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36화 (648/1,027)

< 636화 용맹의 전장 (1) >

“저기, 부장님…….”

“왜 그러는가, 김과장.”

“제가 오늘 낮에 뭘 잘못 먹었는지, 복통도 심하고…….”

“흐음?”

“자꾸 현기증 나고 어지러워서 그러는데, 혹시 오후 반차 쓰고 일찍 퇴근해 봐도 되겠습니까?”

“자네 오늘 점심 나랑 같이 먹었잖나.”

“옙.”

“쯧쯧, 젊은 사람이 장이 그렇게 안 좋아서야.”

“큭,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퇴근해 보시게. 잔업은 내일 마저 마무리하시고.”

“감사합니다, 부장님!”

평범한 중견기업의 과장인 김춘봉.

그는 10년이 넘도록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무척이나 성실하게 일해 왔다.

지금껏 일하면서 꾀병이나 농땡이와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본 적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

하지만 반차를 쓰고 퇴근하는 지금, 그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꾀병이라는 것을 부려 보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3시 전에 집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 조금만 더 일찍 나올 걸 그랬나? 차가 엄청 막히네.’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깨무는 김춘봉 과장.

항상 성실하던 그가 조기 퇴근을 결심한 이유는 오늘이 단지 금요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불금 같은 것은 그의 라이프 스타일과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김춘봉은 뭐 때문에 꾀병까지 부려 가며 이렇게 일찍 퇴근한 것일까?

“아, 이 xx같은 신호는 왜 이렇게 긴 거야? 이안갓 영접하러 가야 하는데!”

그가 오후 3시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카일란 때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 방송 YTBC에서 3시부터 시작되는 ‘용맹의 깃발 전장’ 방송 때문이었다.

물론 이달 초부터 용맹의 전장은 매주 금요일에 열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금요일마다 항상 조기 퇴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바로 오늘.

오늘의 금요일 전장은 조금 더 특별했다.

오늘 열리는 용맹의 깃발 전장에, 드디어 ‘이안’이 참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용사의 마을이 열린 첫째 주 요일전장에만 한 번씩 참여한 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요일전장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안.

때문에 이안이 참전하는 오늘의 ‘용맹의 깃발 전장’ 중계방송은, 한국의 카일란 팬이라면 무조건 본방사수를 해야만 하는 콘텐츠였다.

“으으…… 폰으로 먼저 틀어 둬야 하나?”

그렇다면 김춘봉은 이안이 용맹의 깃발 전장에 참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공식 커뮤니티의 한 게시물 덕분이었다.

커뮤니티에서 자주 활동하는 네임드 랭커 하나가 올린 게시물을, 점심시간에 우연찮게 보게 된 것이다.

-제목 : 대박! 님들 대박소식 하나 물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 궁사 랭킹 200위 수문장 샤폰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젯밤에 드디어 용사의 마을 입성했습니다.

……중략……

오늘 아침에 ‘용맹의 깃발’ 전장에 참전하려고 신청서 등록하고 왔는데, 제 바로 앞에 이안갓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해서 일단 스샷부터 하나 박아 놓은 뒤에 이안갓에게 물어봤습니다.

오늘 깃발 전장에 참여하시는 게 맞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바람처럼 사라지시더라고요.

크, 이상하게 생긴 몽둥이 같은 걸 등에 메고 계셨는데, 포스 장난 아니었습니다.

의심하는 분들이 계실까 봐 인증 스샷 밑에 첨부합니다.

……중략……

흐흐, 지금 용사의 마을 입성하신 천군 진영 랭커분들, 오늘 금요 전장은 무조건 참전하시길 바랍니다.

이안갓 참전하는 순간 승리는 무조건일 거고 콜드게임이라도 뜨면 공헌도 3배 루팡하는 겁니다.

물론 마군진영 랭커분들께선, 조용히 신청서 집어넣으시길.

Comment(1,273)

└??? 이거 실화임? 오늘 용맹의 깃발 전장에 이안 등판한다고?

└저기 스샷보면 100퍼센트 실화인 듯. 포샵으로 이안 얼굴 그려 넣은 거 아닌 이상, 주작은 아닌 듯.

└크으으! 오졌다! 오늘 두시 반부터 YTBC 틀어놓고 대기 타야겠다.

└근데 저기 이안 등에 메여 있는 거무튀튀한 몽둥이는 대체 뭘까? 용도가 짐작이 안 되네.

└저거 들고 마군 랭커들 뚝배기 깨려는 거 아님?

└노노, 그러기엔 저거 퀄리티가 너무 낮아 보임. 이안갓 갑옷이랑 비교해 보셈. 저런 허접한 몽둥이가 무기일 리가 없음.

└하긴……. 근데 저 갑옷은 진짜 멋지다. 저런 템은 어디서 난 거지 대체? 용사의 마을 대장간에 저런 건 안 팔던데…….

……중략……

└아오, 오늘 6교시 수업은 째야 되나? 무조건 본방 사수해야 되는 각인데.

└ㅠㅠ급식은 웁니다. ㅠㅠ 그냥 자습시간에 재방으로 봐야겠네.

└ㅠㅠ 학식도 웁니다……. 오늘 시험 있는 날인데…….

└님들 다 조용히 하셈. 나 아침부터 용맹의 깃발 전장 참전신청 하고 왔는데, 이거 물리기 가능함?

└ㅋㅋㅋ윗님, 마군 진영 랭커신가 보네. 안타깝지만 한 번 신청한 다음엔 취소 안 될 듯.

└으아아, 그냥 얌전히 메인 퀘나 하고 있을 걸……. 세 시간 그대로 날려먹게 생겼네.

└흐흐, 이안갓은 사랑입니다. 난 메인 퀘하던 거 접고 바로 지금 신청서 넣으러 감. 오늘 공헌도 500이상 루팡 가능 각임.

└카일란하는김과장 : 저는 오늘 반차 쓰고 조퇴 각.

김춘봉이 내용을 확인하였을 때는, 게시물이 올라온 지 불과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댓글은 이미 1천 개도 넘게 달려 있었고, 게시물은 순식간에 추천 게시물로 올라가 있었다.

평소에 댓글 같은 것은 잘 달지 않던 김춘봉마저 한 줄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이니, 커뮤니티에서 이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삐빅-!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한 김춘봉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다급히 집을 향해 뛰어올라갔다.

그의 집은 4층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투당탕탕-!

그리고 3시가 되기 정확히 3분 전.

피잉!

집에 도착해 TV를 켜는 데 성공한 김춘봉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용맹의 깃발 전장의 러닝 타임인 3시간 동안, 그는 이 소파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 * *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이는, 용사의 마을 천군 진영의 공터.

콘텐츠가 열린 지 2주차가 지난 뒤부터 이곳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요일 전장이 열리는 수, 금, 일요일은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공터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전장으로 이동하는 포털이 항상 이 공터에 생성되기 때문이었다.

“아잣, 장비 세팅이랑 스킬 정비는 다 끝났고……. 이제 포털만 열리면 되는 건가?”

“좋았어. 오늘은 꼭 3킬 달성하고 만다.”

“뭐야, 너 지난번에 3킬도 달성 못 했어?”

“그게…… 쉽지 않더라고. 부활하면 곧바로 두들겨 맞고 사망하더라.”

“으, 난 이번에 처음인데. 떨리네.”

유저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장으로 향하는 포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전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유저들 중 대부분이 첫 번째 참전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화는 전장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처음 입장하시는 거면, 절대로 최전방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방어 타워에 정타로 맞으면, 어지간한 탱커도 한 방에 골로 가거든요.”

“킬 누적시키는 것만큼이나, 안 죽는 것도 중요해요. 한번 죽을 때마다 획득 공헌도 절반 날아가더라고요.”

그리고 유저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공터의 중심에 놓여 있는 거대한 전고戰鼓가 커다랗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전장의 포털이 곧 열릴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둥- 둥- 둥-.

이어서 공터에 대기하고 있던 유저들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금일 열리는 요일 전장인 ‘용맹의 깃발’ 전장에 참여할 병사들은 우측 포털로 입장하시길 바랍니다.

-용맹의 깃발 전장은 낮 12시 전에 신청서를 제출한 유저만이 참전 가능합니다.

“오오, 드디어!”

“가즈아!”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생성된 포털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천군 진영의 랭커들.

그들은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앞 다투어 포털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운 소리 때문인지, 공터의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 남자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암……. 이제 시작인가?”

남자의 정체는, 티버의 대장간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한 이안.

천군진영의 랭커들이 포털을 향해 우르르 뛰어 들어간 뒤 이안은 느긋한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이안 또한 다른 랭커들이 서두르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안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유였다.

‘뭐, 어차피 어디 배정되든 난 상관없으니까.’

처음 용맹의 깃발 전장에 입장하면, 입장하는 순서대로 참전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전투가 일어났을 때 대열 안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위치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전투 중에 그 대열을 벗어나면, 유저는 적을 처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공헌도의 일부를 삭감당한다.

자신이 지켜야할 위치에서 멀어질수록 공헌도가 더 많이 떨어지게 되어, 대열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적을 처치하면 아예 0에 수렴하는 공헌도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랭커들은, 서로 경쟁하듯 포털에 입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 대열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생존률이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투 중에 대열이 바뀌기도 하지만 처음 배정되는 포지션은 충분히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들과 달리 공헌도에 관심이 없는 이안에게, 대열이란 무의미했다.

이안이 깃발 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 중, 관심 있는 건 오로지 화폐로 사용 가능한 영웅 점수 뿐.

때문에 오늘 있을 용맹의 깃발 전장에서 이안의 포지션은, 말 그대로 ‘프리 롤Free Roll’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한번, 마음대로 날뛰어 볼 수 있겠어.’

공헌도의 노예(?)로서 참전했던, 첫째 주 전장에서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이안은 속으로 단단히 벼르면서 포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이어서 그의 한쪽 발이 포털 안쪽을 디딘 순간.

우우웅-!

전신이 새하얀 빛으로 휘감기며, 이안의 시야는 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밝아지는 이안의 시야에 낯익은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금요일의 요일 전장 ‘용맹의 깃발’ 전장에 입장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용맹의 깃발’ 전장이 종료될 때까지 전장 밖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전장에 투입되기 전, 부대와 대열을 선택합니다.

-참전 가능한 위치가 한 자리밖에 남지 않아, 자동으로 포지션이 선택됩니다.

-천호 부대의 A열 5번의 위치에 배정되었습니다.

-배정된 대열에서 10미터 이상 벗어난 상태로 전투하면, 획득할 수 있는 공헌도가 삭감됩니다.

……중략……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한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흐, 역시 마지막까지 남는 자리는 이쪽일 수밖에 없나?’

단지 메시지를 읽은 것뿐이었지만, 이안은 그것만으로도 배정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천호부대의 A열 5번이라는 위치는, 그야말로 최전방의 정 중앙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전설의 무기를 개시하기에 아주 완벽한 포지션이야.”

등에 메고 있던 몽둥이를 뽑아 든 이안은 눈앞에 펼쳐진 전장을 보며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의 눈앞에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금부터 ‘용맹의 깃발’ 전장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임무가 발동하였습니다.

-‘천호부대의 깃발’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용맹의 전장(547,1295)의 위치에 있는 거점을 점령하고, ‘천호’부대의 깃발을 꽂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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