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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643화 (655/1,027)

< 643화 깽판의 정석 (2) >

* * *

지금 이안의 손에 들려 있는, 크고 아름다운(?) 칠흑빛의 몽둥이.

사실 이 전설의 무기는, 이안이 아닌 다른 유저의 손에 들려 있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밸런스에 문제가 생길 만한 녀석이었다.

물론 이안의 손에 들렸기 때문에 그 문제가 좀 더 커진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무기 공격력’에 있었다.

여러 가지 디버프 요소가 있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절대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의 무지막지한 공격력.

다른 유저들의 무기가 가진 공격력과 비교해 본다면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방금 이안의 손에 죽은 유저들 중에는 이안의 몽둥이가 가진 공격력의 10분의 1 수준의 무기를 쥐고 있던 유저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의 몽둥이가 가진 공격력이 5천이었는데, 평범한 정예병이 가질 수 있는 무기의 평균 공격력은 700~800 수준이었으니, 무기가 조금 빈약한 유저들의 경우 공격력이 500대 수준밖에 안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 시점에서는 벨붕 템이 분명한 이안의 검.

그렇다면 기획 팀에서는 이 아이템이 이정도의 위력을 가질 줄 몰랐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기획팀은 이 전설의 검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임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것이 처음부터 기획 의도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하나.

그것은 바로, 이 무식한 아이템이 등장한 ‘시점’이었다.

“원래 우리 의도대로라면, 이 무기가 제작되는 시점은 2주 정도 뒤의 일이었어야 합니다.”

“근거는?”

“전설의 무기 주재료가 아이언스웜의 심장인 것은 알고 계시죠?”

“물론, 알고 있지.”

“그 때문입니다.”

“……?”

“그걸 잡을 만한 스펙이 되려면, 못해도 영웅 계급은 찍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안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스웜을 요새 앞까지 끌고 온 거다?”

“그런…… 셈입니다.”

원래 기획 팀의 의도대로라면, 이 전설의 검이 등장하는 시점은 마지막 메인 퀘스트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원래 이 검은 ‘차원의 거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였으며, 유저들이 정면 승부로 ‘아이언스웜’을 처치할 능력이 될 때쯤에나 제작이 가능했던 무기였으니 시기상으로 많은 유저들이 이미 ‘용사’계급을 달성했을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획 의도에 맞는 시기에 이 무기가 등장했더라면, 이 정도의 존재감을 뿜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용사 계급부터 착용이 가능한 무기들은 대체로 이 몽둥이의 절반 이상의 성능은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안은 전설의 검을 쥐고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본부장님.”

“후우…….”

LB사의 기획 본부, 본부장실.

보고서를 들고 직접 본부장실에 들어온 나지찬과 보고를 받는 본부장 김인천의 얼굴은 마치 좀비를 방불케 할 정도로 생기 없었다.

그리고 나지찬이 가져온 보고서에 있는 내용은 딱히 펼쳐 볼 필요도 없었다.

본부장실의 구석에 틀어져 있는 커다란 스크린이 사실상 보고서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세계 랭커라는 유저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이안의 모습.

그것이 곧, 나지찬의 보고서나 다름없었다.

-아……! 미쳤습니다! 이건 정말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안! 무기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저 컨트롤 보세요! 논 타깃 공격은 거의 한 번도 허용을 하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이 난전 중에 생명력 관리 철저한 것 보세요. 생명력 게이지 절반 밑으로 내려가면 귀신같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아마 생명의 샘 찾아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격양된 캐스터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본부장 김인천의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우……. 나 팀장.”

“예, 본부장님.”

“자네 혹시, 1시간쯤 전에 고객 상담실에서 항의가 올라온 건 알고 있나?”

“항의……요? 이안 때문입니까?”

기획부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상담원들이 오늘 하루 만에 전부 팬더가 되어 버렸다는 거야.”

“…….”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서는, 전화선을 뽑아 버리고 싶다고 울먹거렸다네.”

김인천의 이야기를 들은 나지찬은, 그 상황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하였다.

인간 팬더들은 이미 기획 팀 사무실에도 수없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우…….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는가.”

“…….”

“자네들이 올린 기획서를 검토하고, 결국 도장을 찍은 건 내 손인데 말이야.”

“크흑, 본부장님…….”

말을 마친 김인천은 다시 입을 닫고는 말없이 스크린을 응시하였다.

그는 지금, 얼마 전 힘겹게 끊은 담배라도 다시 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자네 말에 의하면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본부장님. 결국 이안이 용사의 마을을 졸업하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이안이 용사의 마을을 나갈 때까지, 대략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은가?”

“저희 기획 3팀은 일주일 정도 보고 있습니다.”

“후우, 일주일이라…….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겠군.”

다시 침묵에 빠진 두 사람은, 초점 없는 눈으로 스크린을 응시하였다.

스크린 속에 비친 이안은 두 사람의 이런 고충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여전히 신나게 마군 유저들을 때려잡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안의 얼굴을 보며 나지찬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독백하듯 입을 열었다.

“쟤는 과연, 저희 기획 본부의 노력을 알고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김인천은 무심한 목소리로 팩트 폭력을 시전 했다.

“아니. 모른다에 내 월급 절반을 걸도록 하지.”

“…….”

“자네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엔 연봉도 걸 수 있다네.”

“크흑.”

마치 시련이라도 당한 듯 아련한 표정으로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지찬.

그는 이안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야근 시간이 1시간씩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이안……! 그놈 분명 이안 맞지?”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 그런 변종 소환술사가 이안 말고 또 있다는 게 더 끔찍할 것 같거든.”

“제길.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정비하라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놈이 언제 또 나타날지는 알 수 없으니까.”

“정비도 정비지만, 놈이 없을 때 최대한 빨리 거점을 점령해야 해. 그래도 이번엔 제법 큰 피해를 입고 달아났으니 돌아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찰스 말이 맞아. 지금 빨리 밀어붙이자고.”

“으으, 진짜 징그러운 놈.”

이안이라는 ‘재앙’이 다녀간 마군 진영은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이안이 휘젓는 것 자체도 문제였지만 그 때문에 진영이 무너진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진영이 무너지다 보니 중립군과의 전투에서도 더 큰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으며, 그 피해가 누적되니 계속해서 점령에 소요되는 시간이 지연된 것이다.

보통 중립 지역의 메인 거점을 점령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을 10~15분 정도로 잡는데, 이안 때문에 이미 20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

곧 있으면 천군 진영이 세 번째 거점을 점령했다는 메시지를 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마군 유저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좌측 방어 타워 먼저 집중공격하자고! 여기만 부수면 뚫고 들어갈 길이 열릴 거야!”

“공성병기! 공성병기 어디 있어? 병력 분산된 틈에 성문 뚫어야지!”

“빨리빨리 움직여!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고!”

한바탕 마군 진영을 휘저은 이안이 회복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이를 악물고 거점을 몰아치기 시작하는 마군 유저들.

비록 그 와중에 슬픈 메시지가 결국 떠오르기는 했지만…….

-‘천군’ 진영이 세 번째 거점을 점령하였습니다.

-현재 스코어 – 천군 3 : 마군 1

그렇다고 해서 아직 전투 자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나 상황이 다급했으면, 뒤에서 전장을 지휘하고 있어야 할 장군 ‘켈타’까지도 전방으로 튀어나와 쉼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뭣들 하는가! 저 약해빠진 밀랍병사들을 얼른 쳐부수고 적진에 깃발을 꽂아야 한다!”

콰쾅-! 쾅-!

역시 ‘장군’이라는 타이틀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지 어마어마한 전투력으로 수많은 중립 병사들을 학살해 내는 켈타.

‘놈, 다시 나타나기만 하면, 친히 내 검으로 목을 따 줄 것이다!’

그는 유저가 아닌 NPC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마군 유저 못지않게 이안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온 촉각을 곤두세운 채 다시 나타날 게 분명한 이안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전장에 이안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분명히 살아서 도망가는 것을 보았는데……. 왜 다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켈타의 눈에 비친 이안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였다.

만약 죽음이 두려웠다면, 온통 적들뿐인 이 전장의 한복판을 그렇게 거리낌 없이 누빌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분명히 또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다려도 나타나지를 않으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놈, 대체 무슨 꿍꿍이냐?’

하지만 켈타가 불안한 것과는 별개로 이안이 사라진 마군 진영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점점 원래의 페이스를 찾아 순식간에 요새의 방어선을 넘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깃발 포인트를 지키고 있을 준 보스급 중립 몬스터들.

성벽을 넘은 마군 유저들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징그러운(?) 이안에 비하면, 깃발 포인트를 지키는 중립 몬스터들은 귀여운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부대를 둘로 나눠 동쪽과 서쪽을 동시에 칠 것이다!”

켈타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군 진영의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둘로 쪼개진 마군의 병사들이 깃발 포인트가 있는 첨탑을 향해 양 방향에서 돌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첨탑의 안에는 ‘차원의 밀랍기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강력한 네 명의 중간 보스가 있었고, 그들은 넷이 모였을 때 강력한 시너지가 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켈타가 일부러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눈 것이었다.

그리고 대열을 따라 이동하는 마군 유저들의 눈에는, ‘희망’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으니 말이다.

‘여기만 넘으면, 남는 건 허약한 깃발파수꾼들뿐. 이 속도대로라면, 이안 놈이 돌아오기 전에, 충분히 점령이 가능하겠어.’

대부분이 서로를 모르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이었지만, 그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빠른 속도로 첨탑을 공략해 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만 같았던 그때…….

미친 듯이 달리던 마군 유저들의 시야에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가 또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요새의 서방장군西方將軍이 처치되어 중립 진영 몬스터들의 공격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

“뭐라고?”

-요새의 북방장군北方將軍이 처치되어 중립 진영 몬스터들의 방어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안 돼!”

“설마?”

-요새의 남방장군南方將軍이 처치되어 중립 진영 몬스터들의 순발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요새의 남방장군이 처치되어 중립 진영 몬스터들의 생명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이, 이건 꿈일 거야!”

마군 유저들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은 다름 아닌 ‘차원의 밀랍 기사’들이 처치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마군 병력이 첨탑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밀랍 기사들을 처치한 존재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안…… 제발. 이건 아니잖아.”

“사라져서 뭐 하고 있었나 했더니, 깃발 꽂으러 간 거였어?”

“아니, 이거 이안 맞아? 아무리 이안이라고 해도, 혼자서 밀랍 기사를 잡고 올라가는 게 말이 돼?”

“응, 가능해. 그 미친 무기가 있으니까 말이야.”

“…….”

앞으로 벌어지게 될 대 참사를 상상하며, 절규에 가까운 탄성을 내지르는 마군 진영의 유저들.

그리고 이들이 절규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천군 진영에 또 한 번의 허무한 포인트를 내어 주게 생겼으니 말이다.

물론 이안이 꽂은 깃발은, 마군 유저들이 깃발 포인트에 올라가자마자 바로 제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군의 깃발을 꽂는 순간, 자연스레 제거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한번 올라간 거점 점령 포인트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으니, 3:2가 될 점령 스코어가 이안 한 명 때문에 4:2가 되는 셈이었고, 그것이 마군 유저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이안이 깃발을 꽂기 전에 깃발 파수꾼들을 먼저 처치할 것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이안이 파수꾼 버프를 다 가져가게 되면, 깃발을 꽂는 데에만 또 5분이라는 시간을 버려야 하니 말이다.

깃발 파수꾼의 버프 지속 시간은 10분에 불과했고, 이전 거점에서 받았던 버프는 이미 꺼진 지 오래였으니, 마군 진영은 그야말로 아무런 버프도 없이 5분 동안 깃발을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다들 빨리 뛰어 올라가지 않고 뭐 해?”

“이안이 깃발을 꽂는 것만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으며, 몬스터들을 뚫고 첨탑을 오르는 마군 진영의 유저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처절한 노력은, 단 두 줄의 메시지로 인해 그대로 무용無用해 지고 말았다.

-‘천군’ 진영이 네 번째 거점을 점령하였습니다.

-현재 스코어 – 천군 4 : 마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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