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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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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에픽)(히든)
기계문명의 침략이 일어나기 전.
정령산의 곳곳에는, 순수한 원소의 결정석들을 채굴할 수 있는 광산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기계문명의 침략이 일어난 후, 거의 대부분의 광산들이 오염되거나 사라지고 말았다.
원소의 힘을 탐낸 기계문명이 마구잡이로 채굴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산을 점령한 기계문명은 그곳을 본거지로 삼아 계속해서 기계몬스터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광산에서 채굴되는 원소결정들은 기계몬스터들의 동력원이 되어 줄 아주 훌륭한 재료들이었으니까.
수호자 샬론의 골칫거리도 바로 이것이었다.
샬론이 수호자로 있는 ‘남부 지역 정령의 성소’ 근처에도, 오염된 광산이 한 곳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기계몬스터들이 주기적으로 성소를 약탈하였고, 때문에 어린 정령들이 다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것은 샬론에게, 제법 오랜 시간동안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샬론을 비롯한 성소를 지키는 중간자들은 성소에 매어 있는 몸.
하여 샬론은 당신이 자신들을 대신해 오염된 광산을 조사해 주길 바라고 있다.
광산을 조사하고 기계문명의 근원지를 찾아 파괴한 뒤 샬론에게로 돌아오자.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가면 샬론으로부터 귀한 물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기계파수꾼 처치’ 퀘스트 클리어 및, 가장 높은 공헌도 달성.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정령의 곡괭이, 수호자의 보주, ???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퀘스트에는 ‘에픽’과 ‘히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중에서 ‘히든’의 경우 말 그대로 ‘숨겨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게임 조금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수식이다.
그렇다면 ‘에픽’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우선 에픽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서사시’ 혹은 ‘방대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카일란의 퀘스트나 아이템 수식으로 가끔 등장하는 ‘에픽’의 의미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일란에서도 에픽은 ‘서사’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수식어로 ‘에픽’이 붙었다는 것은, 해당 퀘스트 혹은 아이템이 메인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퀘스트도, 정령계의 메인 시나리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퀘스트였다.
‘일단 이 퀘스트 내용만 읽어 봐도, 정령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많은 부분 알 수 있으니까.’
현 시점의 정령계에서, ‘광산’은 마치 기계문명의 전략기지 같은 느낌이다.
궁극적으로 정령계의 기계문명을 몰아내기 위해선, 아마 정령산에 존재하는 모든 광산을 정화해야 할 것이다.
꿀꺽.
한차례 마른침을 삼킨 이안이, 천천히 광산의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이안은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기계파수꾼 처치’보다도 약간 높았으니,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광산에 들어서자 시야가 어둑해지며, 눈앞으로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오염된 광산 C-01’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오염된 광산 C-01’ 던전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10만 만큼 증가합니다.
-48시간 동안 ‘오염된 광산 C-01’ 던전의 모든 몬스터들에게서 획득하는 보상이 2배로 증가합니다.
-정령마력(초월)을 20만큼 영구적으로 획득합니다.
-소환마력(초월)을 15만큼 영구적으로 획득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드디어 최초발견 보상 버프가 중복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레벨 업을 위해선 어마어마하게 많은 초월 경험치가 필요했지만, 네 배 버프와 함께라면 금방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좋아. 이러다가 초월 8렙도 금방 찍겠어.’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아그비를 앞세워 던전의 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둑했던 광산 통로의 안쪽에,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었다.
화염의 정령인 아그비의 몸은 온통 화염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때문에 어두운 곳을 밝히는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녀석들은, 원숭이들보단 레벨이 높겠지?’
오감을 곤두세운 이안은 광산의 곳곳을 꼼꼼히 살피며 움직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긍- 그그긍-!
광산의 어딘가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띠링-!
-광산에 설치된 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페이즈가 발동되었습니다.
-‘바위의 방’이 열립니다.
‘바위의 방……이라고?’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주시했다.
그러자 꽉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던 양 측면의 석벽이 아래위로 열리며,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안이 이동 중이던 길에는, 앞뒤로 거대한 철문이 내려앉으며 통로가 막혀 버렸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기관의 작동이 멈추자, 던전의 형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면으로 길게 나있던 동굴의 형태가, 순식간에 거대한 공터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또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외부 차원계와 완벽히 단절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종류의 ‘소환’스킬이 제한됩니다.
-지금부터 모든 종류의 ‘귀환’스킬이 제한됩니다.
-‘바위’속성의 기계괴물들이 등장합니다.
-괴물들을 처치하고 ‘바위의 열쇠’를 찾아, 방을 탈출하십시오.
-30분이 지난 뒤, 1분마다 몬스터 리젠 속도가 10퍼센트만큼씩 빨라집니다.
메시지를 읽은 이안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필드에 등장했던 기계원숭이들과는 달리, 이제 ‘속성’이 부여된 기계몬스터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 바위속성이라니…….’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바로 ‘소환’스킬이 제한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와도, 다른 소환수들을 소환할 수 없게 된 것이니 말이다.
‘후, 내가 너무 안일했나.’
이안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소환 금지 메시지는, 이안의 뒤통수를 정말 제대로 때렸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안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두 정령과 본신의 힘만으로 이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것.
다시 평정을 찾은 이안이,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이 던전이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방이 한두 개가 아닐 거야. 그리고 방마다 다른 속성의 기계몬스터가 등장하겠지.’
이안은 앞으로 등장할 다른 페이즈보다도 이 첫 번째 페이즈가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안이 가진 두 마리의 정령이 모두, 바위속성과 상성관계가 나쁜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떤 속성의 기계몬스터가 등장해도, 바위 속성보다는 나을 것이 분명했다.
* * *
카일란에는 수많은 속성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속성만 해도 열댓 가지가 넘었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속성도 무척이나 많았다.
그리고 그 속성들은, 각각 다른 속성에 대한 복잡한 상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바위 속성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은 거의 모든 상성 관계를 외우고 있었다.
‘바위 속성은 불과 전기에 강해. 둘 중에는 전기에 더 강하고……. 풀이나 얼음 속성에 약하지.’
속성의 상성 관계는 전투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마법사들과 정령들에게는 더욱 큰 영향을 끼친다.
다른 클래스들의 속성공격은 노멀 속성이 베이스로 깔린 상태에서 20퍼센트 정도의 속성 피해가 추가되는 느낌이라면, 마법사나 정령들의 원소 마법은 위력의 100퍼센트가 속성 피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화염 속성의 스킬로 물 속성의 적을 공격했을 때.
검술이나 창술의 경우 속성공격력 부분에서만 손해를 보겠지만, 정령술이나 원소마법의 경우 공격력의 전체가 깎여 나가는 것이다.
‘그나마 화염 공격은 조금이라도 먹히겠지만, 전류 증식은 아예 안 쓰는 게 좋겠어.’
바위 속성의 몬스터는 전격 속성의 공격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전격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맥시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안으로서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원래 받았어야 할 피해량의 90퍼센트 내지는 95퍼센트 이상이 저항력에 흡수당하고 말 것이다.
쿵- 쿵-!
우락부락한 외모를 가진 바위 속성의 몬스터들이 이안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전장을 훑어본 이안의 손에, 시뻘건 화염의 장궁이 소환되었다.
“그래, 한번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살을 시위에 건 이안이, 가장 앞쪽에 다가오는 몬스터를 조준했다.
그리고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순간.
피이잉-!
‘오염된 광산’ 던전의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바위의 방’에 등장한 몬스터들의 초월레벨은, 기계원숭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낮게는 초월 11레벨부터 많게는 초월 13레벨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던전의 난이도는 완전히 별개였다.
초월 레벨이야 한두 개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체감 난이도는 거의 두 배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콰콰쾅-!
-‘지옥불’ 표식의 중첩이 Maximum이 되었습니다.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화염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프로봇’의 생명력이 627만큼 감소합니다.
지옥불 표식이 폭파되었을 때, 기계원숭이들이 입었던 피해는 2천이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바위괴물들의 높은 방어력에 상성관계까지 겹쳐지니, 피해량은 거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젠장, 돼지 같은 자식들…….’
전투가 시작된 지 3분 정도 지났을까?
이안이 지금까지 한 것은, 한 녀석의 생명력을 절반 수준까지 깎아 낸 것 정도였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부분은 이 녀석들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이었다.
대충 쏴도 화살이 빗나갈 일이 없으니, 표식 쌓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게다가 공격 모션이 느리다 보니, 녀석들의 공격을 피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마 시간적인 촉박함 없이 여유 있게 전투를 할 수 있었더라면, 오래 걸리더라도 클리어가 어려운 페이즈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안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시간 제한이 있다는 거지.’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 제한은 아니다.
폭풍의 협곡 던전 때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의 젠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뿐.
시간이 지난다 해서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사실상 40~50분 정도의 제한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 안에 열쇠를 찾지 못하면, 이 방 전체가 몬스터로 가득 차고 말거야.’
현재 이 방 안에 있는 바위괴물들은 총 아홉 마리.
이안은 아직까지 한 마리도 처치하지 못 했고, 그 사이 새로운 바위괴물 한 마리가 추가로 생성되어 버렸다.
이 말인 즉, 이미 처음부터 몬스터의 젠 속도가 이안이 처치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이야기다.
아직까진 여유가 있지만, 30~40분 뒤에는 이 공간이 바위괴물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이안이라고 해도 모든 공격을 피해 낼 수 없게 된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 테니 말이다.
‘어떤 녀석이 열쇠를 가지고 있을까? 그걸 알아내야 해.’
몬스터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이안은 계속해서 화살을 난사해 대었다.
그리고 이안의 연사속도는, 기계원숭이들을 상대할 때보다도 훨씬 빨라져 있었다.
물론 그때보다 실력이 늘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표적이 너무 크고 느렸기 때문일 뿐.
파파파팍-!
첫 번째 화살이 표적에 닿기도 전에, 이안은 이미 너 댓 번 째 화살을 시위에 올리고 있었다.
아그비와 이안이 쏘아낸 화살이 쉴 새 없이 괴물의 몸통에 틀어박혔고, 표식도 계속해서 터져 나갔다.
펑- 퍼펑- 펑-!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첫 번째 바위괴물이 자리에 쓰러졌다.
쿠웅-!
-몬스터 ‘리프로봇’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프로봇’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리프로봇’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를 112만큼 획득하였습니다.
-18아스테르를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을 확인한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초월 경험치와 아스테르 보상이 예상보다 더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제 열쇠를 가진 녀석만 찾으면 되는데…….’
다음 타깃을 물색하는 이안의 눈이, 예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의 외형에 어떤 단서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모든 괴물들을 처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어떻게든 열쇠를 최대한 빨리 획득해서 이 방을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
이안의 시야에 ‘열쇠’ 모양의 물건이 들어왔다.
바위괴물 중 하나의 목걸이에, 분명 열쇠의 형상을 한 물건이 걸려 있던 것이다.
‘저 녀석인가?’
이안은 잽싸게 몸을 날려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그는 내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바로…….
‘뭐야, 열쇠를 가진 놈이 한 마리가 아니잖아!’
녀석의 뒤쪽에 있던 다른 바위괴물의 목걸이에도, 비슷한 모양을 한 열쇠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