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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전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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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장비는 분명, 이 ‘신의 말판’ 전장의 안에 있는 어떤 유저보다도 뛰어나다.
더해서 이안의 스텟 또한 어떤 유저와 비견할 수 없이 높을 것이다.
계급 상승이 스텟에 미치는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전투병에 비해 한 계급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으며, 전투 수련으로 올린 특수 스텟의 정도가 다른 유저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안은 대체 왜 가장 낮은 직책인‘병사’로 전장에 들어서게 된 것일까?
‘아마 계급 때문이겠지.’
이안은 용사의 협곡 계급이 이 전장에서 포지션을 선출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기준이라 확신했다.
이안은 말단 병사라도 되었지만, 리챠오와 마크 올리버는 아예 참전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안의 경우, 아이템발과 스텟발이 어우러져 겨우 턱걸이는 할 수 있었던 것.
왠지 억울해진 이안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속으로 다짐했다.
‘병사면 어때. 붙어서 이기면 그만이지.’
하지만 잠시 후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한 시스템 메시지들은, 이안의 다짐에 다시 힘이 쭉 빠지게 만들어 버렸다.
-‘신의 말판’ 전장, 세부 설정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유저의 직책에 따라 기본적으로 능력치가 보정됩니다.
-병사 : 모든 전투 능력 +0퍼센트/모든 직업 능력 +0퍼센트
-특수병 : 모든 전투 능력 +0퍼센트/모든 직업 능력 +50퍼센트
-장교 : 모든 전투 능력 +35퍼센트/모든 직업 능력 +25퍼센트
-장군 : 모든 전투 능력 +70퍼센트/모든 직업 능력 +50퍼센트
-대장군 : 모든 전투 능력 +100퍼센트/모든 직업 능력 +100퍼센트
‘하, 이건 보정이 왜 이렇게 심한 거야?’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직책으로 인한 스텟 버프 정도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템발, 수련발이 좋아도 병사 상태로는 어지간한 장교도 버겁겠는데?’
70퍼센트나 스텟이 뻥튀기되는 장군 직책부터는 정말 답이 없었고, 35퍼센트 정도의 스텟 버프를 받는 장교 정도까지가 비벼 볼 만한 수준이었다.
‘이러면 병사들은 너무 게임이 재미없잖아?’
이런저런 특수 능력에 추가 스텟까지 있는 다른 직책들과 달리 정말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설정인 병사 계급을 보며,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 상황에서 공적치를 최대한 많이 획득하려면, 이안이 할 수 있는 것은 상대 진영 병사들을 최대한 많이 처치하는 것뿐이었고, 그것은 너무 한계가 뚜렷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이안의 불만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또다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둘째, ‘병사’ 계급과 ‘장교’ 계급에 한해, 킬 포인트를 3개 올릴 때마다 직책이 상승합니다(직책은 최대 ‘장군’까지 상승이 가능합니다).
-셋째, ‘병사’ 계급으로 시작한 유저가 적 ‘대장군’을 처치할 시 전장에서 획득한 공적치가 30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확인한 이안의 표정은, 언제 시무룩했었냐는 듯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크으, 그럼 그렇지! 카일란이 날 실망시킬 리 없었어!’
분명 병사 직책은, 이 전장에서 가장 불리한 직책이 맞다.
이안이 생각했던 것처럼, ‘총알받이’포지션도 맞고 말이다.
하지만 이안이 불만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단지 ‘불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불리를 극복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없기 때문일 뿐이었다.
병사로 10킬을 올리든 장군으로 10킬을 올리든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다를 게 없다면, 너무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르지.’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킬 포인트를 쌓을 때마다 진급이 가능하고, 나아가 상대 진영의 ‘대장군’을 처치했을 시 3배의 공적치를 획득할 수 있다면 한번 의욕을 불태워 볼 만한 일이었다.
‘좋아, 전략을 찬찬히 잘 짜서…….’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추가로 시스템 메시지가 더 떠올랐다.
-넷째, 모든 전투에서 공격자의 전투 능력이 1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다섯째, 본인의 턴에 ‘수비 모드’활성화 시 한 차례 턴이 넘어가게 되며 다음 턴이 돌아올 때까지 전투 능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수비모드를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들을 전부 확인한 이안은, 멀찍이 보이는 상대 진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좋아, 룰은 이제 다 이해했으니……. 적장의 목을 따주도록 하지.’
이안은 의욕을 불태웠다.
‘병사’라는 직책의 불리함은 제법 컸지만, 그것을 극복했을 때 돌아오는 보상또한 충분히 달콤했으니까.
그리고 이안이 의지를 다지는 사이, 그를 비롯한 모든 천군진영 유저들의 주변으로, 파란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각자의 위치로 이동됩니다.
그리고 이안의 자리는…….
“……!”
최전방에서도 정중앙이었다.
* * *
위잉- 위이잉- 윙-!
연달아 울려 퍼지는 공명음과 함께, 널따란 말판 위에 각 진영의 용사들이 소환되기 시작한다.
진영별로 각각 스물넷, 총 마흔 여덟의 인원이 가지런히 도열한 신의 말판.
스물네 명의 직책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대장군 한 명 (대장군)
돌격대장 두 명 (장군)
수비대장 두 명 (장군)
의무대장 두 명 (특수병)
보좌관 두 명 (장교)
정찰대 세 명 (장교)
기마대 세 명 (장교)
병사 아홉 명 (병사)
진영의 최전방에 도열해 있는 것은, 당연히 아홉 명의 병사들이었다.
다만 조금 재밌는 것은, 아홉 명의 병사들이 전부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병사들의 위치는 앞뒤로 지그재그로 배열되어 있었던 것.
하여 정확히 설명하자면, 진영의 가장 앞 열에 다섯의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고 바로 뒤 열에 넷의 병사가 배치되어 있는 형국이었다.
그중 이안의 자리는, 전장의 정 중앙이고 말이다.
‘으, 이건 좋지 않은데…….’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전장의 중앙은 적들의 표적이 되기 아주 좋은 위치다.
그리고 이안은 결코 눈에 띄길 원치 않았다.
적 진영의 장군이나 장교들에게 표적이 되면,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게임 아웃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여야 해.’
이안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상대 진영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상대의 최전방에 있는 병사와 이안 사이의 거리는 정확히 세 칸.
‘먼저 움직이는 놈이 불리하겠군.’
전투에서는 선공이 유리하다.
특히 ‘수비 모드’를 활성화하지 않은 대상을 상대로 먼저 공격한다면, 계급 하나 차이 정도를 커버할 수 있는 스텟 격차를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이 세 칸이라는 거리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거리였다.
병사의 이동가능 거리가 두 칸이었으니, 한 칸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적 병사의 선공이 들어올 테니 말이다.
‘첫 턴에는 양 진영 맨 앞 열 병사 다섯은 죄다 수비 모드를 활성화하겠군.’
진영이 본격적으로 뒤엉키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최전방의 병사들.
하지만 바로 그 사이사이 뒤 열에 배치된 넷의 병사들에게는, 이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두 칸 앞으로 먼저 이동해 두어야, 상대 병사들이 앞으로 전진 할 수 없게 압박이 가능하다.
‘뭐, 한 번에 적진에 뛰어들 수 있는 돌격대장이 있으니……. 이런 예측들은 무의미한 건가?’
이안은 살짝 고개를 돌려 훈이를 보았다.
그의 바로 뒤편에서 씨익 웃어 보이는 훈이.
훈이의 포지션은 무려 ‘수비대장’이었다.
‘후후, 이 형을 이겨먹어 보고 싶겠지만…….’
수비대장은 ‘장군’의 직책이다.
그리고 그 말인 즉, 훈이의 서열이 지금 인간계 유저들 중 무려 5위 안쪽이라는 말이었다.
이안은 씨익 웃어 보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게 쉽지는 않을 거야, 후후.’
훈이와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하는 이안.
이어서 전장에 있는 모든 유저들의 눈앞에,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토요일 요일전장에서 승리한 팀에게 ‘선공권’이 부여됩니다.
-‘천군’의 진영에 턴이 부여됩니다.
-‘천군’ 진영의 돌격대장, ‘요나스’ 유저의 턴입니다.
* * *
전장의 첫 번째 턴을 부여받은 요나스는 독일 서버의 전사 랭커였다.
‘섬전의 광전사’라는 거창한 별명까지 가진 그는, 무려 독일 서버 전사 랭킹 1위.
게다가 독일 서버의 모든 클래스를 통틀어도 요나스의 랭킹은 2위였다.
그리고 그런 최상위권의 랭커인 만큼 그는 한껏 자신감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좋았어. 이 요나스 님의 실력을 전 세계에 떨쳐 보일 기회가 왔군.’
주먹을 불끈 쥔 요나스는, 전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직책은 바로 돌격대장.
대장군보다야 떨어지는 스펙이겠지만, 대장군을 제외하면 그의 서열은 이 안에서 최고였다.
‘크, 어떤 놈부터 노려 볼까?’
돌격대장의 이동가능 거리는 모든 직책 중 가장 길며, 1회에 한해 적을 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위치 또한 병사들의 바로 뒤편이었으니, 대장군과 보좌관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대상에게까지 한 턴에 도달이 가능하다.
심지어 적 진영의 돌격대장까지도 단번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돌격대장이나 의무대장 중 하나를 처치하는 게 가장 베스트인 것 같은데…….’
요나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그를 재촉하는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5초 내로 이동하지 않을 시, 상대 진영에 턴이 넘어갑니다.
-4초 내로 이동하지 않을 시…….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요나스는, 얼떨결에 적을 타깃팅하고 말았다.
-마군 진영의 ‘의무대장’, 릴리스 유저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요나스’ 유저와 ‘릴리스’ 유저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마군 진영의 ‘수비대장’, 알파인 유저가 전투에 합류합니다.
수비대장은 돌격대장에 비해 이동 가능 거리가 훨씬 짧다.
한 번에 최대 3칸까지밖에 이동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비대장의 특수 능력은 ‘대장군’ 다음으로 뛰어났다.
*이동 가능 범위 안에 있는 아군이 공격받을 시, 전투에 참전할 수 있습니다(참전 시, 전투 능력이 4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요나스는, 수비대장의 이 능력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이 ‘신의 말판’ 전장을 처음 겪다 보니, 경우의 수를 전부 파악해 내지 못한 것이다.
“이, 이런……!”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져 버렸고.
“와아아!”
“저거 바보 아니야? 지가 아무리 강해도 둘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게다가 둘 중 하나는 힐러잖아?”
“그러게. 저 멍청이 덕에 1킬 벌었네.”
마족 유저들의 조롱 속에, 그는 첫 번째로 아웃되고 말았다.
띠링-!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천군의 돌격대장 ‘요나스’ 유저가 패배하였습니다.
-‘요나스’ 유저가 전장 바깥으로 소환됩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후, 이거 처음부터 꼬이는데…….”
‘신의 말판’ 전장에서 돌격대장의 역할은 장기로 치면 ‘차(車)’나 ‘포(包)’에 비견할 만했다.
때문에 요나스의 실수로 인한 실점은 천군 진영을 침묵하게 만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