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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612화 (625/1,027)

< 612화 요새 방어전 (5) >

* * *

하루에서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각.

낮 12시, 정오가 다가오자, 용사의 마을 공터에는 하나둘 랭커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흐아암, 잘 잤네. 어휴, 10시간이 넘게 자다니, 어제 너무 무리했나 봐.”

“저도요. 곡괭이질이 던전 공략보다 힘들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으으……. 온몸이 다 쑤시네. 오늘 퀘스트는 노가다가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퀘스트 내용 읽어 봤는데, 노가다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단순 구조물 파괴 퀘스트 같던데…….”

“맞아요. 이번 퀘스트는 좀 평범하지 싶어요. 팀 짜서 몇 명이 결정체 부수고, 나머지가 몬스터들 막아 주면 되지 않을까요?”

용사의 마을 천군 진영의 공터에는, 어제보다 배 이상 많은 랭커들이 모여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사의 마을에 뒤늦게 들어온 후발주자들이 레이드에 합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뒤늦게 합류한 이들은 채굴 퀘스트부터 진행해야 하지만, 어쨌든 레이드 맵으로 들어가는 포탈은 같은 시각에 열리는 같은 포털이기 때문.

“어제 채굴 퀘스트 클리어하신 분들, 팁 좀 주세요.”

“팁요?”

“네.”

“글쎄요, 팁이랄 만한 게 있나…….”

“어차피 하루나 앞서가고 계시잖습니까. 시원하게 알려 주시죠.”

“아, 키워드는 하나 있네요.”

“……?”

“이안의 황금곡괭이……랄까.”

퀘스트와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들을 공유하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각국의 랭커들.

하지만 포털이 열릴 시간이 다가오자 시끌벅적하던 공터는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다들 레이드 맵에 입장하기 전, 최종 정비를 하며 본인들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두 번째 연계 퀘스트를 진행해야 할 선두그룹의 경우, 표정에 비장미마저 감돌기 시작하였다.

“이거, 최종 연계 퀘스트까지 무조건 한방에 뚫어야 해요.”

“그렇습니다. 보니까 연속해서 성공해야 공적치 획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뻥튀기되더군요.”

“차원의 숲 맵이야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다 파악해 뒀으니, 오늘은 얼 타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진행해 봅시다.”

“오케이, 요나스 님만 믿겠습니다.”

그런데 포털이 열리기까지 3분 여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시점.

선두 그룹의 유저 중 하나인 리아스가 걱정스런 표정이 되어 파티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님들.”

“예?”

“혹시 이안 님이랑 훈이 님은, 연락되시는 분 없으신가요?”

“아, 그러고 보니, 두 분이 아직도 안 오셨네요.”

“무슨 일일까요? 게이트 오픈까지 3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거 큰일이네요. 두 분 다 우리 진영 핵심 전력인데…….”

퀘스트 시작 시간까지 이안과 훈이의 부재가 지속되자 여기저기서 걱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걱정하는 랭커들과 달리, 오히려 눈을 빛내는 몇 사람도 존재하였다.

“뭘 그리 걱정하세요, 여러분. 두 사람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분들 아닙니까.”

요나스의 말에, 리아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그렇기야 하지만…….”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페드릭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두 분 걱정은 마시고, 일단 들어간 사람들끼리 열심히 클리어해 보도록 하죠.”

요나스와 페드릭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센 유저들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용사의 마을 퀘스트 성적을 확인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기도 하였다.

신의 말판 전장을 치르기 전까지 천군 진영의 압도적 공헌도 1,2위가 페드릭과 요나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의 말판 전장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자존심은 구겨지기 시작하였다.

요나스는 돌격대장, 심지어 페드릭은 대장군의 직책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루한 성적을 기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몇 킬이라도 올린 페드릭은 조금 낫지만, 첫 턴에 개복치처럼 죽어 버린 요나스는 그때의 불명예를 언제고 회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차원의 숲 레이드 맵에 처음 입장하였을 때에도, 리더 욕심을 강하게 부렸던 것이고 말이다.

‘후우, 결국 채굴 퀘스트까진 이안에게 밀리고 말았지만, 이번 연계 퀘스트부터는 확실히 캐리해 보이고 말겠어.’

요나스와 페드릭은 이안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각 서버의 최상위권 랭커들인 만큼, 그렇게 사리분간 못하는 이들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을 넘지 못할 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의 말판 전장에서야 완벽한 패배를 인정하지만……. 채굴 퀘스트에서 압도당한 건, 분명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 곡괭이 때문이었어.’

‘이번에야말로, 이안을 압도하고 누가 최고인지 보여 주도록 하지.’

각자 각오를 단단히 한 페드릭과 요나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짧게 눈빛을 교환하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안과 훈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현재 1위로 올라선 훈이의 공헌도를 역전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암묵적인 동맹관계가 된 요나스와 페드릭.

두 사람사이의 경쟁은, 일단 이안과 훈이를 누른 뒤에 다시 생각할 문제였다.

-잠시 후, ‘차원의 숲’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오픈됩니다.

-남은 시간 : 35초.

공터에 모인 랭커들의 눈앞에 보랏빛으로 쓰인 월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퀘스트 시작까지 초 단위의 짧은 시간이 남자, 긴장한 표정으로 게이트 오픈을 기다리는 유저들.

페드릭과 요나스를 제외한 선두그룹의 나머지 유저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이안과 훈이를 기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떤 이유로 게이트에 나타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퀘스트가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다만 그룹의 가장 뒤편에 서 있던 료이카만이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힝, 훈이 님이랑 퀘스트하는 거 재밌었는데…….”

* * *

깡- 깡- 까앙-!

연신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용사의 마을 티버의 대장간.

대장간의 안에는, 두 남자가 주거니 받거니 망치질을 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대장간의 안에 주인인 티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렇다면 대장간 안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두 사람의 정체는, 대체 누구인 것일까?

“후우, 이안 형.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

“료이카 님을 향한 너의 마음이 그 정도라면 조금 쉬었다가 하든가.”

“아, 아니야. 생각해 보니 아직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같아.”

까앙- 까앙-!

대장간의 구석에 광물을 한가득 쌓아 놓은 채 구슬땀을 흘리며 노동 중인 두 사람은 바로, 이안과 훈이였다.

차원의 숲 포털에 나타나지 않은 두 사람은 티버의 대장간에서 노동 중이었던 것.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대체 왜, 용사의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 퀘스트를 두고 여기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오늘 새벽.

티버의 대장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아니, 그대는 이안이 아닌가.

-앗, 안녕하십니까, 수비대장님.

-자네, 이 이른 새벽부터 대장간에서 대체 뭘 그리 열심히 하고 있는 겐가.

-내일 있을 임무를 위해, 장비들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마력의 결정을 파괴하기 위해선, 강력한 무기가 필요할 테니까요.

-오오, 우리 천군 진영에 이리도 성실한 용사가 있었을 줄이야!

해가 뜰 때까지도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던 이안은 새벽 순찰을 돌던 수비대장의 눈에 들 수 있었다.

하여 수비대장으로부터, 특별한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자네, 대장장이 기술이 제법인 것 같군.

-하핫,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겸손할 필요 없다네. 우리 용사의 마을 최고의 대장장이인 티버를 제외하고는, 자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를 본 적이 없어.

-과찬이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넷.

-자네 혹시, 특별한 임무를 한번 수행해 볼 생각은 없는가?

-특별한…… 임무요?

-그렇다네. 오늘부터 티버가 마을의 기술자들을 데리고 요새를 증축하기 시작할 텐데, 하나같이 형편없는 녀석들밖에 없어서 말이지.

-임무는 혹시 몇 시부터 시작되겠습니까?

-아마 오늘 차원의 숲으로 가는 게이트가 열리면, 곧바로 임무가 시작될 걸세.

-앗, 그 시간이라면 마력석 파괴 임무를 수행해야 할 시간인데…….

-괜찮다네. 그 임무는 나의 직권으로 열외시켜 주도록 하지. 어차피 요새의 방어시설들을 증축하는 것이 우리 진영에 훨씬 큰 공헌을 하는 일이니 말이야.

-오오, 마을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마땅히 그 일을 해야지요.

-역시 이안! 자네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채굴 임무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자네는 정말 뛰어난 인재야.

-감사합니다!

이안이 수비대장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기존의 메인 퀘스트를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히든 퀘스트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기존의 퀘스트인 ‘마력 결정 파괴’ 퀘스트보다 더 많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획득 가능한 공헌도는 딱히 ‘마력 결정 파괴’ 퀘스트보다 많지 않았지만,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공개되지 않은 보상이 몇 가지 더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이 히든 루트로 퀘스트를 진행해 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비대장과의 은밀한 협약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 참, 자네.

-옙?

-혹시 주변에 손재주가 괜찮은 동료가 또 있는가?

-음, 한두 명 정도는 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자네와 함께 일할 친구를 한 사람 정도 더 데려오도록 하게.

-……!

-그 친구의 실적이 뛰어나다면 내 자네에게 따로 선물을 주도록 하지.

-아, 알겠습니다, 대장님!

훈이가 이안과 함께 대장간에 남게 된 배경도, 바로 이 히든 퀘스트 때문이었던 것.

‘뭔가 조금 다단계 같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안은 자신의 옆에서 열심히 망치질하는 훈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고달픈 노가다의 세계에 훈이를 끌어들이기는 하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히든 퀘스트를 공유한 것만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히든 퀘스트니까. 훈이에게도 좋은 게 분명히 있을 거야.’

하지만 수비대장에게 따로 뭔가를 받기로 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비밀이었다.

“훈아, 조금만 더 속도 내 보자. 30분 내로는 마력석 제련 마무리 짓고, 우리도 게이트 타러 가야 해.”

“알겠어, 형.”

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훈이는 더욱 열심히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생산 클래스라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노가다의 결실인지 이제 제법 망치질하는 테가 나는 훈이.

그렇게 한참을 묵묵히 망치질하던 훈이가 불쑥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이안 형.”

“말해 봐.”

“형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면, 그…… 사랑의 숲이라는 데 데려다 주는 거지?”

“물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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