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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자격 (3)
-샬론의 심부름 (히든)
예로부터 프뉴마 마을에는 무력을 수련하기 위한 ‘무술도장’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바로 ‘정령의 도장’.
정령의 도장은 고랄Goral족의 오래된 유산임과 동시에, 그들의 자부심과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샬론의 쌍둥이 동생 샬리온은 오랜 세월 정령의 도장을 지켜 온 사범 중 한 명이다.
샬론은 당신의 능력에 감복하였다.
하여 동생인 샬리온에게, 당신을 ‘명예도관’으로 추천하였다.
만약 당신이 샬리온을 만나 목패를 건네주고 ‘명예도관’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다면, 많은 명성과 함께 수호자의 장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령의 도관에 도전하여 ‘명예도관’의 자격을 획득하자.
그것이 ‘정령수호자’가 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B+
퀘스트 조건 : 정령수호자 샬론과의 친밀도 100 달성.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고랄’종족과의 친밀도 영구적으로 10 상승.
명성 50만.
수호자의 가면.
샬론으로부터 퀘스트를 받은 이안은 내용을 읽으면서 서둘러 프뉴마 마을로 향했다.
새로 얻은 퀘스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지 알 수 없었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야 사냥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 퀘스트로 또 재밌는 사실들을 알게 됐네.’
카일란의 세계관은 정말 게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변방의 별다른 비중 없는 NPC들까지도, 저마다의 사연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퀘스트로부터 얻는 사소한 정보들도, 당장 필요는 없을지언정 차후에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퀘스트에서 이안이 얻은 ‘사소한’ 정보들은, 두 가지였다.
첫째. 머리에 커다란 뿔을 달고 있는 정령수호자 샬론의 종족이, ‘고랄’종족이라는 것.
둘째. 정령수호자가 샬론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유저도 될 수 있는 어떤 직책이라는 것.
‘언젠간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야.’
고개를 끄덕인 이안은, 정보들을 머릿속 한구석에 잘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퀘스트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어느새 이안은 프뉴마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이쪽이었던 것 같은데…….’
이안은 어렵지 않게 정령의 도장을 찾아내었다.
애초에 프뉴마 마을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끼릭- 끼이익.
이안이 손잡이를 밀자,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문짝의 경첩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안에 들어선 이안은 카운터를 지키는 NPC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장에 입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죠?”
샬론과 비슷한, 하지만 샬론보다는 젊은 중년 정도의 외모를 가진 NPC가 이안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안은 그가 고랄 종족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에게 500아스테르를 지불한다면 입장권을 발급해 줄 수 있다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도장에는 처음인 겐가?”
“예. 오늘 처음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해 줘야겠군.”
“설명……요?”
“그렇다네. 나는 최초로 이곳에 온 신입들에게, 도장에 도전할 때 유용할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줘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네.”
“아…….”
“그리고 그 정보들 중에는 주의사항도 있지. 만약 도전자가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면, 위험한 일을 겪을 수 있어.”
말을 마친 NPC는, 잠시 뜸을 들인 뒤 품 속에서 낡은 양피지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이어서 그는, 그 양피지를 펼쳐 들더니 아래위로 스윽 한 번 훑어보았다.
“……?”
그리고 의아한 표정의 이안에게 양피지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안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속에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도장 이용 지침서
첫째, 도장은 총 100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부터 도전하여 차근차근 정복해야 합니다.
매 층을 정복할 때마다 특별한 보상과 함께 ‘영웅 점수’를 획득합니다.
*단, 특별한 보상은 첫 번째 정복 시에만 획득 가능하며, 영웅 점수는 반복된 도전으로도 획득이 가능합니다(영웅 점수는 도장의 입구에서 ‘초월 장비 상자’로 교환이 가능합니다).
*최초 정복자가 될 시, 보상을 두 배로 획득합니다.
둘째, 도장에서 패배하더라도 사망하지는 않지만, 도장의 바깥으로 강제 소환됩니다.
*자신의 초월 레벨보다 낮은 난이도의 층수에서 패배할 시, 명성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셋째, 도장에는 최대 세 명까지 파티를 이뤄 도전할 수 있으며, 늘어난 인원에 비례하여 난이도가 증가합니다.
넷째, 15층, 30층, 50층, 70층, 99층에서는 ‘도장 사범’을 상대하여 승리해야 하며, 사범을 상대로 승리할 시 초월 장비 상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같은 사범에게 두 번 이상 도전할 수 없습니다).
또, 도장 사범을 상대로 승리하면, 재도전 시 해당 층의 위층부터 도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99층의 도장사범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하루에 한번 100층에 입장이 가능합니다.
다섯째(주의!), 다른 도전자(들)이 도전하고 있는 층에 결투를 신청할 시, 해당 도전자들과 먼저 전투하게 됩니다.
전투에 승리하게 된다면 자연히 해당 층에 도전할 수 있게 되지만, 전투에 패배한다면 도장의 바깥으로 강제 소환당합니다.
*반대로 전투 중에 다른 도전자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공격당할 시 기존의 전투는 잠시 중지되며, 전투 중에 잃어버린 생명력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두 팀 이상의 도전자들이 결투를 벌이고 있다면, 결투가 끝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도전자는 ‘유저’일 수도, 혹은 ‘NPC’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도전자 파티의 모든 정보는 공개되지 않습니다(레벨, 클래스 Etc). 파티의 인원이나 그들이 도전 중에 남아 있는 생명력 또한 공개되지 않으니, 다른 도전자에게 도전할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 * *
“와, 이게 대체 몇 번째 트라이야?”
“그러게, 10회 넘은 뒤로부턴 세는 걸 포기했는데…….”
랄프, 체스크, 그리고 이니스코.
이 삼인방은 벌써 사흘째, 이 정령의 도장에 죽치고 있었다.
랄프가 꼬여서 데려왔던 파티원들은 첫날 이후 전부 인간계로 돌아갔음에도, 세 사람은 끝까지 남아서 클리어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까지 트라이를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금 트라이 중인 14층만 클리어하면 만날 수 있는, ‘도장 사범’이라는 존재.
만약 그를 상대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초월 장비 상자’라는 탐나는 보상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3층까지의 보상도 나쁘지 않았지만 전부 ‘잡화’ 혹은 ‘재료’ 아이템들이었다.
하지만 15층의 사범에게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이름부터가 ‘장비 상자’다.
탐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보상인 것이다.
게다가 10층조차 넘지 못한 나머지 인원과 달리, 그들 세 명의 파티는 아슬아슬하게 14층을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카일란의 랭커가 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대규모 업데이트와 관련된 공지가 뜨고 나자, 그들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랄프, 이제 그만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래, 랄프 형. 체스크 형 말이 맞아. 14층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굳이 15층을 도전하지 않아도…….”
“그래. 우리도 이제 얼른 초월 레벨 올리러 가야 해. 10레벨 찍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여기는 10레벨 찍고 와서 다시 도전하면 훨씬 수월할거야.”
체스크와 이니스코의 설득에 랄프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하지만 랄프는 초월 장비 상자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으, 진짜 코앞까지 왔는데…….’
물론 초월 장비 상자는 굳이 도장 사범을 이기지 않더라도 획득이 가능하다.
영웅 점수를 열심히 모아서 구매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장비 상자의 가격이 괴랄하다는 것이었다.
‘1층 깨면 1포인트, 2층 깨면 2포인트 주는데……. 어느 세월에 1만 포인트를 모아?’
도장의 입구에서 파는 초월 장비 상자는, 등급별로 총 열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낮은 등급의 장비 상자조차 1만 포인트의 영웅 점수가 있어야 구매 가능하다.
그리고 랄프 일행이 사흘동안 힘들게 모은 영웅 포인트는, 고작 1천5백 정도에 불과했다.
앞으로 보름 이상은 더 노가다를 해야, 가장 낮은 등급의 장비 상자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랄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 그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엔 진짜 아깝지 않았어?”
“그거야 그랬지…….”
“아깝기야 했지만, 그 아까운 것만 해도 벌써 세 번째잖아.”
“…….”
세 사람의 사이에 다시 잠시간의 적막이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랄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
“우리가 최초 도전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집착하진 않았을 거야.”
랄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체스크와 이니스코를 번갈아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긴……. 랄프형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해. 최초 클리어 보상까지 받으면 장비 상자 두 갠데, 이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거의 한 달이 넘는 수준이니까.”
“으으, 확실히 아깝기는 한데…….”
체스크와 이니스코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어서 잠시 후, 두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된 체스크였다.
“그래. 랄프, 네 말처럼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
이니스코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정말 이번에는 한번 영혼을 불살라 보자, 랄프 형. 다른 놈들에게 뺏긴 콘텐츠도 많은데, 이 도장 콘텐츠만큼은 우리가 한번 선점해 보자고.”
두 사람의 동의에 다시 힘이 나기 시작했는지 랄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진짜 한번 모든 걸 불태워 보자고!”
그렇게 의기투합에 성공한 세 사람은, 지난 전투에 대한 피드백을 간단하게 공유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도장에 입장하였다.
하지만 이 시점만 해도, 세 사람은 알 수 없었다.
이 한 번의 결정이, 정말 본인들의 멘탈까지 불살라 버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