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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뿍이의 슬픔 (3)
* * *
띠링-!
-‘캘리클롭스’의 신체가 재구성됩니다.
-‘캘리클롭스’의 전투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캘리클롭스’의 초월 레벨이 17로 상향 조정됩니다.
이안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에 나타난 기괴한 형태의 기계괴물.
녀석의 덩치는 이제 기계파수꾼보다도 더 거대하게 변하였으며, 외형 또한 더욱 흉포해졌다.
때문에 굳이 초월 레벨이 상향 조정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녀석의 전투력이 강해졌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답이 없어.’
원래도 충분히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답이 없어졌다.
외통수에 빠지고 만 것이다.
-클클클! 이제 어쩔 것이냐, 인간!
캘리클롭스의 입에서 칼칼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기계공학자 ‘찰리스’라던 녀석의 목소리였다.
‘저 안에 타고 있기라도 한 건가?’
이안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캘리클롭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지옥의 화염시를 발동하여,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어쩌긴 뭘 어째.”
-……?
“게임은 원래 근성이야, 짜샤.”
-뭐라……?
콰쾅- 쾅-!
이안의 활에서 쏘아진 불화살들이 순식간에 허공을 수놓았다.
어차피 클리어가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은 이제 이안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미련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보스 패턴이라도 싹 다 파악해 둬야지.’
어차피 놈을 지금 잡을 수 없다면, 데이터만이라도 최대한 뽑아 놓아야 하는 것.
다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은 이 퀘스트의 난이도였다.
애초에 이런 괴랄한 보스가 등장하는 던전이었다면, 이안이 생각하기에 S+이상의 등급은 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몇 번을 트라이하든 간에……. 이놈은 꼭 잡고 만다.’
오기가 생긴 이안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 * *
뿍뿍이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린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예뿍이와 이름 모를 거북의 사랑이야기는, 등장인물만 인간으로 바꾼다면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의 스토리였으니 말이다.
‘이건 마치……. 거북이를 주인공으로 한 멜로 영화 같은 느낌이야.’
뿍뿍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두 거북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응원해 주고 싶을 정도.
이야기를 다 들은 하린이, 뿍뿍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뿍뿍아.”
“뿍?”
“예뿍이의 이야기대로라면 사실상 예뿍이가 기다린다던 그 거북이는 죽은…… 게 아닐까?”
하린의 물음에, 뿍뿍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거다뿍. 예뿍이도 거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뿍.”
“그……래? 그런데 왜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뿍.”
“미련?”
“그렇뿍. 예뿍이는 이렇게 말했뿍.”
-어쨌든 그는 이곳에 돌아오기로 했고, 나는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뿍. 그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기다린다뿍.
“아…….”
급기야 눈망울을 촉촉하게 적시기까지 한 하린이었다.
예뿍이의 대사가 결국 그녀의 심금을 울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린은 두 거북이의 스토리에 더 이상 빠져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이 가련한 영혼을 구원하는 게 더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남자 거북이가 좀 불쌍하긴 하지만, 우리 뿍뿍이도 충분히 불쌍하니까…….’
뿍뿍이 몰래 눈물을 살짝 훔친 하린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뿍뿍아.”
“뿌욱?”
“내 생각에, 예뿍이의 마음을 얻을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아.”
“그, 그게 뭐냐뿍?”
시종일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던 뿍뿍이의 표정에 한 줄기 빛이 내렸다.
눈을 크게 뜬 뿍뿍이가 간절한 눈빛으로 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하린이 말을 이었다.
“뿍뿍이 네가…….”
“뿍뿍?”
“그 사라진 거북이를 찾아내는 거야.”
“……!”
생각지도 못했던 하린의 말에, 당황한 표정이 된 뿍뿍이.
하린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어차피 그 거북의 행방을 알아내야, 예뿍이의 마음에 조금의 틈이라도 생길 거야. 만약 그 거북이가 찰리스라는 녀석에게 당했고, 네가 그 녀석에게 복수해 준다면…….”
“뿍……!”
“예뿍이도 네게 마음을 열지 않을까?”
그럴싸한 하린의 이야기에, 뿍뿍이의 눈망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 * *
‘아……!’
캘리클롭스가 입을 쩍 하고 벌리자, 거대한 화염의 인장이 허공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
이미 생명력은 5퍼센트도 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 광역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이안은 사망할 터.
캐스팅 시간이 제법 되는 마법이기 때문에 대처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지만,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던전이 조금만 더 넓었어도…….’
저 괴랄한 범위의 광역 공격 마법은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으니 말이다.
귀룡의 방패를 이용해 막아 보기도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완전히 막아 낼 수도 없을뿐더러, 귀룡의 방패의 속성인 ‘어비스’가 녀석의 속성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캘리클롭스가 가진 속성이 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지만, 어비스 속성의 천적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녀석에게 패배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초월 7레벨이 17레벨을 무슨 수로 이겨.’
속으로 툴툴거린 이안은, 옆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아그비의 작은 등을 한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수고했어, 아그비. 하루만 쉬고 있어라.”
이안은 아그비를 소환해제 할 생각이었다.
정령의 사망 페널티 또한 이안이 재접속할 때쯤 되면 사라져 있겠지만, 굳이 이 녀석이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음?”
소환 해제 주문을 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떠오른 아그비의 몸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말에 대꾸가 없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야, 빨리 돌아가라고!”
다급해진 이안이 소환 해제 주문을 다시 영창하였다.
시뻘겋게 달궈진 지옥의 인장이 곧 폭발할 기세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고, 이것이 폭발하는 순간 이안은 물론 아그비까지 잿더미가 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허공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야? 설마 소환 해제도 같이 막혀 버린 거야?’
제법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5분 정도 전에 짹이를 먼저 소환 해제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뭐지?’
당황한 이안의 시선이 아그비의 뒷모습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쩍 벌어진 캘리클롭스의 입에서 거대한 화염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아- 콰아아아-!
악마의 형상을 띈 새빨간 인장이 폭파하며, 이안과 아그비의 신형이 강렬한 홍염에 휩싸였다.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눈을 감지 않더라도, 잠시 후면 시야가 어두워질 테니 말이다.
‘하……. 다음 트라이에는 내가 소환수 죄다 끌고 와서 퀘스트 클리어하고 만다.’
닉과 엘카릭스만 있었더라도, 어떻게든 해 볼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을 터.
이안은 안일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
그런데 그 순간, 이안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쯤 사망판정을 받아 움직이지 않아야 할 몸이, 너무도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왜 아직 로그아웃이 안 되는 거지?’
분명 광역마법이 발동하는 정 중앙에서 멍 때리고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오버 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이안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고, 주르륵 떠올라 있는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메시지들 중에, 게임아웃 되었다는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화염의 정령 ‘아그비’의 정령력이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강렬한 화염의 힘이 태동합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화염의 정령 ‘아그비’가 진화합니다.
콰아아아-!
눈을 뜬 이안은, 자신의 양 옆으로 비켜 지나가는 강렬한 화염의 폭풍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다음 순간,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하나의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
사람으로 따지자면, 한 일고여덟 살 정도?
작은 소년의 형상을 한 붉은 그림자가 양팔을 교차한 채 이안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화염의 하급 정령 ‘아그비’가 화염의 중급 정령 ‘마그비’로 진화하였습니다.
-화염의 정령 ‘마그비’가 고유 능력 ‘홍염의 방패’를 시전합니다.
-화염의 정령 ‘마그비’가 ‘지옥의 불길’을 막아 내었습니다.
-97.55퍼센트 만큼의 피해를 흡수합니다.
-37.42퍼센트 만큼의 피해를 되돌려줍니다.
-‘마그비’의 생명력이 805만큼 감소합니다.
-‘캘리클롭스’의 생명력이 9,823만큼 감소합니다.
치익- 치이익-!
눈앞을 가득 메우던 시뻘건 화염의 폭풍이, 점차 허공으로 흩어지며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안의 귓전으로, 당황한 찰리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찰리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안은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였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만큼은 아주 확실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지.’
어느새 아그비. 아니, 마그비의 정보 창을 띄운 이안의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제 중급 정령이 된 마그비의 전투력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그비(화염의 정령)
정령력 : 0/100,000
속성 : 화염
등급 : 중급 정령
소환 지속 시간 : 450분 (재소환 대기 시간 : 600분)
공격력 : 2,325
방어력 : 1,317
민첩성 : 1,795
생명력 ; 28,750
……후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 생성된 하나의 고유 능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홍염의 방패
마그비가 지속 시간 동안 양손을 교차시키며, 일시적으로 범위 내의 모든 피해를 흡수합니다(흡수율 : 90~99퍼센트).
*흡수된 피해량의 30~40퍼센트만큼을 화염 피해로 전환하여 적에게 다시 돌려줍니다.
*홍염의 구슬에 화염의 기운이 가득할 때만 고유 능력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충전된 화염의 기운 : 0.25/100).
*마그비가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때마다 화염의 기운이 조금씩 충전됩니다.
이 ‘홍염의 방패’와 함께라면 다시 한 번 판을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