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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 (4) (1부 완)
* * *
한국서버의 경우, 마계와 인간계의 전력을 비교해 보면 인간계가 확연한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랭커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로터스 길드와 타이탄길드의 세력이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서버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장 메인 서버 중 한 곳인 미국서버만 보더라도, 인간계보다 마계가 좀 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1,2위의 전사클래스 랭커인 카이와 랄프의 격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카이와 랄프의 랭킹 차이는 고작 1랭크였지만, 전투력 차이는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직접 랄프와 검을 맞대고 있는 이안은, 그러한 부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이놈은 진짜야……!’
랄프와 공방을 이어갈수록, 이안은 그에게 조금씩 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었다.
검술과 관련된 어떠한 액티브 스킬도 없는 이안이 전사클래스인 카이를 상대로 소환수의 도움 없이 이기려면.
정말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껏 대부분의 전사클래스를 대인전으로 이겨왔던 이안에게는, 이것이 나름 생소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샤크란 아재랑 제대로 붙어본 적은 없지만……. 싸워보면 이런 느낌이려나? 아니. 어쩌면 이 녀석이 더 강할지도 모르겠어.’
지금 이안의 소환수들은, 훈이와 함께 루첸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훈이가 루첸보다 훨씬 생명력이 많이 빠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소환수들을 전부 그쪽에 붙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안의 원래 계획은, 훈이와 소환수들이 루첸을 상대로 버티는 사이 어떻게든 일대 일로 카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카이를 제거한 후 훈이와 협공하여 루첸을 처치한다면, 깔끔한 승리가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카이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치명적인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만용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까강- 쾅-!
카이의 검격을 강하게 쳐 낸 이안이, 그 반동을 이용해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이어서 또 한 번 공간왜곡을 사용하여, 허공을 날던 핀과 위치를 바꿨다.
“……!”
그리고 이안의 돌발 행동에, 카이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껏 나름 대등한 싸움이었기에, 이안이 갑자기 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어딜 도망가는 거냐!”
순간적으로 몸을 돌린 카이가, 곧바로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러자 카이의 신형이 까만 그림자가 되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이안을 쫓기 위해, 반사적으로 유령보를 발동시킨 것.
하지만 공간왜곡으로 인해 단숨에 벌어진 거리를 좁히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이안의 위치는, 본래 핀이 날고 있었던 높은 허공.
전사클래스인 카이가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위치인 것이다.
반면에 하늘 높이 순간이동 된 이안은, 곧바로 ‘하르가수스’를 소환하였다.
키히이이잉-!
이안의 손에는, 어느새 화염의 장궁이 들려 있었다.
피핑- 핑- 핑-!
‘기습으로 단숨에 류첸의 목을 따야 해.’
제법 탱킹능력도 갖춘 카이와는 달리, 마법사인 류첸의 방어력과 생명력은 종잇장수준일 것이었다.
제대로 된 기습이라면, 분명 그를 아웃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습이 성공하기 위해선, 지금 류첸을 지키고 있는 수비형 진법들을 일시에 파괴해야만 하였다.
‘스킬을 어떻게 조합해야 완벽히 방어선을 뚫을 수 있을까?’
하르가수스를 타고 하강하는 그 찰나간의 사이, 이안의 머릿속을 수십 가지 경우의 수가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이어서 다음 순간.
‘그래, 이거라면……!’
이안은 뭔가를 떠올린 것인지,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 * *
이안은 평소에 파티 플레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길드단위로 던전을 공략하거나 전쟁에 참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솔플보다 효율이 떨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단 한명.
훈이와의 듀오만큼은, 이안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모든 카일란 유저들 중 이안과 가장 합이 잘 맞는 유저가 훈이이며, 클래스 차원에서의 시너지도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이 최후의 전투를 시도해볼 수 있었던 이유 또한, 함께할 수 있는 수비대장이 누구도 아닌 훈이였기 때문이었다.
“훈아! 태엽 감아!”
“알겠어!”
급박한 전투 속에서, 구체적인 오더를 주고받을 여유는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안과 훈이는, 눈빛과 제스쳐. 혹은 간단한 한 두 마디만으로 서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간단한 수준의 의사소통 뿐 아니라, 제법 복잡한 작전까지도 말이다.
[수비대장 ‘간지훈이’가, ‘어둠의 시계태엽’ 마법을 캐스팅합니다.]
어둠의 시계태엽은, 특정 대상의 ‘시간’을 임의로 컨트롤하는 마법이다.
시전자가 마법을 캐스팅하는 시간에 비례하여, 대상의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마법.
시전자는 최대 10초까지 태엽을 감을 수 있는데, 만약 태엽을 전부 감는다면 대상의 시간이 5초 이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때문에 이 스킬은, 보통 생존스킬로 많이 사용되었다.
죽기 직전인 아군의 시간을 되감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지금 이 시계태엽 마법을 생존용으로 사용하려는 게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내구력을 가진 류첸의 방어진들을, 단숨에 부수기 위해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9…… 8…… 7…… 지금!!’
훈이의 캐스팅 시간을 측정하던 이안이, 돌연 소환마법을 발동시켰다.
우웅-!
그리고 이안의 마법이 발동되자마자, 어마어마한 몸집을 가진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쿵-!
그는 바로 전투 초반에 소환해제 했었던, 이안의 비밀병기 중 하나인 토르!
전장의 한복판에 소환된 토르는, 들고 있던 거대한 망치를 그대로 치켜 올렸다.
그워어어-!!
[소환수 ‘토르’의 고유능력, ‘파괴의 망치질’이 발동합니다.]
[소환수 ‘토르’의 방어력이 일시적으로 200%만큼 증가합니다.]
이어서 토르의 망치를 향해, 강렬한 황금빛 물결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 * *
손에 땀을 쥔 채 방송을 시청하던 나지찬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뭐지? 이번엔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가 보기에 이안은 분명, ‘파괴의 망치질’로 방어진을 부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방어진은 성벽과 같은 ‘무생물’ 타입의 물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때문에 파괴의 망치질 데미지가 추가로 강력하게 들어갈 것이니 말이다.
성벽이나 방어타워, 혹은 무속성의 쉴드와 같은 대상에 50~500%의 랜덤한 추가피해를 입히는 파괴의 망치질.
물론 해봄직한 시도였고, 이안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미 첫 시도에서 실패했다는 거지.’
사실 이안은 이미 전투 초반에, 이 비슷한 전략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안이 의도한 대로 방어진에 강력한 피해를 입히는 데에도 성공했었다.
문제는 방어진이, 망치질 한 번에 깨어지지 않았다는 점.
오히려 후폭풍으로 사망 직전까지 몰린 토르를, 이안이 소환해제 하였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시도한다는 것은……. 도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파괴의 망치질에 부여되는 추가피해량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50~500%라는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500%에 가까운 한계 계수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이번에는 방어진을 부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지찬이 ‘도박’이라고 한 것은, 이안이 운 좋게 높은 계수가 터지길 바란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런 류의 도박은 이안 스타일이 아닌데…….’
하지만 나지찬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이것 이상의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때문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스크린에 더욱 집중하였다.
망치의 차징(Charging)이 끝나는 5초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쾅-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토르의 망치가 방어진의 결계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확인한 나지찬은, 입가에 쓴웃음을 떠올렸다.
방어진에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역시, 한 번 실패한 시도가 지금에 와서 될 리가……?!’
하지만 나지찬의 실망도 잠시!
“……!”
분명히 떨어져 내렸던 토르의 망치가 또다시 번쩍 들어 올려져 있었고
콰콰쾅-!
이어서 한 번의 망치질이 추가로 방어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구구웅-!
“이게 대체……!”
경악한 나지찬의 입이 어느새 쩍 하고 벌려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 * *
토르의 망치가 최대치의 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5초라는 차징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훈이의 시계태엽은, 최대 5초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이안이 이용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망치가 떨어져 내리자마자 태엽을 감아버리면, 연속해서 두 번의 망치질을 할 수 있을 거야.’
망치가 떨어져 내려 데미지가 들어간 직후에 5초의 시간을 되감아버리면.
자연히 토르의 망치는 차징 이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러면 15분이라는 재사용 대기 시간을 무시하고, 두 번의 망치질이 연달아 떨어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콰콰쾅-!!
그리고 이안의 이 전략은, 여지없이 성공하고 말았다.
쩌정- 쩌저정-!
마치 철벽처럼 류첸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핏빛의 방호막들이, 일제히 터져나갔으니 말이다.
이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르가수스의 등 위에서 그대로 도약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은 또다시 활 시위를 잡아당겼다.
류첸이 다시 방어진을 생성하지 못하도록, 그의 마법 캐스팅을 끊어버린 것이다.
피핑- 피피핑-!
이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이안을 향해, 한 마리 흑기린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까망이! 어둠의 날개!”
푸릉- 푸르릉-!
어둠의 날개는 광역 공격스킬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먼 거리를 한번에 이동할 수 있는 돌진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안은, 까망이의 등에 올라타 류첸을 향해 쇄도하였다.
쐐애애액-!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날개를 펼친 카르세우스와 뿍뿍이가 흉포하게 날아올랐다.
크롸아아-!!
캬아아오!
이어서 전방을 향해 입을 쩍 벌리는, 두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
콰아아아-!
둘은 전방을 향해 동시에 브레스를 뿜어내었고, 이안의 앞을 막아서려던 환영의 마수들은 그대로 밀려나거나 녹아내릴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무 방해 없이 단숨에 류첸의 앞까지 도착한 이안이, 넣어두었던 검을 꺼내들며 그대로 그를 향해 뛰어내렸다.
콰콰쾅-!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그림같이 맞아떨어지는 이안의 연계 플레이!
그리고 이 완벽한 공격을, 류첸이 막아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크으윽……!”
세 자루의 환영검에 무자비하게 몸이 꿰뚫린 류첸은, 그대로 전장 밖으로 아웃될 수 밖에 없었다.
[마군의 수비대장, ‘류첸’유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류첸’유저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류첸’ 유저가 전장을 이탈합니다.]
결국, 불가능해보였던 두 번째 킬까지 만들어낸 이안.
[천군의 돌격대장, ‘이안’ 유저가 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해냈어……!’
이안은 저도 모르는 사이, 두 주먹에 불끈 힘을 주었다.
이론상으로나 가능할 법한 연계공격을 성공시키자, 온 몸에 짜릿한 희열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안의 눈 앞에,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오르고 말았다.
[마군의 대장군 ‘카이’유저가, 천군 수비대장 ‘간지훈이’ 유저를 처치하였습니다.]
[‘간지훈이’ 유저가 전장을 이탈합니다.]
[마군의 대장군, ‘카이’ 유저가 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 *
‘신의 말판’ 전장의 게임방송은, YTBC의 채널에서 공개적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YTBC의 방송을 통해 방송을 시청중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 많은 이안의 열성팬들은, TV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즐기고 있었다.
방송이 스트리밍되는 커뮤니티의 채널에 접속하여 방송을 시청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방송을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외서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외 또한 각국의 대표적인 게임방송사를 통해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지만, 많은 유저들이 인터넷에서 함께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안을 비롯한 랭커들의 컨트롤을 찬양하며, 거의 ‘광기’에 가깝게 방송에 열광하는 카일란 팬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이안은 정말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었다.
신의 말판 전장에서 그가 보여준 행보 하나하나가, 수많은 카일란 팬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이안갓은 카일란의 신이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저런 컨트롤이 가능할 리 없다고!]
[오오……. 찬양합니다 이안갓. 내일 영지전 무조건 이겨야 되는데, 부디 은총을 내려주소서…….]
[난 내일 바로 캐릭터 초기화 해야겠어. 대체 난 왜 지금까지 소환술사라는 갓 직업을 두고 쓰레기 같은 마법사를 하고 있었던 거지?]
[레벨 25짜리 마법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친구.]
[시끄러. 어쨌든 난 마법사 때려 치고 소환술사로 갈아탈 거라고.]
[내가볼 땐 소환술사가 갓직업이 아니고 이안이라는 클래스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 광기어린 찬양일색의 채팅들 속에서.
가끔 이안을 찬양하지 않는 몇 몇 유저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심지어, 이안을 증오(?)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갓뎀, 역시 저 녀석이 맞았어!]
[내가 뭐랬어? 처음부터 수상하댔잖아. 후우…….]
[뭘 말하는 거야 브로들. 너희 언제 이안 만난 적 있어?]
[있지. 아마 너도 만난 적 있을 걸?]
[음……?]
[정령의 도장 9층. 아직까지 버티고 서 있는 그 수문장 자식 기억 안나?]
[미친! 설마 9층 그 통곡의 벽 얘기하는 거냐?]
[그렇다니까. 거기 그 놈이, 역시 이안 놈이 확실해.]
[젠장, 내가 지금까지 저놈한테 바친 영웅점수가 대체 몇 점인거지?]
[후……. 카이형님……! 제발 저 놈 때려잡고 정의 구현좀……!!]
어쨌든 이 수 많은 전세계 팬들의 관심 속에서.
신의 말판 최후의 전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영상미를 뿜어내며 말이다.
그리고 이 전투의 끝에.
대전장을 밟고 선 사람은, 결국 이안과 카이. 두 사람 뿐이었다.
쉴 새 없이 채팅하던 시청자들도, 일시에 조용해졌다.
이 전장의 클라이막스를, 1초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싶었으니 말이었다.
* * *
대전장의 한복판에서 마주 검을 겨눈 이안과 카이.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카이의 입이 먼저 천천히 떼어졌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이안.”
“뭐가 말이지?”
저벅- 저벅-
대검을 살짝 아래로 늘어뜨린 카이가, 천천히 이안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전장이 결국. 너와 나, 두 사람의 전장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카이의 말에 곧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피식 웃어 보일 뿐이었다.
“왜 웃는 거지?”
카이의 물음에, 이안은 다시 실소를 터뜨렸다.
잠시 자리에 멈춰, 이안의 대답을 기다리는 카이.
그리고 곧, 이안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전장 위에 지금, 우리 둘만 있다고 생각해?”
이안의 말이 끝나자, 그의 뒤에 있던 소환수들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다.
크르릉-!
그에 카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소환수들이야……. 뭐, 너의 일부나 마찬가지니까.”
저벅- 저벅-!
다시 적막이 휩싸인 전장 안에, 묵직한 발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이안 또한 마주 걷고 있다는 점.
잠시 후. 도약하면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 멈춰 섰다.
“마지막이다, 이안. 최선을 다해서…… 네놈을 내 앞에 꿇려보도록 하지.”
스르릉-!
카이는 늘어뜨려 놓았던 대검을 치켜들어, 이안을 향해 겨누었다.
하지만 그런 카이를 보며, 이안은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은데.”
우우웅-!
이안이 입을 떼자마자, 들고 있던 그의 검에서 찬란한 백색 광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전처럼 세 개의 검영(劍影)을 만들어내며 이안의 주변에 떠올랐다.
이안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본 카이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물론 이 전투를 여기까지 끌고 온 이안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지금의 자신감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뭘 믿는 거지? 이제 생명력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뿐.
카이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방금까지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이안은 지쳐있었고, 그런 그에게 숨 고를 시간을 줄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유령보……!”
카이의 입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또 다시 빨려 들어간다.
이제 이안과의 거리는, 그야말로 검을 뻗으면 닿을 정도.
이어서 카이는, 전력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하였다.
“……!”
하지만 카이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이어서 당황한 카이의 귓전에,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의 속박……!]
분명히 자신의 검에 쓰러졌던, 훈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뭔가 조금 더 음침한 듯 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분명히 훈이의 목소리.
카이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헛바람을 들이켰고, 이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오늘은……. 내가 이긴 것 같군.”
위이잉-!
이안의 신형이 흐트러지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세 갈래로 나뉘어 카이의 주변을 둘러쌌다.
이어서 허공에 떠오른 아홉 자루의 검이, 일제히 카이를 향해 쇄도하였다.
콰쾅- 콰콰쾅-!
그리고 그것으로.
“크허어억-!”
길었던 신의 말판 최후의 전투가, 막을 내렸다.
[마군의 대장군, ‘카이’유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이’유저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카이’ 유저가 전장을 이탈합니다.]
고오오오-!
어두운 먹구름으로 뒤덮여있던 전장의 하늘이 양 갈래로 갈라지며, 새하얀 빛줄기가 이안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천군 진영의 돌격대장 ‘이안’이, 마군 대장군 ‘카이’를 처치하였습니다.]
[천군의 돌격대장, ‘이안’ 유저가 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마군 진영의 대장군이 패전하였습니다.]
[대장군이 패전하였으므로, 전투가 종료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한 뒤, 번쩍 검을 치켜드는 이안.
이어서 이안의 눈 앞에, 그에게만 보이는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전설의 시작’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무대를 향한 이안의 ‘첫걸음’이었다.
< 1부 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