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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의 화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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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의 이야기는 꼬박 10분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핵심만 집어서 요약해 보자면, 그렇게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광산 관리로봇 설계도를 구해 오면 된다는 거네.’
77호는 찰리스가 창조한 ‘광산 관리 로봇’이다.
그리고 77호의 말에 의하면, 자신 말고도 관리로봇은 정령계 전역에 많을 것이라 했다.
정령산에 산재해 있는 광산마다, 찰리스를 비롯한 이계인理界人들이 공장을 만들어서 굴리고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그 설계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니, 그것을 구해 달라는 것이 77호의 부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을 도와준다면, 기계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이야기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설계도를 구해 오기만 하면, 내 몸속에 내장된 시스템 코드를 지울 수 있을 거야. 그걸 없앨 수만 있다면……. 난 자유가 될 수 있어.”
“결국 네 몸을 해부해서 재조립해야 된다는 말이잖아?”
“비슷하지.”
“그럼 작업은 누가 하는데?”
“그건 내가 직접 하면 돼. 난 인간과 달라서, 고통을 느끼거나 하지 않으니까.”
이안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뭐, 나야 퀘스트만 깨면 되는 거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계도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나도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홀루스 지하 기지에 있을 거야.”
“홀루스…… 지하 기지?”
처음 들어보는 지명에, 이안은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설계도가 있다는 그 지하기지에 가면 뭔가 기계 문명과 관련된 비밀들이 많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77호의 말이 이어졌다.
“홀루스 지하기지는, 정령산의 중턱에 있어.”
“저 큰 정령산의 중턱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한 설명 아니야?”
이안의 물음에, 77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더 자세히 설명해 줘도 지금은 소용없을 거야.”
“어째서?”
“네 능력으론, 아직 정령산의 중턱까지 오를 수 없을 테니 말이야.”
“……?”
“정령산의 중턱에는……. 캘리클롭스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력한 로봇들이 득실거리거든.”
“그래?”
“아마 캘리클롭스 다섯 마리 정도는 혼자 상대할 수 있어야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이안은 강력한 로봇들이 득실거린다는 말에 잠깐 오기가 생겼지만, 결국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77호의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초월레벨이 최소 30~40정도는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중간자의 위격을 얻기 전까진 클리어할 수 없는 퀘스트겠네.’
진정한 중간자로 거듭나기 전까지 이안은 초월 레벨 10을 넘길 수 없다.
노가다를 해서 마그비를 상급 정령까지 진화시킨다고 해도, 지금의 초월 레벨로는 턱도 없는 난이도인 것이다.
결국 마그비의 전투력도 정령술사의 초월 레벨과 정령술 숙련도에 비례하니 말이다.
‘아쉽지만 이 퀘스트는 다음을 기약해야겠군.’
잠시 머리를 정리해 본 이안은 이제 더 할 수 있는 연계 퀘스트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찌어찌 정령산에 진입하기는 하였으나, 이젠 정말로 퀘스트 진행이 막힌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이안의 반짝이는 시선이 다시 77호를 향했다.
퀘스트야 더 진행할 수 없게 되었지만, 77호에게 뜯어 낼 것은 아직 많았기 때문이다.
“77호.”
“응?”
“그럼 결국, 내가 홀루스 지하 기지를 공략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 그게 가능하겠어?”
“물론 쉽진 않겠지만, 너를 위해서 한번 노력해 보도록 할게.”
“……!”
이안의 다짐에, 77호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약간은 감동한 것 같기도 한 표정.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관리 로봇 ‘P-77호’와의 친밀도가 3만큼 상승합니다.
-‘기계 공장’의 사용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위기를 탄 이안이, 재빨리 77호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그러니까 77호.”
“으응?”
“기계 공장말이야, 지금 당장 돌리기 시작하자.”
“……!”
“강력한 기계소환수를 지금부터 제작해야, 조금이라도 빨리 홀루스의 지하 기지를 공략할 거 아냐.”
77호는 분명, 자신을 돕기로 약속하면 기계 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직 기계 공장으로 정확히 뭘 할 수 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기계 공장에서 기계 몬스터를 생산해 왔다는 사실을 이안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용도일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77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어, 이안.”
“……?”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어.”
“어째서야?”
“기계 로봇들의 설계도가 없기 때문이야. 찰리스라면 설계도 없이도 여러 기계 로봇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능력이 없거든.”
“으음…….”
77호의 말에, 이안은 당황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어, 잠깐. 그러고 보니…….’
곧 이안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인벤토리에 쟁여 두었던 어떤 ‘아이템’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불쑥 입을 열었다.
“나 있어!”
“뭐, 뭐가?”
“설계도 말이야.”
“……?”
“정확히 무슨 설계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한테 설계도가 하나 있다고!”
77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은 싱글벙글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 구석에 묵혀 두고 있었던, ‘하급 기계 소환수 설계도’ 아이템을 꺼내어 77호에게 건네었다.
이어서 그 설계도를 확인한 77호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지, 진짜네? 이거 정말 설계도잖아!”
의외의 소득에 신이 난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역시! 너라면 알아볼 줄 알았어.”
한 차례 침을 꿀꺽 삼킨 이안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자, 77호. 이 설계도……. 이 설계도로 만들 수 있는 로봇이 뭐야?”
설계도를 받아 든 77호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을 하나하나 뜯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링-!
-설계도의 암호가 해독되었습니다.
-‘하급 기계 소환수 설계도’ 아이템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로봇 머슴 설계도’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음?”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입에서 작은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비록 ‘하급’이라는 딱지가 붙은 설계도라고는 하지만, 메시지에 떠오른 로봇의 이름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망한 이안과 달리, 77호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우와, 이안! 이거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으응?”
“비록 가장 저급한 보급형 로봇이긴 해도, 생산 로봇 설계도는 구하기 쉬운 게 아닌데……!”
“생산 로봇? 이거 좋은 거야?”
77호의 반응을 본 이안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산 로봇이라고? 혹시 이 머슴 로봇이라는 녀석으로……. 채광도 할 수 있는 건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안의 얼굴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만약 머슴로봇 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채광을 시킬 수 있다면, 속성의 정수를 지속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77호의 퀘스트 덕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벤트성 맵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을지 몰라도, 일반적인 광맥은 광산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으니.
광맥 하나를 골라 로봇을 짱박아 두고 무한 파밍을 시키면 무척이나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당연하지! 이 녀석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잡일은 기본이고, 아마 채광 같은 쉬운 작업 정도는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해낼 수 있을걸?”
77호의 설명에, 이안은 잔뜩 들뜬 표정이 되었다.
이 설계도를 가지고 일꾼들을 잔뜩 생산해서, 수많은 광산노예를 거느릴 생각을 한 것이다.
심지어 이안의 머릿속에는, 이미 오랫동안 굴려 온 마계의 광산까지 떠올랐다.
그곳은 마계의 노예들에게 제법 많은 월급까지 줘 가며 가동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설계도를 이용해 일꾼을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마계 광산의 생산성도 훨씬 올라갈 것이다.
“오오! 그럼 이 설계도를 가지고 일단 로봇 열 기 정도만 제작해 볼까?”
그러나 카일란의 콘텐츠가 그렇게 만만할 리 없었고, 이안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쉽지만, 그건 불가능해.”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거, 일회용 설계도거든.”
77호의 말에,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설계도가 일회용일 수도 있어?”
“응. 겉으로 보기에는 이거 그냥 철판 쪼가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안에 시스템 칩이 내장되어 있어.”
“시스템…… 칩?”
“로봇을 움직이기 위한, 알고리즘이 담겨 있는 칩이야.”
“아!”
“아마 이 설계도대로 로봇을 완성하고 나면, 이 칩을 삽입하도록 되어 있을 거야. 그래야 로봇이 작동하기 시작할 거고.”
“그렇구나.”
이안은 살짝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쁠 것은 없었다.
어쨌든 77호 덕분에 설계도의 봉인을 쉽게 풀 수 있었고, 생산 로봇이라는 존재는 하나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좋아, 77호. 어쨌든 지금부터 이 로봇 머슴이라는 녀석을 빨리 만들어 보자. 한 녀석이라도 빨리 완성해서 써먹어 보고 싶어.”
금세 다시 의욕을 찾은 이안을 보며, 77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안. 설계도가 그렇게 복잡하진 않아서, 하루 정도면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오케이!”
“그럼 내가 설계도를 분석하는 동안, 재료 좀 구해다 줄래?”
“재료?”
“이 도안을 확인해 보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거야.”
다시 설계도를 건네받은 이안은, 그것을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이안의 눈앞에,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종류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로봇 머슴’ 설계도
하급 생산 로봇, ‘로봇 머슴’을 제작할 수 있는 설계도입니다. (일회성 설계도입니다. 로봇 제작이 끝날 시, 설계도가 소멸됩니다.)
-로봇 정보
분류 : 생산 로봇
등급 : 희귀(초월)
제작 성공률 : 75%
(제작에 실패할 시 설계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작에 실패할 시 재료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 능력치
-전투 능력
없음
-생산 능력
내구도 : 50~75
생산성 : 15~25
손재주 : 5~18
에너지효율성 : 3~12
(생산 능력은 등급에 따라 0~100으로 표기됩니다.)
-특수 능력
없음
-소모 재료
중급 철광석×130
상급 철광석×50
최상급 철광석×2
상급 마정석×12
최하급 불의 정수×45
최하급 바람의 정수×30
하급 불의 정수×15
“후우…….”
이안은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기계 공장인지 뭔지 써 보기 오지게 힘드네 진짜.’
설계도까지 준비되어 있는 마당에, 또 뭔가 필요한 것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재료가 이안이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
철광석과 마정석은 마계의 광산에서 가져오면 되고, 속성의 정수들은 노가다를 해서 구하면 되니 말이다.
“재료, 구해 올 수 있는 거지 이안?”
“그래, 최대한 빨리 구해 올게.”
“혹시 오늘 내로 가능하겠어?”
77호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떼었다.
정수 노가다만 하면 되는데, 하루 종일 사냥하다 보면 어찌어찌 모을 수 있는 양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25퍼센트 정도의 실패 확률이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실패는 가정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하지만 이안은 꺼내려던 대답을 다시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마님(?)의 호출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띠링- 띠링띠링-.
-외부로부터 호출되었습니다.
-전투 상황이 아니므로, 접속 종료가 가능합니다.
-접속을 종료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