돌아왔어요.”
“엄청 강력한 녀석인가 보군요?”
“네. 물론 이안 님이라면 당해 내실 수 있겠지만…….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녀석들은 보통, 한 놈이 아니라 십수 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하거든요.”
이안은 ‘트라키오스’라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캐어 보았지만, 딱히 이 이상의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애초에 차원의 숲에 서식하는 ‘챠우거’보다도 더 희귀한 녀석이라고 하니,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챠우거보다는 확실히 강력할 것 같고, 어지간한 차원병사가 당해 낼 수 없다는 걸 보면, 레벨도 제법 높을 듯한데…….’
흥미가 동한 이안은 보초병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그가 알려준 좌표를 향해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기왕 사냥으로 레벨을 올릴 것이라면, 새롭고 희귀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편이 더 나은 것은 당연지사.
설산을 향해 움직이는 이안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 * *
“아니, 트라키오스라는 녀석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있는 건 맞아? 사기당한 거 아니야?”
“너 NPC가 사기 치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그러니까 그만 투덜거리고. 빨리 좀 찾아보기나 해.”
“칫, 알겠어 언니.”
“천군 유저 중에는 여기 들어온 거 우리가 처음인 것 같은데……. 오늘 최대한 꿀 빨아놔야 해. 우리가 결계 뚫어 놔서, 내일이면 유입되는 유저들이 제법 많아질 거라고.”
차원의 설원, 북쪽 끝에 존재하는 커다란 설산.
온통 바위로 이뤄진 데다 만년설이 쌓여 험준하기 그지없는 이 설산에서, 두 명의 천군 유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소환술사인지, 날렵해 보이는 표범을 타고 있는 여성 유저와, 플라잉 마법으로 그녀의 주변에 둥둥 떠 있는 또 한 명의 여인.
두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라와 바네사였다.
“트라키오스 뿔 한 개 가져갈 때 마다 공헌도 600이라고 했지?”
“그렇다니까?”
“크으……! 열 개 씩만 챙겨 가도 공헌도 6천인 거네?”
“그러니까 빨리 좀 찾아봐, 바네사. 소환수들 뒀다 뭐할 거야. 싹 다 소환해서 뒤져 보자고.”
“알겠어, 언니!”
어제 있었던 금요일의 요일전장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달성한 두 쌍둥이 자매는, 이제 거의 10위권에 근접하는 공헌도를 쌓은 상태였다.
현재 천군진영 공헌도 랭킹 10위권의 커트라인이 4만 정도인데, 두 사람의 공헌도가 거의 그에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인 퀘스트의 진척도 또한 그에 걸맞게 무척이나 빠른 두 사람이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들이 순위를 뚫고 올라간 데에는 콜드게임으로 인해 두 배로 뻥튀기된 공헌도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 에픽 퀘스트까지 얻어서 노다지에 입성했으니. 이대로 5위권까지 달린다!’
설원에 있는 천군 야영지를 제대로 탐방(?)하지 않은 이안은 몰랐던 사실이지만, 야영지의 안에는 공헌도를 제법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퀘스트들이 많았다.
물론 마군진영에 가서 깽판 한 번 놓는 걸로 몇 만의 공헌도를 수급한 이안에게는 큰 의미 없는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 자매가 ‘트라키오스’를 찾고 있는 이유 또한, 그 야영지에서 받은 서브 퀘스트 때문이었다.
야영지에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부산물을 가져오면 공헌도를 획득할 수 있는 상시 퀘스트들이 존재했는데, 현재 존재하는 퀘스트들 중 트라키오스 처치 퀘스트가 가장 많은 공헌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커다란 설산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한 쌍둥이 자매.
그런데 잠시 후.
사라의 귓전에, 마치 데자뷰(?) 같은 대사가 흘러들어왔다.
“언니, 언니!”
“응?”
“저기 좀 봐.”
“……?”
“저기, 저 남자…… 이안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