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57화 (57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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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의 화신 (1)

이안은 그야말로 닳고 닳은 게이머다.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경우 퀘스트를 조금만 진행해 봐도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이안이 진행 중인 퀘스트 ‘P-77호의 부탁’만큼은 이안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띠링-!

-기계 설비 수리 과정에서 ‘P-77호’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였습니다.

-정령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P-77호의 부탁 (히든)’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525초만큼 감소합니다.

-남은 제한 시간 : 72초

“뭐라고?”

이안은 기가 찬 나머지, 쉬지 않고 움직이던 곡괭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처음에 확보해 놓은 제한 시간을 다 소모하기 전까지 최대한 정수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시간이 줄어드니 황당해진 것이다.

‘아오!’

77호의 실수로 인해 손해 본 시간은 9분 정도.

무려 중급 정수 두 개에 가까운 손해를 본 것이니, 이안의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시간부터 늘려놓고 다시 와야겠어.’

뿌득뿌득 이를 간 이안은, 서둘러 동굴 바깥으로 나왔다.

이어서 30분 동안 열심히 모아 놓은 최하급~하급의 정수들을, 빠르게 소모하기 시작했다.

띠링-!

-‘최하급 물의 정수’를 사용하셨습니다.

-기계설비의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P-77호의 부탁 (히든)’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6초’만큼 늘어납니다.

-‘하급 바람의 정수’를 사용하셨습니다.

-기계설비의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중략……

-‘P-77호의 부탁 (히든)’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42초’만큼 늘어납니다.

최하급과 하급 정수들을 열심히 털어 넣은 이안은, 반사적으로 남은 시간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후우, 방금 77호가 까먹은 시간도 복구가 다 안 됐잖아?’

77호의 실수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은 525초였는데, 하급과 최하급 정수들로 복구한 시간은 400초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이안은 울며 겨자 먹기로, 중급 정수 두 개를 추가로 집어넣었다.

-‘P-77호의 부탁 (히든)’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294초’만큼 늘어납니다.

-‘P-77호의 부탁 (히든)’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294초’만큼 늘어납니다.

그러자 남은 퀘스트 제한 시간은 다시 17분 정도로 늘어났다.

“크윽.”

소모된 두 개의 중급 정수가 너무도 아까웠던 이안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의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이어서 이안의 분노에 찬 시선이 기계를 수리 중인 77호를 향했다.

지금껏 쉬지 않고 곡괭이질 하여 얻은 피 같은 결과물들을 거무튀튀한 고철덩어리가 죄다 집어삼켰으니, 자연히 그 분노가 77호를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시간이 넘게 노가다해서 남은 것이라고는, 상급 정수 한 개와 중급 정수 세 개.

이안은 마치, 열정 페이를 받으며 일하는 알바생이 된 기분이었다.

뒤통수가 따가웠던 것인지, 이안을 향해 돌아본 77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 미안해 이안. 빨리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 실수를…….”

이안은 77호의 말에 순간 울분이 치밀어 올랐지만, 꾸욱 눌러 참기로 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이성을 되찾은 이안이, 77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77호.”

“으응?”

“빨리 고칠 필요 없으니까, 천천히 신중하게 작업해 줘.”

“그, 그럴까?”

“앞으로 12시간.”

“……!”

“아니, 11시간 정도 줄 테니까, 실수하지 말고 차근차근 수리했으면 좋겠어.”

이안의 말을 들은 77호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큰 실수를 한 자신에게 11시간이나 준 이안의 아량(?)이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 작업은 아무리 신중하고 느긋하게 해도 그만한 시간이 걸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77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고, 고마워, 이안.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작업해도 다섯 시간이면 끝날 텐데…….”

그러나 이안은, 77호의 말을 일축해 버렸다.

“시끄럽고, 무조건 11시간이 걸려야만 해.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로 실수해선 안 돼. 알겠지?”

단호하기 그지없는 이안의 말에, 77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 알겠어!”

뭔가 이안의 요구 사항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의 아량이 넓은(?)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 * *

이안의 의도는 아주 간단했다.

광산의 최초 발견 버프가 끝나기 전까지 최고의 효율로 최대한 많은 광물들을 남겨 갈 방법을 생각한 것뿐이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버프가 끝날 때 까지 퀘스트가 끝나서는 안 되고, 방금처럼 77호가 실수로 에너지를 까먹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 퀘스트 끝나기 전까지, 최소 상급정수 서너 개는 더 채굴해 내고 만다!’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온 이안은, 전의를 활활 불태우며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깡- 깡- 까앙-!

-광물 채굴에 성공하셨습니다!

-높은 채굴 기술로 인해, 광물의 등급이 유지됩니다.

-‘하급 땅의 정수’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광물 채굴에 성공하셨습니다!

-광물 채굴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안의 요구대로, 77호는 10시간이 넘도록 수리를 끝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곡괭이질하는 이안의 옆에 앉아서, 그의 노가다를 구경하는 77호였다.

“이안, 이제 마지막 한 파트만 수리하면 끝나!”

깡- 까앙-!

“그거 얼마나 걸리는데?”

“길어야 5분?”

깡- 깡-!

“하다가 실수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이제 발로 해도 끝낼 수 있는 쉬운 작업들만 남았다고!”

최초 발견 버프의 남은 지속 시간을 힐끔 확인한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딱 5시간만 더 놀고, 마무리 작업 시작하자 77호.”

“헤헷. 알았어, 이안! 이안은 정말 착한 친구인 것 같아!”

신이 난 77호는, 이안의 주변을 방방거리며 뛰어다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일만 해 온 77호에게, ‘논다’는 개념은 너무도 신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77호의 생각처럼 그렇게 착하기만 한 친구는 아니었다.

“77호.”

“으응?”

“혹시 관리실 안에, 곡괭이 하나 더 있어?”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77호.

“응 있지. 그건 왜?”

그리고 77호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이안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77호, 우리 재밌는 놀이 할까?”

“정말? 신난다! 그런데 무슨 놀이?”

이안은 실실 웃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 너……. ‘채광놀이’라고 들어는 봤어?”

* * *

이안이 예상치 못했던 노가다 지옥에 빠져 있던 이 시각.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는, 오랜만에 난리가 났다.

그 거대한 서버의 트래픽이, 폭발하기 직전까지 끓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오전에 올라온 단 하나의 게시물 때문이었다.

-제목 : 특보! 바로 오늘 처음으로 밝혀진, 중간계의 비밀!

작성자 : 알랑크라-타이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게시판에 등판한 타이탄 길드의 알랑크라입니다.

나름(?) 랭커인 저에 대해 아시는 분도 계실 테고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때문에 저를 반겨 주실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아마 제가 들고 온 소식만큼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서 반겨 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략……

알랑크라는, 제법 오래 전부터 타이탄 길드의 길드원으로 활동했던 유명한 랭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랭커가 게시 글을 올렸다고 해서, 그것이 커뮤니티의 트래픽을 폭파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게시물이 순식간에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한 이유는, 당연히 그 ‘내용’에 있었다.

-헐, 뭐라고?

-그게 정말임? 정말 중간계가 통합 서버였어?

-미친! 대박! 그럼 타이탄 길드는 명계에서 미국섭 랭커들을 만난 거야?

-캬, 이렇게 되면 이젠, 정말 서버 대전 같은 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크으, 어쩐지, 중간계라고 만들어 놓고 콘텐츠가 약간 아쉬운 감이 있었는데……. 이런 커다란 한 방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니! 역시 카일란은 갓겜이야!

알랑크라가 올린 글은, 제법 스크롤의 압박이 있는 장문의 게시물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단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중간계. 그중에서도 명계는, 전 세계의 서버가 이어지는 단일 서버라는 것.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타 서버와의 교류가 없었던 카일란의 유저들 입장에서는, 열광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던 것이다.

-와……. 이거 설마 주작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 어중이떠중이가 올린 글도 아니고, 타이탄 길드 소속 랭커가 올린 글인데…….

-아니, 그걸 떠나서. 저기 스샷에 확실한 증거가 있잖음.

-? 윗님, 무슨 증거 말씀하시는 거죠?

-저기 미국 서버 유저들이라고 올라온 스샷 있잖아요.

-에이, 그 스샷 속 유저들이 미국 서버 유저들인지 어떻게 알아요?

-헐ㅋㅋㅋ 이분 알못 인증이시네. 아니, 아무리 해외섭 관심이 없으셔도 그렇지, 어떻게 마크 올리버를 모를 수가 있어요?

-그게 누군데요?

-저기 맨 앞에 서있는 파란 로브의 마법사요. 미국 서버 마법사 클래스의 전설인데…….

-오, 그래요? 미국섭 마법사 랭킹 1위인가 보죠?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레벨 랭킹 1위는 따로 있거든요. 하지만 인지도로 따지면, 마크 올리버가 거의 1위라고 봐도 무방하죠.

-오오!

알랑크라가 던져 놓은 불씨는,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애초에 불씨의 크기가 큰 탓이기도 했지만, 이 간결한 명제 하나가 너무도 많은 가능성들과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많은 유저들의 관심사는 ‘세계 랭킹’이었다.

과연 각 서버의 랭커들 중 누가 가장 뛰어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유저들 사이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연히 이안이 세계 랭킹 1위 아니겠어? 이건 국뽕 문제가 아니고, 거의 기정사실이라 보는데?

-그건 님 생각이고요. 세계에 카일란 서버가 얼마나 많은데요. 미국 서버만 해도 당장 이안한테 비벼 볼 만한 랭커가 서너 명은 생각나는걸요? 아까 다른 분이 말하셨던 마크 올리버부터 시작해서, 브리틀링이나 랄프 등등…….

-미국 서버뿐이 아님. 중국 서버에도 괴물 겁나 많고, 유럽 쪽에도 매드무비 제조기 몇몇 있음.

-노노. 매드무비 제조기는 무슨……. 그 친구들 아마, 우리 뿍뿍갓 혼자서도 다 처리 가능할 듯.

-뿍뿍이 등껍질 떨어지는 소리 하고 있네.

그리고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

LB사의 공식 홈페이지에, 더욱 강력한 한 방의 공지가 게재되었다.

-‘용사의 마을’ 대규모 업데이트 공지

마치 누군가 계획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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