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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왕炎王의 전설 (1)
“자, 팀장들 전부 다 모였지?”
“그렇습니다, 본부장님.”
“그럼 슬슬 회의 시작해 볼까?”
카일란의 기획 팀은 여러 번의 변천사를 거쳐 왔다.
처음에는 세 개의 팀에서 시작했지만, 게임의 규모가 커지면서 계속해서 조직구조가 개편된 것이다.
하여 지금은 총 일곱 개의 기획 팀과 한 개의 디자인 팀으로 구성된, 하나의 ‘기획본부’로 재탄생하였다.
그리고 기획본부의 본부장은 과거 기획 팀 전체를 총괄하던 김인천이었다.
끼익.
김인천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회의실에 앉아있던 총 여덟 명의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앉으시게. 오늘 회의에는 중요한 안건이 많아.”
모두가 착석하고 나자 김인천은 면면을 한 번씩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왼편에 앉아 있는 나지찬을 향해 피식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지찬이가 벌써 팀장이라니, 이거 감개가 무량한데?”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본부장님.”
나지찬은 김인천이 팀장이던 시절, 공개 채용으로 직접 뽑은 기획 팀의 말단 사원이었다.
한데 탁월한 실적을 쌓으면서, 어느새 팀장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나지찬의 옆에 앉아 있던 김의환이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나지찬이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1년이 넘게 그의 사수 역할을 했었던 인물이었다.
“얘 요즘 자꾸 기어오릅니다, 본부장님. 이제는 같은 팀장이라 그런지, 제 말은 씨알도 안 먹혀요.”
“에이, 제가 언제 말입니까.”
“바로 지금이다, 이 자식아.”
그리고 둘의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다른 팀장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큭큭”
“저 둘은 만나기만 하면 항상 시끄럽네.”
“뭐 사이좋고, 보기 좋잖아요?”
나지찬은 LB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속 승진을 한 케이스였지만, 다른 팀장들은 전혀 그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LB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나지찬처럼 열심히 그리고 많은 일을 하는 사원은 없었으니 말이다.
근무 시간도 시간이지만, 근무 실적은 정말 평범한 다른 사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나지찬이었다.
“자, 잡담들은 그만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소란을 잠재운 김인천이 스크린을 향해 리모컨을 눌렀다.
그러자 하얀 화면이 떠오르며, 여러 가지 그래프들이 나타났다.
“오늘 회의 주제는 다들 숙지하고 있겠지.”
이어서 팀장들의 시선이 스크린에 모였다.
그리고 그 스크린의 맨 위에는, 굵은 글씨로 한 줄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서버별 랭커 현황.
* * *
‘흠, 이거 의외의 지표가 좀 많은데?’
스크린의 그래프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나지찬의 얼굴에는, 흥미로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나지찬은 팀장이 된 뒤 맡은 프로젝트들이 많아진 탓에 한동안 이안의 모니터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사이, 이안의 레벨 랭킹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20위권이라니.’
전 세계에 존재하는 카일란 서버는, 총 서른 개도 넘는다.
때문에 20위권이라 하여도, 사실상 각 서버에선 랭킹 1위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1위와 20위의 레벨 차이도 끽해야 2~3정도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항상 1~5위 사이를 유지하던 이안이 20위까지 내려간 것은 나지찬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뭘까? 한 10위권이면 몰라도……. 이럴 리가 없는데.’
탁자에 있던 스마트 태블릿을 연 나지찬은, 세부 차트를 오픈해 보았다.
그리고 곧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안의 레벨이 벌써 삼주 째 그대로잖아?’
그렇다고 이안이 플레이를 쉬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거의 풀타임 접속이었다.
‘대체 뭘 한 거지?’
더욱 흥미가 돋은 나지찬은 이안과 관련된 데이터들을 하나씩 뜯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이안의 레벨이 그대로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중간계!”
“나 팀장, 뭐라고?”
“아, 아닙니다, 본부장님.”
본부장의 관심을 다시 다른 데로 돌린 나지찬은, 실실 웃으며 이안의 차트를 응시했다.
‘역시……. 아무 이유 없이 이안갓의 랭킹이 떨어졌을 리가 없지.’
나지찬의 시선이, 테블릿의 중간쯤에 떠올라 있는 하나의 그래프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 그래프에는, 이안의 플레이 점수가 압도적인 1위로 박혀 있었다.
-레벨 랭킹(초월)
-Rank 1 : 이안. 초월 레벨 : 7(53퍼센트)
-Class : 소환술사, Lv.447
-Play Score : 100
-Rank 2 : 마크 올리버. 초월 레벨 : 6(42퍼센트)
-Class : 마법사, Lv.431
-Play Score : 67
-Rank 3 : 왕 웨이. 초월 레벨 : 6(36퍼센트)
-Class : 소환술사, Lv.436
-Play Score : 63
-Rank 4 : 샤크란, 초월 레벨 : 6 (27퍼센트)
-Class : 전사, Lv.446
-Play Score : 55
초월 레벨 6과 7.
1레벨 정도의 차이가 뭐라고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쓰냐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레벨이 아닌 초월 레벨이다.
경험치 체계 자체가 지상계에서의 레벨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1~10레벨 사이의 경험치 테이블이 좀 더 특이했는데, 초월 레벨 10레벨을 찍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특히 6레벨부터는,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예를 하나 들자면, 6레벨에서 7레벨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 1레벨에서 5레벨이 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훨씬 길다.
‘2위랑 경험치 차이가……. 필드 사냥으로 따지면 거의 보름치 수준이군.’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초월 레벨 랭킹 아래쪽부터 나열되어 있는 랭킹 차트들의 최상단에, 죄다 이안의 이름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퀘스트 스코어 (초월)
-Rank 1 : 이안. 퀘스트 스코어 : 109,512
-헌팅 스코어 (초월)
-Rank 1 : 이안. 헌팅 스코어 : 978
-레이드 스코어 (초월)
-Rank 1 : 이안. 레이드 스코어 : 81,092
그런데 잠시 후, 히죽거리며 차트를 내리던 나지찬의 두 눈이 살짝 확대되었다.
‘어어……?’
이안이 진행 중인 퀘스트 목록에 아직까지 나와서는 안 되는 이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진행 중인 퀘스트 :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에픽)(히든)
* * *
이안의 눈앞에 두둥실 떠오른, 눈이 부시도록 하얀 빛의 구체.
그것은 곧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수십 갈래의 빛줄기가 되어 퍼져나갔다.
“오…….”
이안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빛줄기들이 허공을 수놓으며 만들어 내는 마법진의 문양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웅-!
마법진이 완성되고 나자, 이안의 눈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고대의 소환 마법진이 완성되었습니다.
-소환 매개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속성의 정수)
이안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오색빛깔의 구슬 중, 가장 크고 붉게 빛나는 구슬을 집어 들었다.
‘제발 불의 정령……!’
이어서 한차례 심호흡을 한 이안은,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매개체를 선택하셨습니다.
-마법진이 발동합니다.
위이잉-!
마법진의 중앙에 올려 진 붉은 화염의 정수가, 더욱 시뻘겋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래 하얀 빛을 띠고 있던 마법진의 문양들이, 점차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갔다.
“……!”
샬론의 오두막을 한 가득 채운, 고대의 소환 마법진.
이안과 샬론의 시선은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었고, 붉게 물든 마법진의 문양들은 빠르게 회전하며 점차 하나의 모양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콰아아-!
이어서 그 문양의 한 가운데, 붉은 화염의 기둥이 뿜어져 올라왔다.
띠링-!
-고대의 소환 마법진이 성공적으로 작동하였습니다!
-사대정령 소환 확률이 증가합니다!
-화염의 상급 정수가 소멸하였습니다.
-화염의 정령 소환 확률이 증가합니다!
-정령의 힘이 증폭되었습니다.
-강력한 화염의 기운이 소환됩니다.
마법진에서부터 뿜어져 올라온 거대한 불기둥의 사이로,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이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선명한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음……?”
집중해서 그것을 보고 있던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불기둥 속에 선명해지기 시작하는 실루엣이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뭐지? 저건 마치…… 달걀 같은 모양이잖아?’
하지만 이안의 옆에 있던 샬론은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오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린 채 굳어버린 샬론.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정령의 소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최하급 화염의 정령, ‘홍염의 알’이 소환되었습니다.
-정령과 계약하시겠습니까?
어느새 타오르던 불기둥은 전부 사그라들고, 이안의 눈앞에 홀로 다소곳이(?) 떠올라 있는 붉은 구체.
순간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이안은, 두 눈을 꿈뻑일 뿐이었다.
* * *
이안은 혼란스러웠다.
‘정령에 알이라는 개념도 있었어?’
일단 화염의 정령이 소환되었으니, 원하던 녀석을 얻었다고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기대했던 것은, 최하급 화염의 정령인 샐러맨더였다.
애초에 이런 알이 소환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걸 부화시키면, 샐러맨더가 나오는 건가?’
어쨌든 불의 정령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니,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부화시켜서 키우면 될 것이니까.
이안은 일단, 녀석의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홍염의 알(화염의 정령)
정령력 : 0/1,000
속성 : 화염
등급 : 최하급 정령
소환 지속 시간 : 무제한
*정령력이 Max가 되면 알이 부화합니다.
-화염 속성을 필요로 하는 소환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정령력이 차오릅니다. (알 상태의 정령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화염속성의 정수(혹은 대자연의 구슬)를 사용하여 정령력을 채울 수 있습니다.
최하급 정수 : 2
하급 정수 : 14
중급 정수 : 98
상급 정수 : 686
최상급 정수 : 4,802
*소환술사의 소환 마력이 높을수록 정령의 소환 지속 시간이 길어집니다. (알 상태의 정령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부화시키는 게 어렵지는 않네.’
만약 이안이 정령술을 배우기 전이었다면, 알을 부화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정령술을 배우기 전에는 ‘정수’를 정령에게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정령계에서 사냥하며 모아 놓은 최하급~하급 정수만 전부 먹여도, 거의 절반 이상의 정령력이 차오를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안에게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획득한 ‘대자연의 구슬’ 아이템도 있었다.
‘흐흐, 일단 정수부터 전부 사용해 볼까?’
이안은 인벤토리에 채워져 있던 화염의 정수들을 죄다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염의 최하급 정수’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홍염의 알’ 정령의 정령력이 2만큼 증가합니다.
-‘화염의 하급 정수’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홍염의 알’ 정령의 정령력이 14만큼 증가합니다.
그리고 이안의 뒤에 선 샬론은 말을 잃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염왕炎王의 전설이 깨어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