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6화 요새방어전(下) (2) >
* * *
용사의 마을 콘텐츠가 업데이트된 지도 이제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첫날과 둘째 날에 용사의 마을로 진입한 랭커들이 이제 대부분 ‘정예병’의 등급에 입성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제 용사의 마을은 제법 많은 랭커들로 북적였다.
각 서버별로 상위 100위권 정도까지의 랭커들은 전부 용사의 마을 입성에 성공하였으니, 마을 안에 들어온 유저들만 수천 명이 넘은 것이다.
처음 이안이 입성할 때만 해도 유령도시처럼 휑하기 그지없던 용사의 마을은, 이제 여느 대도시 부럽지 않게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영웅 점수 넉넉하신 분! 1포인트당 10만 골드로 교환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신병 세트 풀 세트 합해서 1천만 골드로 구매합니다!”
“1시간쯤 있다가 ‘군락섬멸전’ 메인퀘 같이 가실 힐러 한 분, 탱커 한 분 구합니다! 퀘 진입하기 전까지는 앞마당에서 파밍할 예정입니다!”
랭커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활기차고 신나 보였다.
용사의 마을 콘텐츠가 무척이나 다양했으니, 콘텐츠에 목말라있었던 랭커들로서는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메인 퀘스트를 받지 못한 이안에게는 용사의 마을 초반부가 지옥 같았지만, 평범하게(?) 퀘스트를 진행한다면 마을 근방에 있는 작은 던전들을 공략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할 것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용사의 마을이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계속해서 유입되는 신규 랭커들 덕에, 활기가 넘치는 용사의 마을 광장.
그런데 이 광장의 한편에, 두 여성 유저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차원의 숲 포털이 열리는 시간이 12시라고 했으니까……. 벌써 한 4시간 지나 버린 거네요.”
“네, 맞아요, 레비아 님. 이거 첫 퀘 엄청 빡세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어쩌면 실패 각오하고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퀘스트 내용이 뭔데요?”
“훈이랑 이안이한테 들었는데, 첫 연계 퀘스트는 채굴퀘라고 하더라고요.”
“음, 채굴…… 퀘스트요?”
“넵.”
“하아, 그런 거 해 본 적 없는데……. 레미르 님은 채굴 해 본 적 있으세요?”
“네. 전 우리 이안 국왕님 덕에 몇 번 해 볼 기회가 있었……죠.”
두 사람의 정체는 바로, 한국 서버 최고의 마법사와 사제 랭커인 레미르와 레비아.
그리고 잠시 후, 몇몇 다른 유저들도 그녀들의 옆에 다가와 대화에 참여하였다.
“이제 더 지체 말고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다들 장비 세팅은 끝나신 거겠죠?”
“아, 네. 물론이죠. 헤르스 님도 준비 다 끝나신 거죠?”
“옙,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피올란 님이랑 유신 님은 언제쯤 오시려나…….”
“유신이는 방금 전에 잡화상에 있었으니 금방 올 테고, 피올란 님은 클로반 형이랑 카윈이 데려온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그리고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레미르와 레비아가 있던 자리에는, 두 사람을 포함하여 어느새 총 일곱 명이나 모여 있었다.
용사의 마을이라는 최상위 콘텐츠 덕에, 오랜만에 로터스의 수뇌부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물론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레비아는 아직까지도 길드가 없었지만, 사실상 로터스 길드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인원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헤르스가, 랭커들을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파티 상태를 점검하였다.
“F-1 메인퀘는 다들 받아 오셨을 테고……. 지금 바로 포털 들어갈 생각인데, 다들 준비 끝나셨죠?”
“넵!”
“다 됐다, 유현아. 시간 아까운데 빨리 좀 들어가자.”
“어차피 늦었어요, 클로반 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요.”
“맞아, 형. 형은 좀 조급증을 고칠 필요가 있어.”
“크흠. F단계부터 난이도가 팍 올라간다며. 그러니까 자꾸 서두르는 거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서 그런지, 왁자지껄 투닥대는 로터스의 멤버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행은 랭커들답게 헤르스의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포탈에 진입하기 전.
마지막으로 레비아가 궁금하다는 듯 헤르스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헤르스 님.”
“네, 레비아 님.”
“이거 보니까 퀘스트 실패 페널티도 있는 것 같은데……. 8시간 만에 클리어 못 할 것 같으면 아예 내일 트라이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레비아의 질문은 무척이나 타당한 것이었다.
통 12시간이 주어지는 롱 텀 퀘스트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중 3분의 1이 넘는 시간이 지나 버린 상태.
게다가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으니, 하루 건너뛰고 다음 날 트라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헤르스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뭐, 일리 있는 말씀이시긴 하지만 걱정하실 것 없어요.”
“으음?”
“우리에겐 ‘선발대’가 있으니까요.”
“네?”
생각지 못했던 헤르스의 대답에, 레비아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레비아뿐만이 아니었다.
“엥, 선발대는 무슨 선발대? 우리보다 퀘스트를 더 빨리 클리어하고 선발대로 들어갈 수 있는 멤버가 어디 또 있다고?”
의아한 표정이 되어 헤르스를 응시하는 카윈.
그런 그를 향해, 헤르스는 씨익 웃어 보이며 대답하였다.
“있지 왜 없냐?”
“……?”
“이안이랑 훈이. 걔들이 도와주기로 했거든.”
* * *
깡- 깡- 깡-!
“그런데 이안 형.”
까강- 깡- 까앙-!
“응?”
“대체 우리 도와준다는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깡- 깡-!
“몰라. 올 때 된 것 같은데…….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몸이 굼떠?”
“아니, 대체 누굴 부른 건지라도 말해 주면 안 돼?”
깡- 까강-!
“응, 귀찮아. 신경 끄고 빨리 성벽이나 수리해. 그러다가 거기 뚫리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고.”
“쳇……. 알겠어.”
용사의 요새 최전방에 위치한 A-11섹터.
이곳에서 지금 이안과 훈이는, 쉴 새 없이 망치를 두들기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새로 등장한 에픽 몬스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으, 티버 그 인간이 이안 형이랑 나를 같이 보낸 이유를 알겠네. 만약 여기에 혼자 떨어졌으면, 아무리 이안 형이라고 해도 차원의 마력 탑 이미 깨졌고 퀘스트는 실패했겠지.’
전신에 땀을 흘리며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하고 있는 훈이.
그런 훈이의 눈앞에는 망치질 소리만큼이나 쉴 새 없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띠링-!
-요새 외벽이 ‘포악한 차원의 망령’에게 공격당합니다!
-요새 외벽의 내구도가 980만큼 감소하였습니다!
-요새 외벽의 내구도가 1,023만큼 감소하였습니다!
-‘포악한 차원의 망령’이 ‘분노의 몸통박치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요새 외벽의 내구도가 1,789만큼 감소하였습니다!
이안과 훈이가 지키는 A-11섹터에 처음으로 등장한 에픽 몬스터인 포악한 차원의 망령.
이 차원의 망령이 등장한 지 벌써 20분이 다 되어가건만, 이안과 훈이는 아직도 이 녀석을 처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녀석의 어마어마한 생명력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에픽 몬스터인 녀석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고유 능력이었다.
-*차원의 방호막
차원의 마력이 담긴 공격 외에는, 그 어떤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확인은 못 했지만, 아이언스웜도 분명 이 특성을 가지고 있었겠지.’
차원 속성의 공격이 아니고서는 모든 공격이 무효화되어 버리니, 이안과 훈이의 전투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 녀석을 처치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녀석에게 유일하게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두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공격타워 뿐.
‘차원의 마력 탑’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적을 공격하는 요새의 타워들만이, 이 괴물 같은 녀석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이안 형, 그거 언제 완성돼! 이러다가 성벽 무너지겠어!”
“조금만 더 버텨 봐! 거의 다 됐으니까!”
역할을 분담해서 훈이는 방어벽을 수리하고, 이안은 새로운 타워를 건설하며 겨우겨우 망령의 공격을 버텨 내고 있는 두 사람.
콰쾅-!
깡- 깡- 까강-!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수비가 얄미웠는지, 망령은 허공을 향해 포효하였다.
-크아아악, 이 쥐새끼 같은 놈들!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이안과 훈이는 악령이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망치를 두들길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악령의 생명력도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으니, 이안이 지금 짓고 있는 타워만 완성된다면 이번 웨이브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었다.
까강- 깡-!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정신을 집중하여, 마지막까지 망치를 휘두르는 이안!
‘조금만 더……! 실수 없이 마무리 작업만 끝마치면, 여기서 타워를 완성할 수 있어!’
지금 이안이 건설 중인 타워는 기초 타워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 타워였다.
때문에 건설 난이도 또한, 비교도 안 되게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타워의 골조를 전부 완성한 이안은, 미리 만들어 두었던 포탑을 조심스레 타워의 상단에 끼워 넣었다.
철컥-!
그러자 이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마력의 광선 타워’를 건설 중입니다.
-건설 진척도 : 98.93퍼센트
-포탑 설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진척도가 1.0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건설 진척도 : 99.98퍼센트
-‘마력의 광선 타워’가 완공되었습니다!
-요새개발 기여도가 0.1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시설물 ‘마력의 광선 타워’에 대한 이해도가 20만큼 상승합니다.
-‘마력의 광선 타워’에 대한 이해도가 30에 도달하면, 상위 등급의 방어 타워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완성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됐다!”
무려 10분이 넘는 사투 끝에 겨우 완성해 낸 타워였으니, 뿌듯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 다 됐으면 여기나 빨리 도와! 이제 진짜 간당간당 하다고!”
“오케이!”
타워가 완성되자마자, 이안은 재빨리 몸을 날려 훈이가 붙어 있는 외성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러나 성벽을 향해 달리는 와중에도, 이안의 시선은 타워를 향해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낸 타워가 과연 어떤 위력을 보여 줄지 궁금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긍- 그그긍-!
작동하기 시작한 ‘마력의 광선 타워’가 목표물을 향해 포문砲門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오오!”
열심히 성벽을 수리하던 훈이 또한 타워의 위력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돌려보았다.
우우웅-.
그리고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마력의 광선 타워는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위력적인 레이저를 뿜어내었다.
콰아아아-!
그리고 이안과 훈이의 눈앞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메시지들이 깔려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마력의 광선 타워’가 에픽 몬스터 ‘포악한 차원의 망령’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포악한 차원의 망령’의 생명력이 389만큼 감소합니다.
-‘포악한 차원의 망령’의 생명력이 372만큼 감소합니다.
-‘포악한 차원의 망령’의 생명력이 401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크허어어억! 언제 이런 강력한 타워를!
피해량으로 뜨는 숫자의 크기는 기본 타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다른 타워들이 한 번 공격할 때 거의 열 번의 피해를 입히는 마력의 광선 타워였다.
덕분에 어마어마해 보였던 망령의 생명력도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하였고…….
-‘포악한 차원의 망령’의 생명력이 401만큼 감소합니다.
-‘포악한 차원의 망령’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포악한 차원의 망령’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첫 번째 에픽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비례하여 공헌도가 120만큼 증가합니다.
-‘마력의 응집체’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을 확인한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