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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문명의 발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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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어둠 속에 잠겨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를 가지고 있는 새카만 계곡.
사실 명칭이 계곡이다 뿐이지 여긴 계곡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양쪽으로 끝없이 솟아 있는 절벽은 마치 거대한 땅덩이를 누가 반으로 쪼개 놓은 듯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웅장해서 처음 들어서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이건 뭐, 그랜드캐니언 저리가라네.’
아래위를 한 번씩 응시한 이안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안 일행이 진입한 위치는 높다란 계곡의 중간쯤 되는 부분이었다.
맵의 시작점이 바로, 깎아지듯 가파른 절벽에 나 있는 좁은 샛길이었던 것이다.
계곡 사이에는 작은 구름처럼 생긴 까만 물체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흐음, 이 계곡을 통과해 가야 하는 건가?’
예뿍이로부터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 계곡 너머에 ‘정령의 성소’가 있다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사대 정령’중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흐흐, 불의 정령이 좋을까 바람의 정령이 좋을까.’
새로운 식구를 얻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 이안.
이안 일행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진입하였고,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띠링-!
-‘심연의 계곡’에 진입합니다.
-더욱 강력한 돌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심연’ 속성의 정령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부터 ‘심연’ 속성의 공격 마법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지금부터 ‘심연’ 속성의 정령력이 50퍼센트만큼 더 빠르게 축척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 준 것처럼 계곡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강력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의 평원에서도 충분히 ‘강풍’이랄 만한 바람이 불어왔었지만, 이곳의 바람은 그야말로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사라와 바네사도 이곳까지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니, 여기 상당히 맵이 까다로운데?”
“그러게. 어지간한 투사체는 전부 궤적이 휘어 버리겠어.”
좌표를 찍어 발동시키는 광역 마법을 제외하면, 마법사가 가진 대부분의 공격 마법은 논타깃 스킬이었다.
즉, 대상을 향해 투사체를 쏘아 보내는 방식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바네사의 무기도 활이었으니, 두 자매의 입장에서는 전투하기 최악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이 바람의 평원 정도의 난이도만 되어도 돌파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라 느낀 것이다.
하지만 맵의 난이도에 대해 걱정하는 두 자매와는 달리 이안은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심연 속성이라……. 뿍뿍이가 좋아하겠는데?’
이름답게, 희귀 속성인 ‘심연’속성을 우대해 주는 심연의 계곡.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뿍뿍이의 브레스가 이곳에서 발동한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안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랄프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자, 여기부턴 정말 조심해야 해.”
랄프가 운을 떼자, 이안이 곧바로 되물었다.
“난이도가 높은가 봐요?”
랄프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바람의 평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난이도야.”
“흐음…….”
“일단 몇 가지 정보를 먼저 알려 주도록 하지.”
랄프는 또렷한 어조로 심연의 계곡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첫째, 심연의 협곡에는 두 종류의 속성을 가진 오염된 정령들이 등장한다.
“심연의 협곡에는 ‘어비스Abyss’라는 속성을 가진 정령들과 ‘시온Zion’이라는 속성을 가진 정령들이 등장하지.”
“시온……이라는 속성도 있나요?”
“나도 여기서 처음 본 속성이야. 근데 문제는 이 속성을 가진 정령들이 상대하기 너무 까다롭다는 거지.”
“어째서죠?”
“기본적으로 강력하기도 한 데다, 생명력 회복 속도가 괴랄하거든.”
“음……?”
“그래서 시온 속성을 가진 정령이 나타나면, 무조건 점사를 해서 한 번에 잡아야 돼.”
“그렇군요.”
“빨리 못 잡고 하나둘 몬스터 쌓이기 시작하면, 진짜 답 없어지니 말이야.”
둘째, 심연의 협곡에 떠다니는 검보랏빛의 구름들에 신체가 닿으면 강력한 어비스 속성의 피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구름은 약간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터지기라도 하면 광역 마법 폭발이 일어난다.
“구름을 조심해. 닿는 건 몰라도, 터지는 순간 그대로 게임 아웃이라고 보면 되니까.”
“그…… 정돈가요?”
“궁금하면 한번 도전해 봐. 너는 기사 클래스니까 그래도 좀 버틸 수 있을지도.”
“…….”
셋째, 협곡 초입을 지나 어비스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 몬스터 젠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어차피, 게이트 지나는 순간 퀘스트 창 뜨니까 그때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라고.”
“뭐, 그러도록 하죠.”
랄프의 설명이 전부 끝나고 나자, 이안은 자연스레 파티 최전방의 포지션으로 움직였다.
지금 이 파티에서 유일한 ‘기사’ 클래스가 이안이었으니까.
‘뭐, 서머너 나이트도 기사이긴 한 건가…….’
이안은 피식 웃으며 방패를 쓰다듬었다.
바람의 협곡에서는 방패에 붙은 고유 능력 외에 어떤 액티브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스킬들도 사용해야 될 것 같았다.
‘블러드 스플릿은 최대한 숨겨 보고. 상황 봐서 분신술 정도는 사용해야겠군.’
이안이 말하는 분신술이란,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 능력인 ‘서먼 인카네이션Summon Incarnation’을 말하는 것.
현재 이안은 서먼 인카네이션을 사용해, 5분 동안 지속되는 분신을 하나 소환할 수 있었다.
빠르게 스킬들을 점검한 이안이 블러디 리벤지를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심연의 계곡 공략이 시작되었다.
* * *
파팡- 팡-!
주먹만 한 크기의 보랏빛 투사체들이, 쉴 새 없이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이안의 방패에 막혀 소멸되었다.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어비스 건’의 위력을 95.12퍼센트만큼 흡수했습니다!
-생명력이 14만큼 감소합니다!
-‘방패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어비스 건’의 위력을 91.05퍼센트만큼 흡수했습니다!
-생명력이 17만큼 감소합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심연의 계곡은, 좁고 긴 구조를 가진 협곡이다.
반대편의 절벽까지 전력을 다해 도약한다면 충분히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거리.
때문에 이안의 역할은 평소보다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대부분의 정령들을 전면에서 만나게 되고, 거의 모든 공격이 파티의 선두에 자연스레 집중되니 말이다.
이안이 얼마나 많은 피해량을 흡수하느냐에 따라, 맵의 돌파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안의 바로 뒤쪽에 있던 뮤엘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 진짜 이안 님 덕에 난이도가 절반 이하로 내려가는 것 같네요.”
그녀의 말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요?”
“네. 아까 저희끼리 왔을 땐, 이 지점까지 거의 2~3시간 걸렸었거든요.”
“하긴……. 그랬을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이안은 거의 모든 공격을 90퍼센트 이상의 피해 흡수율로 막아 내고 있었다.
방패 막기는커녕 방패라는 아이템 자체를 쓰지 않는 랄프가 선두에 있을 때보다, 몇 배 이상 수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랄프가 받을 피해가 100이라면, 이안이 받는 피해는 10도 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체감은, 힐러인 뮤엘이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이 말라붙을 때까지 힐을 퍼부어야 했던 지난번과 달리, 지금은 너무도 넉넉했으니 말이다.
뮤엘의 신성력은 70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역시 파티에는 탱커가 있어야 돼요.”
“후후, 그럼요.”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는 뮤엘과 흡족한 표정을 짓는 이안.
하지만 이안과 뮤엘의 대화를 듣던 바네사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하, 쟤 탱커 아닌데…….’
어쨌든 이안의 활약 덕에, 파티의 딜러들은 마음껏 전방을 향해 딜을 퍼부을 수 있었다.
이안이 투사체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막아 내니, 원딜러들은 프리 딜에 가까운 포지션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지금 이 파티에서, 할 일 없는 인원이 딱 한 명 있었다.
“체스크, 우측! 뮤엘, 바네사한테 실드 걸어 줘!”
근거리 딜탱인 전사 클래스 랄프는 오더내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크큭, 랄프 형 없어도 되겠는데?”
“그러게. 랄프 형 버리고 이안 님 데려갈까?”
“시끄러 이놈들아!”
훈훈한 분위기 속에, 순조롭게 맵을 공략하는 이안의 파티.
그런데 잠시 후, 살짝 긴장어린 랄프의 목소리가 뒤편에서부터 들려왔다.
“우측에 시온!”
“……!”
“시온 먼저 점사해!”
랄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이안의 시선이 우측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새하얀 빛깔을 띤 특이한 생김새의 정령이 나타나 있었다.
‘뭐야? 이건 무슨 눈사람같이 생긴 게 날개가 달려 있어?’
마치 찰떡을 아래위로 붙여 놓은 듯한 귀여운 생김새를 가진 정령의 등장.
이안은 더욱 긴장하였다.
랄프가 주의하라 하였던 시온 속성의 정령이, 처음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슉- 슈슈슉-!
궁사인 체스크와 주 무기가 활인 바네사의 화살이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시온의 정령’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정확히 명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령의 생명력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위잉- 위잉-!
정확히 말하자면, 생명력이 언제 깎였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다시 회복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우우웅-!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정령의 바로 앞에, 새하얀 빛이 응축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본 랄프가 이안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저거 무조건 막아야 돼!”
이안은 물론 랄프의 말이 없었더라도 반응했겠지만, 그의 다급한 어조를 듣자 더욱 유심히 스킬 이펙트를 관찰하였다.
‘뭐지? 차징 스킬인가?’
그리고 다음 순간.
콰콰콰콰-!
귀여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시온의 몸에서 강력한 빛의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파파팡-!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시온 빔Zion Beam’의 위력을 91.12퍼센트만큼 흡수했습니다!
-‘어비스’속성의 방패를 사용하여, 추가로 4.8퍼센트만큼의 피해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35만큼 감소합니다!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시온 빔’의 위력을 89.75퍼센트만큼 흡수했습니다!
-‘어비스’ 속성의 방패를 사용하여, 추가로 4.6퍼센트만큼의 피해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17만큼 감소합니다!
-파티원 ‘뮤엘’이 ‘생명의 빛’을 발동합니다.
-생명력이 85만큼 회복합니다.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시온 빔은 차징 스킬이었고, 강력한 지속 딜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퍼엉-!
물론 다른 원거리 딜러들에 의해 차징은 금방 끊겼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오호, 시온 속성이라는 게 어비스 속성에 약한 속성인가본데?’
뿍뿍이의 등껍질로 만들어진 방패인 귀룡의 방패.
방패의 속성은 당연히 어비스였고, 방금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상성관계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게 흥미로운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어떤 속성과도 상성관계가 없었던 어비스 속성의 상성관계를 처음으로 찾아냈기 때문이었다.