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9화 요새방어전(下) (5) >
* * *
차원의 악령을 포착한 순간, 아이언 스웜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악령들은 항상 가장 차원의 힘이 많이 응집한 광산으로 모여들게 되며, 그곳에서 높은 확률로 스웜이 등장하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요새를 떠난 지 1시간 만에 아이언스웜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크워어어어-!
입을 쩍 벌린 채 굉음을 내지르며 포효하는 아이언스웜의 모습.
이안도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는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긴장했었지만, 지금 이안의 표정에서 긴장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모든 공격 패턴과 약점을 파악한 에픽 몬스터는 이안에게 있어 일반 잡몹과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친구, 여기야, 여기. 어딜 보는 거야?”
씨익 웃은 이안은, 손에 쥐고 있던 마력의 결정 조각을 아이언스웜을 향해 내던졌다.
이어서 그 돌덩이는 스웜의 이마에 정확히 맞고 튕겨 나갔다.
팅-!
그리고 다음 순간.
캬아아악-!
스웜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의 입장에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차원의 마력 결정이었는데, 음식으로 맞았으니 기분이 더러워진 것이다.
캬아오! 키아아악!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문짝만 한 크기인 이빨을 드러내며, 이안을 향해 달려드는 아이언 스웜.
스웜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광산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히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녀석은 돌연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쿠콰콰콰콰.
아이언 스웜의 공격 패턴 중 가장 까다로운 것은 지금처럼 녀석이 두더지처럼 지하로 파고들 때였다.
그 거대한 몸집으로 순식간에 지면으로 파고든 녀석이 어느 지점에서 다시 지상으로 튀어오를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운 나쁘게 녀석이 튀어나올 위치에 서 있었다가는, 그대로 게임아웃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겨가며 녀석과 사투를 벌인 경험이 있는 이안에겐, 녀석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타탓-!
스웜이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허공으로 도약하여 핀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이어서 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마력 결정 조각을 어디론가 투척하였다.
“친구야, 저쪽이다!”
쉬이익-!
푸른색 빛을 뿜어내며,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마력결정 조각.
그리고 놀랍게도 아이언스웜은 이안이 조각을 던진 방향을 향해 솟아올랐다.
콰콰콰콰쾅-!
마치 공놀이를 하는 애완견처럼 이안이 던진 마력 결정 조각을 향해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아이언 스웜!
꿀꺽-!
그리고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이안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도약하여 스웜의 등에 올라탔다.
“오케이, 탑승 완료!”
아이언스웜의 등에 안착한 이안은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곡괭이질을 시작하였다.
깡- 깡- 까강-!
하지만 이것은 아직, 광물을 채굴하기 위한 곡괭이질이 아니었다.
승차감(?)을 높이기 위하여, 양발을 끼워 넣을 홈을 만드는 작업이었으니 말이다.
까가강- 쾅-!
그리고 황금곡괭이의 놀라운 성능 때문인지, 스웜의 등짝은 금세 움푹 패였다.
크워어어-!
등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촉감 때문인지, 또다시 허공을 향해 포효하는 아이언 스웜.
이어서 등짝에 완벽히 자리 잡은 이안은 ‘움직이는 광산’에서의 채굴을 다시 시작했다.
“형이 안 아프게 해 줄게. 조금만 참아?”
뭘 안 아프게 한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이안은 다시 곡괭이를 휘둘렀다.
깡- 깡- 깡-
그리고 아이언스웜의 푸른 등짝에서는 여지없이 광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정확한 위치를 타격하였습니다.
-광상鑛床의 결에 균열이 발생합니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채굴에 성공하였습니다.
-‘수비대장의 황금 곡괭이’ 아이템의 내구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에픽 몬스터 ‘마력의 아이언스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27만큼 감소합니다!
-‘차원의 마력석’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36만큼 감소합니다!
-채굴에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52만큼 감소합니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후략……
그리고 곡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3~4줄씩 무더기로 쏟아지는 시스템 창을 확인한 이안은, 기분 좋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크으, 역시 이 황금곡괭이는 완소템이란 말이지.’
티버의 곡괭이로 채굴할 때보다 거의 다섯 배는 높은 확률로 완제품 마력석을 채굴해 내는 수비대장의 황금 곡괭이!
물론 이것은 이안의 숙련도가 그때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변수도 포함된 결과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황금곡괭이의 성능이 가장 큰 원인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시간도 몇 배 이상 많이 남았다는 말씀!’
처음 이 왕꿈틀이를 만났을 때 이안은 녀석을 파악하는 데에만 무척이나 긴 시간을 사용했었다.
해서 사실상 채굴에 활용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확히 이 꿈틀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지상에 머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은 등골을 뽑아먹을 수 있으리라.
어쨌든 이안은 또다시 노다지를 파헤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곡괭이질을 시작한 지 10분여 만에, 벌써 마력석 완제품을 일곱 개나 획득하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파편의 숫자가 완제품보다 부족할 정도.
-‘차원의 마력석’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후략……
그런데 잠시 후.
그렇게 꿈틀이의 등골을 열심히 빼먹던 이안은 순간 머릿속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근데 이 녀석……. 만약 처치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까지는 그저 곡괭이질로 마력석을 뽑아먹을 생각만 했었는데, 문득 이 녀석을 처치했을 때 어떤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어차피 마력석 마흔 개 정도는 순식간에 모을 것 같고……. 도박이나 한번 해 볼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 이안!
이안은 곧바로, 아이언 스웜의 생명력부터 한번 확인해 보았다.
-마력의 아이언스웜/Lv : ???(초월)
-생명력 : 248,930/250,000(99.57퍼센트)
‘생명력이 25만이라……. 흠, 생각보단 할 만해 보이는데, 이거?’
곡괭이질로 아이언스웜에게 입힐 수 있는 대미지는 고작해야 100~200 수준.
녀석의 생명력이 차오르는 속도까지 감안하면 DPS는 사실상 50정도밖에 나오지 않건만, 대체 이안은 이 정도의 대미지로 어떻게 25만의 생명력을 깎아내려는 것일까?
“좋아, 한번 시도해 보지, 뭐.”
뭔가 결정을 내린 것인지 씨익 하고 웃어 보인 이안은 방금 채굴해 낸 ‘차원의 마력석 파편’을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어서 마치 투구하는 야구선수처럼 전방을 향해 그것을 힘차게 내던졌다.
“꿈틀이, 가즈아!”
쉬이이익-!
이안의 전력투구에,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차원의 마력 파편.
끄워어어?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아이언스웜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것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쿠콰콰콰쾅-!
* * *
코르투스의 등에 올라 비행하던 중 우연히(?) 이안을 발견한 바네사와 사라.
“언니, 쟤 이안 맞지?”
“응, 맞는 것 같은데…….”
“쟤 지금 타고 있는 거 뭐야?”
“글쎄. 그건 소환술사인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우쒸! 쟤는 어디서 또 저런 멋진 소환수를 테이밍한 거야? 갖고 싶다!”
이안의 왕꿈틀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빛내는 바네사와 그의 행적 자체에 흥미가 생긴 사라.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우리 한번…….”
“쟤 한번 따라가 볼까?”
“콜!”
사라와 바네사는, 랭커이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즐겜 유저였다.
때문에 당장 진행 중이었던 퀘스트보다는, 이안을 따라가 보는 쪽에 훨씬 더 흥미가 동했다.
지금 두 자매에게 ‘이안’이라는 떡밥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안을 따라다니다 보면 콩고물도 두둑하게 떨어질 테고 말이지.’
사라와 바네사는 지난주에 있었던 ‘차원의 말판’ 전장에 참여하지 못했었다.
그 당시 두 사람은 겨우 용사의 마을에 입장한 새내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경기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 기울어 가던 판을 거의 혼자서 뒤집어 놓다시피 한 이안의 캐리.
그것을 보면서 두 자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었다.
정령계에서 이안이 보여 줬던 것들이,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코르투스, 남쪽으로 선회해!”
“크릉, 갑자기 왜 그러는가, 주인.”
“잔말 말고 빨리! 저기 아래쪽에 보이는 저 녀석을 따라가면 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바네사의 명령에 코르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쨌든 날개를 펼쳐 비행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리고 지진을 몰고 다니는 이상한 거대 생명체의 뒤쪽으로 빠르게 따라붙었다.
“너무 가까이 가진 마, 코르투스. 적당히 거리를 벌리면서 놓치지만 말고 쫓아가자고.”
“알겠다, 주인.”
꿈틀이를 탑승한 이안은 무척이나 빨랐지만, 그래도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인 만큼 분명히 한계는 존재했다.
때문에 코르투스를 탄 사라와 바네사는, 어렵지 않게 이안의 뒤를 쫓을 수 있었다.
“흐음, 쟤 어디로 가는 걸까 언니?”
“글쎄. 이 방향으로 가다보면, 곧 차원의 숲을 벗어날텐데…….”
“그러게. 그렇다고 이게, 진영으로 돌아가는 방향은 아니잖아?”
“맞아. 본진으로 돌아갈 거였으면, 동남쪽이 아니라 서남쪽으로 갔어야 해.”
이안의 뒤를 쫓으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쌍둥이 자매.
“그나저나 바네사.”
“응?”
“혹시 나중에라도 저 소환수는 테이밍하지 말자.”
사라의 말에, 바네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저거 엄청 멋있잖아! 이안 만나자마자 저거 어디서 테이밍했는지부터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후우, 멋있는 건 모르겠고, 너무 요란하잖아. 저렇게 시끄러운 애 데리고 다니면, 너무 눈에 띌 거라고.”
“아, 몰라. 난 저 지렁이 너무 마음에 들어.”
“…….”
그리고 그렇게 두 자매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꿈틀이를 탄 이안은 어느새 숲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이어서 숲을 넘어 펼쳐진 평원의 끝에는 웅장한 요새가 지어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바네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언니, 보니까 동쪽에 있는 본진부터 여기까지 쭉 성벽이 이어져 있는 것 같은데…….”
“맞아.”
“혹시 이쪽에 다른 NPC라도 있는 걸까?”
“무슨 NPC?”
“그 메인 퀘스트 주는 요새 수비대장 말고, 히든 퀘스트 같은 걸 주는 특별한 NPC가 있을 수도 있잖아?!”
“오호, 이안이 이쪽으로 온 걸 생각하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는 사라와 바네사.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상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
거대 지렁이를 탄 이안이 요새의 근처에 다가간 순간…….
퍼펑- 퍼퍼펑-!
콰아아앙-!
요새에 배치되어 있던 포탑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