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 신병 (1)
장교 계급에 속해 있는 직책은 세 종류이다.
첫째로는, 대장군을 지키며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보좌관.
둘째로는, 돌격대장에 버금가는 기동력으로 적의 허점을 찌르는 정찰대.
마지막으로는, 준수한 기동력과 돌파능력으로 전장의 최전방을 휘젓는 기마대.
그리고 이 세 직책 중에서 처음부터 이안이 고려하지 않은 직책이 하나 있었다.
‘보좌관도 나쁘진 않지만, 너무 수비적이야.’
이 신의 말판 전장에서 보좌관이란 직책은 어쩌면 장군들보다 중요할 수 있는 직책이었다.
보좌관의 기량에 따라 ‘대장군’의 생사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장군의 생사가 바로, 전쟁의 승패와 직결되는 것.
특히 가까운 아군의 전투에 참전이 가능한 수비대장과의 시너지를 잘만 이용한다면,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그림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직책이 바로 보좌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적진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이안에게 보좌관이란 직책은 애매하다.
이미 적진의 한복판에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대장군이 있는 위치와는 너무 멀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안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정찰대와 기마대 중 과연 이안이 고른 직책은 무엇이었을까?
-천군 진영의 병사 유저 ‘이안’이 기마대 직책을 얻었습니다.
-‘이안’유저의 전투 능력치가 재설정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이안의 주변으로 황금빛 물결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신의 말판, 첫 번째 승격을 알리는 화려한 이펙트.
이안이 선택한 직책은, 바로 ‘기마대’였다.
-기마대
계급 : 장교
이동 가능 거리 : 5칸(후방으로 이동 불가)
최전방 병사의 바로 뒷 열에 위치하며, 최대 다섯 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직선 경로로 움직일 시(대각선 포함), 한 칸을 이동할 때 마다 공격력이 2퍼센트 상승합니다.
(모든 이동 중에 한 번이라도 방향이 꺾인 적이 있다면, 공격력 버프는 적용되지 않음.)
최대 이동거리(5칸)을 직선으로 달려 적을 공격할 시, 공격력이 15퍼센트만큼 추가로 상승합니다.
*돌격하여 적진의 최후열에 도달한다면, 그 뒤쪽으로 이동시 아군의 최후열로 소환됩니다.
기마대와 정찰대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정찰대의 경우 돌격대장과 비슷한 여덟 칸이라는 이동거리를 가지지만, 적에게 공격받을 시 전투 스텟이 살짝 떨어지게 되는 디스 어드밴티지가 있다.
반면 기마대의 경우 후방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페널티가 있지만, 다섯 칸이라는 준수한 이동거리와 직선이동 공격 시 추가 공격력 버프라는 메리트를 가진다.
때문에 이안은, 선택하는 데 제법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다.
‘정찰대가 좀 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기마대가 확실히 이득이야.’
이동거리 여덟 칸과 다섯 칸의 차이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특히 이렇게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상황에선, 포지션 선점을 위해 이동거리 한 칸 한 칸이 소중했다.
하지만 이안은 과감하게 기마대를 골랐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 이안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기마대의 장점을 살리기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턴에 한 놈 잡고, 그 다음 턴에 바로 탈출한다.’
이안이 지금 위치한 곳은, 적진의 최후열로부터 7칸 떨어진 곳이었다.
그 말인 즉, 두 턴이면 끝까지 달려갈 수 있다는 소리이다.
그리고 맵의 끝에 도달하면, 기마대만의 특성을 이용해 아군의 진영으로 워프가 가능하다.
적진의 최후열 밖으로 달리면, 아군의 최후열로 이동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안이 타깃으로 잡은 목표는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마군진영의 대장군을 지키는 ‘보좌관’이었다.
보좌관의 위치는 이안으로부터 정확히 다섯 칸 거리.
보좌관이 움직이지 않고 다음 턴에 수비 모드를 고수한다면, 기마대의 공격 버프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 칸당 2퍼센트에 추가 버프 15퍼센트까지. 총 25퍼센트 버프를 먹을 수 있겠군.’
물론 돌격대장의 공격 버프와 달리 모든 전투 스텟 증가가 아닌 ‘공격력’스텟만 증가하는 것이었지만, 그 계수는 훨씬 더 높았다.
이 버프에 선공버프까지 더해진다면, 분명 괴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이안의 장비들이 다른 유저들의 그것에 비해 최소 두 배 이상 좋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보좌관 정도는 그대로 썰어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변수는 마군진영의 수비대장인데…….’
이안의 예리한 눈빛이, 적진의 우측에 자리 잡고 있는 ‘수비대장’을 향했다.
이안이 공격 루트로 잡은 적진의 우측방.
그리고 그곳을 방어하는 수비대장은 살짝 전방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수비대장이 앞으로 나올수록, 병사들이 더 안전하게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다음 턴에, 두 칸은 앞으로 움직일 거야. 그래야만 해.’
수비대장이 전방으로 두 칸 더 나와 줘야만, 이안이 아무 방해 없이 보좌관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안은,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보좌관이 둘이나 지키고 있는 대장군이 이번 턴에 위험해질 리는 없었으니, 수비대장의 입장에선 좀 더 공격적인 진영을 형성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작전은 완벽하고……!’
이안은 눈을 반짝이며, 전방의 적들을 차례차례 살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둘 양 진영의 턴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마군’ 진영이 승리하였습니다!
-‘천군’ 진영의 병사가 전장 바깥으로 소환됩니다.
-‘마군’ 진영이 승리하였습니다!
-‘천군’ 진영이 승리하였습니다!
턴이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전장에서 사라지는 양측 진영의 유저들.
이안은 마치 자신이 직접 플레이하기라도 하듯, 모든 유저들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주시하며 분석했다.
‘휴, 저 얼간이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기 들어간 거야?’
‘오호? 저 친구는 제법 머리가 잘 굴러가는데?’
가만히 자신의 턴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전혀 지루함 없이 즐기는 이안.
그리고 그 사이, 하루라도 빨리 아웃되고 싶은 불나방(?) 하나가, 이안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였다.
-마군 진영의 정찰대 ‘왕차이’ 유저가, 천군 진영의 기마대 ‘이안’ 유저를 공격합니다.
-‘왕차이’ 유저와 ‘이안’ 유저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옳거니!’
정찰대의 경우, 선제공격 시 스텟이 감소된다.
물론 선공 버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원래의 스텟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하여도 다른 ‘장교’ 직책들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공격받은 이안의 양쪽 입꼬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 귀에 걸려 있었다.
‘크, 정찰대로 날 공격하다니. 실력에 자신이 있나 보지?’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어쨌든 지금 이 전장 안에 있는 유저들은, 전부 세계랭킹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유저들이기 때문.
해서 이안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를 상대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하는 입장에선 정말 지옥 같은 경험이라 할 수 있었다.
* * *
왕차이는 중국의 광동 지역 서버 기사 클래스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랭커였다.
모든 클래스 통합 랭킹으로 따지자면, 대략 50위권 정도의 랭킹.
물론 이 정도도 충분히 뛰어난 수준이기는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만한 급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신의 말판 전장에는 전 세계에서도 48명만이 선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왕차이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랭크를 더 올릴 절호의 기회야.’
왕차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마군 진영의 용사의 마을 중대장 NPC가 왕차이가 가진 히든 클래스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왕차이는 용사의 길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으며, 성능 좋은 용사 장비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단일 서버 랭킹 50위권에 불과한 왕차이가 이곳에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후후, 역시 게임은 템발이지.’
심지어 왕차이는 첫 턴에 천군진영의 병사를 둘이나 처치하였다.
여덟 칸이나 되는 이동거리를 최대한 활용하여 곧바로 천군진영의 측면에 파고든 것이다.
덤으로 자신을 공격한 한 병사까지 어렵지 않게 처치해 내었으니, 기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크으, 병사 따위의 공격으론, 내 중갑에 흠집도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런 왕차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천군진영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템발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수비대장이 버티고 있는 지역까지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왕차이가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마군의 본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 현재 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안이 있었다.
무려 3킬이라는 엄청난 전공을 올리며, 마군진영 안쪽까지 파고든, 늠름하기 그지없는 이안의 뒷모습.
하지만 ‘킬 1위’의 타이틀을 노리고 있는 왕차이에게 그런 이안의 뒷모습은 눈엣가시 같을 뿐이었다.
‘병사 주제에 3킬이라니. 지금까진 운이 좋았어, 친구.’
왕차이가 보기에 이안은 너무 탐이 나는 먹이였다.
기마대의 장점은 전부 공격 시에만 발동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서 공격한다면 아무 버프 없이 왕차이를 상대하게 될 테니 말이다.
심지어 이안 말고는, 다른 대안도 존재하지 않았다.
적진으로 달려봐야 수비대장이 버티고 있었으며, 심지어 남은 전력들은 거의 ‘수비 모드’를 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괜히 들어가 봐야 앞뒤로 얻어터지다 아웃당하는 일밖에 남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자, 병사로 시작해서 3킬까지는 용케 했다만. 이제 내 승급을 위한 재물이 되어 주어라!’
이미 이안을 처치하고 ‘돌격대장’으로 승격한 뒤 전장을 누비며 활약할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왕차이.
-‘왕차이’ 유저와 ‘이안’ 유저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왕차이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이안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험한 꼴 보지 말고 빠르게 기권하는 게 어때, 친구?”
“……?”
“병사로 들어왔으면 ‘전투병’직책도 간당간당했을 텐데, 그 정도 실력과 장비론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고.”
왕차이의 도발을 들은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음, 내가 지금 ‘신병’ 계급이기는 하지.”
그리고 그 말에, 왕차이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하, 진짜로 신병이었어? 이거 너무 시시하겠는데.”
양 주먹을 팡팡 마주치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잡는 왕차이.
그런 그에게 이안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조금 조심하는 게 좋을걸.”
“뭐?”
“난 그냥 신병이 아니고…….”
“……?”
“‘슈퍼 신병’이거든.”
어이없는 표정이 된 왕차이를 보며,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