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화 요새 방어전 (2) >
* * *
차원의 합성석과 마법석, 그리고 강화석.
이 세 종류의 광물들은, 분명 용사의 마을 ‘신규 콘텐츠’ 핵심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당연히 이안을 제외한 다른 랭커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랭커들은 이안의 제안을 왜 그토록 쉽게 수용해 버린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 이 용사의 마을 안에서는 ‘메인 퀘스트 성공’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과제이다.
메인 퀘스트로 받을 수 있는 공헌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메인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하면 남들보다 하루 이상 뒤처지게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오늘 채굴 퀘스트를 실패하게 된다면 다음 날 리트라이를 해야 하고, 그동안 다른 랭커들은 다음 퀘스트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퀘스트를 성공한 유저들에 비해 복합적으로 유․무형적인 손해를 보게 되는 것.
더해서 이런 차이가 쌓이다 보면, 결국은 눈덩이처럼 그 크기가 불어나 메울 수 없는 격차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때문에 지금 마음이 조급한 랭커들에게 ‘차원의 마력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이안이 생각하는 광물들의 가치와 다른 랭커들이 생각하는 광물의 가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 랭커들은 합성석과 마법석, 강화석이 중요한 신규 콘텐츠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용사의 마을 내에서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을 강력하게 강화시켜 줄 수 있는 광물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광물들의 가치를 결국 용사의 마을로 한정 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용사의 마을 퀘스트가 전부 끝나고 나면, 여기서 만든 아이템들은 전부 소멸되거나 놓고 나가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 봐야 한계가 명확하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으니, 다소 무리인 듯한 이안의 조건에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
어차피 이 콘텐츠가 끝나면 무가치해질 일회성 아이템들이라는 생각이 있다 보니, 그다지 아깝게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다른 유저들이 모르는 한 가지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후후, 나중에 빛나는 마력석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다들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오직 이안만이 채굴에 성공한 광물인, 빛나는 마력석.
이 광물에 바로, 숨겨진 콘텐츠가 숨겨져 있었다.
‘빛나는 차원의 마력석’의 정보 창은 다음과 같았다.
-빛나는 차원의 마력석
분류 : 잡화
등급 : 유일(초월)
한계를 초월한 차원의 마력이 담겨 있는 마력석입니다.
‘차원의 힘이 담긴 물건’에 한하여 그것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봉인이 해제된 장비는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개방되며 장비의 성능이 한 차원 강화됩니다.
봉인이 해제된 장비는 용사의 협곡 밖에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한 아이템에 1회에 한해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미 봉인이 해제되어 있는 아이템에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지금까지 이안조차도, 단 하나밖에 얻지 못한 희귀한 마력석.
그리고 이 마력석의 존재는 차원 장비들의 가치에 대한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장비의 성능을 한 차원 강화한다는 부분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봉인을 해제할 시 ‘협곡 밖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게 된다’는 부분이 정말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으흐흐, 지금까지 광산에서 한 번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아이언스웜에게서만 획득할 수 있는 광물인지도 몰라.’
빛나는 마력석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말려 올라가는 이안의 입꼬리.
‘내가 따로 정보를 풀지 않는 한 한동안은 정보를 독점할 수 있겠지.’
인벤토리에 쌓이게 될 수많은 광물들을 떠올린 이안의 입에 자신도 모르게 음흉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용사의 마을에서 재화로 사용되는 ‘영웅 점수’는 아직도 넘쳐나고 있었고, 광물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어마어마한 초월 장비를 하나 제작해 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채굴 노예(?)들을 감독하기 위해 광산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깡- 깡- 깡-!
너 나 할 것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최대한 많은 광물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섯 명의 랭커들.
더욱 흡족한 표정이 된 이안은, 광산의 가장 안쪽에서 채굴중인 훈이에게 슬쩍 다가가 말을 걸었다.
“훈이, 채굴은 좀 잘돼 가시나?”
그리고 이안의 물음에, 훈이는 인상을 팍 쓰며 대꾸하였다.
“나 지금 바쁘니까 말 걸지 말아 줄래, 형?”
“후후, 그래. 열심히 채굴하도록. 그래도 마계 광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네가 제일 잘하는 것 같네.”
깡- 깡- 깡-!
이제는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곡괭이질에 집중하는 훈이.
그런 훈이를 보자 이안의 머릿속에 30분 전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이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걸까?’
그것은 이안과 랭커들 사이의 단기 노예 계약(?)이 체결된 직후의 일이었다.
* * *
“훈이, 넌 왜 안 가냐? 난 니가 제일 먼저 뛰어나갈 줄 알았는데.”
“…….”
“이거, 나한테 아쉬운 소리 할 때 나오는 표정인 것 같은데……. 뭐 부탁할 거라도 있어?”
“귀, 귀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쭈뼛거리지 말고 빨리 얘기나 해 봐.”
이안과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곧바로 뛰어나간 랭커들과 달리, 훈이는 이안의 앞에 남았었다.
이안에게 뭔가, 할 말이 있었던 훈이.
그리고 훈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형, 내가 광물 진짜 열심히 캘 테니까 내 몫으로 마력석 스무 개만 확보해 주면 안 될까?”
“뭐……? 열 개도 아니고 스무 개?”
“응.”
“스무 개나 가져가서 뭐 하게?”
“쓰, 쓸 데가 있어.”
“흠? 지금까지 못해도 마력석 너댓 개는 캤을 것 같은데, 열 개 정도만 더 있으면 최대 공헌도 채우는 거 아냐?”
“…….”
“그럼 남는 열 개는 어디다 쓰려고 하는 건데?”
“그건…… 비밀이야.”
사실 이안은, 애초에 마력석 열 개는 훈이를 위해 남겨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훈이 또한 어차피 로터스의 전력이었으니, 다른 랭커들보다 우선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열 개도 아니고 스무 개를 확보해 달라는 말을 할 줄은 이안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훈이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한데…….’
이안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훈이의 꿍꿍이속.
그래서 이안은, 훈이의 옆에 첩보요원을 하나 붙여 놓기로 했다.
그 요원의 이름은, 뿍뿍이였다.
* * *
“아니, 그러니까……. 다른 조건 좋은 곳도 많은데 꼭 여기를 사셔야 한다는 건가요?”
“맞아욥. 105동 2502호. 나는 꼭 여길 살 거에욥.”
“대체 왜요? 팔 생각도 없어 보이는 주인한테 굳이 사려 하지 말고, 3층에 나와 있는 물건 사시면 되잖아요. 아니, 그 전에……. 옆 동에는 2천이나 싼 물건이 있는데…….”
세미의 엄마이자 세미부동산의 대표인 미진은 지금 무척이나 당혹스런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완전히 처음 보는 유형의 손님을 만난 것이다.
까만 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이국적인 생김새를 한 귀공자 스타일의 젊은 미남자.
처음 세미에게 이 별난 손님을 인계받았을 때 미진은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녀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남자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발음이 요상하긴 해도, 제법 높은 수준의 어휘까지 구사하였으니.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남자가 원하는 부동산의 조건이 무척이나 특이했으니 말이다.
아니, ‘조건’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은, 특정 아파트 단지의 특정 동. 그중에서도 25층의 2호실 아파트였다.
“대체 105동 2502호여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유라도 좀 들어본 다음에 방법을 찾아봅시다.”
“이유는 말할 수 없어욥. 그냥 그 집이 필요해욥.”
“아니, 애초에 매물로 나와 있지도 않은 집을 어떻게 산다는 건지…….”
“집주인한테 직접 전화하면 되잖아욥. 아까 보니까 번호도 아시는 것 같던데.”
“…….”
“이 집의 원래 시세가 얼마라고 했죠?”
막무가내로 우기는 괴상한 손님을 보며, 미진은 포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아파트는 딱히 투자가치도 없는데…….’
하지만 손님을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대답은 해 주기로 하였다.
“그냥 시세만 놓고 보면 여기가 25평형이니까…….”
모니터를 잠시 들여다보던 미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충 7.2억 정도가 시세라고 보면 되겠네요.”
사실 미진은, 아파트의 시세를 살짝 높여서 말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비싸면 포기하고 다른 물건을 알아볼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이어진 외국인 손님의 말은 미진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7.2억이면, 70만 달러…… 정도 되겠군욥.”
“환율 계산하면…… 대충 그 정도 되겠죠?”
미진의 대꾸에,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많이 싸네욥. 이안갓이 이런 빈민촌에 살 줄은…….”
“예……? 이안갓? 그게 누구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외국인을 보며, 이제는 아예 황당한 표정이 되어 버린 미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남자의 말은, 그녀의 머릿속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좋아욥. 내가 150만 달러 드릴게욥.”
“에?”
“이 돈이면 2502호, 살 수 있겠죠?”
“그, 그야…….”
“그 집 아니면 필요 없어요. 그 집을 꼭 사 줘야 해욥.”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7억짜리 집을 사는 데 15억을 불러요?”
미진은 지금 황당한 것을 넘어, 이 남자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되기 시작하였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경찰이라도 부를까?’
하지만 다음 순간, 미진은 경찰에 전화하는 대신 2502호 집주인의 번호를 눌러야만 했다.
남자가 가방에서 돈 다발을 꺼내 들더니, 미진의 앞에 턱 하고 내놓았으니 말이다.
“……!”
“내일까지 계약서 쓸 수 있게 해 주세욥. 그럼 중계비도 세 배로 드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