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5화 전설의 시작 (6) >
* * *
딸랑- 딸랑- 따라랑-
문간에 붙어 있는 차임벨이 촐싹맞게 울려 퍼지며 누군가 문 안으로 쪼르르 들어왔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 촉새 같은 목소리가 사무실 안으로 쏘아졌다.
“엄마, 오늘 수업 끝나고 팀플 있다니까 왜 또 부르고 그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세미.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캡슐 방에 갈 계획이었는데, 엄마의 호출로 인해 플랜이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팀플이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세미의 어머니인 미진은 그녀의 거짓말을 완벽히 꿰뚫고 있었다.
“너 오늘 팀플 없는 거 다 알거든?”
“누, 누가 그래?”
“이미 엄마가 영훈이한테 다 전화해 봤지.”
“우씨!”
“그러니까 잔말 말고 가게 좀 봐줘. 3시간 안으로는 돌아올 테니까.”
미진은 쿨하게 짐을 싸서 사무실을 나가 버렸고, 세미는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우씨, 엄마가 3시간이라고 했으면 최소 5시간은 걸리는 건데…….’
어쩌다 엄마의 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카일란을 플레이할 계획이었던 오후 타임 전부를 날려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영훈이 이 치사한 자식……!’
카일란 라이벌인 영훈의 음모라고 생각한 세미는 두 손을 꾹 말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내일 학교에서 만나면 어퍼컷이라도 한 대 먹여 줄 생각이었다.
“에휴, 가게 보는 거 너무 지루한데…….”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세미는 사무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를 능숙하게 열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세미의 어머니가 하시는 일은 부동산 사무실.
부동산이라는 업종 특징상 몇 시간 내내 손님 하나 오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활달한 세미의 성격상 무척이나 지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차라리 손님이라도 좀 많이 오면 좋겠는데…….’
시무룩한 표정이 된 세미는 모니터를 켜 인터넷에 접속하였다.
카일란 커뮤니티라도 돌아다니면서, 랭커들의 게임 영상이나 재생해 볼 생각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세미에게 검색 1순위 랭커는 바로 이안.
‘그동안 우리 이안느님 영상 새로 뜬 건 없으려나?’
그리고 못 보던 이안의 영상을 발견한 세미는 신이 나서 헤드셋까지 착용하고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본인이 게임을 플레이하기라도 하는 듯 점점 모니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세미.
그런데 바로 그때.
딸랑- 따라랑-
갑자기 사무실의 문이 다시 열리며 또다시 차임벨이 울려 퍼졌다.
당연히 문을 연 사람이 어머니 미진이라고 생각한 세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뾰로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또 왜 왔어? 뭐 놓고 갔어?”
하지만 세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적막만이 감도는 사무실.
세미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헤드셋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누군가를 발견한 그녀의 동공이 천천히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어, 어어, 당신은……?”
마치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는 세미의 동공.
이어서 세미를 향해 부동산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내의 어투는 무척이나 어눌했다.
“나, 요기. 집, 사러 왔어욥.”
* * *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괴물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위에서 곡괭이질을 한다는 것은 더욱 하드코어한 난이도일 수밖에 없었다.
깡- 까강- 깡-!
하지만 이안은, 정말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고난이도의 파밍을 해내고 있었다.
-곡괭이가 빗나갔습니다.
-광상의 결에 균열이 발생합니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벌써 20분 째.
스웜의 등딱지에 매달려 쉼 없이 곡괭이를 틀어박고 있는 이안의 무시무시한 집중력.
덕분에 이안의 인벤토리 안에는 벌써 수백 개도 넘는 마력석 파편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크으, 분위기 좋고!”
이제 매달리는 데 요령까지 붙은 것인지 여유로움마저 묻어나는 이안의 표정.
심지어 이안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 있는 마력석 중에는, 파편이 아닌 온전한 완제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확한 위치에 타격을 가했습니다!
-온전한 상태의 원석이 드러납니다.
-채굴에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안은 이 악조건 속에서 채굴에 성공하기까지 한 것이다.
“크흐흐, 크흐흐흣!”
그리고 이것은 정말 대단한 노력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미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광맥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작업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건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스웜의 등에 매달린 채로 완벽한 곡괭이질을 해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안이 지금까지 채굴에 성공한 온전한 차원의 마력석만 해도, 이미 다섯 개나 되는 상황.
“좋았어, 하나 더!”
이미 인벤토리에 있는 광물들만으로 퀘스트 조건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안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 살아 있는 광산(?)의 광맥에서는 마력석 파편 말고도 알 수 없는 광물들이 채굴되곤 했으니 말이다.
-채굴에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합성석(미감정)’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채굴에 성공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법석(미감정)’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정보창이 미공개 상태이기는 했지만, 분명 어디엔가 쓸모가 있어 보이는 다양한 광석들.
아마 티버에게 이 광물들을 가지고 가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낼 수 있으리라.
‘카일란에서 쓸모없는 잡템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
때문에 이안은, 스웜이 죽거나 곡괭이가 다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 이 친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키에엑- 키아아오!
고통스러운 건지 짜증나는 건지, 연신 기괴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언스웜!
“아파도 조금만 참자, 친구야. 곡괭이 다 닳을 때까지만 기다려 줘.”
아이언스웜에게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말을 속삭인 이안은, 계속해서 곡괭이를 휘둘러 대었다.
까앙- 깡- 까가강-!
누군가 본다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묘기에 가까운 이안의 채광 기술!
이안은 정말 곡괭이가 다 닳아 없어져야 움직임을 멈출 기세로, 눈에 불을 켜고 곡괭이질을 이어 갔다.
-고난이도의 채굴을 성공하셨습니다.
-완벽한 원석을 발견하였습니다!
-채굴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빛나는 차원의 마력석’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심지어 아이언스웜을 상대하는 동안 채굴 숙련도까지 상승한 이안은 이제 곡괭이질에 흥이 붙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 곡괭이 내구도는 한 7천 정도 남아 있는 것 같으니, 앞으로 한 3시간 정도는 이 녀석을 더 괴롭혀 줄 수 있으려나?’
하지만 이안의 그 무서운 다짐은 결국 실현될 수 없었다.
-차원의 힘이 이동을 시작합니다.
-광맥에 충만하던 차원의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처음 광산에 도착했을 때처럼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미니 맵상에 나타나 있던 푸른 기운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이런……. 설마 너도 저 기운 따라서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스웜에게 대화라도 시도하려는 것인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는 이안.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로 솟아오른 아이언스웜은 그대로 다시 바닥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처음 녀석이 등장하며 만들었던 어둡고 거대한 굴속으로 말이다.
쿠쿵- 쿠쿠쿵-!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마치 빨려 들어가듯 굴속으로 사라지는 아이언 스웜.
광석 하나라도 더 채굴하기 위해 녀석의 등에 붙어 있던 이안은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녀석과 함께 빨려 들어갔다간, 그대로 게임 오버될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타탓-!
아이언스웜의 비늘을 발판 삼아 있는 힘껏 뛰어오른 이안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뿌연 먼지 속에 파묻힌다.
“콜록, 켁 케켁-!”
쏟아지는 돌가루와 먼지바람 때문에 이안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안의 표정은 싱글벙글하기 그지없었다.
“크으,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만족스런 노동이었다.”
헤벌쭉한 표정으로 먼지 속에서 빠져나온 이안은 광산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푸른 광석 조각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안이 아이언스웜 위에서 곡괭이질할 때마다 떨어져 나간 파편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것이다.
“자, 이제 싹 다 수거해 놓고 정산 한번 해 볼까?”
이안은 무너진 광산의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지며 마력석 파편을 전부 챙겨 모았다.
그리고 오픈한 이안의 인벤토리에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많은 양의 광물들이 쌓여 있었다.
-차원의 마력석×6
-차원의 마력석 파편×871
-차원의 합성석×5
-차원의 마법석×8
-차원의 강화석×15
* * *
한바탕 아이언스웜과의 혈투가 끝난 뒤, 이안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남아 있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금 시간이 오후 5시니까 대충 7시간 정도 남았네.’
차원의 숲 레이드 맵은 정오부터 오픈되어서 자정에 닫히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퀘스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있는 것인지를 가장 먼저 확인해 본 것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확인한 이안은 멋쩍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너무 격렬하게 작업을 했더니 시간이 많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나?’
아이언스웜의 등딱지에 적어도 몇 시간 단위로 붙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간을 재어 보니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
남은 시간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성과를 올린 이안은, 옷에 잔뜩 쌓인 먼지를 털어 내며 행복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어쩌지? 일단 마을 가서 파편들 먼저 광석으로 만들어 보고 결정해야 하나?’
지금 이안이 보유한 온전한 마력석은 총 여섯 개다.
하지만 파편의 경우 거의 구백 개에 육박하는 엄청난 물량을 가지고 있었다.
파편 열 개를 모아 마력석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성공 확률이 절반만 된다고 가정해도 이미 오십 개에 가까운 마력석을 확보한 것이다.
‘어차피 마력석 열네 개 이상은 딱히 쓸모도 없을 텐데…….’
이안이 수행 중인 퀘스트의 정보 창에 따르면 채굴한 마력석 한 개당 100의 공헌도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런데 획득 가능한 최대 공헌도가 1,400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그 이상의 마력석들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내일 주어질 새로운 연계 퀘스트에서 다시 쓸모가 생길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 맵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광물들은 전부 소멸되어 버리니 말이다.
‘일단 더 채굴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요새로 돌아가 보긴 해야겠고, 남은 마력석들은 어떻게 활용한다…….’
핀을 소환하여 위에 올라탄 이안은, 처음 출발했던 티버의 막사를 향해 빠르게 비행하기 시작했다.
고민이야 이동하는 중에 하여도 충분했으니, 일단 막사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핀의 머리 위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이안의 머릿속에, 잉여자원(?)을 활용할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