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72화 (58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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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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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딩동-! 딩동 딩동!

촐싹거리며 울리는 벨소리를 들은 민수는, 살짝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아오, 벨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겠네.”

그리고 문 밖에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야, 민수, 빨리 문 열어! 추워 죽겠다고!”

“아 지금 나가고 있으니까 조용히 좀 해!”

어느덧 한 해가 지나, 제법 새내기 티를 벗은 민수와 영훈, 그리고 세미.

오늘은 가상현실학과에서도 게임 덕후로 유명한 이 트리오가, 민수의 자취방에서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캡슐 밖에 나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질 서버 점검 때문에, 지금 카일란은 접속 불가인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째서 민수의 자취방에 모이게 된 것일까?

“야, 우리 안 늦었지? 아직 시작 안 했지?”

“어휴 안 늦었으니까 걱정 말고 일단 앉기나 해. 아직 2분 정도 남았어.”

“휴, 다행이다. 영훈이 저 자식이 늑장부려서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

말을 하며 눈을 흘기는 세미를 보며, 영훈이 입술을 삐죽였다.

“1~2분 정도 늦었으면 또 어때서…….”

“시끄럿!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치킨집에 전화나 하도록.”

“하…….”

한숨을 푹 쉬면서도 묵묵히 스마트폰을 꺼내는 영훈.

한편 코트를 대충 벗어 자취방 구석에 던져 놓은 세미는, 어느새 소파에 앉은 채 TV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민수의 입에서, 불쑥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투덜거리던 영훈의 시선도 TV를 향해 움직였고, 스크린에는 큼지막하게 프로그램의 제목이 떠올라 있었다.

-‘중간계, 그리고 용사의 협곡. 기획자에게 직접 물어본다!’

* * *

카일란은, 지금껏 지구상에 등장했던 그 어떤 게임보다도 커다란 화제성을 만들어 낸 게임이다.

현재 존재하는 게임들은 물론, 과거에 흥행해 왔던 어떤 게임과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인 지표를 자랑하니 말이다.

동시 접속자 수 1위.

누적 접속자 수 1위.

연간 매출 1위.

가상현실 동화율 1위.

등등.

하지만 이렇게 카일란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게임을 만드는데 기여한 개발자들까지 유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유저들은 게임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이 게임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은, 유저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땀을 흘리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그렇듯, 예외는 존재한다.

바로 지금, 게임 방송국 YTBC의 뉴스룸에 나와 있는 이 남자처럼 말이다.

-안녕하세요, 김인천입니다, 반갑습니다.

-와, 정말 김인천 씨 맞으시죠?

-하핫,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저 맞죠.

-신기해서 그래요. 제가 학생 때부터 김인천 기획자님 팬이었거든요.

-헛헛, 저야말로 팬입니다, 루시아 님. 이거 카일란 여신께서 제 팬을 자처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현 카일란 기획 본부의 본부장이자, 한국 게임업계에서 수많은 신화를 써 내려온 기획자인 김인천.

그는 한국의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만한, 그런 인물이었다.

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게임 폐인인 진성도 김인천이라는 이름은 수 없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와, 저 아저씨가 TV에 다 나오고……. 이건 진짜 예상 못 했네?”

진성의 중얼거림에, 옆에 기대앉은 하린이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는 아저씨야?”

“응, 엄청 유명한 아저씨.”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와는 별개로,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그러시겠지만, 솔직히 우리도 좀 얼떨떨한 상황입니다.

-하인스 님 말씀이 맞아요. 오늘 프로그램은 우리 YTBC에서 LB사에 요청해서 만들어진 코너이기는 하지만, 우리조차도 이렇게 본부장님이 직접 와주실 줄은 상상조차 못했었거든요.

-하지만 일단 오셨으니! 이렇게 된 이상 카일란의 비밀들을 낱낱이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죠?

-당연하죠! 이게 어떻게 얻은 기횐데요.

주거니 받거니, 물 흐르듯 진행하는 하인스와 루시아.

그리고 두 사람에 못지않게, 너스레를 떨며 대답하는 김인천의 모습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허, 이분들, 이거 무서운데요? 저 오늘 여기 괜히 나왔나 봐요.

-핫핫, 오실 땐 마음대로 오셨어도, 가실 땐 마음대로 못 가십니다!

-그럼, 그럼요!

하인스와 루시아는, 베테랑 MC답게 금방금방 대화를 이끌어 갔다.

잠깐 잡담을 떠는 듯하더니, 어느새 본론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시청자분들께서 가장 궁금해하실 ‘용사의 협곡’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부터 한번 들어 볼까요?

-히야, 저도 엄청나게 궁금했다고요! 빨리 말씀해 주세요, 기획자님!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진성은 마치 TV속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집중했다.

바로 옆에서 말하는 하린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못 들을 정도로 말이다.

“‘용사의 마을’이 ‘용사의 협곡’ 안에 있다는 거지, 진성아?”

“……응? 뭐라고?”

“휴……. 아니야, 있다가 다시 물어볼게.”

김인천은 오십대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외모가 동안인 것도 한몫하기는 했으나, 나이에 비해 젊게 살아온 것이 가장 컸다.

그리고 그것이, 오십이 넘도록 현역 기획자로 활동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카일란을 처음 기획하던 때부터 ‘세계 통합 서버’를 꿈꿔 왔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죠.

-LB사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최고 아닌가요?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서버가 수용 가능한 최대 인원’에 있었습니다.

김인천의 말에, 하인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음……. 잘 이해가 가질 않네요. 현재 서버 기술력으로, 수억 명의 인원이 동시 접속할 수 있는 공간도 구현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에 김인천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기술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어떤 문제인가요?

-‘인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죠.

-……?

-우리 LB사의 기획 팀은, 카일란을 완전무결한 세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유저들이 정말 또 하나의 ‘현실’처럼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로 말이죠.

잠시 뜸을 들인 김인천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때문에 우리 기획 팀은, 카일란의 세계 안에 있는 모든 NPC들에게 각기 다른 인격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들만의 스토리 하나하나를 전부 만들었지요.

김인천의 설명에, 하인스와 루시아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김인천이 설명한 부분은, 카일란을 한 번이라도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확실히 그런 면에서, 카일란의 완성도는 대단해요. 사실 지금 수준의 세계를 기획하고 구현했다는 것만도 대단한데, 지금보다 더 키우는 건 확실히 인력 면에서 문제가 있겠네요.

-저도 루시아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기획자님, 저는 아직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어요.

-어떤 부분이죠?

-저는 지금의 카일란 세계도 충분히 방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세계를 더 키울 필요 없이 지금의 카일란 세계 안에 전 세계 유저들이 전부 접속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카일란의 맵은 무척이나 방대하다.

지금까지 유저들이 플레이해 온 지상계.

그중에서 인간계만 하더라도 현실에서의 작은 대륙 하나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하인스의 의문은, 사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카일란을 플레이하기는 하지만, 그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를 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계와 마계를 합한다면 세계 대지 넓이의 10퍼센트는 넘는 수준일 테니, 수억 명의 유저들이 그 안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인천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인스 님.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카일란의 재미는 많이 떨어지게 될 겁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카일란이 재밌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세계 안에서 ‘유저’가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음……?

-이 카일란이라는 세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NPC들 사이에서, 유저들은 모두 ‘영웅’이 되어야 하니까요.

하인스와 루시아는 김인천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카일란의 세계안에서도, 누군가는 평범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누군가는 벽돌을 날라야 하죠.

-하지만 그 평범한 누군가가 유저여서는 안 되겠네요.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잠시 뉴스룸 안에는 정적이 흘렀고, 그것은 진성과 하린이 앉아있는 거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인천의 말에서, 어떤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정적을 깨고 다시 질문을 한 사람은, 하인스가 아닌 루시아였다.

-그렇다면 김인천 기획자님은, 카일란 한 개 서버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을 몇 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김인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질문에 대답하였다.

-5천만 유저까지는 한 개 서버로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근거가 있을까요?

-처음 카일란을 기획할 당시 우리 기획 팀은, 모든 한국인이 이 게임을 플레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

-그래서 처음부터 5천만 유저가 하나의 세계 안에서 플레이할 것을 전제로 기획했었습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중국에는, 처음부터 서버를 다섯 개나 오픈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그마저도 벌써 수용 인원이 절반 가까이 차 버렸지만 말이죠.

김인천의 말에, 하인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대략적인 수치라도 공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현재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중국 유저의 숫자는……. 1억 1천만 정도입니다.

-헉, 그렇게나 많이요?

-사실 비율로 따지자면 한국 서버가 더 대단하죠. 오천만 국민 중에 900만이 넘는 인원이 카일란을 플레이하고 있으니까요. 중국이야 인구가 13억이 넘는걸요.

김인천은 특유의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 기획 팀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세계의 유저들을 만족시키면서, 언젠가는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서버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아하…….

-그래서 저희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평행세계’라는 개념이었습니다.

-평행……세계요?

-그렇습니다. 우선 같은 세계관을 가진 각국의 서버들은 ‘평행세계’의 개념이 되어 각각 존재하고, 그 평행세계가 이어질 수 있는 ‘상위 차원계’ 개념의 서버를 따로 두도록 기획한 것이죠.

김인천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진성은 절로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그 어떤 유저보다도 카일란의 세계관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그로서는, 김인천의 고뇌가 더욱 깊게 공감되었으니 말이다.

‘처음 루가릭스를 통해 중간계의 개념에 대해 들었을 땐 진짜 충격적이었지.’

카일란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게임들 중에서도, 전 세계 서버를 통합해 보려는 시도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카일란처럼 짜임새 있는 세계관 속에서, 자연스레 통합 서버가 열리는 사례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기획자들의 노력이 카일란을 더욱 완전무결한 게임으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획자님, 오늘부로 오픈될 이 용사의 협곡은 앞으로 전 세계의 유저들이 ‘통합 서버’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첫 번째 관문 같은 역할을 하겠군요?

베테랑 진행자답게, 질문으로 깔끔히 요점을 요약하는 루시아였다.

진성은 김인천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김인천의 대답은, 놀랍게도 이안의 예상을 조금 벗어나는 것이었다.

-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용사의 마을이야 앞으로도 관문의 역할을 하게 되겠지만, 용사의 협곡은 조금 다르거든요.

-예?

-용사의 협곡은 선택받은 유저들을 위한 전장입니다.

김인천의 말을 들은 이안의 동공은, 살짝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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