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4화 전설의 시작 (5) >
* * *
이안을 놓친 아이언스웜은 분노한 것인지 미친 듯이 날뛰며 광산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면, 녀석은 그저 광산을 파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광물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배를 불리는 것이다.
‘아이언스웜이라더니, 광물을 먹고 자라는 놈인가?’
악령들과 광물을 집어삼킬 때마다 조금씩 더 커지는 녀석의 몸집.
그렇게 한 10여 분 정도가 지나자, 그렇지 않아도 비대했던 녀석의 몸집은 1.5배 정도가량 더 자라났다.
‘흠, 이 정도면 공격 패턴은 거의 다 파악한 것 같은데…….’
까망이의 등에 엎드려 스웜의 시야를 피해 가며 녀석을 관찰하던 이안이 아무 생각 없이 스웜을 보고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혹시 스웜의 약점이 드러날까 살피면서 녀석의 공격 패턴과 기술들을 파악해 둔 것이다.
‘약점은 아직 못 찾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한번 덤벼볼 만한데?’
강철 같은 외피를 지닌 스웜은 정말 약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이 할 만하다 생각한 이유는 비교적 단순한 스웜의 공격 패턴 때문이었다.
괴랄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진 녀석이기는 하지만, 몸집이 비대한 나머지 움직임이 둔하고 정교하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보스 패턴을 마스터한 이안에겐 오히려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언스웜의 움직임.
“흣차!”
까망이의 등에서 일어선 이안은 한차례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까망이, 넌 여기 있어. 언제 탈출해야 할지 모르니까.”
푸릉- 푸릉-!
까망이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 준 이안은 망설임 없이 스웜을 향해 뛰어내렸다.
녀석의 거대한 머리통에 직접 붙어서 약점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녀석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이안의 신형.
기다란 창대를 거꾸로 쥔 이안은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있는 힘껏 그것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안의 창이 결국 박힌 곳은 스웜의 뒤통수가 아닌 목덜미였다.
원래 목표했던 곳은 스웜의 뒤통수였지만, 녀석이 움직이는 바람에 뒷목에 내려앉게 된 것이다.
콰아앙-!
이어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이안의 창이 스웜의 뒷목에 틀어박혔다.
-에픽 몬스터 ‘마력의 아이언스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만큼 감소합니다!
하지만 커다란 파열음과는 별개로 역시나 1의 피해밖에 입지 않는 아이언스웜.
크워어어-!
이안의 공격을 느낀 아이언스웜은 포효했고, 녀석의 등에 오른 이안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녀석이 몸을 뒤틀며 발작하기 시작했을 때, 이안은 몸을 날려 스웜의 목덜미에 돋아 있는 돌기를 움켜쥐었다.
다행히 아이언스웜의 표피는 무척이나 울퉁불퉁해서 미끄러져 떨어질 염려는 크지 않았다.
‘으, 머리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안은 거대한 스웜의 뒤통수를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안의 첫 번째 목표는, 아이언스웜의 정수리.
대형 몬스터들의 약점은 머리에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안은 어떻게든 그 위로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
키에에엑-!
이안이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하자 약이 오르는지,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포효하는 아이언스웜.
녀석의 목덜미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안은 빠르게 무기를 스왑하였다.
-‘용맹의 창’ 아이템을 착용 해제하였습니다.
-‘티버의 견고한 곡괭이’ 아이템을 장착하였습니다.
이안이 뜬금없이 곡괭이를 꺼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무기를 사용해도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힐 수 없으니, 그럴 바에 이동이라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곡괭이를 꺼낸 것이다.
아예 바위 봉우리를 등반하기라도 하듯, 곡괭이를 이용해 녀석의 뒤통수를 올라 보려는 것이었다.
아이언스웜의 표피가 마치 바위산의 그것과 비슷하였으니,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시도였다.
“흐읍!”
왼손으로 돌기 하나를 단단히 움켜 쥔 이안은, 오른손으로 쥔 곡괭이를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아이언스웜의 표피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박혀라!’
콰드득-!
그런데 다음 순간.
“……?”
이안의 눈앞에 생각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티버의 견고한 곡괭이’ 아이템의 내구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에픽 몬스터 ‘마력의 아이언스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95만큼 감소합니다!
티버에게 받은 곡괭이에는 딱히 ‘공격력’이라는 스텟이 붙어 있지 않다.
때문에 곡괭이로 입힌 피해량의 99퍼센트는 이안의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공격력에 의한 것일 터.
‘그런데 데미지가 95나 박혔다고?’
제법 성능이 괜찮은 아이템인 ‘용맹의 창’으로 입힌 피해가 1에 수렴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뭐지? 이 곡괭이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건가?’
정신이 번쩍 든 이안은 곡괭이를 다시 들어올렸다.
그리고 아이언스웜의 표피를 향해 연신 내리찍기 시작했다.
깡- 깡- 까앙-!
마치 광물을 채굴하기라도 하듯 몸에 배어 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곡괭이를 내려찍는 이안.
카일란에서 채광 기술의 기본은 정확한 자리에 균일한 힘으로 곡괭이질을 하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얼마나 정교하게 곡괭이질을 하느냐에 따라, 채굴되는 광석의 품질이 결정되는 것.
따라서 수백 시간 넘게 곡괭이질을 해 본 이안의 손에는 그러한 채광 기술의 기본이 그대로 녹아 있었고, 이안의 곡괭이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찍어 대었다.
크웨에엑-!
아이언스웜은 점점 더 격렬하게 몸부림쳤지만, 이안은 악착같이 매달린 채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티버의 견고한 곡괭이’ 아이템의 내구도가 1만큼 감소합니다.
-에픽 몬스터 ‘마력의 아이언스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27만큼 감소합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36만큼 감소합니다!
-‘마력의 아이언스웜’의 생명력이 152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곡괭이질이 계속될수록 이안의 표정은 점점 더 묘해졌다.
‘이거, 채굴하듯 곡괭이질을 하니 조금씩 더 딜이 많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확실히 창을 휘두를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황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애매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1이 되었건 100이 되었건 턱없이 부족한 대미지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 정도의 대미지로 이 괴물을 처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분명 이 곡괭이에 답이 있는 것 같으니까.’
잠시 곡괭이질을 멈춘 이안은 스웜의 목덜미에 매달린 채 녀석의 몸뚱이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를 발견한 이안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혹시 저 푸른 반점이……?’
이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언스웜의 몸통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는 푸른 반점.
이것은 스웜이 뭔가를 먹어치울 때마다 생겨난 반점으로, 처음 녀석이 나타났을 때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저 푸른 반점들이 스웜의 약점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흣차!”
생각을 정리한 순간, 과감하게 몸을 날리는 이안!
타탓-!
이어서 가볍게 푸른 반점 위에 착지한 이안은 곧바로 곡괭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신중한 표정으로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발 유의미한 수준의 대미지가 들어가길 바라면서 말이다.
깡- 까강- 깡-!
그런데 다음 순간.
“어?”
이안의 얼굴에는 지금까지보다도 더욱 당황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 * *
-정확한 위치를 타격하였습니다.
-광상鑛床의 결에 균열이 발생합니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채굴에 실패하였습니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안은 당황하였다.
아이언스웜의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하여 그곳을 공격한 것뿐이었는데, 뜬금없이 광물이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광상’이란, 광물들이 응집되어 모여 있는 위치를 말하는데, 몬스터인 샌드웜의 표피에서 그것이 발견되었으니 이안으로선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뭐야? 이 몬스터 자체가 살아 있는 광산이라도 되는 거야?’
심지어 광상에 곡괭이질을 하자 샌드웜은 아예 1의 대미지조차 입지 않고 있었다.
이 푸른 반점이 의미하는 것이 약점이 아니라는 것은 이로써 확실해진 것이다.
더해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안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아이언스웜이라는 에픽 몬스터는 애초에 처치하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닐지도 몰라.’
푸른 반점이 의미하는 것이 약점이 아니라 광석 채굴이 가능한 포인트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둘도 없는 기회일 지도 몰랐다.
그리고 생각을 달리하자, 이안은 지금부터 뭘 해야 할지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움직이는 광산에서 채굴을 한다고 생각하자. 난이도는 좀 극악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는 있어.’
이안은 먼저 인벤토리를 열어, 방금 획득한 차원의 마력석 파편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이 파편도 쓸모가 있는 물건인지 확인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차원의 마력석 파편
분류 : 잡화
등급 : 없음
차원의 숲 광산에서만 채굴되는 광석인 ‘차원의 마력석’ 파편이다.
파편을 열 개 모아 대장장이 티버에게 가져다주면 일정 확률로 온전한 ‘차원의 마력석’으로 복원이 가능하다.
복원에 실패한 파편은 그 자리에서 소멸된다.
*차원의 숲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면 소멸되는 아이템입니다.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비록 실패 확률이 있다고는 하지만, 파편을 모아 원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거대한 아이언스웜은 그야말로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크워어- 크워억-!
등에 달라붙어서 곡괭이질 하는 이안이 성가진 건지, 계속해서 몸을 비틀어 대는 아이언스웜.
하지만 찰거머리처럼 그 위에 달라붙은 이안은 전혀 떨어져 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이곳에서 파밍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파편 한 5천 개 뽑아먹을 때까진 여기서 안 움직일 거다, 이 자식아.”
아이언스웜을 협박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인 건지 무시무시한 발언을 한 이안은, 곡괭이로 만들어 낸 홈 사이에 두 발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온몸이 단단히 고정되자,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곡괭이질을 시작하였다.
깡- 깡- 깡-!
한손으로 매달려 곡괭이질을 할 때보다, 몇 배 이상 안정적인 이안의 손놀림!
이안이 스웜의 표피에 곡괭이를 때려 박을 때마다 푸른 파동이 그 주위에 넘실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