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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의 방 (1)
‘어쩐지 쉽게 풀린다 했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이안은,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당황스럽다 해도, 우왕좌왕 하다가 자멸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안이 다시 신속하게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타탓-!
그리고 이안이 서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돌주먹이 틀어박혔다.
콰앙-!
비산하는 파편들 사이로 빠져나온 이안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위괴물들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현 상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내가 처음 사냥한 녀석에게서는 열쇠가 드롭되지 않았어.’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이안이 처치한 녀석이 애초에 열쇠를 목에 걸고 있지 않았을 경우, 아니면 열쇠를 목에 걸고 있었으나 드롭하지 않았을 경우.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더욱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다.
목에 열쇠를 걸고 있는 녀석을 사냥해도, 무조건 열쇠가 드롭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쓰러져 있는 녀석의 사체를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젠장. 이러면 곤란한데…….’
이안이 처치한 녀석의 사체에 목걸이가 버젓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확인해야 할 것은…….’
이안의 신형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전장에 남아 있는 여덟 마리의 바위괴물 중, 열쇠를 가진 녀석이 몇 놈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목걸이를 목에 건 녀석들은 전부 처치해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쿵- 쿵- 쿵-!
바위괴물들의 육중한 주먹이, 연달아 이안이 지나간 자리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이안의 날랜 몸놀림은,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안이 전장을 한 바퀴 다 돌아본 순간.
쿠우웅-!
한 마리의 바위괴물이 추가로 소환되었다.
이안은 재빨리 시선을 돌려 녀석의 목 부분을 살펴보았다.
“……!”
그리고 녀석의 목에는 열쇠가 걸려 있지 않았다.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좋았어. 이러면 승산이 있지……!’
처음 방이 만들어질 때 소환되어 있던 바위괴물들의 숫자는 여덟.
한 마리를 처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환되어 있는 바위괴물들의 숫자는 아홉.
방이 열린 지 6분이 넘어가는 시점에 오히려 한 마리의 바위괴물이 늘었지만, 이안의 표정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24분…….’
이안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정리된 정보는, 총 세 가지였다.
첫째, 이안이 이 방에 들어온 이후 추가로 소환된 바위괴물은 두 마리이며, 그들 둘은 모두 열쇠를 목에 걸고 있지 않았다.
둘째, 기존에 있던 여덟 마리의 괴물들은, 전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셋째, 이안이 한 마리를 처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분여 정도. 반면에 새로운 골렘이 젠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분이다.
별것 아닌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정보지만, 이안은 이 정보들 안에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시나리오를 짜고, 가장 효율적인 공략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앞으로 젠 되는 녀석들은 건드릴 필요 없어.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기존의 여덟 마리만 전부 처치하면 돼.’
한 마리는 이미 이안의 손에 처치되었으니, 이제 남은 바위괴물의 수는 총 일곱.
이안이 한 마리 처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4~5분 정도였으니, 일곱 마리를 전부 처치하려면 30분 정도가 걸리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두 마리를 처치해야 하는 시점부터는, 골렘의 젠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 녀석을 처치할 때 쯤 이면, 새로운 골렘이 거의 열다섯 마리는 쌓이겠어.’
계산을 마친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운이 좋아 열쇠가 빨리 드롭된다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마지막 한 마리가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안은, 퀘스트의 향방을 운에 맡겨 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안의 성격상,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한 마리씩 잡아서는 안 돼. 어떻게든 처치 타임을 단축시킨다!’
피피핑-!
어느새 생성된 화염의 장궁에서, 연달아 화살이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화살들은 각기 다른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퍼퍽- 퍼퍼퍼퍽-!
거의 동시에 화살에 맞은 일곱 마리의 골렘들이 이안을 맹렬히 쫓아오기 시작했다.
* * *
‘화염’속성은 ‘바위’속성에게 제대로 된 대미지를 입히지 못한다.
상성 관계에서 거의 절반의 위력이 손실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안은, 창을 휘둘러 노멀 타입의 공격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정령 마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했다.
위력의 손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령마법의 DPS가 약간 더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기를 들면 근거리 공격을 해야 하지만, 화염시를 쏘는 것은 원거리 공격이다.
피격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정령 마력’을 전부 소진했을 경우였다.
‘어쩔 수 없어. DPS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려면……!’
현재 이안의 초월 정령 마력은 천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지옥의 화염시’ 정령 마법은 한 번 발동될 때 마다 100의 초월 정령 마력을 소진한다.
이안의 화살이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총 이백 발의 화살을 쏘고 나면 정령 마력이 모두 소모되는 것이다.
물론 정령 마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차오르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무한정 마법 사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여 이안은 지금까지 최대한 효율적으로 정령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열 개의 표식이 모여 터지면서 ‘지옥의 화염시’ 마법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와도, 나머지 화살을 알뜰하게 다 쓴 뒤에야 마법을 다시 발동시켰던 것이다.
아그비와 함께 표식을 쌓다 보니 사실상 5발 정도만 쏴도 표식이 전부 쌓이지만, 20발을 다 소진할 때 까지 한발 한발 빗나가지 않게 신중히 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전략을 바꾸는 수밖에.’
이안은 거의 뿌리듯 화살을 난사하며, 바위괴물들을 구석으로 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한 마리에 극딜을 하여 하나씩 잘라내는 전략이었다면, 이제부턴 여러 마리에게 무작위로 딜을 넣기로 한 것이다.
시위를 당길 오른손을 몇 차례 쥐락펴락 한 이안이, 거침없이 시위를 당기기 시작한다.
피핑- 피피피핑-!
그러자 정말 미친 속도로, 화살들이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화염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프로봇’의 생명력이 77만큼 감소합니다.
-‘지옥불’ 표식의 중첩이 Maximum이 되었습니다.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화염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프로봇’의 생명력이 669만큼 감소합니다.
지금까지도 이안의 연사속도는 충분히 훌륭했다.
거의 초당 2발의 화살을 쏘아대면서도, 100%의 명중률을 자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과 비교하자면, 그 정도는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었다.
누가 본다면 그냥 아무데나 쏘는 것 아니냐고 할 만큼, 미친 듯한 속도로 화살을 뿌려 대고 있었으니까.
-‘지옥불’ 표식의 중첩이 Maximum이 되었습니다.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지옥불’ 표식의 중첩이 Maximum이 되었습니다.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콰쾅- 쾅!
거의 2~3초에 한 번, 표식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안이 바위괴물들을 몰아놓고 마구잡이로 쏴 대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맞아도 상관없었고, 심지어 어쩌다 한 발쯤은 빗나가도 관계없었다.
어차피 표식이 한 번 쌓일 때 까지만 집중해서 맞추면, 재사용 대기 시간은 돌아오게 되니 말이다.
표식이 터지고 난 뒤 남아있는 10~15발 정도의 화살은, 말 그대로 난사하고 있는 것.
콰콰쾅-!
그러자 이안의 정령 마력은 급속도로 축나기 시작했다.
-‘지옥의 화염시’ 정령 마법을 사용하여 정령 마력이 100만큼 소진됩니다.
-‘지옥의 화염시’ 정령 마법을 사용하여 정령 마력이 100만큼 소진됩니다.
그리고 2분도 채 지나기 전에, 모든 정령마력이 소진되고 말았다.
-‘지옥의 화염시’ 정령 마법을 사용하여 정령 마력이 100만큼 소진됩니다.
-정령 마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정령 마법을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안의 시선이, 바위괴물들의 생명력 게이지 바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정령 마력이 다시 찰 동안, 한 놈은 무조건 처치한다.’
그가 계속해서 표식을 터뜨린 바위괴물의 생명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나머지 녀석들의 생명력은 골고루 5%정도씩 깎여 있었다.
정령 마력이 다시 차오르려면 1~2분 정도는 걸릴 테니, 그 사이 가장 생명력이 낮은 녀석을 제거할 계획이었다.
“흐읍!”
어느새 정령왕의 심판을 꺼내 든 이안이, 전방을 향해 있는 힘껏 팔을 내뻗었다.
쐐애애액-!
이어서 강렬한 뇌전을 머금은 정령왕의 심판이 바위괴물의 가슴에 정확히 작렬했다.
콰쾅- 콰콰쾅-!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프로봇’의 생명력이 395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창을 투척한 직후 빠르게 블러드 리벤지를 장착한 이안의 신형에서, 핏빛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우우웅-!
강렬한 진동음과 함께, 이안의 신형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붉은 빛줄기가 된 이안의 몸이, 마치 빨려 들어가듯 바위괴물을 향해 쇄도하였다.
촤라락-!!
-고유능력,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합니다.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바위괴물들은 무척이나 둔하다.
때문에 치명타를 터뜨리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마치 닭갈비를 꼬챙이에 꿰어 버리듯, 블러드 스플릿 한번으로 세 마리의 바위괴물을 꿰뚫고 지나간 이안.
그의 신형이 또다시 핏빛 안개에 휩싸였다.
촤락- 촤라라락-!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합니다.
눈이 부시도록 붉은 빛을 뿜어내는 섬광이 바위괴물들의 사이를 연속해서 난자하고 지나갔다.
물론 무한정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치명타 확률은 100%가 아니었고, 3회 이상의 치명타가 터지지 않는 순간 스킬 연계는 끊기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이 뽑아낸 DPS는, 말 그대로 비현실적인 수준이었다.
콰쾅-!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프로봇’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리프로봇’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를 109만큼 획득하였습니다.
-17 아스테르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안의 검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오며, 또 한 마리의 바위괴물이 무너져 내렸다.
바위괴물을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이전보다 크게 빨라지지 않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남아 있는 다른 바위괴물들의 생명력이 골고루 10%도 넘게 깎여 있었으니 말이다.
쿵-!
바위괴물이 쓰러지며, 장내에 육중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열쇠는 획득할 수 없었지만, 이안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열쇠를 지닌 여덟 마리를 전부 처치할 생각이었으니까.
타탓-!
괴물의 사체를 밟고 튀어 오른 이안이 검을 다시 꽂아 넣었다.
정령 마력이 거의 다 차올랐으니, 다시 활질을 시작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주인, 위험하다!
이안의 반대편 허공에 떠 있던 아그비가 놀란 어조로 소리쳤다.
이안의 뒤편으로, 거대한 돌주먹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워어어-!
하지만 이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그 정도의 느릿한 공격은, 예측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콰앙-!
어느새 이안의 뒤편에 나타난 ‘귀룡의 방패’가, 바위괴물의 주먹을 막아 내었다.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91.95%만큼의 피해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198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느새 멀찍이 튀어나가 괴물들과 거리를 벌린 이안.
“제발 좀 뒈져라, 돼지들아!”
허공에는 또다시 화염의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