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60화 (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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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자격 (1)

“진성이 이 녀석은 일단 인간계로 좀 내려오라니까, 또 뭘 하려는 거야?”

구시렁거리며 카일란에 다시 접속한 하린.

이어서 그녀가 도착한 곳은, 파이로 영지의 영주성이었다.

하린은 잠시, 진성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파이로 영주성의 뒤편에 게이트를 오픈할게.

-갑자기 웬 게이트?

-일단 얘기는 게임 안에서 하자. 그 안으로 들어오면 내가 있을 테니까, 만나서 얘기해. 혹시 게이트에 안 들어와지거나 하면, 메시지 보내고.

“게이트에 안 들어가진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지…….”

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열심히 발을 놀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이안이 열어 놓은 차원의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

이어서 하린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쪽으로 발을 딛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다른 차원계로 이동합니다.

-‘정령산’ 맵에 입장하셨습니다.

우웅- 우우웅-!

강렬한 공명음과 함께, 어두워졌던 시야가 조금씩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곧, 그녀의 눈앞에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하린과 이안의 눈이 마주쳤고.

어쩐 일인지, 이안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오, 오오! 되네? 되잖아?”

영문을 알지 못하는 하린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급한 일 있다고 내려오라니까, 왜 이쪽으로 부른 거야?”

하지만 하린의 핀잔에도 이안은 싱글벙글할 뿐이었다.

“왜긴, 이거 시험해 보려고 그랬지!”

“시험? 뭘 시험한 건데?”

“하린이 너, 지금 네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어디라고 생각해?”

“그야 당연히 정령계지.”

하린의 대답에, 이안이 씨익 웃으며 어디론가 손가락을 뻗었다.

“그럼 혹시, 저기 저 쪽에 있는 몬스터 보여? 정확히는 몬스터의 레벨까지.”

“으음……. 저 원숭이같이 생긴 로봇 말하는 거지?”

“맞아.”

“어, 레벨이 13이네? 여기 초보자 사냥터?”

말을 하던 하린의 입이 순간 쩍 하고 벌어졌다.

초보자 사냥터는커녕, 13이라는 레벨이 초월 레벨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흐흐, 이제 이해했어?”

하린은 커다란 두 눈을 꿈뻑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어……. 초월 레벨이 13짜리 몬스터가 나온다는 말은…….”

이제 중간계와 관련된 정보는, 공개적으로 다 풀어진 상황이었다.

LB사에서 공식적으로 정보를 풀기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수많은 랭커들이 명계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보들 중에서도, 현재의 중간계가 ‘체험판’ 같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하린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저들이 다 알고 있었다.

초월 10레벨 이후의 모든 콘텐츠들이 ‘중간자’가 되고 난 뒤에 플레이 가능하도록 잠겨 있다는 사실 말이다.

명계의 경우 사냥 가능한 가장 높은 몬스터의 레벨이 초월 10레벨이었고, LB사의 패치 노트에 다른 중간계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대규모 업데이트 공지가 엊그제 오픈되었으니.

하린이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멀찍이 보이는 초월 13레벨의 몬스터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설마 그 사이 중간자가 되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놀란 표정의 하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 대체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야?”

해맑게 웃은 이안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들어오긴. 나니까 들어왔지!”

이안의 말에, 하린은 살짝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너 혹시 버그 쓰고 그런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난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여기 들어왔다고!”

“그럼 중간자가 되기라도 한 거야?”

“초월 레벨이 아직 8인데, 중간자가 될 수 있을 리 없잖아.”

하린의 의심어린 눈초리가 이안을 향했다.

“중간자가 아닌데 여기 들어온 게…… 버그 아니야?”

“아니라구!”

“으음, 불안한데…….”

한때 이안 버그 유저 설이 돌았던 것을 알고 있는 하린은 불안함을 전부 지우지 못했지만, 그와 별개로 이안은 무척이나 신이 난 상황이었다.

‘크으, 이게 되다니!’

이안이 가지고 있는 차원의 구슬.

그것으로 열 수 있는 차원의 게이트는, 아무 제약이 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레벨 제한이나 특정 조건 제한이 있는 던전 같은 곳에,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유저를 데려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게이트를 생성하면서도 사실 반신반의했다.

지금 이안이 밟고 있는 땅은, 어쨌든 중간자의 위격을 갖춰야만 올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 자신도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하린을 불러 본 것.

‘이렇게 되면, 이제 광렙만 남은 건가?’

초월 레벨이 11~13 정도 되는 기계원숭이들이 주는 경험치는, 초월 5레벨 이하의 유저들에게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물론 당장 이곳에서 사냥이 가능한 유저는 이안뿐이겠지만, 랭커 몇몇만 데려다가 먼저 버스를 태워 주면 된다.

‘훈이랑 유현이. 그리고 피올란 님, 레미르 님 등 한 대여섯 정도만 초월 6레벨 이상으로 찍어 주면, 그때부턴 알아서 사냥이 가능하겠지.’

대충 계획이 선 이안은, 우선 하린에게 파티를 신청했다.

-길드원 ‘이안’ 님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Y/N)

그리고 뜬금없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하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파티는 갑자기 왜? 지금 업데이트 관련해서 길드원들이랑 회의 해야 한다니까?”

“알아, 알아. 길드 채팅 방에, 딱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해 봐. 지금 하려는 게, 다 업데이트 내용이랑 관련된 일이거든.”

“아, 알겠어.”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하린은 이안이 시킨 대로 길드 채팅 방에 말을 올렸다.

-하린 : 지금 이안이 만났는데요, 한 10분만 기다려 달래요. 뭐 해 볼 게 있다네요.

그리고 1분도 채 지나기 전, 피올란을 비롯한 길드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피올란 : 그래요 뭐, 10분 정도야……. 마침 출출했는데, 간식이나 좀 먹고 와야겠어요.

-레미르 : 으, 그러게요. 저도 아침부터 업데이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아직 한 끼도 못 먹었네요.

그런데 다음 순간, 하린은 놀람을 넘어 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길드 채팅 창 위편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이,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띠링-!

-파티원 ‘이안’ 님이 몬스터 ‘카리오피테쿠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를 26만큼 획득하였습니다.

……중략……

-초월 경험치를 34만큼 획득하였습니다.

……중략……

-초월 레벨이 2로 상승하였습니다.

-초월 레벨이 3으로 상승하였습니다.

* * *

뭔가 이것저것 일이 복잡하게 늘어난 것 같았지만, 사실 이안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용사의 마을’ 대규모 업데이트 내용이 신박한 것과는 별개로, 일단 초월 10레벨을 찍는 게 가장 급선무였으니 말이다.

또, 로봇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서도, 어차피 정령산에서 무한 사냥을 돌려야 했다.

게다가 속성의 정수를 모을 플랜도, 치밀하게(?) 구상해 놓았다.

‘길드원들 버스 태워 주고……. 버스비로 드롭된 속성의 정수를 상납받으면 되겠군. 크크.’

로봇생산에 필요한 정수를 다 모으는 데 하루.

길드원 정예들을 초월 6레벨까지 버스 태워 주는 데 사오일 정도.

이어서 한 이삼 주 정도를 더 노가다하고 나면, 이안 또한 초월 10레벨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업데이트 날까지 딱 20일 남았으니까…….’

이안의 목표는, 유피르 산맥의 꼭대기에 게이트가 생기기 전까지.

초월 10레벨을 찍어 용사의 마을에 입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해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업데이트가 끝나고 서버가 오픈되자마자, 용사의 마을에 입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초월 레벨만 10레벨이 된다고 해서 입장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게이트를 지키는 ‘고대의 영웅’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또 다른 조건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이안에게는 과거 용기사단장 카미레스로부터 얻은 ‘용기사의 징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 보기 전까진 확실하진 않지만……. 촉이라는 게 있으니까.’

업데이트가 되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마 그 아이템이 영웅들의 인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이안은 추측했다.

“흐으, 시간이 좀 모자라긴 하네. 빠듯하게 잡아도 3~4주는 있어야 10레벨 찍힐 것 같은데…….”

이안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목표가 생긴 이상, 달리면 될 일이었다.

“그래. 까짓 거, 몇 날 밤을 새서라도 오픈일 전에 10레벨 찍고 만다.”

그리고 이안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끼워 맞추는 사이.

우웅- 우우웅-!

게이트가 진동하며,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했다.

게이트를 타고 돌아갔던 하린이, 길드원들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헤르스부터 시작해서 레미르, 피올란.

유신, 훈이, 카노엘 트리오와 더불어 카윈과 클로반까지.

거기에 이안을 비롯한 길드원들의 가신들까지 대거 나타났으니, 고요했던 정령산은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야, 여기가 정령계야?”

“뭔가 공기가 엄청 상쾌한 느낌이네?”

“그러게. 딱 내가 생각하던 정령계 이미지네.”

잔뜩 들뜬 표정으로,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는 길드원들.

하지만 그들의 들뜬 표정이 흙빛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다들 잠은 푹 자고 접속한 거지?”

이안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너무 무시무시했기 때문이었다.

* * *

깡- 깡- 까앙-!

드륵- 드르르륵.

맑은 쇳소리와 함께, 번잡스런 기계음이 울려 퍼지는 오염된 광산의 기계공장.

그리고 그 평화로운 곳에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두 존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어깨에, 날개 달린 도마뱀 모양을 한 작은 존재가 걸터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둘의 정체는, 77호와 카카였다.

“카카라고 했지?”

“그렇다, 로봇 친구. 넌 뭐라고 부르면 되냐?”

“이안에게 못 들었나 보구나? 나는 P-77호야. 편하게 77호라고 불러 줘.”

“77호? 입에 착착 안 감긴다. 그냥 앞으로 칠칠이라고 하겠다.”

“……!”

카카가 이곳 공장에 남겨진 이유는, 다름 아닌 현장감리.

77호가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카카를 감리요원으로 세워 놓은 것이다.

하지만 로봇 제작의 현장은 이안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 듯했다.

“카카, 혹시 이런 거 본 적 있어?”

“……!”

“내 부탁 하나 들어주면, 네 것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77호가 카카의 앞에 내민 것은, 마치 로봇 장난감을 연상케 하는 작은 피규어였다.

몸체 곳곳에서 파란 불빛까지 들어오는, 하이 퀄리티의 로봇 피규어.

머리털 나고 이런 것을 처음 본 카카의 동공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냐. 엄청 멋지다!”

“그치? 멋지지?”

“엄청나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냐!”

심지어 77호가 작은 리모컨을 만지기 시작하자, 피규어는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카카는 무척이나 황홀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부, 부탁이 뭐냐, 로봇 친구! 뭐든 말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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