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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의 노가다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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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광산으로 들어오기 전.
정령마을에 있던 마법 상점에 들른 이안은 가지고 있던 모든 속성의 정수들을 팔아 버렸다.
물론 던전을 돌파하면서 얻은 정수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3시간을 버티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으, 중급 정수부터는 쓰기 아까운데 어쩌지?’
최하급 정수는 6초.
하급 정수는 42초.
그렇다면 중급 정수는, 아마 294초의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개당 5분 정도의 시간을 버는 셈.
‘내가 지금까지 획득한 중급 정수가 총 일곱 개 정도니까……. 이걸 다 쓰면 35분쯤 추가로 벌 수 있겠네.’
이안은 제한 시간을 한 번 확인해 보았다.
하급과 최하급을 탈탈 털어 넣어 번 시간이 30분 정도였으니, 이걸 다 털어 넣어도 3시간을 채우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3시간은커녕, 1시간이 겨우 넘는 수준.
그렇다면 이 퀘스트는, 이대로 실패해야만 하는 퀘스트였을까?
다행히 77호는, 무리한 부탁(?)을 할지언정 불가능한 부탁을 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77호!”
“응?”
“이제 속성의 정수 다 써 가는데, 어떡하지?”
중급 정수까지 쓰기는 뭔가 아까웠던 이안이 77호에게 물었고, 그 말을 들은 77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방법이 있는 듯한 표정.
그리고 잠시 후, 77호는 대답 대신 후다닥 통제실 안으로 들어갔다.
‘뭐 하는 거지?’
그리고 몇 초가 채 지나기도 전.
다시 바깥으로 나온 77호는, 이안에게 뭔가를 건네었다.
띠링-!
-‘P-77호’로부터 ‘정령의 곡괭이’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77호의 말이 이어졌다.
“이안, 저 안쪽에 작은 동굴 보이지?”
“응?”
“얼른 들어가서 채굴해 와.”
“채굴?”
“그래. 저 안쪽에 들어가면, 속성의 정수들을 채굴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77호에게 등이 떠밀리다시피 한 이안은, 얼떨결에 광산 안으로 들어섰다.
뭔가 불만스런 표정을 한 채로 말이다.
‘짜식이, 날 부려먹는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띠링-!
-정령광산 A-12구역에 입장하였습니다.
-정령광산에 최초로 입장하셨습니다.
-지금부터 12시간 동안, 채굴 성공률이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지금부터 12시간 동안, 높은 등급의 광물을 획득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명성이 10만 만큼 증가합니다.
-인스턴트 맵입니다.
-‘P-77호의 부탁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만 입장이 가능한 지역입니다.
최초 발견 보상과 버프를 확인한 이안의 양쪽 입꼬리는 어느새 귀에 걸려 있었다.
잠깐 동안 77호에게 품었던 약간의 불만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진 이안이었다.
* * *
“으, 체스크. 결국 아무 방법도 못 찾은 거야?”
“그렇다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콘텐츠는 여기가 끝인가 봐.”
“아니 무슨 중간계라고 거창하게 만들어 놓고는, 콘텐츠가 여기까지밖에 없어?”
이안이 한바탕 콘텐츠를 휩쓸어 간 뒤, 뒤늦게 정령마을에 도착한 랄프 일행은 허탈감에 가득 찼다.
여러 번의 트라이로 겨우 공략법을 찾아낸 심연의 계곡 퀘스트는 이미 누군가 낚아채 갔으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계곡 너머의 성소에서는 다음 맵으로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뭔가 있었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러려고 명계 원정 포기하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말이지.’
랄프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물론 명계에 갔어도, 딱히 대단한 콘텐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쪽도, 아케론강에 막혀 더 이상 진전이 안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명계에 갔더라면, 길드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으며 초월레벨을 훨씬 많이 올릴 수 있었으리라.
길드 파티만큼 사냥 효율이 좋은 파티는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초월 6레벨은 찍었을 텐데…….’
기분이 나빠진 랄프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자신이 꼬여서 정령계로 데려온 다른 파티원에게도 면목이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진 랄프가 체스크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체스크.”
“응?”
“이니스코 이 녀석은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그러게. 시간이 좀 걸리네. 혹시 뭔가 콘텐츠라도 발견한 건 아닐까?”
체스크의 말에, 랄프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흠……. 설마 뭘 발견해서 혼자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순간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는 랄프와 체스크.
그러나 잠시 후, 두 사람의 불안한 표정은 금방 풀릴 수 있었다.
그들이 찾던 이니스코가 멀리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랄프는 마른침을 한차례 꿀꺽 삼켰다.
퀘스트를 찾아 돌아다니던 파티원 중 가장 늦게 돌아온 인물이 이니스코였으니.
그마저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왔다면, 정말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니 말이다.
이니스코가 가까워지자, 랄프가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니스코, 뭔가 좀 발견한 게 있어?”
그리고 랄프의 말이 떨어진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이니스코의 입을 향해 모아졌다.
이어서 이니스코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뭐야, 이거 나 말고는 아무도 소득이 없는 거야?”
“……!”
랄프와 체스크를 비롯한 파티원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이니스코의 말로 미루어 보아, 그가 뭔가를 발견했음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봐, 이니스코. 뭔가를 발견한 거야? 그런 거지?”
이니스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형들, 우리가 너무 바보 같았어.”
“……?”
“그게 무슨 말이야?”
“퀘스트는 항상 마을 안에서 시작되는 거였는데 말이지.”
“……?”
이니스코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랄프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정령 마을 안에 있는 NPC들에겐 진즉에 전부 말을 걸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 답답하네. 얼른 얘기해 봐.”
체스크의 재촉에, 이니스코는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들 이 마을 안에 있는 ‘정령의 도장’이라는 곳 기억나지?”
이니스코의 말에 일부는 고개를 갸웃했고, 몇몇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 마을 입구 쪽에 있던 허름한 건물 말하는 거 아냐?”
“맞아.”
파티원들을 한차례 둘러본 이니스코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 있어?”
“……?”
대부분의 파티원들이 고개를 젓거나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체스크만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거기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던데……. 설마 거길 들어간 거야?”
“들어갈 수 없긴 왜 들어갈 수 없어.”
“음?”
“500아스테르를 지불하면 입장이 가능하더만.”
이니스코의 말에, 이번에는 랄프가 반문했다.
“아스테르? 그게 뭔데?”
“이 정령계에서 통용되는 화폐인 것 같아.”
“너는 그걸 어떻게 구했는데?”
“어떻게 구하긴.”
잠시 말을 끊은 이니스코가 품 속에서 작은 정수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다들 인벤토리에 이거 쌓여 있을 거 아냐. 마법 상점 가서 이걸 팔아서 아스테르를 구할 수 있던데?”
“오!”
사실 상점에 뭔가를 팔아서 화폐를 얻는다는 생각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이것을 파티에서 이니스코만이 시도했던 이유는 그가 파티의 유일한 ‘소환술사’이기 때문이었다.
정령마을에 있는 상점들에는 정령술과 관련된 아이템만을 판매하였고, 때문에 다른 클래스의 유저들은 여기서 뭔가를 사볼 생각 자체를 안 한 것이다.
반면에 이니스코는 이안과 마찬가지로 정령과 관련된 스킬북을 구매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아스테르를 획득할 방법을 자연스레 떠올렸던 것뿐이었다.
어쨌든 파티원들의 기대 속에서, 이니스코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어쨌든 난 500 아스테르를 내고 그 안에 들어갔어. 그리고 첫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바로 이곳으로 돌아왔지.”
“첫 번째 스테이지?”
“응. 첫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이런 것도 얻었다고.”
이니스코는 자랑스레 파티창에 아이템 정보를 공유했다.
-최하급 강화석(초월) : 잡화 아이템
아이템의 정보 창을 확인한 파티원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 되었다.
“……!”
써 보지 않아 정확한 성능은 알 수 없었지만, 완전히 처음 보는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놀란 파티원들을 향해 이니스코가 우쭐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긴 500아스테르 지불하고 티켓 한 번 끊으면, 실패하거나 포기할 때까지 계속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야.”
“오, 그거 재밌는데?”
“이 몸은 형들과 콘텐츠를 함께하기 위해, 딱 1스테이지 까지만 클리어하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말이지.”
체스크가 이니스코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크으, 역시! 우리 동생님밖에 없다니까!”
“헤헤, 그렇지?”
하지만 닳고 닳은 랄프는 이니스코의 생색에 속지 않았다.
“너 솔직히 말해 봐.”
“뭘?”
“첫 스테이지 겨우 깬 거지?”
“으응?”
“첫 스테이지 힘들게 깨고 두 번째 스테이지부턴 어려워보여서 돌아온 거 아니야?”
“……!”
“파티원이 필요했겠지.”
“그, 그런 거 아니야!”
랄프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이니스코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 * *
깡- 깡- 깡-!
어둑한 광산 안쪽에서, 쉼 없이 울려 퍼지는 경쾌한 쇳소리.
-광물 채굴에 성공하셨습니다!
-높은 채굴 기술로 인해 광물의 등급이 유지됩니다.
-‘하급 화염의 정수’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때마다, 이안의 입에서는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처음 마계의 광산에서 채굴을 시작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손재주와 채굴 스킬.
이 부분이야말로 이안이 노력으로 부족한 재능을 극복한 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크으, 좋았어! 내가 여기서 나가기 전에 기필코 이 광맥을 거덜 내고 말겠어.’
이안은 욕심이 많다.
적어도 게임 안에선, 그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은 탐욕덩어리다.
때문에 이 지랄 맞은 노가다 퀘스트에서, 최대한 뽕을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최하급 정수를 채굴하는 데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10초 정도……. 하급은 20초, 중급은 한 40초니까…….’
광물을 채굴하는 와중에도, 이안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캐면, 분명히 제한시간을 유지하면서 정수를 차곡차곡 모을 수 있겠어!’
최하급 정수를 하나 사용하면,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6초 늘어난다.
반면에 채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 정도이니, 오히려 4초나 되는 시간을 손해 본다.
하지만 하급 정수부터는 얘기가 다르다.
하급 정수의 경우 대충 14~15초 정도 걸려 채굴을 해내면 무려 42초의 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가끔 채굴되는 중급 정수의 경우 채굴에 1분이 걸리지 않는데, 따지고 보면 거의 5분의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아직 채굴에 성공한 적도 없고 채굴이 가능한지도 미지수이지만, 상급 이상의 정수라도 채굴하게 되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어떻게든 최하급과 하급 정수들만으로 제한 시간 소모를 버텨 내야겠어. 적어도 최초 발견 버프가 끝날 때까진, 여기서 나가지 않을 거야.’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난 이안의 두 눈이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그가 곡괭이로 다시 광산의 석면을 내리찍는 순간…….
깡- 까강-!
-광물 채굴에 성공하셨습니다!
-높은 채굴 기술로 인해, 광물의 등급이 유지됩니다.
-‘상급 바람의 정수’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최초로 상급 속성의 정수를 채굴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가 300만큼 증가합니다.
-명성이 5만 만큼 증가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얼굴 한가득 탐욕의 미소가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