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74화 (58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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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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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란의 서버 안에는, 몇 명의 NPC가 존재할까?

정확한 수치야 시스템 안의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얼마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략적으로 인간계에만 팔억이 훌쩍 넘는 NPC가 존재한다.

그리고 말이 팔억 명이지, 이것은 세계인구의 10%도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게다가 카일란 내에는, 똑같은 NPC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복붙(복사+붙여 넣기)으로 만들어진 NPC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는, 아니, 카일란의 기획 팀에서는 대체 어떻게 이 수많은 NPC들을 하나하나 다르게 기획해 낸 것일까?

정말 우리가 일일이 설정을 짜고, 하나하나 노가다를 한 것일까?

정답은 당연히 ‘아니다’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진 않았지만, 카일란 기획 팀에서 모든 스토리와 구체적인 설정까지 짠 NPC의 숫자는 몇천 정도에 불과하니 말이다.

(나는 실무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숫자까지는 모르겠다.)

물론 몇 천 이라는 숫자도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총 8억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0.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수준.

그럼 지금의 카일란은 대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카일란의 근본적인 시스템에 있다.

기본적인 소스는 기획 팀에서 제공하되, 그 소스들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지는 결과 값은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

외모부터 시작하여 성격, 능력치 등등.

하나의 NPC가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징 요소들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넣으면, 시스템이 그것들을 랜덤하게 섞어 만들어 낸 것이다.

작게는 눈매의 생김새만 해도 수천가지 경우의 수가 나오니 도저히 같은 NPC가 존재할 수 없게 되어 버렸고, 각기 다른 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레 ‘사회’가 형성되니 정말 현실의 인간 세계 같은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 것이다.

NPC들 사이의 각기 다른 스토리와 그들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자잘한 서브 퀘스트들은 기획 팀에서 일일이 신경 쓸 필요조차 없고 말이다.

자, 여기까지 정독하셨다면, 하나의 의문점이 떠오르실 게다.

앞서 언급했었던, 기획 팀에서 a부터 z까지 일일이 설계했다는 수천 명의 NPC들.

이들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이들의 역할이 바로, 카일란의 스토리 방향성을 잡아 주는 것이며 이들이 바로 네임드 NPC였으니까.

나, 그리고 카일란의 개발  팀과 기획 팀은 이들을 통해 카일란의 세계를 컨트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장황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카일란 내에는 기획자들조차 짐작하기 힘든 변수가 수없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 난 변명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카일란 내의 모든 시스템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이안과 마크올리버 그리고 리챠오.

이 세 사람이, 보름동안 용사의 마을에 갇힌 것은…….

분명한 ‘사고’였다.

-기획자 ‘김인천의 일기’ 중 발췌.

* * *

알 수 없는 NPC의 손에 이끌려, ‘결정의 방’에 도착한 이안.

이안이 그곳에서 만난 이는, 놀랍게도 안면이 있는 NPC였다.

그의 이름은 바로…….

‘용기사단장 카미레스!’

과거 어둠의 군대와의 전쟁에서 이안을 도와주었던, 아니, 이안과 엘카릭스에게 최상의 승차감을 선사해 주었던 최고의 버스기사(?) 카미레스가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놀람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곳에 카미레스가 있는 것은 크게 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카미레스가 주었던 용기사의 징표가 용사의 마을에 입장할 수 있는 단서였으니까.’

카미레스와 창술 경쟁을 벌인 추억도 있는 이안은,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인사했다.

“오, 카미레스, 엄청 오랜만이네요!”

반가운 표정인 것은 카미레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핫, 이게 누구신가. 용신께서 인정하신 여의주의 주인 아니신가!”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당연히 잘 지냈다네. 언젠가 그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리고 카미레스를 마주한 이안의 두뇌는 또다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카미레스……. 용사의 마을 콘텐츠에서 이 친구의 비중이 적지 않을 게 분명해.’

아직 용사의 마을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패치 노트에조차 콘텐츠에 대한 정보는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가시 사실만은 분명했다.

카미레스가 용기사의 징표를 줬으며, 그것 덕분에 용사의 길을 프리 패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또, 용사의 마을 입장을 결정하는 이 ‘결정의 방’에 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때문에 이안은 카미레스를 살살 구슬려 보기로 했다.

“하하, 그야 다 카미레스 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때 카미레스 님과 용기사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요.”

“허허, 이 친구 겸손하긴! 자네의 용맹과 뛰어난 창술은 내가 이미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그때 카미레스 님께서 사정을 봐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승자는 카미레스 님이셨을 겁니다.”

연달아 이어지는 이안의 아부 스킬.

그리고 이 달콤한 이야기들에, 이안에 대한 카미레스의 호감도는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허, 이 친구, 볼수록 마음에 드는구먼.”

-백룡수호대장白龍守戶大丈 ‘카미레스’의 친밀도가 3만큼 증가합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이안은 이어 가려던 아부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서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백룡수호대장? 뭐지? 직책이 바뀐 건가?’

분명히 몇 개월 전 만났던 카미레스는, 용기사단장 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직책이 바뀌었다는 것은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NPC의 직위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안은 카미레스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카미레스 님, 이제 용기사단장이 아니시네요?”

카미레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네와 함께했던 전투가 끝난 뒤, 수호대장으로 임명받을 수 있었지.”

“아하.”

“일전에 내가 맡았던 용기사단이 이 백룡수호대 산하의 부대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용기사단은 우리 백룡수호대 안에서도 가장 강력한 부대이지.”

“그렇군요.”

그리고 이안의 두뇌 회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승진했다는 말인데……. 가만 보자. 날 여기에 데려온 녀석이 천룡군과 관련이 있다고 했으니까.’

천룡군의 정확한 명칭은, ‘천룡수호군天龍守戶軍’이다.

그리고 천룡수호군의 우두머리인 백휘수의 직책이 바로 천룡수호대장이었다.

‘천룡수호군은 전륜성왕의 군대였어. 그리고 용기사단은 용신인 세카이토의 군대였지.’

천룡군을 보낸 전륜성왕은 마우리아 제국을 통치하는 ‘아소카왕’이 아니다.

아소카왕은 단지 속세의 전륜성왕으로 불리는 인물일 뿐이었으며, 신계 어딘가에 진짜 전륜성왕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진짜’ 전륜성왕이 보낸 신의 군대.

그 군대가 바로 천룡수호군이었다.

‘그리고 용기사단을 보냈던 세카이토 또한 분명히 신계의 신들 중 한 명…….’

뭔가 단서를 잡은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천룡수호대와 백룡수호대……. 전륜성왕과 세카이토가 어떤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

천룡수호대와 백룡수호대는 누가 봐도 형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안은 카미레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카미레스 님.”

“말씀해 보시게.”

“혹시 전륜성왕이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안의 그 물음에, 카미레스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 반문했다.

“그걸 내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예?”

“나의 주군이 바로 그분이신데 말이지.”

카미레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안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 * *

‘천계’라는 개념은, 과거 마계와의 전쟁 때부터 언급되었던 차원계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천계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이안까지도 말이다.

‘처음 천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단순히 마계의 적대 세력 정도인 줄 알았지.’

천룡수호대가 인간계를 도와 마계와 맞섰던 차원전쟁 최후의 전투.

그 전투에서 수호대장인 백휘수는 마왕들을 향해 분명 이런 대사를 읊었었다.

-만약 여기가 천계였다면, 네놈들 전부가 덤비더라도 나 혼자서 모조리 쓸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이 바로, 이안이 처음 천계라는 이름을 들었던 날.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이안은 무의식중에 천계가 마계와 비슷한 개념의 차원계라고 생각했었다.

인간계와 마찬가지로 지상계이되, 마계처럼 차후에 업데이트로 열리게 될 새로운 차원계.

그리고 마계와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또 다른 세력 정도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중간계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고 루가릭스를 통해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었다.

루가릭스가 말했던 중간계 위의 또 다른 경지의 차원계인‘천상계天上界’가, 천계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카미레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지금껏 이안이 해 왔던 짐작들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천계는 단순히 하나의 차원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네. 용천龍天을 비롯한 총 다섯 개의 하늘天, 그 모두를 천계라고 부르니까 말이지.”

카미레스로부터 알게 된 새로운 세계관은 이안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용천을 천계와 연관 지어 생각해봤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중 성천聖天을 통치하시는 전륜왕께선, 모든 하늘의 주인이라 할 수 있지. 지금 내가 모시는 세카이토 님조차도 그분의 아들이니까.”

카미레스가 대장으로 있는 백룡수호대는 세카이토의 군대가 맞다.

하지만 그 세카이토가 전륜왕의 아들이며 전륜왕의 신격이 더 높기 때문에, 그 또한 카미레스의 주군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이안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카미레스.”

“음……?”

“이 용사의 길. 아니, 용사의 협곡은 천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이안의 물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막연히 ‘중간자의 위격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할 곳’ 정도로 알고 있었던 용사의 길에, 카미레스와 비슷한 천족의 복장을 한 NPC들만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의 물음에, 카미레스의 입에 가벼운 미소가 걸렸다.

“후후, 천계와 이곳의 관계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카미레스가 천천히 입을 다시 열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이곳은 ‘천계의 군대天軍’를 선발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까.”

“천계의 군대를 원래 지상계의 존재들 중에서 선발하는 건가요?”

카미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네. ‘신’이나 ‘정령’같은 예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중간계의 거의 모든 중간자들은 지상계에서 태어난 이들이니 말일세. 태어날 때부터 ‘중간자’의 위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는 드물지.”

“아……!”

카미레스의 말을 들은 이안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혼란스럽게 섞여 있던 퍼즐 조각들 중 일부의 위치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만, 그럼 마계 유저들은? 마계에도 분명 영웅의 마을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고 했었는데?’

잊고 있던 마계의 유저들을 떠올린 이안은, 또다시 혼란스러운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곧바로 다시 질문을 이었다.

“이곳이 천군을 선발하기 위한 곳이라면, 그럼 마계의 존재들은 중간자가 될 수 없는 건가요?”

카미레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

“왜 용사의 마을이 한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네?”

“이곳이 천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용사의 마을이라면, 협곡의 반대편에는 마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용사의 마을이 따로 있다네.”

카미레스의 말이 끝나자, 이안은 머릿속이 온전히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로 인해 새로 생긴 콘텐츠들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한눈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반년에 한 번씩 용사의 협곡에서 열리게 된다는 ‘영웅들의 전쟁’ 콘텐츠가 눈앞에 선했다.

‘국가대전의 느낌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마계와 인간계의 싸움 구도로 흘러가겠어.’

그리고 잠시 후, 생각에 잠겨 있는 이안을 향해 카미레스의 입이 다시 열렸다.

“자,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오래 떠들었군.”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카미레스.”

“하하, 아닐세. 어차피 용사의 협곡에 들어가면, 머지않아 다 알게 될 내용이었을 테니 말일세.”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안은 카미레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용사의 마을에 들어가면 어떤 콘텐츠들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이 협곡에서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임은 분명했으니.

카미레스와의 대화로 얻은 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분명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

“자, 그럼 이제 잡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카미레스가 한쪽 손을 뻗자, 그의 뒤쪽에 있던 새하얀 게이트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월의 길에 발을 들인 영웅이여, 이제 그 길을 향해 걸어 보겠는가?”

빙긋 웃으며 이안을 향해 묻는 카미레스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물론입니다.”

당연히 Ye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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