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0화 요새방어전(下) (6) >
* * *
“레미르 누나, 그쪽 마무리됐어?”
“응, 방금 완성했어!”
“이번엔 하자 없는 거 확실하지?”
“아이 참, 제대로 됐다니까 그러네.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으실까?”
“누나를 못 믿는 게 아니고, 이번에도 실패 뜨면 울고 싶을 것 같아서 그래.”
차원의 요새 A-11섹터에는 로터스 길드원들의 앓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생산 클래스라곤 한 명도 없는 구성원으로 모든 생산 클래스 중 가장 노가다가 심하다는 ‘건설’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 작업의 난이도가 그야말로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클로반 형, 포신砲身은 제작 끝난 거지?”
“아까부터 끝나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럼 카윈이 쪽 완성되는 대로, 마무리 작업 다시 시도해 보자고.”
“오케이!”
지금 로터스 길드원들이 달라붙어 있는 타워는 지금까지 이안과 훈이가 건설했던 타워들을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A-11구역에서 가장 지대가 낮은 곳에 터를 잡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지어 놓은 다른 타워들보다 더 높이까지 우뚝 솟아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이 타워의 이름은 바로, ‘차원의 뇌전 포탑’이었다.
-A. 차원의 뇌전 포탑
등급 : 유일
공격력 : 995(타입 : 광역/마법)
방어력 : 350
내구도 : 156,000
소모 자원 : 차원의 마력 : 150
차원의 철광석 : 235개
마력의 흑단목 : 195개
소모 시간 : 15,500~24,500초 (1인 제작 기준)
제작 난이도 : 중상中上
-하늘에서 차원의 뇌전을 생성하여, 반경 50미터의 범위에 수십 개의 번개를 떨어뜨립니다.
번개에 피해를 입은 대상은 20퍼센트의 확률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며, ‘마비’ 상태가 되면 움직임이 50퍼센트만큼 느려집니다.
*‘마비’ 상태는 15초 동안 지속됩니다.
*‘마비’ 상태에 빠진 적은 ‘전격’타입의 공격에 추가로 35퍼센트만큼의 피해를 더 입습니다.
*‘마비’ 상태에 빠진 적은 모든 상태 이상에 걸릴 확률이 15퍼센트만큼 높아집니다.
‘유일’ 등급의 타워들 중 가장 첫 페이지에 위치해 있는 차원의 뇌전 포탑.
정보 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포탑의 가장 큰 특징은 어마어마한 제작 소요 시간이었다.
150~250초에 불과했던 마력의 석궁 타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무려 1만 초 단위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제작 소모 시간.
그리고 이 제작 소모 시간이라는 것은 곧 타워를 완공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과 비례하는 것이니,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지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일 등급의 타워라 그런지 제작 난이도도 상상 이상이었다.
1인 기준 5~6시간이 걸릴 타워를 여덟 명이 붙어서 만드는 데도 불구하고, 2시간이 넘게 걸리고 있었으니까.
대신에 이 뇌전 포탑은 다른 유일 등급의 포탑들에 비해 필요한 소모 자원의 수량이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안 형이 길드원들을 시켜 제작한 거겠지.’
완성되어 가는 뇌전 포탑을 보면서 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안은 타고난 고용주(?)인 것 같았다.
유일 등급 타워 중 아무거나 골라서 지으라고 시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타워를 미리 골라 놓았던 것이다.
훈이는 자신에게 이 타워 공장(?)의 지분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노예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응시하였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척이나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깡- 깡- 깡-!
“으, 이안이 돌아오기 전에 그래도 이거 하나 정돈 완성해 놓고 싶은데…….”
헤르스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피올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고.
“그러게요, 그래야 이안 님 돌아왔을 때 할 얘기가 있죠.”
클로반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이안이 이 자식, 마력석 못 구해 오기만 해 봐. 두고두고 악덕 국왕이라고 놀려먹을 거야.”
“난 이안 팬 카페에 팩트 폭격 할 거라고.”
“크, 제목은 아무래도 ‘이안갓 인성 논란’이 좋겠어.”
이안이 높은 확률로 마력석을 구해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단단히 벼르고 있는 로터스의 길드원들.
그런 그들을 보며, 훈이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따로 사냥한 지 오래돼서 그런지, 이 사람들 감을 잃었네. 이안 형을 이렇게 모르다니.’
훈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안이 구해 올 마력석이 마흔두 개가 넘을 것임은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을 가져와서 추가로 노동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섯 개의 마력석을 받아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에 만족하기엔,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다들 욕심이 많은 랭커들.
받을 수 있는 최대 공헌도를 위해 하루 종일 망치를 두들길 로터스 길드원들이, 이미 훈이의 눈에는 그려지고 있었다.
‘왜냐면, 이미 그런 광경을 한 번 봤으니까…….’
훈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읏차!”
“클로반 형, 조금만 더 왼쪽으로!”
“레비아 님, 아래쪽 지지대 좀 잡아 줘요!”
“오케이, 좋았어 바로 거기야!”
드디어 이 길고 긴 건설노동 작업에, 마침표가 찍혔다.
쿠웅-! 철컥!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포신이 탑의 상단에 설치되면서.
띠링-!
요새의 일꾼들의 눈 앞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올랐으니 말이다.
-건설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차원의 뇌전 포탑’이 완공되었습니다!
-요새개발 기여도가 0.5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시설물 ‘차원의 뇌전 포탑’에 대한 이해도가 20만큼 상승합니다.
-‘차원의 뇌전 포탑’에 대한 이해도가 100에 도달하면, 상위 등급의 방어 타워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현재 등급 : 유일
-현재 내구도 : 156,000/156,000
-‘A-11’섹터의 방어 능력이 87.55퍼센트만큼 상승하였습니다.
“크으으, 됐어!”
“성공이야!”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한 로터스의 노동자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였다.
타워의 소유가 이안과 훈이인 것과는 별개로 완성된 대형 타워를 확인하자 뿌듯함이 벅차오른 것이다.
2시간 가까이 피땀 흘려 망치질한 결과물이 이렇게 요새 한복판에 우뚝 솟아올라 있으니.
뭔가 무형적인 보상을 얻은 기분이랄까.
하늘높이 솟은 백색의 뾰족한 첨탑 위로 시퍼렇게 지글거리는 전류의 파동.
그것은 그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해 보이는 타워였다.
“흐, 이제 어지간한 에픽 몬스터가 와도 녹여 버릴 수 있겠지?”
“광역 타워라서 그건 좀 힘들지도 몰라요.”
그런데 완성된 타워를 보며 벅찬 표정인 다른 길드원들과 달리 뭔가에 놀라기라도 한 듯, 훈이의 동공은 배 이상 확대되어 있었다.
훈이의 시선은,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의 마지막 줄에 고정되다시피 하여 있었다.
‘미, 미친……? 방어 능력이 87퍼센트 상승했다고?’
이제 A-11섹터에는, 열 개도 넘는 타워들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타워들 중에는 단 하나도 일반 등급이 없었다.
처음 지었던 기본 타워들을 전부 업그레이드하여 ‘희귀’등급으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희귀 등급의 타워를 하나 더 짓는다면, 요새의 방어 능력은 많아 봐야 5~10퍼센트 정도 상승하는 데 그친다.
그런데 이 뇌전 포탑 하나 건설한 것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방어력이 뻥튀기된 셈이니 훈이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공격력이 그렇게 특출나지도 않은데……. 정보 창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건가?’
이안이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지었던 ‘마력의 석궁 타워’의 공격력은 500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또, 이 타워를 업그레이드하여 ‘마력의 포탑’으로 만들면, 공격력이 대략 800쯤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지금 로터스 길드원들이 지은 뇌전 포탑의 공격력은, 1천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다.
뇌전 포탑이 광역 타워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수준의 방어 능력 증가인 것이다.
‘대체 뭘까? 상태 이상을 비롯한 특수 능력들 때문인 걸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결과물에 고무된 훈이는, 타워의 정보 창을 다시 정독하기 시작하였다.
대체 타워의 어떤 부분이 이런 성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훈이는 뇌전 포탑의 정보 창을 끌 수밖에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요새 바깥쪽에서부터 울려 퍼졌던 것이다.
쿠쿵- 쿠쿠쿵-!
“어, 뭐지? 지진인가?”
“에픽 몬스터라도 나타나려나 봐요!”
“후우, 이거 또 세 명 정도는 성벽 수리에 붙어야 되는 것 아닌가?”
“크, 곧바로 타워 성능 확인할 수 있겠네. 이거 흥미진진한데?”
이제는 알아서 역할을 분담하여,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로터스의 길드원들.
훈이는 이 굉음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곧바로 망루 위로 뛰어올라 갔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 원흉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헤르스 형, 대형 지네처럼 생긴 몬스터야!”
“역시 에픽 몬스터지?”
“그런 것 같아. 뇌전 포탑이 완공돼서 천만다행인데, 이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대형 몬스터를 보며, 훈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생각보다 에픽이 빨리 등장했는데.’
지금까지 요새를 공격한 에픽 몬스터는 총 둘이다.
처음 이안과 훈이가 상대했던 포악한 악령과 이안이 마력석을 구하러 떠난 뒤 길드원들과 함께 상대했던 거대한 트롤전사.
그리고 이제까지 에픽 몬스터의 등장 주기는,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였다.
때문에 훈이는 아직 30분 이상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봤는데, 트롤을 처치한지 20분 만에 새로운 대형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일단 몬스터 스펙 예측이 안 되니까 전부 성벽 수리에 붙어요!”
헤르스의 오더에, 훈이를 비롯한 길드원들은 쏜살같이 외벽에 붙어 수리할 준비를 하였다.
아무리 강력한 타워가 있더라도 외벽이 무너지는 순간 희망은 없다.
때문에 로터스의 길드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거대 지렁이를 응시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궁사 클래스의 고유 능력인 ‘천리안’을 발동시킨 카윈이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그런데 헤르스 형.”
“응?”
“저기 몬스터에 누가 타고 있는데?”
“뭐……?”
생각지도 못한 카윈의 말에, 황당한 표정이 된 로터스의 길드원들.
하지만 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 저 사람, 이안 형이야!”
“뭐라고?”
“분명해! 저기에 타고 있는 거 이안 형이야!”
이어서 당황한 표정이 된 레비아가 카윈을 향해 물었다.
“이안 님은 대체 저기에서 뭐 하는데요?”
“그, 그게…….”
두 눈을 크게 꿈뻑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카윈.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카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