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50화 (56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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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의 방 (3)

* * *

기계파수꾼을 처치했던 당시, 이안은 의문의 아이템을 하나 손에 넣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급 기계소환수 설계도’ 아이템.

처음 그것을 얻었을 때 이안은 무척이나 설레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종류의 소환수를 얻을 수 있는, 신규 콘텐츠의 발견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였다.

카일란은 이안에게 그렇게 쉽게 신규 콘텐츠를 열어 주지 않았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려던 이안에게 정보 창 대신 두 줄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을 뿐이었다.

-봉인된 이계 문명의 유산입니다.

-봉인을 해제하려면 ‘암호 해독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이안은 이제껏 기계소환수 설계도를 인벤토리 구석에 쳐 박아 둘 수밖에 없었다.

‘암호 해독기’라는 아이템에 대한 정보는 탐험가 클래스의 랭킹 1위인 릴슨조차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봉인을 풀기 위한 단서가 전혀 없었으니, 일단 정령계의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

물론 그리퍼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당장 진행할 다른 퀘스트들이 많았으며, 그것들을 진행하다 보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령계의 에피소드 자체가 기계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렇게 바위괴물로부터 ‘암호해독기’ 아이템을 얻었으니까.

비록 ‘고장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반쪽짜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단 오염된 광산부터 클리어하고 나서 생각하자.’

획득한 아이템들을 인벤토리 안에 갈무리한 이안은 빠르게 철문을 향해 내달렸다.

바위괴물들이 쫓아오기는 했지만, 그 거대한 덩치로 이안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금세 철문에 도착한 이안은, 구석에 보이는 커다란 열쇠구멍을 향해 ‘바위열쇠’를 꽂아 넣었다.

열쇠의 크기 자체가 야구방망이만 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모양을 맞춰 끼워 넣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드르르륵-!

열쇠를 꽂아 넣은 이안이 시계 방향을 향해 그것을 돌리자, 던전에 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긍- 그그긍-!

이어서 남아 있던 바위괴물들이 포효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워어어!

‘됐어!’

기관이 작동하는 것까지 확인한 이안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혹시나 열쇠가 맞지 않는다거나 하는 불상사가 생길 경우의 수도, 마음 속 한편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바위의 방’을 성공적으로 탈출하셨습니다.

-‘소환’ 스킬 제한이 해제됩니다.

-‘귀환’ 스킬 제한이 해제됩니다.

-첫 번째 페이즈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좋았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친 이안은, 오른팔의 근육을 한차례 풀어 주었다.

근육을 한계 이상으로 사용한 탓에 저리다 못해 쥐가 났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페이스로 십분만 더 전투가 이어졌다면,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자, 다음은 뭐냐?’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이었던 공간은, 어느새 다시 기다란 구조의 통로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안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금지되어 있던 ‘소환’ 스킬과 ‘귀환’ 스킬의 제약이 풀렸지만, 그것은 이제 의미 없었다.

귀환 스크롤을 써서 퀘스트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을 뿐더러, 짹이와 아그비 외에 다른 녀석들을 소환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누군가 이안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미련하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관문을 겨우 통과한 주제에, 고집을 부리는 것 같이 느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단지 고집만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 아니었다.

이안은 앞으로의 관문들이, 방금 통과한 ‘바위의 방’ 보다 훨씬 쉬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또다시 바위 속성의 방이 등장하지 않는 한 말이지.’

현재 이안의 주력 정령인 아그비의 속성은 화염이다.

그리고 화염 속성과 상성이 좋지 않은 속성은, 아직까지 카일란에 두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바위 속성과 물 속성.

한데 바위 속성은 방금 통과했으니 등장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고, 그렇다면 남아 있는 역상성은 ‘물’속성 하나뿐.

그렇다면 이안은 ‘설마 그 많은 속성들 중에 물속성이 나오겠어?’와 같은 안일한 마인드로 페이즈를 진행하는 것일까?

당연히 그것 또한 아니었다.

이안은 설사 물 속성의 페이즈가 나오더라도, 클리어할 자신이 있었다.

물 속성에게 가장 강력한 ‘전격’속성의 정령.

이안에게는 ‘짹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정령왕의 심판에도 전격 속성이 붙어 있고 말이지.’

어쨌든 이런 계산 속에, 이안은 거침없이 던전의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 보는 기계몬스터들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어렵지 않게 처치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속성의 방 안에서 등장하던 녀석들과 달리, 광산에 젠되는 녀석들은 기계원숭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드디어 이안의 시야에, 두 번째 페이즈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광산에 설치된 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페이즈가 발동되었습니다.

-‘풀의 방’이 열립니다.

‘빙고!’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입에서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전격’속성에는 강하지만 ‘화염’속성에는 무척이나 취약한, ‘풀’ 속성의 페이즈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긍- 그그그긍-!

기관이 또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며, 첫 번째 페이즈와 비슷한 석실이 만들어졌다.

이어서 공간의 곳곳에 거대한 나무괴물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으흐흐.”

이안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화염의 장궁을 소환하였다.

방금 전까지 바위괴물들로 인해 쌓여 버린,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었다.

* * *

끼이익.

듣기 거북한 마찰음과 함께 조심스레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하린의 고개가 자연스레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이 열린 자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면 응당 누군가 들어와야 할 것인데, 마치 귀신이 와서 문을 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충분히 오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린은, 당황하기는커녕 슬쩍 웃음 지었다.

“훗.”

누가 들어온 것인지 보이진 않았으나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주방을 향해 시선을 돌린 하린은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서걱서걱.

듣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갈 만한 맛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주방.

그런데 그 소리들 사이로, 잡음이 슬쩍 울려 퍼졌다.

뿍- 뿌뿍.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하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자주 온다, 뿍뿍아?”

주방에 들어온 귀신은 다름 아닌 뿍뿍이였다.

문이 열렸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은 이유는 뿍뿍이의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주방기구들과 탁자에 가려, 문의 아래쪽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린의 옆으로 쫄래쫄래 다가온 뿍뿍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배고프다뿍. 지난번에 먹었던 크림 미트볼이 먹고 싶다뿍.”

마치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다섯 살 난 아이처럼, 하린에게 칭얼대는 뿍뿍이.

뿍뿍이의 등껍질을 한 번 쓰다듬어 준 하린이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려. 이 누나가 금방 만들어 줄게.”

“뿍! 역시 하린이 최고다뿍!”

만족스런 표정으로 하린의 옆에 엎드린 뿍뿍이는, 얌전히 요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하린 또한 ‘크림 미트볼’을 만들었다.

“그런데 뿍뿍아.”

“뿍?”

“요즘 왜 이렇게 휴가가 길어?”

“주인이 요즘 정령친구들 키우느라 바쁘다뿍.”

“아하.”

“좀 오래 바빴으면 좋겠다뿍. 휴가 길어서 좋다뿍.”

하린과 뿍뿍이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상황은 사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뿍뿍이가 지금 무척이나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뿍뿍이는 지금 이안이 소환하지 않았음에도, 버젓이 인간계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이안에게는 테이밍 마스터 클래스의 티어를 올리면서 얻은, 특별한 스킬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감’스킬.

소환술사가 없는 자리에서도 어느 정도 소환수를 부릴 수 있으며, 심지어 로그아웃한 뒤에도 일정 시간 동안 소환수를 유지시킬 수 있는, 이안의 소환수들을 한층 고통스럽게 만든 스킬 말이다.

하지만 지금 뿍뿍이는 그 스킬과 전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만약 뿍뿍이가 교감 스킬의 통제 하에 소환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하린의 주방에 엎드려서 빈둥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안이 교감스킬로 뿍뿍이와 연결되어 있다면, 뿍뿍이가 뭘 하고 있는지 전부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뿍뿍이가 게으름피우는 꼴을 이안이 두고 볼 리 없었다.

“뿍- 뿌뿍-!”

만사가 귀찮다는 듯 짧은 다리로 목을 긁적이는 뿍뿍이.

뿍뿍이는 지금 과거 영초를 찾아다니던 때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간계를 활보하고 있었고, 착한 하린은 뿍뿍이의 행복한 일탈을 이안에게 비밀로 해 주고 있었다.

“배고프다뿍! 뱃가죽이 등껍질에 붙은 것 같뿍!”

“잠깐만 기다려, 인마. 거의 다 됐으니까.”

“인마라니……. 상처 받았뿍. 주인 말투 배우지 마라뿍.”

“시끄러.”

“뿍- 뿌뿍-.”

정감 넘치게 투닥거리던 둘은, 곧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크림 미트볼은 뿍뿍이가 좋아하는 별미이기도 하지만, 하린도 종종 즐겨먹는 간식거리였다.

미트볼을 오물거리던 하린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뿍뿍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뿍뿍아.”

“왜 부르냐뿍?”

“혹시 너 요즘 무슨 고민거리 있어?”

“뿍?”

“요즘 뭔가 우울해 보여서 말이야. 말로만 휴가라고 행복하다고 하고……. 혹시 사냥터가 그리운 거야?”

하린의 물음에, 뿍뿍이는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뿍! 그럴 리가 있냐뿍!”

“흠, 그럼 왜 표정이 어두운 거지……? 근심 있으면 이 누나한테 다 얘기해 봐. 혹시 알아? 내가 도움이 될지.”

“뿌욱?”

하린의 은근한 말에 뿍뿍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린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어서 말해 봐. 문제가 뭔데? 혹시 요즘 살 쪄서 등껍질이 꽉 끼는 거야?”

뿍뿍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하린을 마주보았다.

“정말 하린에게만 말하는 거다뿍.”

뿍뿍이의 말을 들은 하린은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었다.

뿍뿍이의 표정을 보니, 무척이나 흥미로운 스토리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았어. 다른 데다 절대로 얘기 안 할 테니까, 얼른 말해 봐.”

“뿍…….”

뿍뿍이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트볼을 오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하린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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