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6화 전설의 시작 (7) >
* * *
“여, 티버, 혹시 지금 바빠요?”
차원의 요새 서문의 바로 앞에 있는 티버의 막사.
막사의 문이 열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티버는 고개를 돌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 이안. 무사히 돌아왔군. 어떤가. 채굴은 좀 할 만하던가?”
“예, 티버, 할 만큼 한 것 같아서, 잠깐 돌아왔습니다. 물론 다시 나가긴 할 건데, 그 전에 정리 좀 해 보려고요.”
이안의 대답을 들은 티버는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방금 이안이 말한 ‘할 만큼 했다’라는 말이 뭔가 어색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음, 아직 채굴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다섯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고, 이 친구 성격상 그 정도 채굴한 수준으로 만족했을 리 없는데…….’
티버는 대장장이이기도 하지만 숙련된 채굴꾼이기도 하였다.
이 용사의 마을에서 대장장이 일을 하기 위해선 채굴 스킬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니 말이다.
직접 채굴을 하지 않으면 광물들을 수급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티버는 주기적으로 채굴에 나서기도 했던 것.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는 차원의 마력석 채굴도 수없이 많이 해 보았다.
‘초보 광부 기준으로, 이 시간쯤 채굴했으면 많아야 광석 두세 개쯤 건졌을 텐데…….’
티버의 표정은 점점 의아함에서 흥미로움으로 바뀌어 갔다.
만약 할 만큼 했다는 말을 한 사람이 이안이 아니었더라면 호통을 쳤겠지만, 그가 아는 이안은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티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호오, 할 만큼 했다라……. 그럼 어디 한번 채굴한 광물들을 보여 줘 보겠나?”
티버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를 열어 광물들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바닥에 광물들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티버의 입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
끽해야 두세 개, 많아야 너댓 개 정도의 마력석을 꺼낼 것이라 생각했건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광물을 꺼냈으니 말이다.
“아, 아직도 남은 게 더 있는가?”
계속해서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는 이안을 보며 당황한 티버는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은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이제 절반 정도 꺼냈는데.”
“저, 절반……?”
어이없다는 표정이 된 티버는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대체 5시간 동안 나가서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일반적인 광부들이 꼬박 며칠 동안 채굴해야 모을 법한 양의 광물이 쌓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이놈은? 광산을 통째로 퍼다가 가져온 건가?’
여섯 개나 되는 차원의 마력석과 서른 개에 육박하는 다른 광물들도 놀라웠지만, 티버가 가장 놀란 것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마력석의 파편이었다.
물론 마력석 파편은 마력석보다 훨씬 채굴하기 쉬운 게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홍수 같은 양을 채굴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티버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네?”
“혹시 그거, 어디서 훔쳐온 건 아니지?”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티버.
당연히 이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그리 섭한 말씀을……! 티버 님이 주신 곡괭이로 일일이 캐낸 광물들이란 말입죠.”
모든 광물을 쏟아낸 이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는 지금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상태였다.
‘흐흐, 티버가 놀라는 표정을 보니, 대박난 게 확실한가 본데?’
아이언스웜과의 사투는 결코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잘 끝나기는 했지만, 목숨이 위험했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투 끝에 얻어 낸 결과물이니 당연히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게 어느 정도 대박인지는 가늠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지.’
씨익 웃은 이안은 티버의 모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모루에 놓여 있던 망치를 슬쩍 움켜쥔 뒤 티버를 향해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티버.”
“응?”
“이 파편들, 여기서 정제하면 되는 거 맞죠?”
“어, 어. 맞아.”
어딘가 혼이 나간 듯 보이는 티버를 향해 피식 웃은 이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도와달라는 이안의 말에 정신을 차린 티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루를 향해 튀어왔다.
“그래. 도와줘야지. 지금 마력석 한 개가 급한 상황인데 말이야.”
그리고 정신 차린 티버(?)와 함께, 이안의 두 번째 노가다가 시작되었다.
깡- 깡- 까앙-!
-‘차원의 마력석 파편×1’을 소모합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1’을 소모합니다.
……중략……
-마력의 파편을 봉합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10’을 정제하기 시작합니다.
-‘차원의 마력석’을 정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물론 채굴 노가다와 비교한다면 귀여운 수준의 노가다라 할 수 있는 마력석 정제.
하지만 파편의 숫자가 거의 구백 개에 가깝다 보니, 이 정제작업만도 거의 30~4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깡- 까강- 깡-!
-‘차원의 마력석’을 정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을 정제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10’ 아이템이 소멸합니다.
-‘차원의 마력석’을 정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안의 인벤토리에 모인 차원의 마력석 숫자는…….
“둘, 셋, 넷……. 총 칠십 개쯤 모였네요, 티버.”
“커, 커험. 그렇구먼.”
파편도 아니고 온전한 마력석만 무려 칠십 개나 된 것이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던 티버는 다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안, 이 마력석들 전부 다 수비대장님께 가져갈 겐가?”
하지만 티버의 물음에, 이안은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티버. 수비대장님께는 딱 열네 개만 가져다드릴 거예요.”
“열네 개? 흠, 그만큼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양이기는 하네만. 혹시 나머지 마력석들은 쓸 곳이 있는 겐가?”
이안이 열네 개의 마력석만을 퀘스트에 쓰는 이유는 당연히 최대 공헌도 때문이었다.
마력석이 열네 개가 넘어가면 그 뒤부터는 더 이상 공헌도가 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티버로서는 그저 의아하기만 할 뿐이었다.
“네, 나머지 마력석은 제가 좀 써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렇군.”
티버는 이안이 마력석을 어디에 쓰려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요새에서 함께 임무를 진행하는 한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이안이 또다시 티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티버.”
“음……?”
“이 다른 광물들 좀 감정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안이 얻은 차원의 광물들은 마력석을 제외하고도 총 세 가지나 더 있었다.
하지만 다른 광물들은 정보가 봉인되어 있었기에, 티버에게 감정해 달라 부탁한 것.
티버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이 건네는 광물들을 받아 들었다.
“물론이지. 감정이야 크게 어렵지 않으니, 잠시만 기다리시게.”
그리고 한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모든 광물들의 감정을 끝낸 티버가 이안에게 다시 그것들을 돌려주었다.
이안은 합성석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읽어 보기 시작하였다.
-차원의 합성석
분류 : 잡화
등급 : 희귀(초월)
차원의 마력이 담겨 있는 합성석입니다.
두 개 이상의 ‘차원의 힘이 담긴 물건’을 합성할 때, 성공률을 높여 줄 수 있는 광물입니다.
합성석이 있어야만 장비를 합성할 수 있습니다.
*차원의 숲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용사의 협곡 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오호?”
합성석의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아직 해 보지는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이템 합성이라는 재밌어 보이는 콘텐츠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아직 천룡군장 템보다 더 좋은 건 못 만들었는데……. 합성을 이용하면 더 상위 장비도 만들 수 있으려나?’
그리고 이안이 다음으로 확인한 아이템은 차원의 마법석.
-차원의 마법석
분류 : 잡화
등급 : 희귀(초월)
차원의 마력이 담겨 있는 마법석입니다.
‘차원의 힘이 담긴 물건’에 한하여 마법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마법이 부여된 장비에는 랜덤한 고유 능력이 생성됩니다.
*차원의 숲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용사의 협곡 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차원의 마법석도 합성석과 마찬가지로, 장비의 스펙을 올려 줄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담겨 있는 광물이었다.
“흐흐, 이렇게 되면 당연히……. 마지막 강화석의 정보는 안 봐도 알 수 있겠군.”
그리고 세 개의 광물 중 가장 많은 물량을 획득한 차원의 강화석.
-차원의 강화석
분류 : 잡화
등급 : 일반(초월)
차원의 마력이 담겨 있는 강화석입니다.
‘차원의 힘이 담긴 물건’에 한하여 그것의 성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최대 +10단계까지 강화가 가능합니다.
*강화 단계가 올라갈수록 성공률이 감소합니다.
(+3단계까지는 100퍼센트의 확률로 성공합니다.)
*차원의 숲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용사의 협곡 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차원의 강화석은 역시나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아이템의 강화 등급을 올리는 데 사용하는 광물이었다.
“크으!”
감정받은 광물들의 정보를 전부 다 읽은 이안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직까지 차원의 숲 이벤트 맵이 닫히려면 거의 7시간이 남은 상황.
이 남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해야 가장 효율적일지 이안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좋아. 남은 7시간 동안은 다른 광물들을 최대한 모아야겠어.’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한 이안은 티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고마워요, 티버.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가 됐네요.”
“하하,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자네가 대단하지.”
그리고 막사를 나서기 전, 인벤토리 구석에 남겨 두었던 마지막 광물을 꺼내어 티버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티버.”
“마지막으로 이 광물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
“지금까지 보여 드렸던 광물들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티버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