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95화 (6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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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역전극 (3)

언뜻 보기에 이안의 행동은 정말 ‘자살행위’ 그 자체였다.

대장군 카이의 뒤쪽에는, 하나 남은 마군 진영의 보좌관 유저와 수비대장이 버티고 서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전투가 시작된다면 이안은 무려 3 : 1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

이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것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마군 유저들도 최정예들이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무리수였다.

“이건, 자신감을 넘어선 만용인데…….”

조용한 전장에, 누군가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유저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건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힘들어.’

‘대체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건지 이해할 수 없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장군 카이의 앞에 선 이안이 옆으로 한 걸음 더 움직이자, 그제야 이안의 의중을 이해한 몇몇 유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어……?”

“설마 이게 되나?”

“……!”

이안이 어떤 생각으로 움직인 것인지, 하나 둘 눈치 채기 시작한 것이다.

-천군 진영의 돌격대장 ‘이안’ 유저가, 마군 진영의 대장군 ‘카이’ 유저를 공격합니다.

-‘이안’ 유저와 ‘카이’ 유저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카이와 이안의 위치는 정확히 정면이었다.

이안이 앞으로 몇 칸만 걸어가면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위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안은 정면에서 곧바로 전투를 걸지 않고 굳이 한 칸을 더 움직였다.

좌측으로 한 칸을 더 움직여, 대각선에서 카이를 공격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안의 위치는 카이와 마군 보좌관의 사이.

이것이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마군 진영의 수비대장, ‘류첸’ 유저의 특수 능력 ‘전투 지원’이 발동합니다.

-‘류첸’ 유저의 전투 능력이 40퍼센트 만큼 감소합니다.

-‘류첸’ 유저가 전투에 합류합니다.

-마군 진영의 보좌관, ‘모쿠바’ 유저의 특수능력 ‘호위’가 발동합니다.

-‘모쿠바’ 유저가 전투에 합류합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유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너무도 당연하고 누구나 예상했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1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추가로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에는,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천군 진영의 수비대장, ‘간지훈이’ 유저의 특수 능력. ‘전투 지원’이 발동합니다.

-‘간지훈이’ 유저의 전투 능력이 40퍼센트 만큼 감소합니다.

-‘간지훈이’ 유저가 전투에 합류합니다.

메시지가 울려 퍼지자마자, 수많은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하자, 온몸에 닭살이 돋아 오른 것이다.

“와, 미친! 돌았다!”

“이런 방법이 있었네? 이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 낸 거지?”

“크으, 지려 버렸다!”

물론 훈이가 어떻게 합류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 유저들도 제법 있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되는 건데! 누가 설명 좀 해 줘!”

“수비대장 이동 가능 거리 세 칸 아니었어?”

이안과 훈이 사이의 거리는 아직도 네 칸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수비대장의 이동 가능 거리인 세 칸으로는 분명히 한 칸이 부족한 상황.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선 수비대장의 특수 능력인 ‘전투 지원’의 스펙을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수비대장 : 진영의 양측 중심에 위치하며, 유저들의 전투 지원을 담당한다.

적에게 공격받을 시, 능력치가 15퍼센트 상승하며, ‘수비모드’를 활성화할 시 추가로 방어력이 15퍼센트 증가한다.

*전투 지원 : 수비대장은 자신의 이동 가능 범위 안에서 전투가 벌어질 시, 전투에 참전하여 아군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참전 시, 전투 능력이 4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이렇듯 수비대장은 이동 거리 안에 있는 아군이 전투를 벌일 시, 특수 능력을 발동시켜 참전할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이동 가능 범위’의 판정이 전투가 일어나는 모든 ‘타일’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훈이는 분명히 이안과 네 칸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하지만 전투에 참전하여 이안을 공격한 마군 진영 보좌관과의 거리는 정확히 ‘세 칸’이었다.

보좌관이 서 있는 타일이 이동 가능 범위 안에 들어옴으로 인해, 참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안이 좌측으로 한 칸 움직이지 않고 정면에서 대장군에게 전투를 걸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안과 두 칸 떨어져 있던 보좌관은 이안을 공격하기 위해 한 칸 우측으로 움직여야 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훈이는 참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안과의 거리는 다섯 칸, 보좌관과의 거리는 네 칸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이것은 이안과 훈이가 서너 턴을 써 가며, 함께 설계한 결과물이었다.

“햐, 이렇게 되도 아직 불리한 싸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안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겠어.”

“맞아. 3 : 1과 2 : 1은, 그 느낌부터가 확실히 다르지.”

“여기서 만약 이안이 카이 목 따면 오늘부터 난 영원히 이안갓 팬이다.”

“뭐래. 난 이미 팬임.”

대부분이 이안의 설계를 깨달은 관중석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특히 천군 진영의 관중석은 무척이나 들뜬 분위기였다.

사실 그것은 당연했다.

이안의 역전극을 보고 싶은 마음이 무척 간절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천군 진영이 승리한다면, 전투 승리로 인한 공헌도 보너스와 영웅 점수가 제법 들어올 테니까.

“이거, 재밌게 돌아가는군.”

모든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카이가, 이안을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이안 또한, 마주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직 여유로운데?”

“당연하지.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한 거지?”

“후후.”

“1 : 3이 아니고 2 : 3이면……. 설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분명히 카이는, 이안이 이번에 보여 준 한 수에 또 한 번 감탄하였다.

현재 천군 진영의 상황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최선의 한 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최선의 한 수였을 뿐.

이것이 천군 진영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최고의 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카이가 보기엔 그저, 패배 직전의 마지막 발악 정도로 보였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말의 숫자가 같다고는 하지만, 마군 진영의 말들이 옹골찬 알짜배기라면 천군 진영의 말들은 속 빈 강정이었으니 말이다.

이어서 이안과 카이의 짧은 대화를 끝으로, 전장에 있던 다섯 유저의 신형이 대전장으로 워프되었다.

위이잉-!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유저들의 시선이 대전장으로 집중되었다.

* * *

신의 말판 전장뿐만 아니라 용사의 협곡 모든 요일 전장에는, 관중들이 확인할 수 있는 커다란 상황판이 존재한다.

애초에 기획 초기 단계부터 방송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콘텐츠였기 때문이었다.

양 진영의 킬 포인트와 스코어는 물론, 전투의 세부적인 정보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장의 상황판.

그리고 ‘신의 말판’ 전장의 상황판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정보들이 떠올라 있었다.

*버프 현황

-마군 진영

*대장군 카이

-기본 버프 : 대장군의 위엄(전투 능력 : +100퍼센트/직업 능력 : +100퍼센트)

-추가 버프 : 없음

-최종 버프 : 전투 능력 : +100퍼센트

직업 능력 : +100퍼센트

*수비대장 류첸

–기본 버프 : 장군의 용맹(전투 능력 : +70퍼센트/직업 능력 : +50퍼센트)

-추가 버프 : 전투 지원 페널티 (전투 능력 : –40퍼센트)

-최종 버프 : 전투 능력 : +30퍼센트

직업 능력 : +50퍼센트

*보좌관 모쿠바

–기본 버프 : 정예 장교 (전투 능력 : +35퍼센트/직업 능력 : +25퍼센트)

-추가 버프 : 없음

-최종 버프 : 전투 능력 : +35퍼센트

직업 능력 : +25퍼센트

-천군 진영

*돌격대장 이안

-기본 버프 : 장군의 용맹(전투 능력 : +70퍼센트/직업 능력 : +50퍼센트)

- 추가 버프 : 공격자 버프(전투 능력 : +15퍼센트)

- 최종 버프 : 전투 능력 : +85퍼센트

직업 능력 : +50퍼센트

*수비대장 간지훈이

–기본 버프 : 장군의 용맹 (전투 능력 : +70퍼센트/직업 능력 : +50퍼센트)

-추가 버프 : 전투 지원 페널티(전투 능력 : –40퍼센트)

-최종 버프 : 전투 능력 : +30퍼센트

직업 능력 : +50퍼센트

신의 말판 전장에서는, 이 상황과 직책에 따른 이런 세부적인 버프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 버프들이 여러 가지 변수를 만들어 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판에 떠올라 있는 복잡한 정보들은, 이미 이안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전투 지원 페널티 때문에 수비대장들이 디버프를 많이 받기는 했을 테지만, 그래도 최약체는 보좌관이겠지.’

디버프로 인해 전투 능력은 미세하게 보좌관이 높을 테지만, 그래도 두 배나 차이 나는 직업 능력 버프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더해서 흑마법사인 수비대장 ‘류첸’보다는 기사 클래스인 모쿠바가 껄끄러웠으니 이안은 모쿠바를 먼저 공략할 생각이었다.

바로 옆에 소환된 훈이를 향해 이안이 나직한 목소리로 오더했다.

“훈아, 디버프 위주로 마법 운용해 줘. 딜은 내가 넣을 테니까.”

이안의 오더에 훈이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우쒸, 또 멋있는 건 형이 다 하려고?”

하지만 이안에게 그런 투정이 먹힐 리 없었다.

“시끄러, 인마. 너 지금 디버프가 40퍼센튼데, 딜이 제대로 박히겠냐?”

“그래도 난 세다고!”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그게 제일 고효율이니까.”

“알았어…….”

훈이는 이안에게 살짝 떼를 써 봤지만, 애초에 그의 오더를 따를 생각이었다.

이안의 활약과 전략 덕에 여기까지 왔으니,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한번 심통을 부려본 이유는, 뭔가 자괴감(?) 같은 것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이안을 넘어 전장의 주인공이 되리라 꿈꿨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태양 앞의 반딧불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훈이 입장에서는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 형은, 그냥 규격 외의 존재로 생각해야 되는 건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훈이.

그런데 그때, 이안이 훈이를 향해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훈이에게 달콤한 유혹과도 같은 말들이었다.

“이번 전투에선 네 역할이 제일 중요해, 훈아.”

“그, 그래……?”

“저기 저 녀석 보이지?”

“응, 상대 수비대장이었던가?”

“맞아. 그리고 저 녀석이, 중국 서버 최고의 흑마법사라더라.”

“……!”

순간 반짝이는 훈이의 눈.

그리고 이어지는 이안의 한마디!

“이길 수 있지 훈이?”

“다, 당연히……!”

“쟤가 중국 서버 최고의 흑마법사라면, 넌 우주 최강 흑마법사잖아.”

이안의 이야기를 들은 훈이는, 언제 축 쳐져 있었냐는 듯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지금 훈이의 머릿속에는 ‘우주 최강 흑마법사’라는 단어만이 가득 차 있었다.

“좋았어!”

그리고 그 순간…….

-5초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4초 후, 전투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한쪽 진영이 전멸하거나 ‘대장군’ 유저가 사망할 시, 전투가 종료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기분 탓인지 더욱 묵직하게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사실상 전장의 승패가 결정 나게 될,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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