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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령을 얻다(2)
* * *
‘A+’라는 퀘스트의 난이도.
이건 그야말로, 말도 안 되게 높은 난이도 등급이다.
물론 트리플 S등급의 퀘스트도 여러 번 클리어해 본 이안이었지만, 이 A+라는 수치는 경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중간계에서 벌써 A+난이도가 뜨다니…….’
쉽게 말하자면, 이 A+라는 난이도는 초월 난이도인 것.
때문에 이안은 충분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신중하게 전략을 구상했다.
‘일단 제한 시간은 없으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공략해야 돼.’
돌풍의 협곡은, 특정 속성의 몬스터에게 제법 많은 전투 스텟 보너스를 주는 특수한 맵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던전의 난이도가 높은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
전투 스텟 보너스를 주는 대상이 바로 어비스 속성과 시온 속성이었고,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전부가 해당 속성의 정령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던전 내 일반 몬스터들이 최하급과 하급으로만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체감하는 것은 최소 중급 정령들처럼 느껴졌다.
그긍- 그그긍-!
기계파수꾼이 기괴한 소리를 뿜어내며 이안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갈기갈기…… 찢어 주마… .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킹콩을 연상케 하였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킹콩의 형상을 한 기계 로봇 같은 느낌이랄까.
‘겉으로 보기에는 서리동굴 마지막 관문에서 상대했던 상급 정령이랑 비슷한 수준인데……. 속성 버프를 받고 있으니, 그 이상이라 봐야겠지?’
집채만 한 주먹을 번쩍 치켜든 기계파수꾼이 이안을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과앙-!
그러자 동굴 바닥에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타탓-!
그것을 가볍게 피해 낸 이안이 빠르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바네사, 사라와 뮤엘 님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소환수 운용해줘.”
“알겠어, 이안!”
“사라는 이속 디버프 좀 부탁해!”
“오케이!”
쿠구구궁-!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며 보스 룸Boss Room처럼 만들어진 동굴의 내부.
그 안에서, 수많은 유닛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티원이야 이안을 포함해 총 넷뿐이었지만, 이안과 바네사의 소환수들을 전부 합하자 풀 파티 수준으로 북적이는 것이다.
빠르게 대형을 갖추며 움직이는 이안의 소환수들을 보며, 바네사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저렇게 많은 소환수들을 어떻게 통제하는 거지?’
일반적인 소환술사들은 소환수를 그렇게 많이 운용하지 않는다.
보통 셋에서 넷 정도의 소환수를 운용하는 소환술사들이 가장 많았고, 초보 소환술사들의 경우 둘 정도만 되어도 컨트롤하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바네사의 경우는 일곱 정도를 운용한다.
‘나는 일곱 정도가 딱 좋던데…….’
물론 바네사 또한 훨씬 많은 소환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솔력 제한도 제한이고, 너무 많은 소환수를 운용하면 최고 효율의 컨트롤을 하기가 힘들었다.
바네사의 피지컬이 독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멀티태스킹 능력은 또 다른 영역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바네사가 실질적으로 전투에 운용하는 소환수들의 스펙은 신화 등급 둘에 전설 등급 셋, 영웅 등급 둘 정도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지의 신룡인 코르투스가 그녀의 주력 소환수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어떠한가?
먼저 신화등급부터 나열해 보자.
지금 전장에 등장한 소환수만 하여도 카르세우스에 뿍뿍이, 엘카릭스에 토르까지.
총 넷이나 된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자리에는 없지만, 잠재력 때문에 조련소에서 훈련 중인 까망이까지 합하면 총 다섯이다.
신화 등급만 해도 이미 다섯 마리나 되는 것.
거기에 전설 등급의 소환수는 그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가장 처음 이안의 식구가 된 라이와 아직까지도 탱커로서 훌륭히 역할을 수행 중인 빡빡이.
기동성만큼은 최강인 할리와 유틸성 좋은 광역 딜러인 핀.
탈 전설 등급의 공격력을 가진 마수 크르르에 최고의 서포팅형 딜러인 전설의 신수 닉까지.
심지어 크르르의 경우 ‘진화 가능’ 개체이다.
잠재력은 당연히 만땅이었으니, 언제든 조건만 충족되면 신화 등급이 될 수 있는 녀석인 것이다.
평범한 상위권 소환술사들은 아마 이안의 소환수들 중 하나만 있어도 단숨에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안은 대체 통솔력이 몇일까?’
이안이 소환한 소환수의 면면을 살펴보던 바네사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그녀는 이안이 운용하는 소환수들의 등급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충 보아도 영웅 등급 이하인 소환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이안이 자신을 GM 이라고 소개했더라도, 쌍둥이 자매는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다.
“할리! 바람의 축복!”
크릉 크릉-!
할리의 둥에 올라탄 이안이 바람처럼 움직이며 기계파수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라이와 핀이 따라붙었다.
끼아아오-!
크르릉-!
하지만 그 셋을 제외한 나머지 소환수들은 슬쩍 뒤쪽으로 물러나며 진영을 구축했다.
심지어 탱커인 빡빡이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바네사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의 오더로 인해 바네사의 소환수도 전부 후방으로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 즉, 전장의 최전방에 탱커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였다.
‘다 피하면서 싸우겠다는 건가?’
이론적으로야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피해내며 딜을 넣을 수 있다면, 탱커는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안 또한, 그런 의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쐐애액-!
이안의 손에 들려있던 정령왕의 심판이, 황금빛 전격을 머금은 채 기계파수꾼을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기계파수꾼의 이마에 틀어박혔다.
광-!
-‘기계파수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기계파수꾼’의 생명력이 587만큼 감소합니다!
스킬 계수가 섞이지 않은 공격치고는 제법 강력한 대미지가 틀어박혔다.
하지만 기계파수꾼의 막대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생각하면, 사실상 간지러운 수준.
우우웅-!
시온의 기운이 파수꾼의 전신을 한 번 감싸더니 눈곱만큼 떨어졌던 생명력이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 그그긍- 가소로운 놈-!
분노한 기계파수꾼이, 던전의 중앙에서 허공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새하얀 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위잉- 위이잉-!
그리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종류의 디버프였다.
-‘기계파수꾼’이 ‘파수꾼의 함성’ 고유 능력을 발동하였습니다.
-30초 동안 이동속도가 2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30초 동안 방어력이 1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90초 동안 모든 공격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5초 동안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빠르게 시스템 메시지를 스캔한 이안이 소환수들의 상태를 체크하였다.
디버프의 범위 내에 있었던 소환수는 총 셋.
그리고 그중 둘은 공포 상태에 저항하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이안은 재빨리 공포 상태가 된 라이와 핀을 가리키며 뮤엘을 향해 오더하였다.
“뮤엘 님, 핀이랑 라이!”
“넵!”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이안의 오더는 핀과 라이에게 ‘해제’ 스킬을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제 클래스만의 고유 능력인 ‘해제’ 스킬이 발동하면, 곧바로 상태 이상이 해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뮤엘쯤 되는 사제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이안의 오더를 기다리고 있던 뮤엘의 지팡이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핀과 라이의 상태 이상이 바로 회복되었다.
공포의 지속 시간은 5초였지만, 2초도 채 지나기 전에 상태 이상이 풀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기계파수꾼에게 다가간 이안이 연신 창검을 내리쳤다.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 능력을 이용해 정령왕의 심판을 컨트롤하면서, 어느새 꺼내 든 블러디 리벤지를 휘두른 것이다.
콰쾅- 광-!
-‘기계파수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기계파수꾼’의 생명력이 295만큼 감소합니다!
-‘기계파수꾼’의 생명력이 1T7만큼 감소합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역시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어차피 피해를 입히기 위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바이탈리티 웨폰을 이용한 공격이, 생각보다 데미지가 잘 안 나왔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데미지가 안 나온다기 보다, 뜻대로 완벽하게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표현이 옳았다.
방금 이안이 의도한대로 정령왕의 심판이 정확히 움직였다면,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연습 부족인가…….’
이안은 속으로 투덜대며, 할리를 컨트롤하여 이동 경로를 확 틀어 돌렸다.
충분히 깔짝거렸으니, 기계파수꾼의 공격이 이어질 타이밍이었으니까.
-크롸롸롸- 쥐새끼, 같은…… 노옴!
부자연스러운 기계음으로 포효한 기계파수꾼이 몸을 번쩍 일으키더니 가슴을 쿵쾅거린다.
그러자 그의 등짝에 돋아 있던 수많은 뾰족한 돌기들이, 사방으로 발사되기 시작하였다.
쐐액- 쐐애액-!
던전 전체를 뒤덮으며 퍼져 나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뾰족한 쇳덩이들.
그것을 발견한 뮤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이거였어. 이거 한 방에 전부 다 빈사상태가 되었었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히 발사되는 무쇠 탄환들은, 이 괴물 녀석의 고유 능력 중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때문에 뮤엘은, 반사적으로 광역 실드를 발동시켰다.
이안의 오더가 없었으나, 실드 없이는 전원 전멸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우웅-!
하지만 그것은, 뮤엘의 착각일 뿐이었다.
끼요오오-!
어디선가 나타난 한 마리 아름다운 피닉스가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며, 전장에 퍼지는 쇳덩이들을 싸그리 지워 버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처음 보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땐, 녀석의 공격 패턴을 전부 파악하는 게 무조건 선행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겁쟁이 녀석들, 도망치지…… 마라!
이안이 처음에 기동성 위주의 소환수들만을 운용하여 접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탱커를 뒤로 뺀 이유가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이안이라 하여도 모든 공격을 피하면서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마당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적에게 공격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회피’만을 목적으로 움직인다면, 얘기가 또 다르다.
공격을 도외시한 채 보스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게 피해 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의 탐색전을 통해, 이안은 녀석의 공격패턴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젠 슬슬 싸워 볼 참이었거든.”
씨익 웃은 이안이, 기계파수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후방에 빠져 있던 소환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튀어나왔다.
“사라, 바네사, 준비됐지?”
“물론!”
“당연하지!”
이안과의 전투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두 자매는 오더를 금방금방 이해하였다.
다만 두 사람과 달리 반 박자 느린 뮤엘을 위해, 이안은 구체적인 오더를 얘기하였다.
“뮤엘 님, 뿍뿍이 위주로 서포팅 해 주세요.”
“네……?”
“저기 맨 앞에 나온 저, 어비스 드래곤 녀석 말입니다.”
“아, 알겠어요.”
눈을 반짝인 이안은 뿍뿍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씨익 웃어 보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뿍뿍아.”
“왜, 왜 그러냐뿍.”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뿍뿍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리고 뿍뿍이의 그 불안감은, 다음 순간 현실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뿍?”
“네가 탱커이자 힐러이자 메인 딜러야.”
뿍뿍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뿌뿍? 그게 무슨 말이냐뿍?”
드래곤 브레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뿍뿍이의 고유 능력 중에는 이렇다 할 공격 스킬이 없다.
‘마법의 일족’ 고유 능력을 사용해 공격 마법을 구사하면 되긴 하지만, 지능보다 물리 공격력이 훨씬 더 뛰어난 뿍뿍이에겐 효율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뿍뿍이는 거의 깡패 수준의 DPS를 자랑한다.
그냥 전투 스텟 자체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었다.
‘마력 강화 고유 능력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사기 능력이었지.’
신령스러운 기운을 흡수할 때마다 스텟이 강화되는, 뿍뿍이만의 고유 능력인 마력 강화.
현재 뿍뿍이의 ‘마력 강화’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마력 강화
심연의 드래곤은 신령스러운 영물을 흡수할 때마다 더욱 강력해진다.
(영초나 영단을 먹을 때마다 방어력과 생명력, 그리고 공격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한다.)
현재 추가 공격력 : 7,524 (초월 250)
현재 추가 방어력 : 5,725 (초월 190)
현재 추가 생명력 : 1,257,565(초월 41,918)
마력 강화로 인한 보너스 스텟만 해도, 일반적인 소환수들이 백 레벨 이상을 올려야 얻을 수 있는 수준인 뿍뿍이.
전투 스멧만 놓고 봤을 땐 카르세우스보다 강력하고 빡빡이보다도 더 단단한 수준이었으니,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뿍뿍이의 아쉬운 점은, 높은 공격계수를 가진 공격 스킬이 없다는 것뿐.
하지만 지금부터 이 단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예정이었다.
어차피 기계파수꾼의 ‘포효’ 디버프 때문에 공격 스킬들은 사용이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뿍뿍이가 오랜만에 밥값하겠군.’
게다가 뿍뿍이의 속성은 ‘어비스’이다.
지금까지는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속성이 바로 이 어비스 속성이었으나, 이 안에서만큼은 최강의 속성이다.
이 던전 안에서 유일하게 버프를 받는 두 개의 속성 중 하나인데다, 나머지 속성을 잡아먹는 상성 관계의 속성이었으니 말이다.
더해서 지금 눈 앞에 있는 기계파수꾼의 속성이 바로, 어비스가 잡아먹을 수 있는 속성인 시온이었다.
“뿍뿍.”
“뿌뿍?”
“그동안 사냥하느라 스트레스 좀 쌓였지?”
“뿍!”
이안은 창을 들어, 기계파수꾼을 가리켰다.
척-!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재가 네 샌드백이야.”
“뿍……?”
“뒤는 형이 책임질 테니까, 뚜까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