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3화 전설의 차원무기 (1) >
이제는 북적북적해진 용사의 마을과 달리.
차원의 숲 요새의 본진은 아직도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이 ‘차원의 숲’ 맵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정예병 타이틀을 달아야 하는데.
정예병을 달기까지 필요한 공적치가 3천을 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예병이 된 랭커들의 숫자는, 천군 진영을 기준으로 대략 50여 명 정도.
그리고 이들 50명 중 대부분의 인원들은,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차원의 숲 안에 있을 것이었다.
* * *
“티버님, 계십니까?”
티버의 막사 앞에 도착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막사의 문을 열어젖히며 티버를 불렀다.
티버와의 친밀도는 이미 최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쑥 나타난다고 해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호, 이안이 아닌가. 지금 한창 요새 수리로 바쁠 시간인데……. 여기에는 어쩐 일인가?”
“티버님께 도움을 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도움……? 설마 요새 방어에 벌써 실패한 것은 아니겠지?”
“하핫, 무슨 그리 섭한 말씀을. 요새는 완벽하게 방어하고 있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그거야 몇 시간 뒤에 수비대장님께서 순찰 나가실 때 따라가 보면 알게 되겠지.”
뭔가를 제작하는 중이었는지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하던 티버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도움을 구하고 싶다’는 이안의 말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지금껏 이안이 방문할 때마다 놀라지 않았던 적이 드물었으니, 이것은 사실 당연한 현상이었다.
“자, 일단 이쪽에 앉게.”
“감사합니다.”
이안을 막사의 구석에 있는 작은 탁자 앞으로 인도한 티버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내게 도움을 구하고 싶다는 게 뭔가?”
눈을 반짝이며 이안에게 묻는 티버.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좀 ‘진귀’한 광물을 구했는데요.”
“진귀……한 광물?”
진귀하다는 말에 힘주어 말하는 이안을 보며, 티버는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들고 왔던 ‘빛나는 차원의 마력석’만 하더라도 충분히 진귀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것이었는데.
지금 이안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때보다 훨씬 더 뜸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제 실력으로 제련하다가 이 광물이 상하기라도 할까 봐……. 혹시 티버님께서 제련을 도와주실 수 있나 해서 말이죠.”
이안의 말에, 티버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카일란에서 대장장이에게 진귀한 광물을 다뤄 볼 기회란, 돈을 주고도 살 만큼 값진 것이었다.
희귀하고 등급이 높은 광물을 제련할 때, 제련 기술의 숙련도가 가장 많이 올라가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장 기술을 쌓는 중인 이안에게도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제련해 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지금은 숙련도보다 중요한 것이 이 제련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오오, 그런 것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혹시 그 진귀한 광물이라는 것을, 지금 바로 볼 수 있겠는가?”
이미 안달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는 티버를 향해,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잠시만요.”
이어서 이안은, 인벤토리의 앞칸에 놓아두었던 스웜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탁자 위에 조심스레 올려 두었다.
티버의 부리부리한 두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광물인가!”
“후후, 티버님도 이 광물은 처음 보시나 보군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아니, 이 차원의 숲에 수백 년을 머물면서, 이렇게 강렬한 차원의 힘을 지닌 광물은 처음 보네!”
“크으……!”
티버의 반응이 격렬할수록, 이안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조차도 처음 보는 광물이라는 말은, 희귀도가 정말 엄청난 녀석이라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안은 은근한 목소리로 티버를 향해 광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티버, 혹시 차원의 숲에 사는 거대한 괴물을 알고 계십니까?”
“괴물이라면……?”
“마치 돌덩이를 이어붙인 것 같은 외모의 거대한 에픽 몬스터 말입니다. ‘아이언 스웜’이라는 녀석이죠.”
이안의 말에, 티버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 스웜의 존재에 대해서는, 티버도 모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이언 스웜이라면, 나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네. 그런데 이 광물이 그 괴물 녀석과는 무슨 관계인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이안의 이야기에, 티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집어삼켰다.
이어서 이안이 다음 말을 꺼낸 순간.
티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 신비한 광물이 바로, 그 아이언 스웜의 심장입니다, 티버.”
“……!”
“아이언 스웜을 처치하고, 녀석에게서 얻은 것이지요.”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반사적으로 일어선 티버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광물과 이안을 번갈아 가며 응시하는 티버의 눈동자.
잠시 후.
티버의 입이 천천히 떨어졌다.
“이게 정말…… 아이언 스웜의 심장이라는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후후. 속고만 사셨습니까?”
“아니, 내가 자네를 의심하는 것은 아닐세. 단지 이 전설의 광물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런 것일세.”
‘전설의 광물’이라는 말에, 이안의 두 눈이 반짝였고.
티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차원의 숲이 생겨난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일세.”
그리고 이안은, 티버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 * *
티버의 이야기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이안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티버, 그 전설의 영웅 ‘프릭스’의 검이, 이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제련해서 만든 무기였다는 거죠?”
“그 진위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야 없네만, 아주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세.”
“그렇군요.”
“대체 그 괴물 같은 녀석을 어떻게 처치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하하.”
태초에 차원의 거인으로부터 용사의 마을을 지켜 낸, 전설의 용사 프릭스.
티버의 말에 의하면, 이 프릭스가 거인을 처치할 때 썼던 검이 바로 이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제련하여 만든 검이라고 하였다.
당시 차원의 광물들로 개발해 낸 몇몇 포탑 말고는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던 차원의 거인이.
프릭스의 검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웅 프릭스가 차원의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무기 덕분만은 아닐 걸세.”
“원래부터 프릭스는 강력한 용사였군요.”
“그렇다네. 그는 지금까지 용사의 마을에서 배출한 모든 용사들 중에서 가장 강했다고 하니 말일세.”
“어쨌든 이 광물로 만들었던 무기가 전설의 무기라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티버.”
이안의 말에 흐뭇한 표정이 된 티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부디 이 광물을 제련하는 데 성공해서, ‘프릭스의 검’과 같은 전설적인 무기가 탄생했으면 좋겠군.”
“흐흐, 티버님의 실력이라면 분명히 가능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네. 이 광물을 내게 맡겨 준 것도 영광이고 말이지.”
“별말씀을요.”
티버는 마치 갓난아이 다루듯, 조심스레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들어 올려, 작업실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어서 티버는, 광물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 녀석을 제련하는 데 3일 정도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
“3일……이나요?”
“그렇다네. 처음 접하는 광물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니 말일세.”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티버.”
“걱정 붙들어 매시게. 아마 현존하는 모든 대장장이들 중에서, 차원의 광물을 나보다 더 잘 다루는 친구는 없을 테니 말이지.”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한 티버는,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티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티버의 말대로라면, 아이언 스웜의 심장으로 만들어 낸 무기는 차원의 방호막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까지 차원의 숲에 등장했던 에픽 몬스터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특성.
차원의 방호막
-차원의 마력이 담긴 공격 외에는, 그 어떤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이안의 예상대로라면 아마 차원의 거인도 이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고, 전설의 무기라던 프릭스의 검은 이 방호막을 뚫을 수 있는 게 분명했다.
‘뭐, 더 이상 예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이제 무기가 완성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겠지.’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작업 준비에 한창인 티버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인사하였다.
“티버, 전 그럼 티버만 믿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요새로 돌아가서 일손을 거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이안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티버.
그런데 이안을 그대로 보내 줄 것처럼 보였던 티버가, 돌연 뛰어나와서 입을 열었다.
“아, 자네. 내가 방금 생각난 것이 하나 있네만…….”
“넵?”
“내가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제련하는 동안, 자네가 구해 왔으면 하는 재료가 좀 있다네.”
“재료라면…… 무기 제작에 필요한 재료인가요?”
“그렇다네.”
그리고 티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전설의 무기 제작’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이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히든 퀘스트 창이, 이안의 눈앞에 떠올랐다.
전설의 무기 제작 (에픽)(히든)
차원의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알려진 전설의 무기, ‘프릭스의 검’.
당신은 이 ‘프릭스의 검’의 재료로 알려져 있는 ‘아이언 스웜의 심장’을 얻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전설의 광물을 의뢰받은 티버는, 당신에게 프릭스의 검을 뛰어넘는 전설의 무기를 만들어 주고 싶어 한다.
전설의 무기를 제작하기 위해서, 티버는 몇 가지의 재료가 추가로 필요하다 하였다.
첫째로, 한계를 넘는 온도의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마력의 응집체’.
둘째로, 아무리 높은 온도에도 녹지 않는 ‘만년빙결(萬年氷結)’.
마지막으로 ‘폐허가 된 성’ 안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프릭스의 검’ 설계 도안.
만약 당신이 이 세 가지의 아이템을 구해 온다면, 티버는 정말 대단한 무기를 완성하여 당신에게 줄 것이다.
하지만 재료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완성될 무기의 성능은 장담할 수 없다.
퀘스트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아이언 스웜의 심장’ 아이템 획득
대장장이 ‘티버’와의 친밀도 100 이상 달성
제한 시간 : 3일
보상 – ?(전설의 차원 무기)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아이언 스웜의 심장’만 있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한 퀘스트가 떠올라 버렸으니 말이다.
‘으음, 이거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그런 이안을 향해, 티버의 입이 다시 열렸다.
“자네가 재료를 구하는 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수비대장님께 이야기해서 내일부터는 임무에서 제외시켜 주도록 하겠네.”
어찌 보면 당연한 티버의 배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였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티버. 임무는 임무대로 수행하고, 재료는 따로 한번 구해 보겠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일이니, 천군 진영의 임무가 더 우선이지요.”
마력석이 필요한 신규 랭커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차원의 숲에 유입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로터스 길드원들만 데려다 쓰더라도, 요새증축 퀘스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으니.
굳이 티버의 배려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말을 들은 티버는, 그의 충성심(?)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오오…… 이안…… 자네는 역시 대단해.”
이어서 티버는,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주먹을 불끈 쥐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네. 자네가 내 손에서 탄생한 무기를 가지고 프릭스를 넘어서는 전설의 용사가 되었으면 좋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