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1화 전설의 시작 (2) >
* * *
대장장이 ‘티버’라는 말에 이안은 반색하였다.
한동안 대장간에서 살다시피 했던 이안에게 티버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오, 마을의 NPC도 레이드에 지원 나올 수 있는 거구나.’
용사의 마을에 존재하는 NPC들 중 이안과의 친밀도가 가장 높은 티버.
이안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서둘러 막사 안에 들어섰다.
티버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뜯어내야 20분가량 늦게 들어온 것을 만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스르륵.
막사의 휘장을 걷고 안쪽으로 들어간 이안은 티버를 찾기 위해 곧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티버와 이안의 눈이 마주쳤다.
“오, 이안, 드디어 정예병이 됐나 보군!”
“그렇습니다, 티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역시 티버의 손재주는 어디에든 필요하군요!”
이안의 능숙한 아부에, 티버는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별말씀을. 전장에는 항상 대장장이가 필요한 법이지.”
물론 이안과 티버의 친밀도는 이미 더 오를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친밀도 관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특히 티버와 같이 생산 관련 클래스를 가진 NPC와의 친밀도는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티버가 이 막사 안에 있는 간이 대장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르지.’
눈을 빛내며 대장간을 살피는 이안을 향해 티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 자네는 마력석 채굴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겠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대답하였다.
“물론입니다. 마력석 채굴에 나서기 전에, 티버 님께 기술을 좀 전수받고 싶어서 말이지요.”
“후후, 기술이라……. 확실히 마력석 채굴이 쉬운 작업은 아니지.”
고개를 끄덕인 티버는 막사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곡괭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자네, 혹시 광물 채굴 작업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티버의 물음에, 이안은 순간 아련한(?) 표정이 되었다.
과거 마계의 광산에서 그의 소울 메이트인 대장장이 한과 함께, 무한의 노가다를 했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한때 광산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죠.”
“오오!”
이안의 대답에, 티버는 무척이나 기대 어린 표정이 되었다.
대장간에서 이안의 집념과 끈기를 확인한 그였기 때문에, 광산에서 살았다는 이안의 말이 허풍처럼 들리지 않은 것이다.
티버는 이안에게 곡괭이를 내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거 먼저 받으시게. 기본적인 채굴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 가지 설명해줄 게 있으니 말일세.”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자, 이안의 눈앞에 한 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티버의 견고한 곡괭이’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의 푸른빛을 머금은, 티버의 견고한 곡괭이.
이안은 곡괭이의 정보 창을 확인하며 눈을 빛냈다.
-티버의 견고한 곡괭이
분류 : 잡화
등급 : 희귀(초월)
내구도 : 9,990/9,990
차원의 대장장이 ‘티버’에 의해 제작된 견고한 곡괭이 입니다.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양산품이기는 하지만 티버의 정성이 제법 들어가 있는 물건입니다.
미량의 차원의 마력이 담겨 있어 차원광물을 채굴하는 데 용이합니다.
*최대 희귀(초월) 등급의 광물까지 채굴이 가능한 장비입니다.
*곡괭이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내구도가 1씩 하락합니다. (내구도가 전부 하락하기 전에 대장간에 돌아와 차원의 마력을 충전하면, 최대 내구도의 80퍼센트까지 수리할 수 있습니다.)
*차원의 광물 외에 다른 광물은 채굴할 수 없습니다.
카일란에서 ‘곡괭이’ 아이템은 원래 ‘장비’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그런데 티버에게서 받은 이 곡괭이는 아이템 분류가 ‘잡화’로 되어 있었다.
‘특이하네. 레이드 맵 안에서만 사용 가능한 이벤트성 아이템이라 그런가?’
그리고 이 아이템 정보 창에서 이안이 주목한 부분은 두 가지였다.
그 첫째는 바로, 정보창의 상단에 떠 있는 ‘내구도’ 부분.
‘잠깐, 이거 곡괭이질 한 번당 내구도 1 감소면……. 9,990은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이안은 과거 미친 듯이 채굴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제대로 자리 잡고 파밍하기 시작하면, 대충 1~2초에 곡괭이질 한 번 정도 할 텐데…….’
그리고 빠르게 머리를 굴려 암산하기 시작했다.
‘1.5초당 곡괭이질 한 번으로 잡으면, 대충 250분정도……. 넉넉잡아 4시간 정도 채굴하면 내구도가 다 닳아 버리겠는걸?’
사실 곡괭이의 내구도를 확인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유저는, 오직 이안밖에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9,990번의 곡괭이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이 두 번째로 주목한 부분은 정보 창의 하단에 있는 부가 설명이었다.
최대 희귀(초월) 등급까지의 광물이 채굴이 가능하다는 부분.
‘광물에 등급이 있다는 건,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말이겠지.’
이것만으로 구체적인 추측을 할 수는 없겠지만, 두 가지 정도의 가정을 세워 볼 수는 있었다.
1. 클리어를 위해 채굴해야 하는 ‘차원의 마력석’ 에 등급이 존재한다거나.
2. 채굴되는 광물이 차원의 마력석 외에 다른 종류가 존재한다거나.
그리고 이안은,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마력석 채굴 퀘스트의 획득 가능한 최소 공적치가 600이었고, 퀘스트 완료 최소 조건이 여섯 개의 마력석을 채굴하는 것이었으니, 마력석 한 개당 획득 가능한 공적치는 100포인트로 고정되어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마력석에 등급이 나뉜다면 포인트가 고정일 리 없었으니, 다른 종류의 광물 채굴이 가능할 것이라 예상되는 것.
‘이거 단순 노가다 퀘스트인 줄 알았더니, 재밌는 요소가 많은데?’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티버의 설명이 이어졌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몇 가지만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네.”
“경청하겠습니다.”
“우선 차원의 마력석을 채굴할 수 있는 광맥의 좌표일세.”
티버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의 눈앞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카일란의 유저라면 누구나 익숙한 ‘미니 맵’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차원의 숲에는 총 열 곳의 광맥이 있다네. 그리고 이 곧 어디에서든, 마력석은 채굴할 수 있지.”
이안은 집중하여 티버의 말을 듣고 있었고, 잠시 뜸을 들인 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단한 팁이 있다네.”
“팁……요?”
“저기 지도에 파랗게 빛나는 포인트가 보이지?”
“예, 보이네요.”
“저 푸른빛이 30분마다 랜덤한 광맥으로 이동하는데, 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채굴해야 차원의 마력석을 채굴할 확률이 높아진다네.”
“아하!”
“빛이 강할수록,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지고 말이야.”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마력석 채굴 퀘스트가 단순히 노다가성 퀘스트는 아닌 것 같았으니 말이다.
‘확률 보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광맥을 옮겨 다녀야 될 정도의 유의미한 수준이겠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 이안을 향해, 티버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내용을 덧붙였다.
“하지만 무작정 파란 빛이 강한 곳으로 움직이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네.”
“그건 왜죠?”
“파란 빛이 강할수록, 채굴 환경이 더욱 위험해질 테니 말이지.”
“……?”
“저 파란 빛이 의미하는 것은 차원의 마력이라네. 그리고 이 차원의 숲에 있는 몬스터들은, 차원의 마력을 아주 좋아하지.”
그 뒤로도 대략 5분여 동안 티버의 설명이 차근차근 이어졌다.
그리고 티버의 설명을 전부 들은 이안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 * *
곡괭이를 둘러멘 이안은 망설임 없이 요새를 빠져나왔다.
이제 설명은 다 들었으니 최대한 신속히 행동할 시간이었다.
‘우선 이 차원의 숲이라는 곳에 대해 좀 파악해야 할 텐데…….’
이안은 시야 구석에 떠올라 있는 작은 미니 맵을 힐끔 확인해 보았다.
미니 맵 위에 떠올라 있는 다섯 개의 푸른 기운들.
숲의 동쪽 끝에 가장 커다란 푸른 기운이 머물러 있었지만, 이안은 곧장 그곳으로 움직일 생각이 아니었다.
빛이 강할수록 위험성이 높다 하였으니 채굴 확률이 높다 하여 무턱대고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총체적인 난이도를 좀 파악해야겠어. 그리고 전략을 세워야지.’
할리의 등에 올라탄 이안은 추가로 카카를 소환하였다.
정찰이 필요한 상황에서 카카만큼 그 임무를 확실하게 수행해 줄 수 있는 소환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카카, 네가 북동쪽으로 움직여 줘. 저기 가장 동쪽에 있는 광맥 한 바퀴 돌고, 북쪽에서 다시 만나자.”
“알겠다, 주인아.”
카카에게 미션을 던져 준 이안은, 곧장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숲속의 분위기는 점차 으스스해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뭔가 나타날 때도 됐는데…….’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이안은 소환수들과 함께 계속해서 북진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부스슥- 부스슥-!
이안은 드디어, 몬스터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이안은, 재빨리 시야에 들어온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차원의 악령/Lv 10
‘차원의 악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령을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진 몬스터들.
이안을 태우고 있던 할리가 낮은 톤으로 으르렁거렸고, 옆에 있던 라이 또한 이안을 향해 물었다.
“주인, 공격할까?”
하지만 이안은,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라이와 할리를 제지하였다.
“잠깐, 대기해 봐.”
평소 같았더라면 망설임 없이 공격을 택했을 주인이 움직임을 저지하자, 라이와 할리는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또한 찰나지간일 뿐.
둘은 얌전히 이안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차원 레벨이 10이라……. 거울 전장에서 싸웠던 차원기병들이랑 비슷한 전력이려나.’
이안이 섣불리 전투를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저 녀석들과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놈들을 잡는다고 지금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기다려 보자.’
숲속에서 튀어나온 악령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안이 눈대중으로 세어 보아도 최소 스물 정도는 되어 보이는 악령의 무리들.
녀석들은 이안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나타난 반대 방향으로 무리 지어 달려 나갔다.
이안이 은폐해 있는 수풀 앞쪽을 지나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사라진 방향을 미니 맵으로 확인한 이안은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티버는 분명, 몬스터들이 차원의 마력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티버가 알려 준 정보에 의하면, 몬스터들은 차원의 마력이 머무는 광산을 향해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앞을 지나간 악령의 무리들은 미니맵 상 푸른 기운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방향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 뭘까? 티버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줬을 리는 없는데…….’
이런저런 가정을 세우며 머리를 굴려 보는 이안.
그리고 잠시 후.
“……!”
뭔가 떠오른 게 있는 것인지, 이안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그래, 이거라면 설명이 되지!’
다시 할리의 등에 올라탄 이안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한 방향은, 방금 전 몬스터들이 사라진 서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