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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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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마을 콘텐츠는, 메인 퀘스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었다.
마을에 진입한 유저들이 메인 퀘스트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며, 그 과정에서 공적치를 쌓고 진급하는 것이 콘텐츠의 큰 골자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요일 전장에 참전하여 추가로 공적치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
메인퀘스트로 얻는 공적치가 없다면, 진급은 사실상 무척이나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으, 이거 진짜 골치 아프네.”
나지찬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파 왔다.
단번에 소대승격을 따내어 ‘신병’의 계급을 얻을 수 있는 유저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기획 단계부터 상상조차 안 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싸맨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나지찬.
옆에 있던 김지연이 그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팀장님.”
“응?”
“그냥 이안을 비롯한 세 유저들을, 예외로 훈련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손쓸 수는 없을까요?”
김지연의 말에,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다면, 자신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연 씨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카일란 세계관은 그렇게 인위적으로 건드려서는 안 돼.”
“왜요?”
“세계관 내에 수많은 AI를 가진 존재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오류와 변수가 발생해 버릴 수 있거든.”
“아…….”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치명적인 문제라도 발생하면……. 그땐 정말 감당이 안 될 거야.”
나지찬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김지연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음…….”
뭔가를 생각하는지 나지찬은 양쪽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윽고 그의 입이 다시 천천히 떨어졌다.
“기존의 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세 사람이 뜻하지 않은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겠지.”
“에…….”
“그 과정에서 다른 유저들과의 밸런스가 무너져서도 안 되고 말이야.”
“뭔가 어렵네요.”
“뭔가 어려운 게 아니고, 많이 어려운 상황이지.”
기존의 ‘룰’을 바꿀 수는 없는 상황.
그렇다면 지금 기획 팀이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세 유저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어서도 안 되며, 그로 인해 다른 유저들과의 밸런스가 깨어져서도 안 된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나지찬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세요?”
“어제까지 기획하던 콘텐츠 있잖아.”
“네.”
“지금부터 전면 중단해야겠어.”
“네에?”
나지찬의 말에, 김지연은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또한 무척이나 시일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우울한 표정이 되어 김지연을 마주보는 나지찬.
어느새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그는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새 콘텐츠 하나 짜 보자.”
“……!”
나지찬이 스크린에 떠올라 있는 이안을 비롯한 세 랭커들의 모습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세 사람을 위한 콘텐츠를 말이야.”
나지찬의 말을 들은 김지연은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로써 이번 주, 아니 다음 주까지도 철야 작업이 확정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차원의 거울 전투가 끝난 지 벌써 만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그 사이, 이안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대체 왜 이렇게 꼬여 버린 걸까? 이건 시스템적인 오류까진 아닐지라도, 기획 단계에서의 실수는 분명해.’
메인 퀘스트에 합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안은 용사의 마을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져 보았다.
어차피 수요일까지는 열리는 요일 퀘스트도 없었으니, 공적치를 얻을 수 있는 다른 퀘스트가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절망이었다.
영웅점수를 활용해 스펙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상점과 콘텐츠들은 무척이나 많았지만, 정작 공적치를 올릴 방법은 전무했던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다음 요일 전장이 열리는 수요일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게 생긴 것.
게다가 그 사이 영웅의 길을 통과하고 메인 퀘스트에 들어선 훈이로부터 얻은 정보는, 이안을 더욱 절망하게 만들었다.
-용사의 마을 메인 퀘스트
A - 훈련소 수료
퀘스트 발생 조건 : ‘훈련병’ 계급의 유저.
획득 가능 공적치 : 100~500
*일정 수준의 성과 달성 미달 시, 퀘스트 초기화.
B - 첫 번째 임무.
퀘스트 발생 조건 : ‘훈련소’를 수료한 유저.
획득 가능 공적치 : 250~500
*임무 과정에서 도태될 시 획득 공적치 50퍼센트 삭감.
*퀘스트 재도전 가능.
C - 군락 섬멸전.
퀘스트 발생 조건 : ‘첫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유저.
획득 가능 공적치 : 300~600
*임무 과정에서 도태될 시, 획득 공적치 70퍼센트 삭감.
*퀘스트 재도전 가능.
F - 차원의 거인 레이드.
퀘스트 발생 조건 : ‘정예병’ 계급의 유저.
획득 가능 공적치 : 600~1,200
*임무 과정에서 도태될 시 획득 공적치 100퍼센트 삭감.
*퀘스트 재도전 가능.
……후략……
훈이가 보내 준 것은 퀘스트 창에 새로 생성된 메인 퀘스트 목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이안을 절망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아, 이거 이런 식이면, 금방 다 따라잡히겠는데?”
퀘스트 발생 조건을 보면, 이안이 합류할 수 있는 메인 퀘스트는 F단계의 퀘스트인 ‘차원의 거인 레이드’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이전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발생되는 조건이었으니, 훈련소에 진입하지 못한 이안으로서는 아예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얼른 F단계의 퀘스트를 얻으면 되지 않느냐?
그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차원의 거인 레이드’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전투병 다음 단계인 ‘정예병’ 계급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예병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공적치는…….
‘후, 대체 3천이 넘는 공적치를 메인 퀘스트 없이 어떻게 올리냐고!’
전투병이 되기까지 남은 공적치 100을 포함하여, 무려 3100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던 것이다.
용사의 마을에서의 진급은, 총 네 번이다.
그리고 그 중. ‘전투병’까지 의 두 번의 진급은, 비교적 적은 공적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전투병의 다음 단계인 정예병.
그리고 마지막 졸업이라 할 수 있는 ‘용사’ 계급까지는, 필요한 공적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3백에서 어떻게 갑자기 3천으로 늘어 나는 건데!’
‘계급’시스템의 구체적인 정보까지 확인한 이안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으, 따라잡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격차도 엄청 벌어지겠어.’
수요일과 금요일에 있는 요일 이벤트가 어떤 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많은 공적치를 얻는다고 해도 정예병이 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마 그 사이, 메인 퀘스트에 진입한 유저들 중 상위권은 분명 ‘정예병’을 찍을 것이고 말이다.
‘정예병 다음이 바로 용사 계급인데……. 그리고 용사 찍으면 바로 여기 졸업이고.’
이안은 마음이 급해졌다.
치열하게 노력하여 첫 번째로 용사의 마을 진입에 성공하였는데, 그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뭔가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용사 계급이 되는 데 필요한 공적치는 얼마지?’
지금 이안의 상황에서 정예병이 되는 데 필요한 공적치는 적을수록 좋지만, 용사계급이 되는 데 필요한 공적치는 많을수록 좋다.
정예병이 될 때까지 벌어질 차이를 이안이 좁히는 동안, 먼저 정예병이 된 유저들이 ‘졸업’을 해 버려서는 안 되니 말이다.
그리고 ‘용사’계급이 되는 데 필요한 공적치를 확인한 순간, 이안은 살짝 안도할 수 있었다.
공적치의 양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치였으니 말이다.
-계급 : 용사
-필요 공적치 : 10만
‘휴우, 이건 그나마 다행인 부분인가.’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직 모든 콘텐츠를 확인한 게 아니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10만이라는 공적치는 그리 쉽게 모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리겠지.’
그리고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다시 재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이 마을 안에 있는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해서 스펙을 올려 놓는 거야.’
이안이 공적치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는, 수요일에 열릴 새로운 요일 이벤트뿐.
수요일이 오기 전까지 영웅점수를 펑펑 써서,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스펙을 만들어야만 했다.
지금 이안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정령의 도장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영웅 점수’라는 자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포기하기는 이르지. 우선 마을 상점부터 다시 꼼꼼히 돌아보자. 그리고 모든 걸 분석해서, 최상의 스펙을 한번 짜 보자.’
공터 구석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반나절이 넘게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이안은,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크올리버와 리챠오는 체력이라도 비축하겠다며 로그아웃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공터에 남아 있는 것은 이안뿐.
하지만 걸음을 옮기는 이 순간, 이안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용사의 마을 구석에 ‘전투 수련장’이라는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말이다.
* * *
용사의 마을 북단에 있는 커다란 훈련장.
이곳에는 지금, 십여 명의 유저들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애물 통과부터 시작해서 병기술까지.
채챙- 챙- 챙-!
타탓- 탓!
어쩌면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콘텐츠들이었지만, 그것들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이 안에서 가장 빠르게 다음 퀘스트로 넘어가는 유저가 곧,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치고 나가는 유저가 되는 셈이니 말이다.
또 비교적 지루한 이 훈련 단계만 끝나고 나면, 두 번째 연계 퀘스트부터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해 보였다.
그런데 진지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분위기 속에서, 유독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유저가 눈에 띄었다.
“크큭, 크크큭.”
기이한 웃음을 흘리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한 남자.
아니, 그의 실루엣은 사실, 남자라고 하기 보단 소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으흐흐, 이 훈이 님의 진정한 실력을 보여 주도록 하지.”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안에게 퀘스트 정보를 공유해 준 훈이.
훈이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었다.
“드디어 이안 형을 앞지르고 어둠군주의 권능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온 건가. 크크큭!”
훈이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임모탈의 표식 덕에 영웅의 길을 단번에 통과할 수 있을 줄은, 그야말로 생각조차 못했었지.’
이안이 ‘용기사의 증표’ 덕에 영웅의 길을 빠르게 통과했던 것처럼 훈이 또한 영웅의 길을 프리패스할 수 있었고, 덕분에 최상위권 라인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훈이의 옆에 샤크란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지금 용사의 마을 진척도는 한국 서버에서 훈이가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후후, 여기서 어둠군주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 주도록 하지. 그리고 연말에 펼쳐지는 영웅의 협곡 전투에선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거야.’
눈앞에 펼쳐진 황금빛 미래(?)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훈이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개가 훈이의 계획처럼 잘 진행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