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준비 (2)
* * *
수호자의 가면은 보주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사실상 이 가면의 고유능력이 두 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었다.
두 번째 고유 능력인 ‘정령의 가면’ 능력은 사실상 스킬 네 개를 합쳐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가면에 깃드는 정령의 속성에 따라, 네 가지의 액티브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는 ‘정령의 가면’ 고유 능력.
그리고 이안은 이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샬리온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가장 핵심 포인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으로 따지자면, 출제자의 의도 같은 것이랄까.
우우웅-!
전투가 시작되자, 결투장에 감도는 기운이 완전히 달라졌다.
샬리온의 기세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샬리온의 도발을 받아 친 이안은, 잽싸게 앞으로 뛰어나가며 화염 장궁을 소환하였다.
화르륵-!
이어서 가만히 서 있는 샬리온을 향해, 화살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피핑- 피피핑-!
이안의 장궁에서 쏘아져 나간 화살들은 정확히 샬리온이 서 있는 위치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이안은 이 화살들이 샬리온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화살의 궤적이 너무 정직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맞출 생각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어차피 탐색전이니까.’
랄프 일행과의 전투와는 달리 이안에게는 아직 샬리온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때문에 처음에는, 샬리온이 가진 고유 능력들을 먼저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그에 맞는 대응과 플레이를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보스 페이즈를 공략할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안은 몸을 놀리는 와중에도 샬리온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력을 집중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당연히 화살을 피할 것이라 생각했던 샬리온이, 선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뭔가 있는 건가?’
긴장한 이안은 샬리온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화살이 샬리온에게 도달하기 직전, 그의 전신이 파란 빛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지옥의 화염시’가 빗나갔습니다.
-‘화염의 장궁’ 소환이 해제됩니다.
하지만 이안의 당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환술사인 듯 보이는 샬리온이 이동 마법을 사용한 건 분명 예측 밖의 상황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것에 이미 이골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냐?’
이안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샬리온이 시전한 능력은, 분명 중단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블링크 계열의 마법일 터.
블링크를 사용하여 맵 어딘가로 이동했다면, 이안 자신의 후방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상대의 뒤를 점한 뒤 곧바로 공격을 퍼붓는 것이 블링크 계열 마법 운용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안의 예측은 정확했다.
쐐애액!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이안의 뒤통수를 향해 마법의 구체가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타탓-!
순간적으로 휙 하고 몸을 돌린 이안이, 무기를 스왑하여 ‘블러드 리벤지’를 착용하였다.
-‘수호자의 보주’ 아이템을 해제합니다.
-‘블러드 리벤지’ 아이템을 착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후방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대로 고유 능력을 발동시켰다.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하였습니다.
파아앗-!
순식간에 붉은 운무에 휩싸인 이안의 신형이 그대로 새빨간 빛줄기가 되어 쏘아져 나갔다.
이안이 달리고 있던 그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자 이안을 향해 날아들던 마법의 구체들은, 목표물을 잃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마법 구체를 날린 샬리온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이게 무슨……!’
회심의 일격에 당황하기는커녕, 곧바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안의 반응 속도였다.
‘눈으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어찌 이렇게 정확히……!’
마른침을 삼킨 샬리온이 전방을 향해 지팡이를 뻗어 내었다.
감탄과 별개로, 우선 이안의 공격을 막아 내야 했으니 말이다.
샬리온이 뻗은 지팡이 앞으로, 하얗고 반투명한 방어막이 펼쳐졌다.
위이잉!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앙-!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이안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도장사범 ‘샬리온’이 정령 마법, ‘리플랙팅 쉴드Reflecting Shield’를 발동하였습니다.
-1,274만큼의 피해를 돌려받았습니다.
“흐읍-!”
허공으로 5미터 이상 튕겨 나간 이안은,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반탄력 때문에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다.
‘젠장……!’
소환수가 소환 가능하다면 공간왜곡이라도 사용해 볼 텐데, 퀘스트로 인해 걸린 제약 때문에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샬리온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팡- 파팡-!
샬리온이 연달아 지팡이를 휘두르자, 서너 개의 마법 구체가 빠르게 쇄도하기 시작한다.
구체들이 향하는 좌표는 당연히 이안이 떨어져 내리는 지점.
하지만 이안은 샬리온의 공격을 순순히 맞아 줄 생각이 없었다.
-‘정령의 가면’ 고유 능력을 발동합니다.
스하아-!
스산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이안이 쓰고 있는 가면에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수호자의 가면에 바람의 정령이 깃든 것이었다.
바람의 기운을 느낀 이안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바로 다음이니까, 1초. 1초만 더……!’
그리고 이안이 바닥에 추락하기 직전.
스하아아-!
또다시 예의 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번에는 가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람 다음의 순서인 불의 정령이 가면에 깃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을 주변으로 폭발이 울려 퍼졌다.
퍼어엉-!
-‘정령의 능력’을 사용합니다.
-강력한 화염 폭발이 일어납니다.
-‘가면의 정령’이 소멸합니다.
불의 정령이 가진 능력은 화염을 폭발시키며 주변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밀려나야 하는 물체가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면, 그 반동은 어디로 갈까?
“읏차!”
폭발의 반동을 이용해 허공으로 다시 떠오른 이안은, 잃어버렸던 균형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쐐애액!
날아든 마법의 구체들은, 이안의 발 아래로 허무하게 지나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탓-!
바닥에 안착한 이안이 슬쩍 웃으며 샬리온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샬리온 또한 이안을 마주보았다.
샬리온은 지금, 놀람을 넘어 황당한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연달아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스킬을 완벽하게 활용했는데…….’
화염 폭발의 반동을 사용하여 다시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는 할 수 없는 마법 응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 괴물 같은 녀석에게 가면을 맡긴 지 10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 쉽게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사용법을 완벽히 터득했다고?’
샬리온은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수호자의 가면 사용법을 이렇게까지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 수호자의 가면을 얻으면, ‘정령의 가면’고유 능력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이해조차 못하니 말이다.
‘이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겠군.’
지금 이안이 보여준 가면 활용 능력은 수호자 장비의 주인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이 실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만 입증한다면 샬리온은 시험을 끝낼 생각이었다.
묘한 표정으로 이안을 마주본 샬리온이 묵직한 중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턴 조금 더 긴장해야 할 걸세.”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안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샬리온.”
“……?”
“긴장은 아마, 샬리온 님도 좀 하셔야 할 겁니다.”
말을 마친 순간, 이안의 신형이 다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하아-!
그리고 이안의 가면에는 또다시 정령의 형상이 깃들었다.
* * *
“와, 진짜 이건 아니잖아!”
“하아…….”
정령의 도장 바깥으로 튕겨 나간 랄프 삼인방은, 허탈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지어 화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이가 없달까.
분명 치열하게 싸우다가 아웃 당했는데, 지금까지도 상대의 클래스조차 짐작이 안 되니, 이런 경우는 정말이지 카일란을 플레이한 이래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일까?”
“마법사는 아닌 것 같고……. 궁사? 전사?”
“아냐. 보니까 정령 같은 것도 소환해서 부리던데……. 혹시 소환술사는 아닐까?”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니스코. 소환술사가 무슨 활을 그렇게 잘 쏴? 그리고 소환술사였으면, 다른 소환수들도 부리면서 싸웠겠지.”
“하긴, 그건 그래.”
힘이 쭉 빠져 버린 랄프는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도 랄프를 따라 드러누웠다.
“그나저나 랄프 형.”
“왜.”
“혹시, 그 도전자……. 유저는 아니겠지?”
이니스코의 말에, 누워 있던 랄프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걸 말이라고……!”
체스크 또한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던졌다.
“야, 그 괴물 같은 놈이 만약 유저면……. 카일란 본사에 곧바로 항의 전화부터 해야 돼.”
“음?”
“생각해 봐. 유저가 그런 플레이를 보여 준 거면, 버그가 확실하잖아. 전사였다가 궁사였다가, 마지막에는 무슨 이상한 마법도 쓰고.”
“크음…….”
체스크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적막이 맴돌기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더 이상 입을 열 힘이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10분 여 정도가 지났을까?
천천히 몸을 일으킨 랄프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단…….”
“응?”
“딱 6시간만 자고 오자, 우리.”
“하아.”
그리고 랄프의 말에, 이니스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랄프 형 말이 맞아. 일단 체력이라도 좀 보충하고 나서 뭘 하든지 하자. 나 당장이라도 눈 감길 것 같아 지금.”
체스크 또한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휴, 그러자 그럼. 쉬고 나서 사냥을 가든지, 아니면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트라이해 보든지.”
“좋아. 뭐, 그 사이에 다른 유저가 와서 15층을 깨진 않을 테니까.”
“어휴, 그 괴상한 놈만 아니었으면, 이번엔 정말 깰 수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의견을 모은 세 사람은, 곧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정령의 도장은 다행히도 마을 안에 있었기 때문에 로그아웃은 바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알 수 없었다.
그 ‘괴상한 놈’을 머지않아 또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