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61화 (575/1,027)

=======================================

최소한의 자격 (2)

* * *

잠을 푹 자고 왔냐는 이안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길드원들은 자동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당장 졸린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악마는 분명 업데이트 전날까지 쉬지 않을 거야.’

‘잠이 안와도 시작하기 전에 1분이라도 더 자고 와야 해.’

‘그래. 딱 반나절만 정비하고 다시 모이자.’

‘아냐. 푹 쉬고 정비하려면 하루는 필요해. 우리 오늘 아침까지도 유피르 산맥에서 풀로 사냥 뛰었잖아.’

‘좋아. 딱 내일까지만 쉬는 거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길드원들은 이안과 필사적으로 협상했다.

그것은 생존권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협상 결과…….

“좋아, 그럼 지금이 저녁 6시쯤 된 것 같으니까, 정확히 12시간 뒤에 이 자리에서 모이자고.”

로터스 길드원들은 12시간이라는 소중한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알겠어요, 이안 님. 12시간 뒤면, 새벽 6시에 모두 이 자리에 모이는 거죠?”

피올란의 말에, 길드원들은 다시 슬픈 표정이 되었다.

“크윽, 새벽 6시라니…….”

“이안 형, 6시는 너무 비인간적이잖아. 적어도 해는 뜨고 게임 시작하면 안 될까?”

훈이가 슬쩍 반발해 보았으나…….

“그럼 5시에 시작할까? 요즘 5시에도 해 뜨던데.”

“미, 미안해, 형. 아무래도 6시가 좋겠어.”

이안의 한마디에 가볍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자, 다들 그럼 쉴 만큼 푹 쉬고 다시 모이십시다! 초월 레벨10 찍을 때까지, 쉬는 시간은 없는 거. 다들 아시죠?”

* * *

길드원들은 휴식을 위해 접속을 종료했지만, 이안은 아니었다.

‘20일 내로 초월 10레벨 찍으려면, 1분1초가 아까우니 어쩔 수 없지.’

보통 하드코어한 사냥 일정을 앞둔 하루는,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쉬면서 체력을 비축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오랜만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성소에 돌아가서 퀘스트 완료만 띄우고, 딱 저녁 12시까지만 사냥해야지.’

이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정령의 성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샬론에게 가서 ‘오염된 광산’ 퀘스트를 완료한 뒤, 다시 정령산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핀, 부탁해!”

꾸룩- 꾸루룩-!

오랜만에 소환된 핀이 이안의 어깨에 머리를 부빈 뒤 자세를 낮추어 앉았다.

이어서 가벼운 몸짓으로 핀의 위에 올라탄 이안은 쏜살같이 허공을 가르며 정령의 성소로 향했다.

그리고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안은 샬론의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타탓!

사뿐히 나무에 올라선 이안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샬론을 불렀다.

“저 왔습니다, 샬론!”

지금 이안의 기분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고난이도의 퀘스트를 완료한 뒤 보상을 받기 직전이야말로, 모든 카일란 유저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밥을 먹을 때보다 뭘 먹을지 상상할 때의 기분이 더 행복한 법.

이안은 지금 샬론으로부터 얻을 보상 생각에 잔뜩 설레는 중이었다.

‘정령의 곡괭이는 77호한테 얻었으니, 샬론은 수호자의 보주를 주겠지?’

수호자의 보주가 뭔지는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더욱 설렐 수 있는 것.

게다가 ‘???’라고 표기되어 있는 알 수 없는 추가 보상도 있었으니, 이안은 어서 보상을 받아 보고 싶었다.

끼이익.

예의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오두막의 낡은 나무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온 샬론이 이안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 잘 왔네, 이안. 오염된 광산 탐사는 끝마치고 돌아온 겐가?”

샬론과 눈이 마주친 이안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샬론. 광산의 안쪽에 있던 기계공장을 찾아내서 작동을 중지시켰습니다.”

“오오!”

“이제 오염된 광산에서 생산된 기계몬스터들이, 어린 정령들을 괴롭힐 일은 없을 겁니다.”

“역시! 자네는 믿을 만한 친구였어!”

이어서 이안의 눈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띠링-!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에픽)(히든)’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를 1,550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을 10만 만큼 획득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클리어 등급의 티어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클리어 등급 : S+

-S이상의 등급으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정령 마력(초월)을 120만큼 획득합니다.

-소환 마력(초월)을 80만큼 획득합니다.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던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특별한 조건’을 충족함으로 인해, 또다시 S이상의 클리어 등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힘들 줄 알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세입이네.’

인간계에서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에도, 물론 퀘스트의 클리어 등급은 중요하다.

클리어 등급에 따라서 보상으로 얻는 경험치나 명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급에 일희일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C나 D등급같이 최하 수준의 클리어 등급이 나온다면 우울하겠지만, A이상의 등급만 받아도 딱히 아쉬울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령계에서는, 꼭 S등급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령마력과 소환마력을 챙기는 게 명성이나 경험치보다 훨씬 중요하니까…….’

S 이상의 등급으로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정령 마력과 소환 마력 스텟.

이것은 이안이 생각하기에, 그 어떤 보상보다도 소중한 부분이었다.

‘조건 충족으로 티어가 한 단계 상승했다는 건, 기계 공장에서 77호의 부탁을 들어줬기 때문이겠지?’

더욱 기분 좋아진 표정으로 퀘스트 보상을 분석하고 있는 이안을 향해, 샬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수고 많았네, 이안. 자네 덕에 우리 아이들이 다시 발 뻗고 잘 수 있겠어.”

“별말씀을요. 여기 마그비가 저보다 더 고생했습니다.”

“허허,”

껄껄 웃은 샬론은 이안의 옆에 둥실둥실 떠 있는 마그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어서 그의 주름진 두 눈이 살짝 확대되었다.

“자네, 정말 대단한 소환술사가 되겠어.”

“예?”

“바로 며칠 전에 부화시킨 염왕의 씨앗을 벌써 중급 정령으로 성장시키다니 말이야.”

“하하, 운이 좋았죠, 뭐.”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안을 향해 샬론이 다시 말을 이었다.

“확실히 자네 정도의 소환술사라면, 이 물건들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말을 마친 샬론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붉은 빛부터 시작해서 짙푸른 보랏빛까지, 시시각각 빛깔이 바뀌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커다란 구슬.

그것을 발견한 이안은 대번에 어떤 물건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수호자의 보주?’

퀘스트의 보상이었던 수호자의 보주.

샬론은 그것을 이안에게 건네었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수호자의 보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어서 이안은, 곧바로 아이템의 정보 창을 확인해 보았다.

-수호자의 보주

분류 : 소환 보주

등급 : 희귀(초월)

착용 제한 : 소환술사, ‘정령술’ 습득

공격력 : 567~825 (무기 공격력에 비례하여 정령 마력이 증가합니다.)

내구도 : 950/950

옵션 : 모든 전투 능력 +35(초월)

통솔력 +5(초월)

친화력 +5(초월)

정령 마력 +350(초월)

소환 마력 +100(초월)

소환된 모든 정령의 생명력이 25퍼센트, 공격력이 35퍼센트 증가합니다.

*마력 충전

-기본 지속 효과

일반 공격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입힌 피해에 비례하는 소환 마력을 회복합니다.

-사용 효과

남아 있는 생명력의 80퍼센트를 소모하여, 소환 마력을 전부 회복합니다.(재사용 대기 시간 : 60초)

*수호자의 가호

적에게 공격받는 순간 발동시킬 시 정령의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생성된 보호막은 5~95퍼센트만큼의 피해를 흡수하며, 1초 뒤에 흡수한 피해만큼 시전자의 생명력을 회복시킵니다.

피격 시점에 정확히 발동시킬수록 피해 흡수율이 증가하며, 시점이 어긋나면 보호막이 생성되지 않습니다(보호막이 생성되지 않더라도, 스킬은 사용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0초)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성장형 아이템입니다. 조건을 충족할 시, 상위 등급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프뉴마’마을의 수호자가 사용하던 물건입니다.

주인을 잃고 봉인되어, 아직 제 힘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오염된 광산 퀘스트는 이안이 중간계에 와서 받았던 퀘스트들 중 가장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안은 보상으로 받을 ‘수호자의 보주’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기대 이상이잖아?’

아이템의 정보 창을 읽어 내려가는 이안의 두 눈은 초롱초롱하기 그지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정령왕의 심판보다 훨씬 저급한 아이템일 수 있으나, 그렇게 판단할 만한 물건이 아님을 이안은 대번에 알아본 것이다.

‘진화형 정령 마법에 이어서 이번엔 진화형 무기라……. 이거 재밌는데?’

보주의 공격력이나 옵션은, 사실 정령왕의 심판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수치 자체도 낮을뿐더러, 고유능력도 두 개밖에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주가 가진 장점들은,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무기 공격력만큼 정령 마력이 증가한다니……. 이건 확실히 정령술사를 위한 아이템이네.’

어차피 정령술의 위력은, 아무리 좋은 무기를 들어도 증가하지 않는다.

일반 공격력이나 마법 공격력이 정령 마법의 위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주는 달랐다.

애초에 무기 공격력이 정령 마법의 위력에 큰 영향을 줄뿐더러, ‘마력 충전’ 고유 능력은 소환마력 수급에까지 도움을 주는 완소 옵션이었다.

‘게다가 수호자의 가호 옵션도 잘만 쓰면 꿀 같은 고유 능력이고 말이지.’

정령마법 사용과 정령을 소환하는 데 필요한 소모값은 ‘소환마력’이다.

그리고 화염시를 난사하는 이안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 소환 마력의 수급이었다.

때문에 이 ‘마력 충전’ 고유 능력 하나만으로도 사실상 이 보주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소환마력의 수급이 용이해졌다는 것은 마그비의 정령력을 더욱 빨리 성장시킬 수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 말이다.

‘으흐흐, 기필코 마그비를 정령왕까지 성장시키고 말겠어.’

중급 정령에 불과한 지금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마그비.

이 녀석이 정령왕이 된다면, 정말 어떤 괴물이 탄생할지 이안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업데이트 전까지 목표 하나 추가! 마그비 정령력 2만까지 채워보자!’

기대 이상의 훌륭한 아이템을 얻은 이안은, 더욱 의욕에 불타올랐다.

이 모든 것이 사실상 콘텐츠 선점의 힘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면, 의욕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이안을 향해 샬론이 마지막 보상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안.”

“예, 샬론.”

“자네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서 하는 말인데…….”

“말씀하세요.”

샬론은 품 속을 뒤적이더니, 낡은 목패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안에게 건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프뉴마 마을에 있는 ‘정령의 도장’이라는 곳 본 적 있는가?”

“정령의 도장이라면…….”

이안은 기억을 열심히 더듬기 시작했다.

정령의 도장이라는 이름은, 분명 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어렵지 않게, 기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 입장료 내라고 해서 안 들어갔던……. 그 낡은 도장 말하는 거구나!’

그리고 이안이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알 수 없는 목패’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샬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목패를 가지고 정령의 도장에 가 주실 수 있겠는가?”

샬론의 부탁에, 이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이안의 표정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네가 도장 15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그곳에 있는 내 동생 ‘샬리온’에게 이 목패를 전해 주게나.”

“거기 엄청 작아 보이던데……. 15층이나 있나요?”

“15층이 아니라 100층까지 있다네.”

“…….”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잠시 뜸을 들인 샬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동생에게 이 목패를 건네준다면, 또 하나의 수호자 장비를 얻을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아마 자네 정도의 실력자라면……. 충분히 해볼 만할 거야.”

“오!”

“어때, 한번 해 보겠는가?”

생각할 것조차 없이, 이안은 곧바로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수호자의 보주와 같은 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면 무조건 해 내야만 하는 퀘스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안을 향해, 샬론이 한 가지 당부를 건네었다.

“하지만 조심하시게. 정령의 도장은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니 말일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