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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뿍이의 슬픔 (1)
“풉, 그러니까, 상사병……이라는 거네?”
뿍뿍이의 이야기를 듣던 하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진지한 표정으로 스토리를 풀던 뿍뿍이의 아랫입술이 삐죽 올라왔다.
“상사병이 뭐냐뿍? 나 지금 진지하다뿍. 웃지 마라뿍!”
마치 마지막 남은 미트볼을 빼앗기기라도 한 양, 분노한 표정이 되어 인상을 쓰는 뿍뿍이.
물론 하린의 눈에는 그마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하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알겠어, 뿍뿍아. 누나가 미안해.”
“뿍- 뿌뿍-!”
“그래서 어디까지 말했었지?”
씩씩거리던 뿍뿍이는 하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달래 주자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정령계의 서리동굴이라는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북을 봤다고 했뿍. 그러고 나서 병에 걸렸다고 했뿍.”
“아, 그랬었지…….”
아련한 표정이 되어 눈을 지그시 감는 뿍뿍이를 보며, 하린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웃는다면 뿍뿍이에게 커다란 상처가 될 것을 잘 알기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뿍뿍아.”
“뿍?”
“혹시, 눈만 감으면 막 예뿍이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래?”
“뿌뿍?!”
“꿈에도 맘대로 자꾸 나오고.”
“뿌욱!”
“예뿍이만 떠올리면 막 가슴이 시리고 그러지?”
“뿌뿍! 대체 어떻게 알았냐뿍?”
하린 상담사의 완벽한 문진에 놀란 뿍뿍 환자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꿈뻑이기 시작했다.
뿍뿍이로선 등껍질 생기고 처음 겪는 첫사랑의 고통을 하린이 너무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뿍뿍이의 눈에는 마치, 하린이 독심술을 익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고객의 격한 반응에 신이 난 하린은 계속해서 진단을 이어 갔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뿌욱?”
“네 표정만 봐도 이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지.”
“대, 대단하다뿍!”
하린을 향한 존경심이 마구마구 솟아나는 뿍뿍이의 눈동자.
그녀의 말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뿍뿍이는 접시에 아직 미트볼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뜸을 들인 하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병은…….”
하린이 운을 떼자, 뿍뿍이의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꼴깍.
이어서 뿍뿍이의 시선이 그녀의 입에 고정되었다.
“치료할 방법이 단 두 가지밖에 없어. 게다가 그 치료법들은 무척이나 어려운 방법이지.”
“뿌욱! 그게 뭐냐뿍! 말해 줘라뿍!”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예뿍이가 널 좋아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예뿍이보다 더 예쁜 거북이가 널 좋아하게 만들거나.”
“……?”
“이 둘 중 하나를 해내야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뿍뿍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린의 말처럼, 그것은 정말 너무도 어려운 치료법들이기 때문이었다.
등껍질을 부르르 떤 뿍뿍이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이 상사병이라는 병……. 불치병이었냐뿍.”
아련한 표정,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는 뿍뿍이.
그 반응에, 이번에는 오히려 하린이 당황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뿍뿍이가 예뿍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의욕을 불태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린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뿍뿍아, 치료법이 두 개나 있는데 왜 이게 불치병이야?”
뿍뿍이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뿌욱……. 일단, 예뿍이보다 예쁜 거북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뿍.”
“응?”
“그녀는 완벽하기 때문이다뿍.”
“…….”
어이없는 표정이 된 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했다.
‘후, 콩깍지가 어지간히도 쓰였네.’
본인의 눈에 씐 콩깍지의 존재는 인지하지 못하면서, 뿍뿍이에게 측은한 눈길을 주는 하린.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럼 예뿍이의 마음을 얻는 건 왜 불가능한 건데?”
말을 마친 순간, 하린은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뿍뿍이의 표정이 거의 울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내, 내가 뭔가 말실수라도 한 거야?’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하린을 올려다보는 뿍뿍이.
이어서 뿍뿍이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뿍…….”
“음……?”
“예뿍이에겐…….”
“……?”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아련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뿍뿍이.
“다른 거북이가 있뿍.”
뿍뿍이의 입에서, 또다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 * *
바위에 이어 풀, 그에 이어 얼음속성까지.
‘속성의 방’이라는 명칭을 가진 세 개의 페이즈를 통과한 이안은, 그야말로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크, 여기가 바로 꿀단지였구나!”
페이즈를 통과하는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초월 경험치를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같았더라면 거의 사나흘은 노가다 해야 채울 수 있는 양의 경험치를, 불과 반나절 만에 획득한 것.
덕분에 이제 초월 7레벨에서도 이안의 경험치는 거의 최대치까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속성’ 때문이었다.
두 번째 페이즈와 세 번째 페이즈의 속성 필드가 화염의 정령인 아그비가 활약하기에 최고의 무대였으니 말이다.
‘풀’속성과 ‘얼음’속성은 화염에 가장 취약한 속성들이었고, 아그비와 이안은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수고했어, 아그비.”
그리고 이안의 격려에 아그비는 감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다, 주인. 대단하다.
하급 정령인 아그비는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녀석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아그비의 표정에는, 무한한 존경심이 어려 있었으니 말이다.
‘후후, 짜식, 내 전투 실력에 반했군.’
만족스러운 표정이 된 이안은 씨익 웃어 보였다.
일견 자뻑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이안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그 증거로, 60정도이던 아그비의 충성심이 100까지 가득 차올라 있었으니까.
“자, 이제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좋다. 주인아.
아그비는 화염의 정령이지만, 일반적인 정령이 아니다.
샬론이 말했던 것처럼, 녀석은 염왕炎王의 재목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모르는 사실이었으나, 정령계의 전설 속에 있는 염왕은 무척이나 호전적인 성향의 군주였다.
그러니 이안과 함께하는 치열한 전투들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 구간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주변을 살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흠, 이대로 끝일 리는 없고……. 다른 속성의 방이 또 등장하려나?’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의 난이도가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A++라는 하드한 난이도를 가진 퀘스트다.
이렇게 얌전하게 끝날 리는 없었다.
‘보스 페이즈가 따로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이안은 시야의 구석에 작게 떠올라 있는 던전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현재 진행률 : 92%
이어서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진행률 퍼센트가 무척이나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보스 페이즈가 등장하기에는 너무 많이 진행되었고, 그렇다고 이대로 던전이 끝나기에는 부족한 수치.
그런데 그때, 이안의 귓전으로 누군가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약간 기계음이 섞인 듯하면서도 나이 많은 노인의 목소리였다.
-감히 내 연구실에 들어오려 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이안의 시선은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고.
쿵- 쿵- 쿵-!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어둠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구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셋 중 가운데 있는 녀석의 모습이 놀라웠다.
“……!”
녀석의 외형이, 이안이 상대했던 기계파수꾼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심연의 협곡에 있던 녀석보다 덩치가 훨씬 작다는 것 그리고 녀석의 외피가 검붉은 빛을 띠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지? 기계파수꾼……?’
기깅- 기기깅-!
듣기 거북한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을 일으키는 녀석.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기계공학자 ‘찰리스’가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어……?’
이안이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이번에는 퀘스트 창이 하얗게 펼쳐졌다.
-찰리스의 연구실 (돌발)(히든)
당신은 오염된 광산을 조사하던 중 광산의 깊숙한 곳에 은둔해 있던 기계공학자 ‘찰리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찰리스의 연구실에는 커다란 기계설비가 구축되어 있다.
아마도 찰리스의 기계설비들이, 기계몬스터들을 생산해 내는 근원으로 추정된다.
기계공학자 찰리스를 처치하고 그의 연구실로 들어가, 기계 설비들의 작동을 중지시키자.
만약 기계 설비들이 작동을 멈춘다면, 오염된 광산도 정화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에픽)(히든)’퀘스트 진행.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알 수 없음.
* * *
하린은 뿍뿍이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뿍뿍이의 이야기는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스토리의 시작은 이러했다.
-나와 함께 가자 예뿍. 여긴 맛있는 것도 별로 없고, 춥고, 외로운 곳이다뿍.
이안이 오염된 광산에 들어간 이후.
뿍뿍이는 이안 몰래 서리동굴에 갔었다.
예뿍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뿍뿍이는 아름다운 예뿍이가 이 춥고 외로운 곳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싫었다.
하여 예뿍이를 설득해 보려 하였다.
조금 쑥스럽지만,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뿍뿍이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하였다.
-미안해, 뿍뿍. 난 이곳을 떠날 수 없뿍.
-나, 나와 함께 가면 맛있는 미트볼을 잔뜩 먹을 수 있뿍!
-그래도 할 수 없다뿍.
-어째서냐뿍……!
포기를 모르는 집념의 거북이 뿍뿍.
그는 어떻게든 예뿍이를 설득해 보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녀가 진심을 느낀다면 결국 함께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뿍이의 입에서, 충격적인 얘기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거북이 있뿍.
-……!
-그가 돌아왔을 때, 이 자리에 내가 있어 줘야 한다뿍.
-뿌뿍?
-앞으로 백년……. 아니 천년이 더 걸리더라도, 나는 여기서 그를 기다릴 거다뿍.
뿍뿍이에게 이 이야기는 미트볼을 잃어버렸을 때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강렬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