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36화 (551/1,027)

========================================

새로운 정령을 얻다 (1) (24권 시작)

“체스크, 엄호사격 좀 부탁해!”

“이니스코, 후방 몬스터 접근 좀 막아 줘!”

돌풍의 협곡 던전의 북쪽 통로.

제단으로 가는 길 끝자락에, 세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심연의 정령들이 그들을 둘러싼 채 공격을 퍼부었다.

“으으, 조금만 더 버텨 봐!”

“랄프 형, 그냥 차근차근 처치하면서 진입하는 게 낫지 않아? 무리해서 들어가다간 어그로 쏠려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오더에 토 달지 마, 이니스코. 어차피 제단에 도착하기만 하면 끝이잖아!”

“알겠……어, 형. 하지만 앞으로 3분 이상은 무리야!”

“그 정도면 충분해!”

사실 돌풍의 협곡 던전은 크게 넓은 맵이 아니었고, 때문에 구슬을 찾은 세 번째 동굴에서 제단까지의 거리도 크게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구간이 던전 클리어를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보니,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숫자와 난이도는 가장 하드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정석적인 공략법은,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며 진입하는 것이었다.

그대로 제단을 향해 달리다 보면, 너무 많은 정령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니까.

바로 지금, 랄프의 일행처럼 말이다.

콰쾅- 쾅-!

수많은 보랏빛의 탄환들이 쏟아져 내리며 강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이니스코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소환수 ‘린키스’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 ‘린키스’의 생명력이 1,029만큼 감소합니다!

-소환수 ‘린키스’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린키스’는 거대한 콩벌레의 형상을 한 전설 등급의 소환수이다.

적들을 도발하여 어그로를 끌고 몸을 돌돌 말아 단단한 외피로 적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상위 티어의 탱킹형 소환수들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강력한 소환수이자, 이니스코가 가진 소환수들 중 가장 탱킹 능력이 좋은 소환수.

하지만 이 녀석조차 결국 강력한 심연의 정령들의 집중포격을 견뎌 내지 못하였다.

‘린키스’의 생명력이 결국 생명력이 다하고 만 것이다.

띠링-!

-소환수 ‘린키스’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린키스’가 소환 해제됩니다.

“젠장.”

이니스코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전진했다면 린키스를 잃지 않아도 됐을 것이니까.

물론 랄프의 오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제단에 도착하기 전에 ‘괴물’녀석이 깨어난다면. 그래서 이안 일행을 몰살시키고 제단을 향해 뛰쳐나온다면.

기껏 설계해 놓은 계획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너무 자기중심적인 오더를 내리는 랄프가 고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랄프형! 이제 더이상은 무리야!”

“다 됐어! 이제 진짜 20초!”

콰아아아-!

랄프의 대검이 붉은빛으로 물들며, 전방을 향해 사나운 폭염을 쏟아냈다.

그리고 폭염이 터져 나간 자리에 널찍한 길이 뚫렸다.

자리에 있던 몬스터들이 전부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넉백 효과로 인해 양쪽으로 쭉 밀려 나간 것이다.

검을 회수한 랄프는 지체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제단은 정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고, 그것은 곧 퀘스트 클리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타탓-!

“으아아아!”

기합성을 내지름과 동시에,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전방으로 도약하는 랄프.

그런데 그때, 랄프 일행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지형 변화로 인해 일부 파티원들과 연결이 끊어집니다.

-파티가 해체되어 재구성되었습니다.

-현재 파티원 : 랄프, 체스크, 이니스코.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한 체스크와 이니스코는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뭐야? 파티가 왜 쪼개진 거야?”

하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린 랄프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바보들아, 상황 파악 안 되냐?”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형?”

어느새 제단의 앞에 도착한 랄프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인벤토리에서 구슬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이니스코와 체스크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파티가 왜 끊어졌겠어?”

“……!”

“멍청한 놈들이 철문을 부숴서, 동굴 안쪽에 갇힌 거겠지.”

“아, 그래서……?”

그제야 상황이 이해된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표정이 밝아졌다.

이안 일행이 ‘괴물’과 함께 동굴에 갇혔다면, 더 긴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랄프는 피식 웃으며, 손에 든 구슬을 제단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그 즉시, 제단에 푸른 빛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우우웅-!

랄프와 체스크. 그리고 이니스코는, 그 광경을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전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제단이 작동하는 순간,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몬스터들은 전멸해 버릴 테니 말이다.

쿠쿵- 쿠쿠쿠쿵-!

커다란 진동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제단에서 푸른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그것들은 수많은 몬스터들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펑- 퍼퍼펑-!

그리고 시원스런 소리와 함께 마치 폭죽 터져 나가듯 동시에 몬스터들이 소멸되었다.

제단이 작동하면서 심연의 계곡이 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됐어! 해냈다고!”

랄프는 주먹을 불끈 쥐며 ‘괴물’이 갇혀 있을 동굴을 슬쩍 응시해 보았다.

사실 구슬을 제단에 끼워 넣는 것까지는 이전 트라이에서도 성공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했던 이유는, 제단이 작동함과 동시에 ‘괴물’녀석이 뛰쳐나와서 구슬을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계곡의 정화가 전부 끝나기 전에 구슬이 파괴되면 마지막 게이트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정령의 성소’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랄프는 제단을 작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괴물 녀석이 동굴을 부수고 바깥으로 뛰쳐나온다면 퀘스트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게이트가 활성화됐다는 메시지가 뜨기 전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니까.

‘제발, 안에서 나오지 말아 줘!’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세 사람의 시선은 동굴의 입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괴물이 뛰쳐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소망(?)은, 이뤄지는 듯했다.

10초, 20초, 아니, 1분이 지나도록.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

“이게 뭐야?”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령의 성소로 가는 게이트도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의 눈앞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종류의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확인한 세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심연의 보주’가 활성화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심연의 계곡이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정화율 10…… 25…… 70, 80, 85, 90퍼센트.

-계곡의 일부 지역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단절되어 있습니다.

-심연의 계곡 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후, 제단을 다시 작동시켜야 합니다.

우우웅-!

낮은 공명음과 함께, 격렬하던 제단의 진동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단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푸른 기운들도 어디론가 소멸해 버렸다.

“아, 안 돼…….”

힘없이 울려 퍼지는 체스크의 탄식.

이어서 세 사람의 눈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정화에 실패하여, 오염된 정령들이 다시 생성됩니다.

막다른 길에 선 세 사람의 앞에 심연의 정령들이 다시 젠 되기 시작하였다.

* * *

그륵- 그그그극-!

듣기 거북한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괴물 한 마리가 이안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쿠웅-!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괴물’이라기보단 거대한 고철덩어리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우리 토르보다도 더 크잖아?’

‘기계 파수꾼’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녀석은 수많은 기계와 부품들로 만들어진 복잡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감상하며, 이안은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크, 멋지다! 이런 기계식 외형을 가진 소환수도 하나쯤 갖고 싶은걸?’

하지만 이안의 상념은 오래갈 수 없었다.

그의 옆에 있던 뮤엘이 멍한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네?”

“이안 님이 철문을 박살 내신 덕분에, 우리 전부 전멸하게 생겼다고요.”

“음……?”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뮤엘.

하지만 이안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와 사고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왜 전멸해요?”

“……?”

“방금 퀘스트 창에서 우리가 전멸할 거란 문구는 못 본 것 같은데.”

“에엑?”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는 기계파수꾼을 가리키며, 이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저 녀석. 쟤만 잡으면 여기 나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 그야 그렇겠죠?”

“그럼 이제부터 저 고철덩어리 한번 잡아 보자고요.”

뮤엘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번쩍 치켜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이안을 응시한 뮤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자신감 넘치는 건 보기 좋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뮤엘은 이안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뮤엘이 보아 왔던, 그 어떤 랭커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저 괴물을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다.

‘저 괴물은 처치하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니니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기계파수꾼’은 그저 강력하기만 한 몬스터가 아니다.

생명력부터 시작해서 모든 전투 능력이 엄청난 것은 물론, 그보다 더 괴랄한 ‘속성’을 가진 녀석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초월 생명력이 십만 단위인 시온 속성 보스 몬스터를 어떻게 때려잡겠냐고…….’

‘시온’이라는 속성은, 정령계에서 최초로 등장한 속성이었다.

그리고 이 속성을 가진 몬스터들의 특징은 어마어마한 생명력 회복 속도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시온 속성의 일반 정령도 점사를 해야 겨우 처치가 가능한데, 그 십수 배가 넘는 생명력을 가진 보스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랄프 일행이 극딜을 넣었을 때도 결코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던 기계파수꾼.

아무리 이안의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녀석을 처치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뭐, 랄프 일행까지 전부 와서 풀 파티로 덤비면 절반 정도의 승산은 생기려나?’

만약 이안 일행의 실력이 이 정도인 줄 진즉 알았더라면, 랄프 일행과 함께 기계파수꾼을 공략해 볼 생각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의미 없는 가정.

실없는 생각이라 생각한 뮤엘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서 이안의 뒤에 자리 잡고, 곧 시작될 전투를 준비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 때문에 전멸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극 그그극-. 나의…… 잠을 깨우다니……. 겁을 상실한 인간들이로구나…….

쿵-!

앞발을 내디딘 기계파수꾼이, 이안의 앞으로 다가서며 포효했다.

-키아아아오-!

이어서 다음 순간.

기계파수꾼의 몸통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껏 던전 안에서 전투를 거듭한 이안 일행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이펙트였다.

“시온Zion……!”

바네사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던전의 오염된 정령들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속성이었던 시온 속성.

시온 속성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새하얗고 뿌연 기운이 기계파수꾼에게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인물도 존재했다.

“시온 속성이라……. 이거 재밌는데?”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뮤엘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파수꾼이 시온 속성인 것을 깨달았음에도 이안이 전혀 위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위축되기는커녕, 놀라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그러나 그녀의 당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과 쌍둥이 자매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이제는 진짜 어쩔 수 없겠어.”

이안의 말에 바네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이안. 여기서 전멸당할 수는 없잖아?”

가만히 있던 사라도 거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숨긴 것만 해도 기적이야.”

“맞아. 말도 안 되는 기사 클래스 코스프레라니…….”

“근데 진짜 소름 돋는 건 뭔 줄 알아, 바네사? 진실을 아는 사람이 봐도 위화감이 없었다는 거야…….”

“맞아, 언니. 더해서 하나 확실한 건, 지금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거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턱이 없는 뮤엘은 멀뚱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응시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우우웅-!

이안의 주변에 익숙한 이펙트가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직 소환술사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소환’스킬의 발동 이펙트.

이어서 이안의 주변으로 수많은 소환수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리고 뮤엘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