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76화 (59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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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투, ‘차원의 거울’ (2)

* * *

용사의 마을 중앙에 있는 작은 공터.

공터에는 이안을 비롯해 세 명의 유저가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중대장 파커’ NPC가 그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자, 시간 맞춰 다들 도착했군.”

세 사람의 면면을 한 번씩 확인한 파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됐겠지?”

“예,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난 항상 준비되어 있소.”

파커의 물음을 들은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퀘스트보다도 서로 간의 정체가 더 궁금한 상황이었다.

정황상 서로가 유저라는 것은 이미 눈치채었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용사의 마을에 들어왔다는 것은 타 서버 최상위권의 랭커라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은 두 사람을 슬쩍 응시한 뒤, 둘의 정체를 추측해 보기 시작했다.

‘왼쪽 친구는 로브에 완드를 구매한 걸 보니 전형적인 마법사 클래스인 거 같고……. 오호, 이 친구는 갑옷도 안 사고 쌍검을 들었네? 하긴, 영웅 점수 30점만 가지고는 훈련병 전용 아이템이라도 두 개 이상 구매하기 힘들지.’

용사의 마을은 PK도 금지되어 있을 뿐더러 적대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안은 두 유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검을 맞대고 싸우지는 않을지 몰라도, 지금부터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인물들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파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나와 함께 ‘차원의 거울’ 전장으로 이동한다.”

마법사 클래스인 듯 보이는 유저가 파커를 향해 질문했다.

“차원의 거울 전장은 어떤 곳입니까?”

그에 파커는 피식 웃어 보이며 대꾸했다.

“그래, 좋은 질문이다. 전장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들어가야겠지.”

잠시 뜸을 들인 그가, 굵직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영웅의 길을 지나왔다면 이미 알고들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용사의 마을’은 천군을 선발하기 위한 훈련 기관이다.”

이안을 비롯한 세 사람은 가만히 파커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그는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이곳에서 충분한 수련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진정한 ‘중간자’의 위격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용사의 마을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파커의 말을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내용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첫째, 용사의 마을에는 세 개의 ‘요일 전장’이 존재한다.

전장은 각각 수, 금, 일요일에 오픈되며, 이 전장에서는 ‘영웅 포인트’와 ‘전공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영웅 포인트’는 장비를 맞추는 데 필요하며, ‘전공 포인트’는 계급을 승격시키는 데 필요하다.

*훈련병이 ‘신병’이 되기 위해서는, 100포인트의 전공 포인트가 필요하다.

셋째, 차원의 거울 전장에서는 생명력이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전장에서 아웃되어 마을로 돌아오게 되며, 한 번 전장에서 아웃되면 다음 주 요일 전장이 열릴 때 까지 입장이 불가능하다.

넷째, 모든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전원이 살아남은 소대는 ‘소대 승격’을 하게 되며, ‘소대 승격’이 된 소대의 구성원은 어떤 계급을 가지고 있든 일 계급 특진을 하게 된다.

그렇게 3분여 정도를 떠들던 파커가, 설명을 멈추고는 말을 이었다.

“전투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고 싶지만, 이제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군.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전장으로 이동시켜주도록 하겠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설명이 끊어지자,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반문했다.

“아니, 그게 지금 제일 중요한 부분 아닙니까?”

그에 파커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리 복잡하진 않으니 말이야. 직접 겪어 보면 알게 될 터…….”

파커는 또 세 사람 중 누군가 입을 열새라 들고 있던 창대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제군들의 행운을 빌어 주도록 하지.”

파커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을 비롯한 세 사람의 신형은 하얀 빛으로 휘감기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세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들의 희미한 잔상이 남아 아른거렸다.

* * *

띠링-!

-‘차원의 거울’ 전장에 입장하셨습니다.

-‘제 7소대’의 소대원으로 배치되셨습니다.

-5분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간결한 메시지와 함께, 어두워졌던 이안의 시야가 다시 밝아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제7 소대의 소대장인 헥사르라고 한다. 훈련병들이 어째서 우리 소대에 배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나야 상관없지. 생존은 그대들의 몫이니까.”

자신을 소대장이라 소개한 헥사르는, 파커와는 또 다른 이미지를 가진 NPC였다.

파커가 전형적인 덩치 좋은 기사의 이미지였다면, 헥사르라는 이 녀석은 좀 촐싹 맞아 보인달까.

“여기선 그냥,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돼. 결국 마계 놈들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면 승리할 테니까 말이지.”

인사를 나눈 뒤에도 헥사르는 주절주절 떠들었지만, 이안은 녀석의 말을 듣는 대신 고개를 돌려 전장의 구조를 살피기 시작했다.

소대장이라는 녀석의 말들이, 별 영양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불친절한 NPC들이 전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스스로 조금의 정보라도 더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맵이 그렇게 넓진 않은 것 같은데…….”

용사의 마을보다 조금 더 넓은 듯 한 아담한 설원.

이안의 눈에 띄는 맵의 특징은, 두 가지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첫째로는 사방이 높다란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밀폐된 맵이라는 점이었으며, 둘째로는 전장의 최후방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빛을 뿜어내는 첨탑이 솟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첨탑의 꼭대기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울’이 매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저래서 이 전장의 이름이 차원의 거울인 건가.’

겉으로 보이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이 전장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소대당 열 명씩, 총 열 개 소대……. 천족 병사들은 대략 백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적으로 보이는 상대는 하나도 없어. 맵이 사방으로 막혀 있어서 적들이 몰려올 만한 통로도 보이지 않고…….’

하다못해 적이 나타나야 할 포털이나 게이트라도 있을 법 하건만, 전장은 정말 텅텅 비어 있는 공터였다.

대체 이 전장에서 마계의 병사들이랑 어떻게 싸운다는 것인지, 이안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몬스터가 소환되는 거면 몰라도, 분명 마계 쪽 병사들과 겨루는 방식이라고 했었는데…….’

생각에 빠진 이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수많은 게임 콘텐츠를 경험해 본 이안으로서도, 쉽사리 가닥이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안이 고뇌(?)에 빠져 있던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사로 보이는 유저가 이안과 전사 유저를 향해 입을 연 것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서로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안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마법사 유저를 향해 움직였고, 다른 한 명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모아졌다.

마법사 유저의 말이 이어졌다.

“난 미국 서버 유저, 마크 올리버라고 합니다. 당신들의 이름도 알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마크 올리버’라고 소개한 남자는, 무척이나 예의바른 녀석이었다.

그 분위기가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여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아……. 전 ‘이안’이라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나머지 한 녀석의 분위기가 마크 올리버보다 훨씬 더 특이하다는 점이었다.

“반갑네, 소형제들. 난 낭만검객 ‘리챠오’라고 한다네. 얼른 형제들의 무예를 견식해 보고 싶군.”

쌍검을 휘휘 돌리며 특이한 화법을 구사하는 그를 보며, 이안의 등을 타고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 뭐지? 이 훈이 같은 녀석은…….’

두 녀석 모두 일전에 만났던 랄프 일행과는 달리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랄프 일행이면 살살 구슬려 가며 컨트롤하기 쉬울 것 같은데, 이 두 녀석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마크 올리버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이안은 지금까지 해외 서버 유저들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물론 해외의 랭커들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이안 자신과 경쟁할 만한 유저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날고 긴다는 랭커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워낙 서버가 많고 랭커가 많다 보니 어떤 녀석부터 분석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서버별로 가장 뛰어나 보이는 두셋씩 분석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기엔 이안이 지금까지 너무 바빴기도 했고 말이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 올리버’라는 이름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미국 서버의 마법사 랭커, 마크 올리버……. 그때 노엘이가 말했던 그 녀석이었군.’

로터스 길드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카노엘은, 이안의 부탁을 받아 지속적으로 해외 서버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전쯤, 카노엘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형, 미국 서버에 마크 올리버라는 마법사 유저가 있는데, 진짜 장난 아니야.

-오, 그래? 어떤 수준인데?

-영상으로만 봐서 솔직히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레미르 누나보다 못하진 않은 것 같아.

-오호? 훈이랑 비교하면?

-음, 훈이랑 비교하기엔……. 글쎄, 마크 올리버라는 친구한테 갑자기 좀 미안해지는데…….

-우씨! 이 간지훈이를 뭘로 보고……! 다음부터 형한텐 버프 안 걸어 준다?

-에이, 또 왜 이러실까? 장난이야, 장난.

-쳇.

-그런데 좀 진지하게 다시 얘기해 보자면, 훈이한테도 결코 꿀리지 않는 실력자야.

당시의 대화를 떠올린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이거 재밌겠는데?’

한때 게임 고자였던 카노엘은 아직까지도 로터스의 랭커들 중에는 컨트롤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보는 눈’은 믿을 만했다.

때문에 카노엘이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이 마크 올리버라는 친구가 지금까지 만났던 해외 서버의 다른 랭커들과는 다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하긴, 용사의 마을에 가장 빨리 진입한 세 명 중 한 명인데.’

마크 올리버에게서 시선을 뗀 이안이, 이번에는 리챠오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친구였지만, 분명 이 녀석 또한 대단한 실력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안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크 올리버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오호, 당신이 그 유명한 한국 서버의 랭커 이안이군요?”

마크 올리버의 말에, 이안의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날 알아요?”

“그럼요. 제가 한국 서버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국은 카일란의 ‘종주국’이니까요. 그리고 그 한국 서버의 최고 랭커가 당신인데, 제가 모를 리 있겠습니까.”

이안을 만난 것이 흥미로운지, 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는 마크올리버였다.

반면에 낭만검객(?) 리챠오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튼, 반갑습니다, 마크 올리버 님. 저도 마크 올리버라는 이름은 들어 봤습니다.”

“오오! 정말인가요? 이거 영광인데요.”

이안이 자신의 유저 네임을 들어 봤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이 되어 좋아하는 마크 올리버.

그리고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30초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용사의 마을’에서의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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