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6화 차원의 설원 (1) >
용사의 마을, 그리고 용사의 협곡.
‘중간자’가 되기 위한 콘텐츠이자 통합 서버의 첫 번째 콘텐츠인 이 용사 콘텐츠는.
모든 콘텐츠가 ‘대칭’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콘텐츠가, 천군과 마군의 두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점점 더 상위 콘텐츠로 올라갈수록, 대칭된 두 콘텐츠에 조금씩 접점이 생기게 된다.
간접적인 ‘경쟁’의 구도에서 시작하여, 점점 직접적인 전투가 이뤄지는 구도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 이안이 향하고 있는 ‘차원의 설원’.
이 첫 번째 ‘중간 지대’가, 바로 그런 콘텐츠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군 진영 쪽의 진행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는 모르지만…… 중립지대니까 아무래도 마족 유저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맞겠지?’
이안은 결코 마군 진영 유저들의 능력치를 얕보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의 요일 전투였던 ‘신의 말판’전장에서, 최상위권 마족 유저들의 실력을 직접 겪어 보았으니 말이다.
결국 이안이 승리하기는 하였지만, 그 결과와 별개로 몇몇 유저들은 정말 인정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나는 족족 뚝배기를 부수려면, 그동안 쌓인 자원으로 아이템들 좀 더 만들어야겠어.’
그리하여 이안은, 차원의 숲에 입장하기 전까지 또다시 티버의 대장간에 틀어박혔다.
그동안 쌓인 영웅 점수라면, ‘용사의 천룡군장 보주’급의 아이템을 두 피스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엊그제쯤 정령계에 심어 둔 이안의 분신(?)이 드디어 패배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영웅 점수가 지속적으로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안에게는 거의 1만에 육박하는 영웅 점수가 모여 있었다.
‘뭐, 도장이야 중간자가 된 뒤에 다시 탈환하러 가도 늦지 않으니까.’
이안은, 그가 거의 전세 놓다시피 한 대장간 구석에 있는 작업대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모아 둔 광물들과 장비들을 가지고, 비장한 표정으로 제작을 시작하였다.
차원의 숲 포털이 열려야 차원의 설원에도 갈 수 있는 것이었으니, 시간은 아직 서너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무기는 보주가 있으니 되었고, 흉갑이랑 신발을 먼저 만들어 봐야겠어.’
이안의 목표는, 다른 ‘천룡군장’의 아이템을 또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아직 천룡군장의 보주밖에 없어서 세트 효과를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분명히 어마어마한 세트 옵션이 붙을 것이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안은 청룡군장 세트의 첫 번째 효과를 개방할 수 있었다.
띠링!
-‘티버의 모루’에서 축복의 빛이 일렁입니다.
-‘아이템 제작’에 ‘대성공’하셨습니다!
-뛰어난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되었습니다.
-‘용사의 천룡군장 흉갑’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푸른 빛깔의 흉갑.
하늘빛의 판금에 금빛 문양이 각인된 천룡군장의 흉갑은, 이안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오오……! 간지 터진다!”
그리고 이안이 감탄하는 사이, 추가로 떠오르는 두 줄의 메시지.
-‘천룡군장’의 아이템을 착용중입니다.
-흉갑을 교체할 시, 세트 효과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용사의 천룡군장 흉갑’아이템을 착용하시겠습니까? (Y/N)
메시지를 본 이안은, 곧바로 갑옷을 착용하였다.
“당연하지!”
-‘용사의 천룡군장 흉갑’ 아이템을 착용하였습니다.
-‘천룡군장의 첫 번째 세트 효과’가 봉인 해제되었습니다.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흉갑의 정보 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용사의 천룡군장 흉갑
분류 : 가슴 갑옷
등급 : 유일 (초월)
착용 제한 : ‘정예병’계급 이상
방어력 : 1785
내구도 : 511/511
옵션
모든 전투 능력 + 50(초월)
공격력 +525
피해 흡수 +15%
모든 종류의 물리․마법 공격력 +5%
물리 공격을 빗겨 맞을 시, 피해의 80%를 무효화시킵니다.
5%의 확률로 ‘마법’ 속성의 공격을 무효화합니다.
천룡군장의 위엄
기본 지속 효과
정령 마법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보주의 모든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초만큼 감소합니다.
+
적에게 피격당할 시, 5%의 확률로 ‘위엄’효과가 발동합니다.
위엄 효과가 발동하면, 10초 동안 모든 전투 능력이 20%만큼 증가합니다.
-사용 효과
남아 있는 소환 마력을 전부 소진하여, 반경 50m 내의 모든 적들을 10초 동안 침묵시킵니다.
남아 있는 생명력의 50%만큼을 일시에 소진하여, 반경 50m 내의 모든 적들의 마력(소환 마력)을 전부 태워 버립니다(재사용 대기 시간 : 60초).
천룡 소환
천룡의 분노가 가득 차올랐을 때, 정령의 힘으로 재현된 천룡(天龍)을 소환하여 전방의 적을 향해 발출합니다.
소환된 천룡은 정령 마력의 1,550%만큼의 위력을 가지며, 적에게 적중할 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적을 향해 튕겨 나갑니다.
(5m 이내에 적이 존재할 시에만 발동되며, 최대 10회 튕길 수 있습니다.)
‘천룡소환’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을 시, 분노가 15만큼 추가로 차오릅니다.
(천룡의 분노는, 적을 하나 처치할 때마다 3포인트씩 차오릅니다.)
현재 천룡의 분노 : 0/100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천룡군장’ 세트 아이템입니다.
두 파츠의 세트 아이템을 장착하여, 하나의 세트 옵션이 부여됩니다.
세트 A. 모든 천룡군장 장비의 성능 +10%(부가 옵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유저 ‘이안’에 의해 제작된 천룡군장의 갑옷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장비 아이템들을 보아 온 이안은, 옵션이라는 옵션은 죄다 꿰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템이라 하더라도, 대충 읽어 보면 어떤 메커니즘으로 옵션이 구성되어 있는지 금방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안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들어진 천룡군장 아이템의 옵션 구성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중복 옵션? 그건 아닌데……?’
이안이 당황한 부분은 바로, 아이템의 ‘고유 능력’이 쓰여 있는 부분.
이안은 처음 그것들을 얼핏 보고는, ‘천룡군장 보주’와 같은 고유 능력이 붙어 있는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고유 능력의 이름부터 시작하여, 설명의 첫 줄까지 완벽히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천룡군장 아이템의 고유 능력은, 옵션을 공유하는 거였구나……!’
‘천룡군장의 위엄’의 고유 능력을 예로 들자면.
보주만 착용하고 있을 때는, 이 고유 능력의 지속 효과가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흉갑을 같이 착용하고 나자, 그 아래에 ‘위엄 효과 발동’ 옵션까지 추가된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속 효과뿐만 아니라 사용 효과에도, ‘침묵’에 더해 마력을 태워 버리는 ‘마나 번’ 효과까지 붙었으니 말이다.
‘크, 설마 세트 장비 하나 추가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옵션이 진화하는건가?’
고유 능력 두 개에, 지속 효과와 사용 효과의 옵션이 각각 하나씩 추가되니.
총 네 개의 옵션이 더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인 것.
게다가 장비의 성능 +10%라는 세트 옵션도 별개로 부여되니.
그야말로 ‘갓’템이라고밖에 표현이 되질 않았다.
“두 파츠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 보다 옵션이 더 좋으니까…….”
시간을 확인한 이안은, 아이템 제작을 접고 인벤토리를 정리하였다.
포털이 열릴 시간인 12시가 이미 넘어 버리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중립 지역에 들어가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중립 지역에 넘어온 마족 친구들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안은 기대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차원의 숲 포털에 들어섰다.
이어서 핀을 소환하여, 순식간에 북서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 * *
차원의 숲 북서쪽 끝자락에는, 카미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신비한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준 옥패를 사용하자, 이안은 결계를 지날 수 있었다.
-‘차원의 옥패’아이템이 발동됩니다.
-‘알 수 없는 결계’의 힘이 일시적으로 흩어집니다.
-‘차원의 설원’에 입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중립 지역’에 대한 설명들이 시스템 메시지로 함께 떠올랐다는 것이다.
-‘중립 지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중립 지역에서 만나는 ‘마족’ 유저들과 전투할 수 있습니다.
-중립 지역에서 ‘마군’진영 소속의 적을 처치할 시, 많은 공헌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유저를 처치할 시, 처치한 유저가 가진 공헌도의 5%만큼을 빼앗아 옵니다).
-중립 지역에서 사망할 시, 공헌도를 사용하면 용사의 마을에서 바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공헌도 10% 차감).
……(후략)……
‘크,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중립 지역은 난투장으로 변하겠구먼.’
이안이 예상하기에 아마 아직까진 중립 지역에 입장한 마족 유저는 거의 없을 것이었다.
현재 고속도로 달리듯 퀘스트를 진행해 온 이안이 이제 겨우 중립 지역에 입장한 것이니.
마족 진영 또한 아무리 빨라도 어제나 오늘 정도에 최초입장한 유저가 생겼을 거라고 판단했다.
‘많아야 두셋일 테고, 아마 한 명도 없을 확률이 제일 높을 테지.’
눈앞에 펼쳐진 설원을 쭉 둘러본 이안은, 가장 먼저 카카를 소환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카카에게 정찰 임무를 내려 주었다.
“카카, 최대한 빨리 넓은 구역을 정찰해 줘.”
“뭘 찾으면 되는 거냐, 주인아?”
“마군 진영의 적을 찾으면 돼. 찾으면 곧바로 수정구를 열어서 알려 주고.”
“알겠다, 주인!”
포로롱.
이안에게 임무를 받은 카카는, 제법 날렵해진 날갯짓으로 순식간에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카카가 설원의 깊숙한 곳을 향해 떠나자, 이안은 ‘마그비’를 소환하였다.
화르륵!
시뻘건 불꽃과 함께 이안의 앞에 나타나는, 커다란 불의 정령.
그동안 제법 많은 정령력을 섭취한 것인지, 마그비의 몸집은 좀 더 커져 있었다.
“자, 마그비. 한동안은 너랑 나랑 둘이서만 한번 움직여 보자.”
-나, 싸운다. 좋다.
현재 마그비의 정령력은, 진화에 필요한 10만 중 3만 정도가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마그비에겐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투력이 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 의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발전이었다.
“좋아, 한번 잘해 보자고.”
마그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이안은, 마지막으로 할리를 소환하였다.
중립 지역에서는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소환수들을 소환해 둘 생각은 없었다.
‘자, 그럼 한번 가 보실까?’
타탓!
가벼운 몸짓으로 할리의 등에 오른 이안은, 빠르게 움직여 평원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곳이 중립 지역인 것과는 별개로, 이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트라피엘의 대장간 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