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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597화 (61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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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 (2)

* * *

붉은 물결이 일렁이며, 그 사이사이로 사나운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

키아오- 키아아악-!

사방에서 정신없이 울부짖는 수많은 붉은 마수들.

그 한가운데 포위된 이안은,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젠장, 뭐 이리 물량이 많은 거야?’

까강- 깡-!

달려드는 마수들의 공격을 튕겨 낸 이안은, 숨으로 고르며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가 찾는 것은 바로, 보좌관 모쿠바.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모쿠바를 얼른 처치하는 것이, 지금 이안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거의 빈사상태인 모쿠바는 감히 이안과 훈이에게 덤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패시브 스킬들이 팀 플레이에서 무척이나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사클래스인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이 수많은 환영마수들의 전투 능력을 20퍼센트 가까이 상승시키니 말이다.

‘찾았다!’

모쿠바의 그림자를 발견한 이안이, 재빨리 몸을 비틀며 도약하였다.

모쿠바를 향해 쇄도하는 이안의 검격.

모쿠바의 생명력은 그야말로 실금만큼 남아 있었고, 그것은 정말 한두 방만 제대로 된 공격을 집어넣으면 처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시도는, 류첸의 결계에 의해 또 한 번 막혀 버렸다.

지이잉-!

-알 수 없는 힘에 가로막혔습니다.

결계의 반탄력에 의해 튕겨 나간 이안은,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빨리 놈을 마무리 짓고 훈이를 도와야 하는데…….’

훈이는 지금 대장군 카이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싸움이라기보다는 언데드 소환수들을 활용한 ‘버티기’에 더 가까웠다.

애초에 실력도 뛰어난 데다 버프까지 월등한 카이를, 훈이가 대등하게 상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앞으로 5분. 5분도 길어. 그 안에 어떻게든 모쿠바를 처치해야 해.’

훈이가 카이에게 당하기 전에 먼저 모쿠바를 처치해야만, 이 전투에 승산이 생기는 것.

하지만 모쿠바와 류첸의 컨트롤은, 그리 만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특히 둘 중에서도 류첸의 스킬들은,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진법과 마수들을 활용해 계속해서 움직임을 차단해 버리니 아무리 이안이라도 쉽게 모쿠바에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방법은 공간 왜곡뿐인데…….’

공간 왜곡을 활용해서 모쿠바에게 순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손쉬운 방법.

하지만 공간 왜곡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제되는 조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는 모쿠바의 지근거리까지 소환수를 접근시킬 것.

둘째로는 공간왜곡을 발동시킬, 0.5~1초의 캐스팅 시간을 확보할 것이었다.

‘믿을 수 있는 건, 할리뿐인가?’

계획을 잡은 이안은, 날카로운 눈으로 ‘각’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이안의 공간왜곡을 파악한 류첸과 모쿠바는, 쉽게 그 틈을 내어 주지 않았다.

반대로 이안의 소환수를 하나씩 끊어 내기 위해 집중 공격을 해 대니, 그 공격을 막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다.

모쿠바에게 접근한답시고 할리를 섣불리 보냈다가는, 오히려 할리가 점사를 버텨 내지 못하고 역소환되어 버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엘카릭스와 닉의 고유 능력을 동시에 발동시키면서 단숨에 기회를 만들어야 해.’

침착한 표정이 된 이안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닉, 홍염의 날갯짓!”

끼요오오-!

이안이 오더를 내리자, 후방에 있던 닉이 빠르게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마수들의 공격이 닉을 향해 집중되었다.

캬아아악-!

마수들이 쏘아 낸 마력의 구체들이 하늘을 수놓았고.

화르륵-!

닉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들이 그 위를 뒤덮었다.

하지만 불길로 뒤덮는다 하여 마력의 구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 닉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환수 ‘닉’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 ‘닉’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닉의 생명력 게이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이안과 할리는 야금야금 모쿠바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닉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온 홍염의 날갯짓은, 훌륭한 계수를 가진 광역 공격 마법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마법을 뿜어낸 것이 아니었다.

단지 류첸과 모쿠바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가리기 위한 트릭이었을 뿐!

이안은 닉이 뿜어내는 불길을 더욱 넓게 퍼뜨리기 위해, 핀의 광역기까지 동시에 발동시켰다.

콰아아아-!

그리고 핀의 ‘분쇄’가 닉의 불길에 더해지니, 전장의 하늘은 불길과 아지랑이로 완벽히 뒤덮이고 말았다.

‘뭐지? 설마 광역기로 마수들을 다 쓸어 버리려는 시도인가?’

이안의 의도를 오해한 류첸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후후, 어리석은 놈.’

광역기로 마수들을 한 번에 쓸어 담으려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나쁜 ‘악수惡手’였기 때문이었다.

류첸의 수많은 마수들은 대부분이 환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실재하는 ‘진짜’ 마수 몇몇만 광역기를 피해 보전시킨다면, 다시 증식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히 3초 뒤.

류첸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미소는 순식간에 지워질 수밖에 없었다.

“미친, 막아! 피닉스부터 먼저 조져!”

화염의 불길이 지나간 사이, 이안을 비롯한 소환수들이 빠르게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모쿠바와의 거리를 제법 좁힌 것.

심지어 최전방에 있는 피닉스의 경우, 정말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끼요오오-!

핀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마력의 구체를 쏘아 대는 류첸!

하지만 류첸과 모쿠바가 반응하기도 전에, 닉의 다음 고유능력이 먼저 발동되었다.

전장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며, 허공을 수놓던 투사체들이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환수 ‘닉’의 고유 능력, ‘태양신의 비호’가 발동됩니다.

-소환수 ‘닉’이 ‘무적’ 상태가 되었습니다.

-‘닉’의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됩니다.

-‘태양신의 비호’ 범위 내의 모든 공격 스킬이 무효화됩니다.

우웅, 우우웅-!

닉의 스킬을 처음 보는 류첸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캐스팅이 꼬여 버렸다.

황금빛의 이펙트를 광역 공격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칠세라 할리의 온몸에 바람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소환수 ‘할리’가 ‘바람의 수호자’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민첩성이 나머지 전투 능력치를 합한 수치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크허어엉-!

극한의 민첩성을 뽑아낸 할리의 그림자가, 미친 속도로 전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류첸은 다시 침착하게 소환 마법을 캐스팅하였다.

“환영복제술!”

그러자 전장을 메우고 있던 마수의 환영들이 일시에 사라지더니, 좀 더 후방으로 재배치되었다.

이전에는 환영들이 이안과 이안의 소환수들을 둘러싸고 있었다면, 이젠 모쿠바와 류첸의 주변을 방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수들은, 일제히 할리를 향해 공격을 퍼부어 대었다.

모쿠바의 버프를 받은 마수들의 공격력은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콰쾅- 콰콰쾅-!

순식간에 절반까지 떨어져 내린 할리의 생명력 게이지.

크허엉-!

하지만 할리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마수들을 뚫고 전진하였다.

극한의 민첩성을 활용해 피할 수 있는 모든 공격들을 피해 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이 준비해 두었던 마지막 한 수가 발동되었다.

“엘, 배리어!”

“알겠어요, 아빠!”

이안이 준비한 마지막 카드인, 엘카릭스의 ‘드라고닉 배리어’가 펼쳐진 것이다.

위이잉-!

신의 말판 전장에선 의무대장을 제외하고는 회복 계열의 마법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드’계열의 마법은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고, 때문에 엘카릭스의 배리어는 이안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서포팅 마법이었다.

파파팡-!

마수들의 공격을 흡수하며, 할리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엘의 드라고닉 배리어.

달려드는 마수들을 떨쳐 내며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할리, 조금만 더……!’

이안의 바람이 닿았음인지, 할리는 더욱 맹렬히 모쿠바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정말 모쿠바의 지근거리까지 접근에 성공한 할리.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모쿠바는, 더 이상 피하는 것을 그만두고 할리를 막기 위해 방패를 치켜들었다.

모쿠바는 기사 클래스였고, 기사 클래스의 굼뱅이 같은 기동력으로는 할리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 류첸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이렇게 되면 방법은…….’

또다시 맹렬히 머리를 회전시키는 류첸.

‘어떻게든 캐스팅을 막는 수밖에 없겠어.’

할리가 모쿠바에게 뛰어드는 순간, 이안은 공간 왜곡을 시전할 것이다.

그것을 막아 낼 마지막 방법은, 이안이 공간왜곡을 캐스팅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류첸은 도박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마령의 힘이여……!”

고오오오-!

류첸의 양손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자 전장의 모든 환영 마수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웅- 우우웅-!

전장에 있던 모든 마수들이, 이안을 에워싸며 솟아올랐다.

“……!”

류첸의 의도를 파악한 이안은,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젠장,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공간왜곡은 캐스팅 시간이 거의 없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마수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까지, 무시하고 발동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킬이 발동되는 그 찰나지간에 공격받는다면, 캐스팅이 취소되어 버리니 말이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야 하는데……!’

모든 마령들이 이안과 다른 소환수들에게 몰려 있는 지금, 먼저 앞으로 나아간 할리와 닉은 이미 모쿠바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였다.

하지만 모쿠바는 자신이 랭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닥까지 떨어진 생명력으로 두 소환수를 무리 없이 상대하고 있었다.

오히려 할리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는 모쿠바.

그 말인 즉, 어떻게든 한 번의 틈을 만들어 공간 왜곡을 발동시켜야만 끈질긴 모쿠바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젠장, 내가 해내고 만다!’

이안은 으드득 소리가 날 만큼 강하게 이를 악물며, 마수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넘어서 마수들을 잠깐이라도 물러서게 만들어야만, 공간 왜곡을 발동시키는 게 가능할 것이었다.

“흐아압!”

기합성을 내지르며, 검격을 폭발시키는 이안.

그리고 그 순간.

띠링-!

이안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극한의 검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 능력, ‘바이탈리티 웨폰Vitality Weapon’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이어서 이안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우웅-!

세 자루의 백색 검이, 이안의 주변으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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