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11화 (624/1,027)

< 611화 요새 방어전 (4) >

* * *

용사의 마을 메인 퀘스트는 알파벳으로 그 단계가 나뉘어 있다.

첫 단계인 A단계 훈련소 퀘스트부터 시작하여, 지금 이안들이 진행 중인 F단계 ‘차원의 거인 레이드’ 퀘스트까지.

그리고 F등급의 퀘스트부터는 그 알파벳으로 나뉜 퀘스트 안에서도 또다시 서너 개의 연계 퀘스트로 쪼개지게 되어 있다.

이 ‘차원의 마력석 채굴’ 퀘스트가 거인 레이드 퀘스트의 첫 번째 연계 퀘스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연계되는 뒷 번호의 퀘스트가 이미 클리어한 앞 번호의 퀘스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연계 퀘스트에서 실패할 경우 첫 연계 퀘스트에서 획득했던 공헌도가 깎여 나가게 되며, 반대로 연속해서 실패 없이 퀘스트를 성공할 경우 보너스 공헌도가 더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가중치는 연속된 성공이 중첩될수록 더 많아진다.

‘이거, 한 번이라도 퀘스트에서 실패하면 끝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 마군 진영과 경쟁 구도를 생각하면 광석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마력석 나눠 주길 잘한 것 같은데?’

용사의 마을에서 받은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훌륭히 수행해 낸 이안은, 다음 연계 퀘스트 정보 창을 골똘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다음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12시간.

그동안 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퀘스트를 완벽히 파악해 두는 것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F)차원의 거인 레이드-2

퀘스트 분류 : 메인 퀘스트.

퀘스트 발생 조건 : (F)차원의 거인 레이드-1 퀘스트 클리어.

획득 가능 공적치 : 300~???

당신은 요새 증축과 수리에 사용될 차원의 마력석을 훌륭히 채굴하여 돌아왔다.

하여 이제부터, 당신이 채굴해 온 마력석을 이용한 요새 증축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요새를 증축하는 데에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요새의 증축이 끝날 때까지 거인이 깨어나지 못하게 막아야만 한다.

차원의 숲 깊숙한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력 결정체’이라는 이름의 파랗고 커다란 수정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차원 마력 탐지기’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보유하고 있을 시).

그리고 이것은, 차원의 거인이 깨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이다.

차원의 숲을 수색하여, 최대한 많은 양의 ‘마력 결정체’를 찾아 파괴하도록 하자.

최소한 세 개 이상의 마력 결정체를 파괴하여야 거인의 기상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성공 조건 : 생존, 3개 이상의 ‘마력 결정체’ 파괴.

퀘스트 보상 : ‘마력 결정체’ 한 개 당 공적치 100포인트.

*임무 과정에서 도태될 시 획득 공적치가 100퍼센트 삭감됩니다.

*임무 진행 도중 사망 시 퀘스트에 실패하게 됩니다.

*퀘스트 실패 시, 다음 날 다시 도전이 가능합니다.

*퀘스트 실패 시 이전 연계 퀘스트에서 얻은 공헌도가 30퍼센트만큼 삭감됩니다.

‘마력의 결정체라……. 이거 단순한 구조물 파괴 퀘스트는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지금껏, 이런 종류의 퀘스트를 많이 보아 왔다.

던전 안에 입장하여 정해진 구조물을 파괴해야 하는 퀘스트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퀘스트의 경우 짧게 ‘시간제한’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12시간짜리 던전에서, 따로 시간제한도 없이 구조물을 파괴하라는 퀘스트가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마력의 결정체에 어떤 함정이 있을 확률이 높겠어. 아니면 아이언스웜처럼 일반적인 방법으로 부술 수 없게 되어 있다든가.’

이안은 오늘 낮에 뻔질나게 돌아다녔던 차원의 숲 구조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퀘스트를 분석함과 동시에, 어디론가 걷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정해 놓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저벅- 저벅-.

해가 떨어져 어둡고 조용한 용사의 마을 안에서, 홀로 어딘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이안.

“흣차.”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마을 구석에 있는 티버의 대장간이었다.

다음 퀘스트 분석이 어지간히 끝났으니, 자발적(?) 노예들로부터 얻은 막대한 양의 광물들을 사용해 보러 온 것이다.

끼이익-!

이안이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자, 듣기 거북한 마찰음과 함께 낡아빠진 철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런데 대장간의 문을 연 이안은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티버는 돌아오지 않은 건가?”

밤낮없이 밝혀져 있던 대장간의 불이 컴컴하게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장간 안을 밝히는 불빛이라고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롯불 하나뿐.

화륵-!

대장간의 구석에서 마른 장작 하나를 꺼낸 이안은, 화롯불의 불씨를 옮겨 대장간 내부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자리 하나를 꿰차고 앉아 광물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누가 보았더라면 NPC라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장간에 자리 잡은 이안.

“딱 해 뜰 때까지만 노가다 해 보자. 잠은 4~5시간 정도만 자도 충분하니까.”

누가 들었더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대사를 중얼거린 이안은, 천천히 풀무질을 하며 화로에 불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레이드 맵으로 가는 포털이 열리는 시간은 정확히 낮 12시.

이안의 중얼거림처럼, 해 뜰 즈음 잠들어서 5~6시간 자고 일어난다면, 대충 시간에 맞춰서 접속할 수 있을 것이었다.

* * *

이른 아침, 카일란 기획 팀의 사무실.

“으아악!”

전날 모니터링실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확인한 나지찬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보고서에 쓰여 있는 내용이, 하나같이 믿기 힘든 말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티, 팀장님, 진정하세요.”

“김 주임,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이런 경험, 한두 번 아니잖아요. 뭐 그리 새삼스럽게 좌절하고 그러세요.”

뼈를 때리는 듯한 부하 직원의 팩트 폭력에, 나지찬은 더욱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년간 기획 팀 일을 하며 다져진 정신력 덕분인지, 가까스로 멘탈을 챙길 수 있었다.

“후우…….”

한차례 깊게 심호흡한 나지찬은 보고서를 재차 읽어 내려가며, 한층 침착해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 주임.”

“예, 팀장님.”

“수습하는 건 두 번째 문제고……. 이게 말이 되긴 해? 잘 맞아떨어지던 밸런스가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무너져 버릴 수가 있어?”

“그, 그러게요.”

지금 나지찬과 김 주임이 보고 있는 보고서는, 용사의 마을 메인 퀘스트 결과 보고였다.

랭커들이 콘텐츠들을 어떻게 플레이하고 있는지, 그 결과들이 기록되어 있는 보고서인 것이다.

그리고 나지찬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첫날부터 퀘스트 통과 인원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으며…….

둘째, 천군 진영과 마군 진영의 퀘스트 결과 차이가 너무 극심하다는 것이었다.

“총 스물네 명 중에 열한 명이 퀘스트를 클리어했고…….”

“그렇죠.”

“그 열한 명 중에 일곱 명이 천군 진영 유저들이라…….”

“정확히 그렇습니다.”

기획 팀의 기획 의도에 의하면, 용사의 마을 메인 퀘스트의 난이도는 F단계 퀘스트부터 급격히 어려워져야만 한다.

세계 정상급 랭커들이라면, 실수하지 않는 한 E단계까지는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지만, F단계부터는 그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도록 설계해 두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지찬을 비롯한 카일란 기획 팀은, 첫 번째 연계 퀘스트부터 대다수의 랭커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마력석 여섯 개를 모으는 데 성공하는 유저는, 천군과 마군 양 진영을 합해서 많아 봐야 대여섯 정도가 될 것이라 추측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에 의하면, 예상했던 숫자의 두 배에 달하는 랭커들이 첫 번째 퀘스트를 통과하였다.

게다가 전체 통과자의 60퍼센트 이상이 천군 진영에 몰려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기이한 결과인 것이다.

말이 60퍼센트지, 마군진영 통과자의 두 배가 천군진영에 몰려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었다.

“후, 이안……. 이놈은 진짜 답이 없어.”

보고서를 통해 지난밤 이안의 행적을 확인한 나지찬은, 태블릿을 쥔 양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 콘텐츠를 파괴할거면 혼자서 파괴하지, 왜 평소답지 않게 이타심을 발휘하고 난리야.”

최근, 콘텐츠 개발에 바쁜 나지찬은 랭커들의 영상을 제대로 모니터링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부하 직원들이 모니터링해서 올려 주는 보고서와 데이터만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약간의 오해(?)가 생기고 말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같은 길드원인 훈이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다른 랭커들에게까지 마력석을 분배할 줄은 몰랐어요.”

보고서에는 이안이 아이언스웜의 비밀을 알아내었고, 그를 통해 얻은 대량의 마력석을 다른 랭커들에게 분배해 줬다는 내용까지만이 쓰여 있었을 뿐.

그것을 대가로 이안이 랭커들을 부려먹었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나지찬은, 이안이 그저 마력석을 다른 랭커들에게 나눠 줬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으……. 김 주임, 이안이 설마 최종 퀘스트를 예측하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설마요. 이안이 무슨 신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미리 예측하고 움직입니까?”

“김 주임, 혹시 갓(god)의 의미가 뭔지 모르나?”

“예……?”

“이안갓이잖아. 걘 게임할 때만큼은 신이라고.”

“…….”

뜻밖의 보고서를 확인한 나지찬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첫 퀘스트부터 양 진영 간의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다면, 최종 연계 퀘스트에 도달했을 때 너무 싱거운 결과가 나올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싱겁게 결과가 나와 버린다면, 그것은 기획 팀의 입장에서 재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 진영 간의 전투밸런스도 밸런스지만, 퀘스트 진행 속도가 배 이상 빨라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최종 전투 단계에서만 일주일은 걸리는 게 정상인데……. 이대로 스노우볼이 굴러 가기 시작하면, 하루 만에 마군 진영이 박살나 버릴지도.’

달력을 보며 일정을 체크해 본 나지찬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이어서 잠시 후, 김 주임을 앉혀 놓고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정말 이안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타심을 발휘한 건지는 미지수지만…….”

잠시 뜸을 들인 나지찬은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H단계 퀘스트 개발 일정을 일주일은 더 앞당겨야겠어.”

그리고 나지찬의 그 말에, 김주임의 입에서도 땅이 꺼져라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예, 팀장님…….”

어쩐지 잠깐 사이에 다크서클의 농도가 배 이상은 짙어진 두 남자.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나지찬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김 주임.”

“넵?”

“법카 줄 테니까, 막내 시켜서 감자칩 한 박스만 좀 사다 놓으라고 해.”

“팀장님 다이어트 하신다면서요.”

다이어트라는 김 주임의 말에, 더욱 피폐한 표정이 되어 버린 나지찬이었다.

“후…….”

이어서 나지찬은 슬픈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안이 카일란 접기 전까진 아무래도 다이어트 같은 건 못할 것 같아…….”

너무도 공감되는 나지찬의 말에, 김 주임은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조용히 돌아 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알 수 없었다.

순탄히 스노우볼을 굴려 갈 줄만 알았던 천계의 랭커들 사이에서 뜻밖의 ‘변수’가 생겨나고 있음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