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34화 (646/1,027)

<첫 번째 용사 (2)

* * *

세 번째 전투를 마친 이안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천군진영의 유령들과 만났던 장소였다.

‘용맹을 증명하라!’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거니와, 더 이상 자폭 파밍이 의미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용사의 의식인지 뭔지, 클리어하기 전엔 공헌도를 올릴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도착한 이안을 발견한 유령들은, 호들갑을 떨며 이안을 맞아 주었다.

-대단해! 정말 이 임무를 해낼 줄은 몰랐어!

-이안, 자네 정말 엄청난 용사였군!

-죽음을 무릅쓰고 마군진영을 휩쓸다니……. 자네의 용맹은 증명되었네.

-그대의 용맹에 경의를 표하는 바일세.

사실 유령들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안의 믿을 수 없는 실적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자네에게는 전설의 무기를 가질 자격이 충분해! 자네가 프릭스보다 더 뛰어난 용사가 되었으면 좋겠군.

이어서 이안에게 퀘스트를 준 유령의 대사와 함께, 이안의 시야에 기분 좋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천군 정예병의 망령’이 당신을 존경합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용맹을 증명하라!’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프릭스의 검 설계 도안’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공헌도 500을 획득하셨습니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공헌도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500의 공헌도가 소멸합니다.

마지막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한 이안은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공헌도 500이라…….’

만약 마군 병사들이 주는 공헌도의 양을 몰랐더라면 500의 공헌도를 날린 것에 대해 부들부들 떨었겠지만, 지금의 이안에게 500이라는 공헌도는 그야말로 의미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망령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전설의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후, 별말씀을!

-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영광이었네.

망령들과 훈훈한 대화를 나눈 이안은 곧바로 인벤토리부터 확인해 보았다.

프릭스의 검을 설계했다는 도안이 어떤 물건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프릭스의 검 설계 도안

분류 : 잡화

등급 : 전설(초월)

용사의 협곡, 천군 진영의 전설적인 영웅.

‘프릭스’ 가 사용하던 검의 설계 도안이다.

뛰어난 차원의 대장장이가 이 설계 도안을 본다면, 강력한 차원의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알아볼 수 없게 그려진 설계 도안입니다.

*천군진영의 대장장이 ‘티버’에게 가져가면, ‘전설의 무기 제작 (에픽)(히든)’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이미 해당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도안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입맛을 다셨다.

‘이거, 유저는 볼 수 없게 만들어진 도안이었네.’

전설의 무기를 설계했다는 도안이라기에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었는데, 단지 퀘스트 진행에 필요한 이벤트성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자, 이제 이걸 들고 티버에게 가면 무기를 얻을 수 있으려나?’

지금 이안은, 여러모로 설레는 상황이었다.

초월 10레벨이라는 봉인이 해제된 데다 모든 전투 능력치는 거의 30퍼센트만큼 뻥튀기 되었으며, 이제 전설의 무기까지 얻게 될 테니 말이다.

강력한 무기까지 얻고 나면, 모르긴 몰라도 초월 20레벨 정도까진 폭업이 가능할 터.

지난주부터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던 요일 전장이 무척이나 기대되기 시작하였다.

‘내일 열릴 신의 말판 전장에는 참여하기 힘들 확률이 높고……. 금요일 전장에는 참여가 가능하겠지?’

용사의 마을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의 요일 전장이 열린다.

일요일의 ‘차원의 거울’ 전장.

수요일의 ‘신의 말판’ 전장.

마지막으로, 금요일의 ‘용맹의 깃발’ 전장.

그리고 세 가지의 요일 전장 중, 가장 평범한 전장은 용맹의 깃발 전장이었다.

특별히 신박한 룰이 있는 게 아닌, 단순한 ‘땅 따먹기’ 식의 전장이었으니 말이다.

전장에 존재하는 총 스무 개의 포인트 중, 최대한 많은 포인트에 깃발을 꽂으면 되는 단순한 게임인 것.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전장은 아니었다.

수많은 NPC병사들과 유저들이 모여 난전을 벌이는 개념인 데다 전장이 진행되는 동안은 죽어도 5분만 기다리면 다시 부활하는 시스템이었으니, 주어진 3시간 동안 정말 원 없이 싸울 수 있는 전장인 것이다.

물론 수많은 세계의 랭커들 사이에서 전투다운 전투를 하려면 그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강력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저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여러분.”

-그래. 수고하셨네.

-그나저나 그 도안을 이해할 만한 대장장이는 알고 있는 겐가?

“천군 진영에 ‘티버’라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있습니다. 그라면 이 도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오호, 티버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거신족의 핏줄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행운을 비네, 이안. 자네가 전설의 무기를 만들어서 이 전장에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도록 하지.

유령들과 훈훈하게 인사를 마친 이안은, 곧바로 핀을 소환하였다.

이제 용사의 마을에서 열심히 ‘아이언스웜의 심장’을 제련하고 있을, 티버를 만나기 위해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평범한 직장이라면 이미 불이 전부 꺼져 있어야만 하는 깜깜한 저녁 9시.

하지만 LB사 사옥은 불이 꺼져 있는 곳이 찾기 힘들 정도로 모든 창문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불이 꺼져 있는 곳은 마케팅 팀과 경영지원 팀 정도.

기획 팀과 개발 팀만이 있는 3층의 경우 모든 사무실의 불이 전부 다 켜져 있었으며, 특히 기획 3팀의 사무실은 대낮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의 모든 사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그래요, 김 주임? 또 무슨 일이에요?”

“아니, 한나절 사이에, 차트가 또 이상해졌거든요.”

“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분명히 아까 제가 점심 먹고 확인했을 때만 해도 이안 공헌도가 4만 정도였는데…….”

“헉, 4만요? 그게 말이 돼요?”

“네. 분명히 4만이었어요. 그래서 오늘 보고서 올리려고 작성 중이었는데…….”

“그런데요?”

“사라졌어요.”

“네……?”

“사라졌다고요, 이안이. 이 랭킹 차트에서 아예 없어졌어요.”

“……?”

용사의 마을 랭커들의 공헌도 모니터링 담당인 김 주임은, 어제부터 혼돈 속에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천군과 마군 할 것 없이 랭커들의 공헌도가 예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널뛰기 중이었으며, 특히 이안의 공헌도는 버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뻥튀기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 1만, 2만 정도의 공헌도가 나온 것도 놀라운데, 무려 4만이 넘는 공헌도라니.

시간만 많았다면, 이안의 플레이 로그를 전부 다 까서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보고서를 작성했건만 다른 랭커들의 일지를 작성하는 사이,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5만, 6만으로 공헌도가 늘어난 것이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랭킹 차트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군 진영의 공헌도 랭킹 1위에는 떡하니 ‘간지훈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 랭킹에서 사라지다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 왜 그걸 유 대리님이…….”

“아니, 이거 진짜 심각한 버그라도 터진 거 아니예요? 지금 당장 개발 팀에 문의 넣어볼까요?”

모니터에 띄워 놓은 랭킹 차트를 아래위로 계속해서 롤링하며, 눈에 불을 켜고 사라진 이안의 이름을 찾는 두 사람.

당장 오늘자 보고서가 올라가기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기획총괄 팀에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 김주임으로서는, 멘탈이 남아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거 어쩐다…….”

“유 대리님.”

“네?”

“저 지금 울고 싶은데 어쩌죠?”

“…….”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김 주임을 보며, 유 대리는 안쓰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 마음, 기획 팀 소속의 직원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끼이익-

패닉에 빠진 김 주임의 뒤쪽에서, 구원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방금 모니터링실에서 올라온 나지찬이었다.

“김 주임, 방금 랭킹 차트 확인하고 있었던 거지?”

“아, 넵! 팀장님. 오셨네요……!”

“지금 차트에 이안 안 보여서 둘이 그러고 있었던 거야?”

“네, 그걸 어떻게……?”

나지찬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오자, 김 주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그가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나지찬이 알고 있으니 당황한 것이다.

‘여, 역시! 팀장님은 모르는게 없어!’

그리고 이어진 나지찬의 말에, 부서지기 직전이었던 김 주임의 멘탈이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걱정하지 마. 오늘 김 주임 보고 들어갈 필요 없으니까.”

“네에?”

“오늘 기획총괄 팀 보고는……. 아무래도 내가 직접 들어가야 할 것 같거든.”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힘이 빠져가는 나지찬의 목소리.

이어서 나지찬은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던 서류뭉치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기획 3팀의 직원들은, 어쩐지 그것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성공적으로 ‘프릭스의 검 설계도안’ 아이템을 구해, 티버의 대장간으로 돌아간 이안.

그리고 이안이 기대했던 대로, 티버는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성공적으로 제련해 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이안……! 역시 자네라면 도안을 구해 올 수 있을 줄 알았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으로 ‘전설의 무기 제작’ 퀘스트가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도안을 확인한 티버가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이안에게 몇 가지 재료들을 추가로 주문한 것이다.

“이 차원마력을 견뎌낼 만한 손잡이를 만들기 위해선, 차원 마력을 먹고 자란 청단목이 꼭 필요하다네. 그리고 거인의 무덤 근처에 서식하는 ‘챠우거’의 힘줄도 필요해.”

이안의 요새 증축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목재는 흑단목이다.

그리고 이 흑단목은 차원의 숲에서 드물게 자라는 희귀한 나무였다.

그렇다면 티버가 구해 오라는 청단목은 어떤 나무일까?

‘어떤 나무긴 어떤 나무야. 더럽게 희귀한 나무겠지.’

차원의 숲을 뻔질나게 돌아다닌 이안조차도 청단목이라는 나무는 본 적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구하기 힘든 희귀한 재료인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챠우거라……. 차원의 숲 안에 그런 몬스터도 있었나? 거인의 무덤이라면 분명 숲 중앙에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 건데…….’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도안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무기는 완성되지 않았다.

재료를 구하러 곧바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자정이 다 되 버린 바람에 포털이 닫힌 것이다.

그리하여 이안은 다음 날 하루 종일 차원의 숲 지박령이 되어야만 했다.

차원의 숲 몬스터를 때려잡으며 초월 레벨이 한두 개 오르긴 했지만,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금요일의 전장이 열리기 전에 전설의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 이안의 가장 큰 열망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또다시 밤이 깊어 갈 무렵.

“찾았다!”

차원의 숲 한쪽 구석에서 기쁨에 찬 이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하루 종일 숲 전체를 이 잡듯 뒤진 끝에 ‘청단목’이라는 지랄맞은 녀석을 드디어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전설의 무기를 만들기 위한 모든 재료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티버, 이제 더 필요한 건 없는 거 맞죠?”

“크으, 청단목과 챠우거의 힘줄을 이렇게 빨리 구해 오다니 자넨 정말 엄청나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더 필요안 거 없는 거 맞냐고요.”

“그렇다니까. 이거면 충분히 전설의 무기를 만들 수 있으니 걱정 마시게.”

“믿어도 되죠?”

“물론! 이제 저기 의자에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시게. 이 티버가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무기를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야.”

이안에게 모든 재료를 건네받은 티버는 그것들을 모루 위에 올려 놓고 경건한 표정으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우우웅-!

티버의 모루에서 푸른빛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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